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연휴를 맞아 국토종주를 결심하고 떠났지만, 

도중에 친구 아버님 부고를 받고 대구에서 돌아와야 했다. 

 

지난 2013년 시코쿠섬 88개 사찰 순례 이후 처음 떠난 장거리 라이딩. 

방치돼 있던 자전거를 다시 정비하고 늘어진 근육을 깨우고

무엇인가,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듯한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 여행이었다. 

 

- 5월 3일~ 5월 5일 13:00 

- 서울 세검정~충주 앙성 능암온천(1박)~ 상주 자전거민박(2박)~ 대구 강정보, 대구서부고속터미널  

- 주행거리 약 400 Km

 

5월 3일 아침 7시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출발해 야심차게 부암동 고개를 넘어 청운동으로 내달리던 중 

뒷바퀴 흙받이가 덜렁거리면서 뒷바퀴를 간섭해 주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출발선에서 넘어진 꼴이라 사기가 꺾였다.

겨우 달릴 수 있게 지탱하고 용산 바이클리로. 

개점시간이 11시라고 돼 있어 옆에 있는 노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출발이 늦어진 일도 자전거 트러블이 조기에 드러난 일도 다 무엇인가 뜻이 있으려니... 

 

다행히 10시경 출근하시는 트랄라님을 만났다. 문제가 된 흙받이뿐만 아니라 

스포크 장력까지 꼼꼼하게 손 봐주셨다. 늘 그렇듯이 정말 감사합니다.TT  

 

트랄라님이 일일이 나사를 풀고 제 자리에 끼우며 조이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이 없었나? 비로소 돌아보게 되었다. 

싯포스트에 달린 백에 멀티공구가 들어있었지만 ... 그만큼 나는 자전거와 멀어져 있었다. 

오전 11시. 출발이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내심 첫날 목표로 한 충주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  

자전거 타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 
양수리까지는 가벼운 하이킹을 하듯 달렸다. 

 

오후 1시 양수리에 도착, 점심을 먹고 출발. 

양수리에서 양평이 그리 먼지도 잘 몰랐다. 수 많은 터널을 지나고 해가 설핏 기울 무렵 

양평 미술관 인증센터 오후 2시30분 도착. 

 

아이들 어릴 때 10년 동안 양평 인근에서 살았기에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서른 중반에, 도시를 벗어나 무엇인가 우리 방식으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겠다고 겁없이 

시골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기질적인 문제인지, 그 무렵 일요일 저녁이면 어떤 우울감이 밀려들곤 하던 기억. 

무엇인가 왁자하고 떠들썩한 도시의 삶으로 부터 유폐된 기분.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양평에서 이포로 가는 길은 더 없이 아름답다. 

 

이포보 인증센터 오후 3시 30분. 

아무래도 충주나 수안보까지 가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주 인근에 강에서 퍼올린 모래들. 이른바 4대강 사업의 흔적이다. 

역사가 평가하겠지. 이 무모한 국토 개조 사업에 대해. 

강원도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천보 오후 5시. 이제 어디서 숙박을 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면서 조금씩 초조해지긴 했지만 해질녘 남한강은 고적하고 아름다웠다. 

트랄라님이 떠나는 내게 톡으로 국토를 천천히 감상하라시던 말씀...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우리 국토에 대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만이 아니라 이름난 관광지만이 아니라

우리 국토도 무척 아름답구나...


첫날 샤오미스마트폰에 나타난 주행거리 156km. 

능암온천 주변 무인텔에서 잤다. 

식당에 물어보니 새로 문 연 무인텔이 깨끗할 것이라고 해서... 

그러나 자전거여행자가 혼자 자기에는 비쌌고(5만원)

 

축협 고기매장에서 고기를 사서 인근식당에 가 

이른바 상차림비(4천원)를 받고 구워먹는 시스템인데 음식은 형편없고 

1인이 가도 2인분 차림비가 기본이며, 된장찌개 공깃밥 각각 다 돈을 계산하게 돼 있어 

나올때 보니 형편없는 식사에 고깃값을 포함해 거의 5만원 지불한 한 꼴이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의 무인텔도 편안치 않았다. 

아침 7시 길을 나섰다.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 풀잎에 맺힌 이슬. 

청량했다. 간밤의 어수선한 잠자리를 충분히 위로해주는 아침 라이딩. 

그런데 같은 충주라고 해도 앙성에서 충주, 충주에서 수안보가 이리 멀 줄이야
탄금대 인증센터 오전 8시 30분 

 


수안보에서 올갱이 해장국을 먹고 11시 15분 다시 출발. 

이후로 줄곧 오르막 구간이 시작되면서  

국토종주 구간의 상징적인 고난구간 소조령과 이화령을 넘었다. 


소조령 11시45분. 


이화령 정상까지 5.2km 업힐. 

자! 가보자. 


한 발 한 발이 고통스러웠지만 숙명처럼 견디며 페달을 밟아가니 고갯마루에 도달했다.

사는 일도 그렇겠지.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묵묵히 꾸준하게 ...

이화령 도착12:40 
까막득하게 이화령 터널을 통과하는 차들이 내려다 보였다.

한 시간 남짓 거친 숨을토하며 패달을 밟아 

업힐 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13:05 다시 출발. 


고갯마루를 지나면 경상북도 문경이다. 백두대간을 넘은 것이다. 

