박재일 회장님!

세상에서 가장 큰 농사를 짓던 당신.
작은 욕심 버리면 모두 한 가족 되어 살 수 있다며
한살림을 꿈꾸던 영원한 청년. 이제 정녕 떠나가시렵니까.
뜨겁던 여름의 끝자락에 날아든 비통한 소식에 우리는 모두가 황망합니다.
생명의 길 살림의 길, 갈 길이 아직 먼데 기어이 우리를 두고 가시렵니까.
시장의 논리에 인정이 휩쓸리고 사람이 왜소해지던 그 때
우리 농업과 농촌의 운명이 벼랑 끝에서 위태롭던 시절,
당신은 모두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함께 살자, 함께 이마를 맞대고 손 맞잡으면 모두가 가족이 되고 살 길이 있다”
한살림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그 이름을 단 작은 쌀가게에
원대한 희망의 씨앗을 심은 당신
삶 전체가 한살림이었던 당신 당신이 있어 우리들은 행복했습니다.
당신의 마음과 육신이 이토록 고단한줄도 모르고
저희들은 … 그래요 행복한 꿈 꿀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당신을 보내드립니다. 밝고 환한 곳으로 당신이
꿈꾸던 한살림 온전한 그곳으로. 아니 당신의 고단함 몸은 보낼지언정
당신의 그 순진무구한 꿈, 세상을 바꾸려던 그 원대한 꿈은
영원히 간직하고 이어가겠습니다.
박재일 회장님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10년 8월 21일



이제까지 이곳에 몇번이나 왔을까. 오늘 선고 공판이 있다고 해 잡지 마감 그 바쁜 와중에 법원에 왔었다. 판사는 결심하지 못하겠다며 2주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 그 때 선고를 하겠다고.

불구속 재판이기에 망정이지 감옥에 갇힌 상태였다면 어떤 심정일까.
2주 뒤에 다시 보자는 그 무심한 말...

경찰들이 시민을 무자비하게 연행하는데 항의하는 일.
단지 말로써, 그러나 그 지점이 이미 교통이 통데된 차도 위 였다는 점 깨문에.
나는 2년째 재판을 받고 있다.

나는 법을 임의대로 어겨도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법이 사회적 규범이라는 점을 부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법이 권위를 가지려면 그 적용이 불편부당한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엄정한 법 기준이라면
위장전입을 십 수차례 한 대통령이나
성매매, 성상납을 받은 검찰 간부들은 어떤 처벌을 받아야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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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오는 한강변... 성산대교 아래. 이제 가을이 느껴진다.
올 여름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새벽마다 일어나 거실에 나와 바닥에 누워 몸을 식힌뒤에
다시 선 잠을 자야 할 정도였다. 

온종일 집에서 교열보다 저녁무력 너무 진도가 안 나가
성산대교까지 자전거로 달려갔다왔다. 이내가 깔리는 저녁 강변
강 건너 서쪽하늘에 번져있던 노을도 어둠이 스며들어 희미해져 갈 무렵...

할아버지 한 분이 들을 테면 듣고 말려면 말아야 하는 듯이 섹소폰 연주를 시작한다...
이장희 '한 잔의 추억' 묘하게 가슴을 찌르네... 

늦은 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면은 ...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 취한 눈 크게 뜨고 바라보면은
반쯤남은 술잔 속에 어리는 얼굴 /마시자 한 잔의 술 마시자 한 잔의 추억
마시자 마셔버리자

우리 아이들이 ss501같은 이들에게열광하던 게 초등학교 6학년때였던 것을 떠올리면
내가 그 나이때 라디오에서 매일 울려나오던 게 이장희였다. 이내 금지곡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의 가사조차 관용할 수 없었던 박정희 정권의 비정상적인 상태나 
'마셔버리자'는 자학적인 가사에서 느껴지는 그 당시 젊은이들의 절망. 

스무 살 때 친구 박은... 술만 마시면 비슷한 절망의 감정을 담아서 

김세환의 '바람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의 가사를 바꿔  

"번개치는 날이면 옥상에 올라 쇠꼬챙이 옆에 끼고... 
오늘 죽나 내일 죽나 마찬가지 기왕이면 오늘 죽자..." 이런 노랠 불러대곤 했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흠뻑 취해 듣다가  패들을 밟아 홍제천을 달려오는데... 
나도 모르게 휘파람...  