 


보상처럼 주어진 내리막길을 달려 

순식간에 문경을 통과하고 불정역 인증센터 14:20 

 


오후로 접어들며 볕이 뜨거워졌다.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 


문경을 지날무렵, 아들 3형제가 모두 미국에 체류중인 고등학교 동창 아버님 부음을 받았다. 

유년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공유한 친구.

 

자전거로 출발하던 아침에, 아버님이 위독하신 것 같아 급히 

뉴욕에서 티켓을 끊었다고 전갈이 왔었고, 며칠은 버텨주실 것 같아 

종주 마치고 서울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바 있었다. 

발인 전에 서울로 돌아가 함께 장례를 치러야 겠다. 

 

부음을 받은 뒤로는 자전거 주행에 마음이 집중되지도 않았다. 

다음날 오후 대구까지 가서 상경하면 친구가 도착할 시간까지 빈소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종주는 중단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상풍교에서 상주보까지 하도 고난의 오르막이 있다고 해서

상풍교를 건너 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는 자전거 도로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상주보 도착 17:30. 

 

 

둘쨋날 달린 거리 약 140km

 

탄금대 인증센터부터 홍보물이 붙어있던 '상주자전거민박'에 전화해서 숙소를 예약했다.

자전거길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트럭으로 픽업을 하러 오고, 저녁과 아침 식사도 만족스러웠다. 

 

 

여섯 명씩 이층침대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형 숙소는 숙박비(2식 포함 3만원)를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두 분이 하도 코를 심하게 곯아 잠을 설쳤다. 고된 일정을 소화한 이들의 단잠이다. 

잠이 깰 따마다 거실에 나갔다가 마당에 나갔다 하면서 밤을 보냈다. 

다시 묵게 된다면 귀마개를 준비해야 겠다. 

아침 7시 민박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는 역시 상쾌하다. 

대구 강정보까지 100km 남짓이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오후 4시 버스를 예약하고 


유장한 낙동강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낙단보를 지나고 구미보를 지나. 

 

구미에서 한 차례 길을 잃고 시내로 한 시간간 가까이 헤맨 끝에

 다시 강변길을 찾아 나온 뒤. 

 

 

이팝나무, 언뜻 보기에 라벤더인가 착각하게 되는 보라색 갈퀴나물꽃이 지천인 

강변길을 달려... 


낙동강 하구둑까지 남은 거리 275km 

예정대로라면 1박 2일을 더 달려 완주를 했을 테지만... 

버스 시간을 감안하며 천천히 달렸다. 

어린이날이기도 한 일요일, 대구에서 출발했지 싶은 라이더들이 많았다. 


12:00  성주대교 공사현장 아래 

트럭 노점에서 3천원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13:10  잠정 중단지점으로 잡은 강정고령보... 도착. 

쉴 때마다 마주쳤던 종주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셋째날 상주 자건거민박~ 강정보  85km

나는 왼쪽으로 금호강 자전거길로 꺾어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지방국도로 접어든 듯

풍경도 달리는 이들도 분위기가 다르다. 



금호강을 끼고 20km 남짓 달려 

염색공단 인근에서 자전거길읏 벗어나 

14:40  서대구고속터미널 도착 

15:20  프리미엄고속버스가 있다 해 표를 바꾸고 탑승 

  

짧았던 2박 2.5일의 자전거 여행은 이렇게 마쳤다. 

작은 언덕을 오를 때에도 나의 엔진은 허덕거렸다. 다시 근육을 당기고 

더 자주 달릴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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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답지 않은 날씨 덕에 올해 첫 자전거를 탔다. 작년에 잠시 아팠던 이후로 자전거 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바이클리 뚜르드월드에서  이날 인천 공항 앞 모도 등 섬 3곳에서 번개 라이딩를 한다 했지만 하루에 100km는 거뜬히 달리는 그분들 따라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대신 양수리 정도를 생각하다가 이왕이면 건강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k도 방문하고 살던 동네도 돌아보자싶어 곤지암까지 가보기로 했다.

집에서 이매역까지 44km. 시내를 거쳐 청개천를 따라 곧장 달리다가 마장동에서 천변 자전거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영동대교 자전거 길을 몰라 몇번 건너본 적 있는 잠실철교에서 도강. 다시 탄천 합류지점으로 돌아와 이매역까지...

양평까지 곧장 한강을 따라 달려가 강하리를 거쳐 산북면쪽으로 갈까했으나 점심 먹고 떠난 길이라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겨울답지않게 푸근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답지 않다'는 것은 어쩐지 불안하다. 연말에 갔던 지리산에도 산록에만 눈과 얼음이 있을뿐 겨울산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리산의 상징인 구상나무 절반이 기후변화(온난화) 때문에 고사했다는 소식도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경강선... 서울에서 강릉까지 철길을 잇겠다는 뜻이겠지?  1998년 곤지암에 작은 집을 짓고 이사하던 무렵부터 경강선철도나 성남 장호원간 자동차 전용도로 얘기가 있었는데... 근 30년이 지나 철도가 개통됐다. 도로는 여전히 일부 구간만 개통되고 공사중이다.

이매역에서 곤지암까지 전철 4정거장. 불과 15분밖에 안 걸린 것 같다. 전철역 주변은 여전히 황량하지만 빠르게 변해갈 것이다.

곤지암부터 k의 집이 있는 잣나무골까지... 양평으로 이어진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탔다. 편도 9km 왕복 18km 가량. 2차선 도로...갓길도 거의 없는 불안한 길이다. 간혹 자전거길 구획이 있지만 한번도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흙과 먼지가 쌓여있어 바포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잣나무골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k는 다행히 지난 여름에 비해 차츰 회복중인 것 같다고 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충무로에 있던 다니던 신문에서 곤지암 유사리까지 1박2일에 걸쳐 걸어서 퇴근을 할 정도로 건강하던 그가...불의의 일격을 받고 힘겹게 회복하고 있다.


램프를 못챙겨 떠난 길이라.길이 어두워질 것 같아 불안했다. 간단히 인사만 하고 전철역으로 나오려고 하니 만선리에서 하천변으로 길이 있으니 차들을 피해 가라고 알려준다. 이 동네에서 10년을 살았지만 가본 적 없는 길. 민가도 없는 야생의 들판이 곤지암천변으로 남아있었다. 어둠이 짙어가는 그 들판을 패달을 밟으며 달리자니 어쩐지 마음이 더 황량하고 어두웠다.

곤지암에 도착에 다시경간선을 타고 판교까지. 신분당선으로 갈아타고 양재까지... 양재에서 다시 3호선으로 경복궁역까지...왔을 때는 이미 저녁 7시반이 넘어있었다.

곤지암에 집을 지어 이사한 게 1998년 아이엠에프 구제금융사태 직후였다. 가진 건 없어도 세상 두려운 게 없던 때였다. 그때에 비하면 ....

정신없이 살다보니 세월이 훌쩍 지났다. 코흘리개 딸들이 여전히 학생이지만 성인이 된 것 말고는 무엇을 했나...싶은 회억이 밀려왔다. 


수요일 휴가를 내고 설악에 다녀왔다. 풀어놓을 데 없는 체증같은 것 ... 산을 걷는 수밖에...
6시40분발 버스... 이 차는 홍천 인제 원통을 거쳐 간다.

 9시20분경 백담사입구 도착

마을 입구에 '갓시래기국밥'이라고 참하게 간판를 단 식당에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밥은 봄처럼 국은 여름처럼... 이런 속담처럼 기장밥에 뜨거운시래기국.. 미리 내 준 소국차도 눈과 코와 입이 다 즐겁다.

10시반 백담사 도착. 가울 상춘객이 많아 셔틀버스 주차장에 꽤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셔틀버스에 흔들리며 백담사계곡에 접어들면서부터... 가슴이 뚫린다.

11시반 영시암

백담사 입구부터는 이 시기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수채화같은 풍경...

11시50분 수렴동도착.
백담사부터 수렴동은 경사로가 아니고 풍경이 아름다워 가볍게 느껴지지만... 꼬박 한 시간 반 가까이 걸어야 하는 길이다.
간단히 요기하고12시20분 출발

백담사 오르는 길에 가로누워있는 거목... 장구한 세월 살아온 나무가 쓰러져 있는 자체도 눈길 머물게 하지만... 머리를 숙이면 부딪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써 놓은 이 글귀는 내게  주는 잠언이나 은유로 읽힌다. 그래 숙이면 피할 수 있겠지...

수렴동에서 구곡담을 거쳐 봉정암까지는 꼬박 된비탈이다. 설악에 왔다는 시람도 깊어진다.

2시 봉정암 도착. 늦은 출발에 둘러오는 버스를 타 일정이 촉박하다. 지난 여름 호되게 아픈 뒤로 처음 나선 등산길이라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었다.
길손들에게 보시하는 된장국에 밥 말아 먹고 시주를 하고...적멸보궁에 올라가 삼배. 그리고 기원.

 2시반 봉정암 출발

이제부터는 인적이 정말 드물다. 간혹 오르는 이들도 중청이나 소청산장에서 잘 사람들뿐이다.

3시 소청산장 도착.

내설악 능선들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소청산장 새로지은 뒤로 한번도 자본 적이 없다. 겨울에 꼭 한번 와보고싶다. 시린겨울바람 명징한 별빛을 꼭 보고야말리라.

소청봉 3시15분 도착.슥 일별하고 이내 희운각을 향해 하산... 이러다 해지기 전에 하산 못 할까 싶어 마음이 초조하다.
4시 희운각

1993년 신혼여행때 아내와 오르던 길이다. 그때에 비하면 참 많은 것을 가졌는데... 왜 마음은 더 가난한가. 우리집 큰스님( ?)가르침처럼 범사에 감사할 만도 한데...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만도...

4시50분 양폭산장도착.

6시 비선대도착..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헤드램프를 꺼내고 앉아서 다리쉼을 한 뒤 느긋하게 하산..

7시 설악동소공원 ...택시를 타고 일단 터미널로... 7시40분차 이후로는 9시에나 티켓이 남아있다. 급히 김밥 한줄 먹고... 상경.
일상으로 복귀... 설악이나 지리산처럼 마음 속에 그리운 것이 있어야 한다.그 힘으로 부조리한 현실을 견딘다.
자주 지나다녀 고향처럼 여겨지는 함양 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는 찜질방서 쪽잠을 자고... 9시반 백무동 관리소를 통과했다.
산에 들어서니 두통은 가셨다.


하동바위길 참샘...찬물을 긷고 다시 길을 나섰다 .
장터목에 도달할 때까지 사람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겨울풍경이 깊어졌다 .





장터목에서 천왕까지...  눈도 많았고, 눈보라가 거셌다.






세석산장에서 잠을 잤다. 일출을 보러 촛대봉에 올라갈까 하다가 말았다. 새벽에 대피소 창밖으로 별이 초롱했다. 일출이 좋을 것 같았다. 산장 위로 난 능선길에 노루발자국이 올 겨울 이미지가 되었다.