은하수 별빛따라 집으로 왔네.... 아직도 밤은 깊은데 
웬일인지 잠은 안 오네 밤과 낮 사이에... 
구름은 흘러가는데 시간은 자꾸가는데   
나는 나는 왜 잠못이루나 밤과 낮 사이에...

채은옥이 불렀던 그 노래.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노래는 사랑타령이 아닌 것 같은데...도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무튼...쓸쓸한 노래들이 가슴에 더 잘 공명되는 그런 계절이 왔다.



감자 한 박스 사무실에 배달돼왔다. 지난 겨울 보은으로 귀농한 ㅈ의 첫 수확인 셈이다.
 아마도 제대로 큰 놈들은 돈을 받고 내고 남은 놈들인지 감자는 잘고 애처롭다

지난 봄 일손돕기 한다며 그 깊은 산골에 가서 보니.
 얼핏 문약해 뵈던 그는 구릿빛 근육질의 사내로 변해 있었다.

마을에는 말 나눌 젊은이도 없고 그의 일고여덟살 딸과 아들은
함께 놀 동무들이 없어 남매끼리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다녀온 뒤로 한동안 산골에 두고온
그들 가족이 생각나 마음이 어수선했었다.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두 부부의 도타운 정이 아니라면...
 그 고적한 적막감을 과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혀끝에 아릿한 통증을 남기는 잔 감자를 먹으며...
남 일 같잖은  산골의 네 가족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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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끌어온 재판, 세번째 재판부가 바뀌고 오늘도 공판이 있었다.

법원 가기 전에 함께 일하는 후배 김이 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사다놓고 쓰지않던 것이라며 이케아 스탠드를 준다.

밤에 집에 와 조립해 점등하니 그 실용적이면서도 단정한 디자인이 여간 마음에 들지않는다. 불빛 아래서 책을 읽다가 전화기를 들고 몇자 적는다.

2008년 촛불집회 막바지 . 이명박정부는 두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하고도 미국산 소고기를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조건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한살림도 범국민대책위 참여단체였고  내가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청와대인근에서 열리는 항의 기자회견에 참여 하러 가던 길에 경찰 수천명이 시민들을 무차별 연행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12살 초등학생과 여든살 노인, 참여연대 후배들이 연행되는 광경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도 경찰들에게 불법연행한 시민들을 석방하라고 항의했고 나 역시 연행돼 이십년만에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찜통 더위에  이틀을 자고 나왔다. 그날 수십명이 연행됐고 내가 끌려간 구로경찰서에도 열명 넘게 갇혔다. 그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었는데, 말썽이 날 것 같으니 경찰들이 이 학생은 바로 석방시켰다.

이 대단치도 않은 지난 일을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검찰은 연행된 우리에게 일반교통방해라는 죄목으로 일괄 벌금 백만원을 내라고  약식명령을 내렸다. 그 중 세 명이 이것ㅇ 부당하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나와 나보다 몇살 아래 선량한 사업가 이모씨 그리고 성대생 조모군. 민변의 이광철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해주었다. 이 간단한 재판이 이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난데없이 공범이 된 우리 세 사람은 몇달에 한 번 씩 법정에서 만나면 반가웠다. 특히 대학생 조군은 나를 잘 따랐다. 우리 사무실 근처로 찾아와 밥도 함께 먹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지레 생각했는데 그를 보며 나의 섣부른 속단을 반성했다. 그는 부모님께 꾸중을 들어가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맑시즘, 포스트 맑시즘, 정치경제학, 자본론도 을 읽고 있다고 했다...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노동자들을 돕고싶어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 나는 조금 놀라고 감동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이후로 그는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가 걱정돼 몇번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충격적인 소식을 판사가 전해준다. 그 학생 작년 구월에 사망한 거 몰랐어요?

온 종일 그 말이 던진 충격 때문에 정신이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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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더호프공동체',

지금은 영국에 가있는 원충연, 아일린 부부에게서 편지가 왔다. 잠시 성북동에 와 살던 그들과 재작년 겨울에 헤어졌는데...  그 동안 둘째가 태어났다. 사진에 보니 큰 아이 동경이도 이제 개구장이 소년티가 많이 난다.