산장을 나서 벽소령을 향해 걷다가... 떠오른 해가 맞은편 영신봉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광경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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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참 힘겨웠다.
견디기 힘들만큼 그랬다.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일들이 계속되었다.
내처 걷는 일 말고,
 내게 무엇이 위안을 주랴.

상명대 삼거리 홍지문에서 탕춘대 성을 따라 인왕산을 오른다... 인왕산을 다 걷고











무악재로 내려선 뒤, 다시 안산을 넘어
내처 걷다보면



안산 능선길은 연세대학교정으로 잦아든다. 1981년 연대 백일장에 왔던 기억이 난다. 시절이 그랬기 때문이겠지... 백일장 출품은 하지도 않고, 연대 탈반인지 농악대인지... 대학생들에 이끌려 만추의 숲속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그만 취해버렸던 청송대.

1990년 범민족대회때 함성이 뜨겁던 그 교정은 빼곡하게 들어찬 건물들로 예전의 정취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월은 가고 ... 추억은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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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동고개에서 일단 성벽은 끊긴다. 길을 건너 다시 들머리를 찾아야 한다.
삼선교, 고등학교 때부터 드나들던 추억의 나폴레옹제과가 서있던 개천은 뜯겨 복원됐다. 나폴레옹제과는 성북동 입구로 옮겨가 있다. .  

하천복개가 박정희시대의 트렌드였다면, 뜯어서 인테리어 하듯이 꾸미는 게 이명박시대의 흐름인 모양이다. 어릴 때 늘 보던 낡은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사라지고 나니 개방감에 시원하기는 하다.


혜화문 맞는편 혜화성당 뒷담 쪽으로 성벽주변으로 나무 계단과 데크공사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조만간 고개에서 바로 성벽으로 길이 이어질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은 하천변에서 이 들머리를 찾아 성벽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냥 삼선교 달동네 뒤에 성벽으로 남아있을 때에야 누가 일부러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비교적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성벽이 남아있다. 멀리 인수봉까지 북한산 전경을 볼 수 있다. 

 삼선교 고개 위, 아마도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동네겠지만.... 아직 옛 동네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담배를 팔던 구멍가게였을 텐데, 행복은 무엇일까. 상호였을까. 행복상회. 이미 살던 사람들은 모두 떠난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꼭 저렇게 생긴 담배가게로 심부름을 많이 다녔다. 60원짜리 신탄진 담배나 아침 찬으로 쓸 콩나물을 사러...

영화 '행복'을 떠올렸다. 도시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부나비처럼 살던 황정민이 병에 걸려 산속 요양원에 들어가... 약한 몸때문에 원래 그곳에서 살던 무공해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여자는 지극정성으로 남자를 간호하고 둘은 살림을 차린다. 꿈같은 행복은 잠시. 남자는 권태에 빠져 도시를 기웃거린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욕망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는 말...
신문에 난 기사에 노후자금이 적어도 6억원은 필요하다는 내용을 보면서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여자는 '오늘처럼 내일도 이렇게 살면 되지 도대체 6억원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   

'넌 세상을 몰라' 남자는 물정모르는 여자에게 권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여자를 버려둔 채 다시 도시로 간다. 당연히 건강은 나빠진다. 그렇다고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돌아왔지만 여자는 이미 죽었다. 찰나같은 순간을... 우리는 끝없이 선택하면서 살고 있다. 누구나 제 깜냥껏 '행복'을 위해 삻의 순간마다 결단을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신문기자들이 자료를 조사해서 쓴 노후의 '행복'에 필요한 6억원...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일까. 한달 생활비, 차량유지비, 외식비, 치료비 등등 예견할 수 있는 비용을 다 돈으로 충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일 텐데... 그렇다고 행복이 오나? 어차피 마음에 달렸다. 석가모니가 '룸비니 설산을 두 배로 늘려 황금으로 바꾼들 단 한 사람의 욕망도 채울 수 없다'고 했다던 말.... 달래 깨달은 이 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끝없이 오른다. 모든 사람들이 굴러떨어진 시프스의 산으로 통나무를 굴리면서 행복을 찾겠다고...

낙산 위에서 성벽 사이로 암문이 있다. 그곳을 통과하면 동숭동 윗쪽의 낙산공원이다.

낙산에서 좌우로 내려다보이는 창신동과 동숭동의 낡은 집들이 언제까지 남게 될지 모르겠다. 재개발을 하면 똑같은 성냥갑 아파트를 쌓는 것 말고...대안은 없을까. 옥인동 일대를 아파트가 아닌 방식으로 개발하려고 했다던 건축가 김원씨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과연 시장이 이것을 용납할까.

동숭동 창신동에도 꼭대기, 성벽을 따라 아직 이렇게 낡은 동네들이 남아있다. 적산가옥들 같기도 하고 전쟁뒤에 급하게 지은 블록건물들 같기도 한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호랑이만한 고양이가 골목을 .... 떡하니 지키고 있다.

창신동과 동숭동 사이로 가르마처럼 나 있는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이내 동대문으로 내려서게 된다. 이대부속병원이 있던 자리는 뒤로 물려 건물을 새로 짓는 것 같았다. 공간을 확보해 성벽을 끼고 성벽공원 조성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동대문로터리, 창신동 입구에 있는 노점... 고구마와 양파와 감자... 동대문 주변은 예나지금이나 한결같이 남루하고, 복닥거린다. 그것이 생명력이기도 할 것이다.

동대문, 이스턴 호텔 앞으로 해서 청계천을 건너고


누구나 그렇겠지만, 청계천의 개발방식에 도달한 것이 딱 우리 시대의 수준 아니었을까. 그것을 치적으로 삼아 대통령을 뽑고... 그 대가로 지난 3년 동안 온 국민이 겪고 있는 이 불안과 고통... 불평등과 불합리, 민주주의의 후퇴를 생각하면... 매년 수천억원을 들여 이 가설무대같은 인공구조물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시대의 불합리...를 선택하고 감당하고 있는 것이 딱 우리 사회가 도달해 있는 합리성의 수준이었다는 생각.

요즘은 뜸한데... 곤지암 살 때 큰 딸내미는 초등 6학년 때 이미 동대문까지 진출했던 것 같다.
곤지암 산골에 살던 아이에게 이 거대한 옷가게들이 어떤 멀미를 주었을지 ...

공사중인 동대문운동장 있던 자리를 지난다. 동대문운동장도 흉물스러웠지만 새로 들어선다는 거대 구조물 역시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예전에 읽은 어떤 자료에선가... 좌청룡 우백호, 풍수지리에 따라 인왕산과 낙산이 좌우로 뻗어나가는데,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이 조금 기가 약해 지금의 서울 운동장 자리에 흙을 쌓아 기운을 보(輔)했다는 이야기.

어쨌거나 동대문운동장은 잠실이 생기기 전에 '서울운동장'이었다. 초등학교때 황금사자기 결승전을 보러 야구장에 간 적도 있었다.



광희문에서 다시 성벽의 흔적이 나타난다. 한 일,이백미터쯤 성벽을 복원해두었지만 이내 장충동 주택가로 성벽을 파묻혀버린다.

골목사이로 언뜻언뜻 성벽의 흔적을 만날 수 있지만 대개 개인주택의 축대로 쓰이고 있다.

장충동 고개위에서 다시 성벽이 나타난다. 신라호텔 담장으로 남산까지 성벽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근에 성벽에 붙여서 산책로를 조성한 것 같다. 도보환경이 비교적 좋다.




간혹 성벽의 축조양식을 비교할 수 있는 이런 구간들이 나타난다. 제일 작은 돌들은 태조때 쌓은 것이라고 하고 조금 큰 것은 중종때, 제일 큰 돌들은 숙종때 양식이라고 한다. 돌틈을 자세히 보면 조그만 돌들을 끼워 맞춰 정교하게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수십년에 걸쳐 민초들을 동원한 어마어마한 국책사업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수고로 쌓은 성벽에서 과연 전투다운 전투가 벌어졌었나? 문외한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병자혼란때도 인조는 청나라가 처들어온다는 소식에 잽싸게 한양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농성'체제에 돌입했었고, 임진왜란 때에도 이 견고한 돌성이 무슨 억제선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북한산성도 마찬가지였다고 알고 있다. 일부러 찾아가기에도 아슬아슬한 만경대나 원효봉에까지 산성을 쌓았는데, 과연 그 수고에 상응하는 쓸모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성벽은, 애먼 백성들 '쎄빠지게' 고생 시키고 고작 집권세력들의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 정도의 역할을 하게 한 게 아닐까. 아니면 그 엄청난 공사기간 동안 뒷돈 챙긴 집권세력들의 자금조달 사업이었던가 말이다.

신라호텔 뒷담을 지나면 장충동 한남동에서 장충동으로 넘어오는 고개 위에서 일단 길은 끝났다. 골프연습장 뒤로 길을 만들고 있던데 앞으로는 계속 이어질지 모르지만, 일단은 자유센터 마당으로 나와 도로를 횡단해 국립극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리도 좀 아파서 국립극장 1층에 있는 까페에서 커피와 스콘을 먹으며 다리쉼도 할겸 쉬었다.

국립극장에서 석호정 위로 난 산책로로 팔각정쪽으로 올라갔다. 남산에 있는 성벽들은 다른 곳과 달리 벽돌로 쌓은 것 같은데, 원래 그런 것인지 복원할 때 임의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국민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동네 아이들을 선동해서 돈암동서부터 걸어서 남산까지 간 적이 있다. 동네에서는 아이들 다 사라졌다고 난리가 나고, 남산 놀이터 미로에서 신나게 치기장난을 하다가 광화문, 창경원을 거쳐 다시 걸어서 돌아와보니... 동네 분위기가 싸늘했다. 걱정시켰다고 큰 형에게 많이 맞았다. 그게 때릴 일인가... 싶기는 한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대여섯 살 때부터 눈 앞에 보이는 산을 넘어서 낯선 동네로 참 많이 '모험'을 떠났던 것 같다. 그 버릇은 지금도 남아서 낯선 동네에 가면 꼭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봐야 직성이 풀린다.


서울이 아름답다고.. 재희형과 걸으면서도 이야기 했다. 정도전 같은 조선 건국 당시의 엘리트들이 이 땅에 그렸을 미래의 꿈... 얼마나 가슴 벅차 했을까... 하는 생각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특히 성북구쪽으로는 다닥다닥 재개발이랍시고 산들을 가리는 아파트들이 낡은 동네를 밀어내고 산들을 가리며 들어서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타워크레인들이 그런 일들을 하고 이다는 것... 