손글씨 편지를 받은 것도 오랜만이다. 둘째 '산하'를 낳은 소식도 그렇지만, 영국에 간 뒤에는 어찌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토요일 오후마다 마굿간 옆 풀밭의 말똥을 치우고, 당나귀를 타는 걸 해요. 어제는 처음으로 당나귀에 2륜마차를 매고 마을을 두 바퀴 돌았어요. 너무 재미있고 신기했어요. 아무튼 '돌보는' 일에 미숙한 저는 요즘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편지에 써보낸 이 말에 눈길이 머문다.

성북동에 살 때...이들 부부는 동경이를 배낭식 캐리어로 업고 북악산을 넘어 두 시간 이상 걸어서 세검정 우리집까지 놀러왔었다.  그런 엄두를 낼 줄 아는 이들이 반가웠다.

*  공동체 브루더호프에 관하여 - <출처: 브루더호프의 아이들 책 소개 중에서)

브루더호프는 독일의 저명한 강사이자 작가인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16세기 초 종교 개혁 당시 제도권 교회를 떠나 삶의 단순성과 형제애, 비폭력을 추구하던 후터파 공동체에게 영향을 받아 1920년 독일에서 시작했다. 공동체는 1930년대 말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옮겨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2500명가량이 9개의 공동체(미국에 6, 영국에 2, 호주에 1)에 나뉘어 살고 있다. 각 공동체는 250-300명가량이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방식에 따라 일체의 사유재산 없이 부유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는다. 집안에는 거울조차 두지 않고 마을길을 오가는 이들의 얼굴에선 화장기를 찾아볼 수 없다. 화려한 옷매무새도 없다. 공동 세탁소에서 세탁되는 속옷들은 대부분 구멍이 나 있을 만큼 공동체 가족들은 `좋은 내 옷`을 갖는 데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이곳에선 바깥사람들의 경쟁에 지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린이를 위한 가구나 놀이기구 생산업체인 Community Playthings와 장애자용 기구인 Lifton 생산이 이들의 주 수입원인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이들은 노동을 기쁘고도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절대 남을 험담하지 않는다. "Straight Talking In Love(사랑 안에서 직접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세례 받을 때 서약까지 하는데, 이것이 없이는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자신의 욕구를 포기한 빈자리를 이들은 인류애로 채워 넣는다.
브루더호프는 죄수와 마약 중독자들의 교화, 사형 폐지운동, 쿠바 어린이들과의 교류 등의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잡지 마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어 휴가랄 수도 없는 짧은 시간...
어디에 가서 뭘 할까. 아내가 금강산 함께 가 알게 된 여성 산악인 서선화씨가
발랄하고 유쾌한 홍반장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정선 덕산기 계곡에 가자고 했다.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굉장히 외진 곳이라고 했다 ...
아내가 전화를 했더니 선화씨 목소리가 잠겨있어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더니...
'아니 언니 온종일 말을 안 해서 그래' 할 만큼 깊고 외진  산속이라고...

나는 도시의 이 속된 욕망이 지긋지긋해져서 늘 떠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시골에 살 때
나와는 무관하게 절로 분주한 도시를 떠올리면, 이젠 잊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끔 외로웠다.

이제는 어떨까. 가끔 생각해본다. 도시를 떠나 한 달에 한 번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도 ...
나는 그 고절감을 이제는 향유할 수 있을만큼... 되었는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 깊은 계곡 안의 서선화씨는... 평화로워보였다.

홀로된 순간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힘. 밖에서 오는 자극 따위에 헛된 기대는 품지 않는 충일감...
늘 그것이 관건이다.

차를 없애고 난 뒤 확실히... 어딘가 갈 엄두를 잘 안내게 되었다. 청량리역에도 오랜만에 가보았다. 새 역사가 들어서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 가면 늘 기타를 둘러맨 청년들이 들뜬 얼굴로 모여들곤 했는데... 그런 모습도 별로 없었다. 주말인데도 기차는 한산했다.