남산 식물원쪽으로 내려서서 백범광장으로 내려오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연평도 포격전 소식을 전해준다. '정말?' 충격과 두려움. 사람들이 듣고 있는 뉴스에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대피소로 피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어느 나라 얘긴가요? ' 했더니 '연평도예요' 한다.

기어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당장에 성곽종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인가... 일단은 포격적 이후 소강상태라고 하니... 더 큰 일이야 벌어지겠나... 하면서 어차피 집으로 향한 길이니 걸어서 성곽을 따라 가기로 한다.

불 탄 남대문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놓았는데, 성벽에 쌓은 돌들이 안으로는 뾰족하게 치아처럼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대문옆 상공회의소 담장을 따라 성벽의 흔적을 복원해 놓았다. 그러나 유리로 처발라놓은 상공회의소 건물이 어쩐지 촌스러워보인다. 삼성본관 뒷담을 따라 서소문까지 성벽이 조금 흔적 남아있다.


부산 둘째형이 다니던 배재고등학교 자리다. 나이 차가 워낙 많이 나 형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서너 살밖에 안 됐던 것 같다. 제일 활달하고 리더십이 뛰어났던 형인데... 지금 너무 많이 편찮으시다. 배재학교 터를 지나면서 형을 떠올렸다. 매일 반야심경을 사경하고 있다.쾌유를 빌면서...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서대문 근처로 해서 경교장, 기상청쪽으로 길을 찾아가면 성벽 흔적을 볼 수 있는 모양인데, 나는 배재고등학교 있던 정동으로 해서 정동교회를 거쳐 이화여고 담장을 따라 경희궁까지 걸었다.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감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 광화문 연가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이 길을 걸어서...


전쟁걱정을 하며 경희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이 연결돼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없었다. 다시 정문으로 나와 성곡미술관 앞으로 해서,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광화문 오피스텔들 사이로 해서... 사직공원까지 걸었다.


인왕산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나도 마음이 바빠졌고 형도 급격히 기력이 떨어져 보였다. 간식이라도 준비해서 오를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둠에 휩싸여가면서 연평도 포격전 소식에 짙어가는 어둠과 떨어지는 기온에...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해졌다.


쉬엄쉬엄 걷기는 했지만, 연속으로 17km를 오르락내리락 걸었으니 무리가 올 만도 했다. 내내 쾌활했는데, 인왕산에서는 '옷을 너무 덥게 입고 왔다.' ' 이걸 하루에 다 하는 놈이 어딨냐.' '너는 하여튼 이게 문제야' 투덜투덜...
 

출발지점인 창의문으로 돌아온 것은 저녁 여섯시 반... 아침 10시30분에 떠났으니 꼭 여덟시간 걸렸다. 중간에 점심먹고 쉬고 경치 좋은 데서는 꼭 앉아서 재희형 담배 피우는 것 기다리고, 또 국립극장에서 커피마시면서 노닥거리고... 그런 것까지 합치면 걷는데만은 다섯시간쯤 소요되지 않았을까...

여섯시 반... 플래카드는 안 들었지만, 마중나온 아내와 셋이서 자하손만두에서 저녁을 먹고 커피집 '드롭' 옆 '리틀프레스'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일정을 마무리 했다.

경치가 아름답고,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락내리락 운동도 되고...또 역사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고, 나같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어린시절의 추억까지 되살리게 되는 좋은 트레킹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잘 걷는 이들에게는 하루에 다 걷기에 뭐 그다지 무리한 길도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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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마감 때문에 주말 동안 머리가 너무 아팠다. 큰 맘 먹고 어제(11월 23일 화요일) 하루 휴가를 냈다. 내처 잠만 잘까  하다가 오래 걷기로 했다. 어디로? 늘 그러듯이 북한산? 아니 아예 서울 성곽을 일주해보자... 싶었다. 재희형도 함께 가시겠다고... 해 오전 10시 창의문 앞 커피집 에스프레소에서 만났다.
'무보급 무산소 연속등반'입니다. 농담으로 킬킬 대다  커피 한 잔 마시고 10시 30분 경 출발 .




에스프레소 뒤에 창의문이 숨어 있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북악스카이웨이와 인왕스카이웨이가 개통되던 무렵.  그 길이 뚤리면서 창의문은 창의롭지 못하게 축대 밑에 옹색하게 낑기고 말았다.  

창의문에서 떠나 창의문으로 돌아오는 성곽 일주길은 17km. 한 시간에 4km가량 걷는다 생각하면 너댓시간 정도 소요되겠지만, 중간에 밥 먹고 차 마시고 쉬는 시간 포함하면 8시간 가량 예상하고 떠났다

북악산은 노무현 정권때에야 개방됐다. 권위주의 통치시절에야 어디 청와대 근처로 오고싶기나 했겠나. 그 서늘한 공기 때문에 말이다.  아다시피 북악산에는 오후 3시 이전까지만 입산이 가능하다. 신분증이 있어야 하고, 신고서 같은 걸 쓴 뒤 패찰을 목에 걸어야만 된다.

성곽 종주는 일단 창의문에서 출발해 북악산에서 혜화동 방향으로 으로 해서 낙산, 남산을 넘은 뒤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까지 돌아오는 길로 잡았다. 반대로 하면 오후에 북악산 입산이 통제되니까...마음이 바빠질 수 있다. 북악산 입산 신고소에서 반대편 청운공원쪽 능선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입산 한 뒤 성벽을 두어장 찍었는데, 경비병들이 사진을 보자더니 다 지우란다.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웠다. 그런데, 그 뒤로는 위축이 돼 사진 찍을 맛이 안났다.  

북악산 정상, 백악산(白岳山 해발342미터) 에서 북한산 쪽을 바라본 광경. 여기서는 촬영이 허용된다.


반대로 남쪽 시내를 바라본 광경... 멀리 남산과 관악산이 보인다.

백운봉 아래 청운대를 지나면 잠시 성벽밖으로 길이 나있다. 이 길을 내려선 뒤 곡창터인가를 지나 조금 더 능선길을 걸으면 숙정문에 닿는다.





숙정문을 지나면 이내 통제소를 벗어나게 된다. 담 너머로 성북동이 내려다보인다.

삼청각과 성북동 고급주택가. 청와대 뒷산 통제구역을 벗어나면 성벽도 공기도 훨씬 자유롭게 느껴진다. 성벽에 붙어있는 이끼와 담쟁이덩굴까지도...


아마도 군인들이 관리했다면...
담장에 기생하는 풀과 나무들도 모두 '작업'을 해 제거하기 십상일 것이다.

성북동 경신고등학교로 내려서는 길...꽃보다 고운 단풍.  아직 가을이 남아있다.


성북동에 내려서서 온 길을 뒤돌아보며 찍은 사진. 만약 종주가 아니라 북악산만 걷는다면 경신고등학교와 서울과학고(예전 우리 고등학교때는 보성고등학교가 있었다.) 사이, 이곳 들머리를 기점으로 삼으면 되겠다.

성북동 성벽 인근에는 내가 알기로도 꽤 알려진 칼국수집이 네 집이나 있다. 대부분 사골국물에 손국수를 끓여내고, 문어나 생선전을 별식으로 내는데... 그 중 세 곳을 가보았다. 성곽종주길에는 굳이 가본 적 없던 '우리밀국시'에 갔는데... 결과는 조금 실망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4곳 중에 4등에 해당한다고 ...


경신고 담밑에... 있는 최순우 옛집.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보존한 옛집 뒷마당. 이 넓지 않은 공간을 이토록 아취가 있는 곳으로 가꿀줄 아는... 그 마음이라니... 갈 길이 바빴지만 잠시 앉아 마음을 쉬다.


경신고등학교와 마주보고 있는 홍대사대부고를 나왔기 때문에... 3년 내 교실 창너머로 이 학교를 내다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어린시절 우리의 영웅,차범근의 출신학교이기도 한  경신고는 무지막지하게도 서울성곽을 깔아뭉개고 그 위로 학교 담장이 들어서 있다. 언젠가 되돌려지겠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의 경신고등학교 학생들도 담을 넘어 다니는 모양이다. '학생들 담을 넘어 다니지 말 것' 단정한 행서체의 판자 알림판이 눈길을 끈다. 학교에 붙인 것일까 주민들이 그랬을까. 담을 넘어다닐만큼 개구진 아이들에게 이 알림판이 어떤 효용이 있을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고나 할까.


경신고등학교를 빠져나오면 서울 성곽은 간간히 빌라 축대와 교회 축대로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그리고 혜화동 고개에 있는 혜화문에 가까워지면 담장이 온전히 드러난다.

내고향은... 돈암동이다. 성문밖 동네였다. 어릴 때 전차종점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남아있다. 주소도 동소문동 2가... 이렇게 시작됐다. 혜화문은 동대문 옆, 시외와 연결되던 동소문이었다. 어릴 때는 문을 본 적 없는데... 아마도 2000년 전후에 복원되지 않았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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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 다섯 시 경 집을 나서  산에 올랐다.
시골 살 때는 날마다 해가 어떻게 길어지고 짧아지는지,
또 시시각각 노을이 지는 방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늘 예민하게 느끼며 살았는데...

서울로 이사한 뒤로는 무심해진 채... 계절이 바뀌고 또 해가 그토록 짧아졌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여섯 시 지나자 숲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주말 내 몸살을 앓았을 그 산길을 발자국소리마저 죽이고 걸었다.

어둠에 치유의 기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둠에 휩싸인 비봉에 앉아...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고 있을 저자를 내려다본다.


추석 지나고 또 한 달이 지난 모양이다. 거의 달이 다 차 올랐다.
추석 때 설악산 가서 다친 무릎은 이제 많이 나았다고 ... 믿고 싶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귀성 행렬에 뒤섞여 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날들이 행복이었음을... 세월 흐른 뒤에야 깨닫는다.


추석 전날 수원 처가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올라와... 우리만의 방식으로 부모님을 추모하며 넷이서 명절 아침밥을 먹었다. 울적한 마음에, 설악산에 가 오래 걷자는 생각에 밤 9시30분 고속버스로 속초에 갔다. 명절날 저녁 고속버스도 하행선 고속도로도 텅텅 비었다. 평창휴게소도 을씨년스럽도록 휑했다. 폭우가 쏟아지더니 그새 겨울이 왔나 싶도록 기온도 낮았다.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방향으로 곧장 200미터쯤 걸어가면 바다가 조망되는 '해수찜질방'이 있다. 작년에도 그곳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다. 당연히 푹 잘 수 없었고 토막토막 자다깨다 하면서 아침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산 아래서 밥을 먹어두자는 생각에 찜질방 인근 식당에서 대구매운탕을 시켜 먹었다. 후춧가루 냄새와 조미료를 빼면 생선은 왜 넣었나 싶도록 아쉬운 조반이었다. 설악동 가는 7번버스는 찜질방 맞은편에 있다.