청량리발 오전 7시50분 무궁화호. 정선까지는 4시간. 오랜만에 차창밖 풍경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게임을 하면서 가도 시간이 남는다. 아내는  차안에서 한살림 면행주에 '밥은 하늘'이라고
수를 놓았다. 덕산기 계곡 안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좀처럼 모시기 어려운 두 따님은 처음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도 애원(?)할 생각은 없어 그러라고 했는데 어찌어찌 따라오게 됐다. 결국 주리를 틀어서 하루만에 계곡을 나와야 했지만 말이다.


게스트하우스 '정선애인' 가는 길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마을 끝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져있고 자물쇠를 풀고 그곳을 통과해 4킬로미터를 더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자갈길이고 그나마 4륜구동 트럭으로도 끝까지 가지 못해 마지막에는 이처럼 남부여대 걸어올라가야 했다. 덕분에 일상의 번잡함과는 완전한 단절... 의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비가 무섭게 내릴 때면 마당 바로 아래까지 거센 물살이 흐른다는... 이 옛집은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 계곡 위에 지어놓은 정자처럼 여겨졌다. 찻상이 놓인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는 눈맛이 시원하다. 누굴까.  이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계곡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단정한 나무집을 지을줄 안 옛날의 그 사람...

마루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들던 그 집.

계곡 안에는 흙보다 돌이 많았다. 흙들은 쉼없이 쓸려가고 그 자리에 성긴 돌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로와 아내는 돌을 주워 그 모양에 따라 그림을 그려 주인장에게 선물로 주고 왔다.


아내가 주인장에게 선물하고 온 북벽. 

 옛집 마루에 깔려있던 고재 토막마저도 버리지 않고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아름다운 문.  문살을 그대로 두고 모기장을 쳐놓은 여름용 문.


이제 진짜 이 딸들을 모시고 몇 번이나 여행을 더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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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하고 가보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삼복 염천에...
선풍기마저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근 지하철공사장 현장소장의 배려로 전기를 끌어다 조명을 밝히고 선풍기를 돌려왔는데
시행사에서 지하철공사를 하는 회사에 압력을 넣어 전기가 끊여졌다고...
성의있는 협상도 단 한 차례 하지 않고...
뒷구멍으로 몰래 전기를 끊는 수작이나 벌이는
재개발 시행사 GS건설과 그 앞잡이들 남전개발에게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인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가게에 대한 강제 철거가 시작됐고...
이내 유채림형과 졸리나 형수는 농성을 시작했다.
나는 이 싸움에 처음부터 비관적이었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불타죽은 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었다.


은근히 두리반의 형과 형수가 고단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
이런  패배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들이는 품에 비해 뭘 얻을 수 있겠냐. 이 정부 아래서...  
용산에서 사람을 여섯이나 죽이고도 사과도 대꾸도 안하는 놈들이다.  이런 생각들...

그러나  이것은 옆에서 관전하는 평론가들이나 할 법한 말들이었다.
형과 형수에게 그 가게는 삶의 모든 것, 젊은 날 10년을 바쳐 이룬 재산의 모두였다.
물러나려도 물러날 곳이 없었다. 유채림형의 표현대로 이 팍팍한 사막을 건너는데 꼭 필요한
그들 가족의작지만 소중한우물이었다.
 
나같이 말이나 보태는 놈들이 비관적인데 비해 ...
젊은이들은 달랐다. 홍대근처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개인적으로 각성한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두리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살림이야기에 삽화를 그려준 소복이님이 철거깡패들이 쳐놓고 간 바리케이트에 그림을 그려놓고 가셨다. 두리반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힘은 끝내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고 ... 씌여있다.  


용산의 철거민들이  내몰리다 끝내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불타죽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기가 막히고 참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두리반마저 그렇게 방치할 수 없다며... 몰려왔다.

처음에는 보통의 이웃들이 지나가는 길에
호박즙이나 빵과 떡 같은 음식을 들고 찾아왔다.
곧이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젊은 활력이 두리반을 7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매일저녁 철거된 칼국수집에서는 독립가수들의 콘서트가, 또  영화제가 열린다.
마포구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성미산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한다.
두리반은 이제 더 이상 유채림 형과 안졸리나 형수만의, 외롭게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젯밤에도 환경단체 사람들이 태양열발전기와 자전거발전기를 가지고와 설치해주었고
젊은 자원봉사자들은 기타반주에 맞춰 춤이라도 추듯이 발전기를 돌렸다. 또 단전에 맞서
시민 모금으로 작은 전기촛불로 두리반을 뒤덮는 퍼포먼스가 준비되고 있었다.

유채림 형이 건물 옥상에서 불빛 휘황한 홍대입구쪽을 바라보고 있다. 밤마다 홍대주변에는 클럽 등 밤문화를 즐기려 장안의 젊은이들이 떼로 몰려든다. 변두리에 사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무슨 촌놈 서울 나들이 한 것만큼이나 어리둥절하고 낯선 풍경이 많다.

자본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자생적인 생기와 발랄한 창조성이 두리반에 넘친다.
이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http://cafe.daum.net/duriban/9LvY/30?docid=1K90q|9LvY|30|20100720001259&q=%B5%CE%B8%AE%B9%DD&srchid=CCB1K90q|9LvY|30|2010072000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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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밤에 아이폰으로 찍어 상태가 영...

장마가 끝났다고 한다. 8월중순까지 폭염이 시작되겠지. 중부 이북에는지난 주말(17일) 온종일 내린 것말고는 장마답지않았다. 비오는 날 집 앞의 홍제천과 세검정은 조금 볼만하다. 북한산에서 쏟아져내린 개울물이 금방 불어나 세찬 물살을 이룬다. 예전에는 더 했던 모양이다. 정약용도 비오는 날이면 일부러 성을 빠져나와 그 풍경을 감상했던 모양이다.

비오는 날 물 구경을 하러 갈 수 있는 마음.
가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볼 줄 아는 여유... 이것을 잃지 않으면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길 잃는 일은 없으리.  
-----------------------------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하지 않고,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어도 성중(城中)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신해년(1791) 여름의 일이다. 나는 한혜보 등 여러 사람과 함께 명례방 집에서 조그만 모임을 가졌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무더위가 찌는 듯하였다. 먹장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마른 우레소리가 은은히 울리는 것이었다. 내가 술병을 걷어치우고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건 폭우가 쏟아질 조짐일세. 자네들 세검정에 가보지 않으려나? 만약 내켜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벌주 열 병을 한차례 갖추어 내는 걸세!”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여부가 있겠나!”


  마침내 말을 재촉하여 창의문을 나섰다. 비가 벌써 몇 방울 떨어지는데 주먹만큼 컸다. 서둘러 내달려 정자 아래 수문에 이르렀다. 양편 산골짝 사이에서는 이미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다. 옷자락이 얼룩덜룩했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벌여놓고 앉았다. 난간 앞의 나무는 이미 뒤집힐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상쾌한 기운이 뼈에 스미는 것만 같았다.

  이때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물이 사납게 들이닥치더니 순식간에 골짜기를 메워버렸다. 물결은 사납게 출렁이며 세차게 흘러갔다. 모래가 일어나고 돌멩이가 구르면서 콸콸 쏟아져 내렸다. 물줄기가 정자의 주춧돌을 할퀴는데 기세가 웅장하고 소리는 사납기 그지없었다. 난간이 온통 진동하니 겁이 나서 안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다. “자! 어떤가?” 모두들 말했다. “여부가 있겠나!”

  술과 안주를 내오라 명하여 돌아가며 웃고 떠들었다. 잠시 후 비는 그치고 구름이 걷혔다. 산골물도 잦아들었다. 석양이 나무 사이에 비치자 물상들이 온통 자줏빛과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서로 더불어 베개 베고 기대 시를 읊조리며 누웠다.

   조금 있으려니까 심화오가 이 소식을 듣고 뒤쫓아 정자에 이르렀는데 물은 이미 잔잔해져 벼렸다. 처음에 화오는 청했는데도 오지 않았던 터였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골리며 조롱하다가 더불어 한 순배 더 마시고 돌아왔다. 같이 갔던 친구들은 홍약여와 이휘조 윤무구 등이다.

                                                                               <遊洗劍亭記)>, 다산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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