혼자 걸으니 자주 쉴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나중에 화근이 되긴 했다. 식당이나 설악동에서 괜히 어정거리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비선대에서 10시경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석주길, 천화대 리지에 붙어있는 산악인들이 많았다. 


아이폰으로 직찍...

도중에 확인한 페이스북에 내 프로필사진을 보고 인삿말을 남긴 정왕룡형이...
학교다닐 때 꽤 준수했던 얼굴이 이렇게 삭았냐고 ...이런...ㅎㅎ

햇반이 같이 포장돼 있는 오뚜기소고기국밥,라면과 빵, 아침에 마시겠다는 생각에 작은 포도주스도 한통 찜질방 근처 편의점에서 사갔다. 마등령에서 12시쯤 빵을 먹고, 공룡능선이 끝나는 지점인 희운각3시쯤 라면을 끓어먹었다. 4시부터 소청봉을 향해 올라가 5시쯤 소청봉에 도착했다. 

희운각에서는 1993년 신혼여행때 아내와 대청봉 대피소(중청산장이 생기기 전)에 가 자겠다고 오르다 당귀차를 사 마신 일이 있다. 그 향기가 지금도 생생한데, 훗날 안나푸르나 산길의 롯지에서 때 낀 주전자로 데워 설탕을 듬뿍 넣어주던 밀크티도 정겹지만... 편의점 진열대에서 플라스틱통에 든 음료수를 사 마시는 일은 참 싫다.

희운각도 양폭산장도 수렴동 산장도 이제는 방부목으로 다시 지었다. 허름했지만 정취가 넘치던 옛 산장들이 안목 있는 작가들의 산수화 같았다면 되똑하게 다시 태어난 수입 방부목 산장들은 어쩐지 싸구려 공산품 같아 아쉽다.



희운각 산장 옆 헬기장은 공룡능선과 천화대를 한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같다. 풍경을 보자고 올라갔더니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싶은 아주머니가 혼자서, 거의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 풍경을 보다가 ... 올라오는 내게, '아, 멋져요.'  탄식을 하며 스스럼없이 말을 한다. 누군들 설악의 그 풍경 앞에서 그런 탄식이 나오지 않으랴...

소청봉에서 중고생, 초등학교 2학년 막내아들까지, 4남매가 있길래 대견해서 말을 걸었더니, 경기도 광주에서 왔다고... 고향사람 만난 것처럼반가워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 당분간은 절대로 산으로 따라나설 것 같지 않은 두 딸을 생각했다.  

충동적으로 길을 떠났으니 당연히 산장 예약은 하지 못했다. 사가지고 간 팩소주 두 개를 마시고  산장 로비에서 9시경 사진 속에 나온 이들처럼 침낭속에 들어가 잤다. 피곤해 푹 자면 좋았을 텐데 역시나 한 시간 간격으로 잠이 깼다. 새벽에 산장 밖에 나가 불빛 휘황한 속초시내와 밤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별들이 초롱했고 언뜻 중청봉 뒤로 꼬리를 남기고 스러지는 유성.


이날 새벽 대청봉의 기온이 영상 1도까지 내려갔다. 주목에 서리가 허옇게 내려앉았다. 날이 맑아 일출도 깨끗했다.   


해가 떠올랐지만 보름달은 여전히 중청봉 뒤에 남아있다. 한 하늘에 해와 달이 설악산을 사이에 두고 마주 떠 있었다. 임금들 뒤에 세워두는 병풍 속 일월도처럼...

사실은 이번 산행도 '자학'적으로 오래 길게... 걸을 작정이었다. 중청에서 12선녀탕까지 서북주능선을 다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중청을 떠난지 1시간도 안 돼 왼쪽 무릎에 통증이 왔다. 인대가 끊어진 게 아닐까 싶도록 날카롭고 지속적인 통증 때문에 걸음 내딛기가 어려웠다. 이미 서북주능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니 도리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바위길이 견뎌야 했다.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만 불길한 생각에 여간 우울하고 의기소침해지는 게 아니었다. 그간 무리한 산행을 많이 한 탓에 연골이 상한 건 아닐까. 이제 산행은 끝인가, 산에 못 다니는 나는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알파인스틱에 의지해 절뚝 거리며 걷고 있으니 산 꽤나 다녔다는 지나가는 이들이 너도나도 자기도 겪어본 일이며 뜸을 뜨거나 해서 자가 치료를 했다는 말들에 충고에 조언에 ... 그걸 듣는 일도 즐겁지 않았다.

7킬로미터 남짓 걸어 한계령 휴게소로 내려가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오색으로 가 그린야드 호텔에서 온천욕을 했다. 가족들이 함께 온 이들을 보니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났다. 가끔은 그냥 쉬러 다니는 여행도 같이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동안 하도 야영장으로만 끌고 다녀서 아이들이 여행을 기피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경복궁역 앞에 있는 정형외과에 갔더니 의사는 쓱 만져보더니 별일 아니라고, 소염제 먹고 사나흘 쉬면 괜찮아질 테니 당분간 운동을 삼가하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아침 운동도 삼가하고 근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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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추석연휴가 곧 시작된다. 토요일 오전에 시외버스타고 괴산에 다녀왔다. 솔뫼에 귀농해 있는 후배 장성백, 최현주부부도 만나고, 박재일 회장님 묘소도 가보고 싶었다. 작년에 동서울 터미널서 증평 가던 버스에 너댓 명 타고 가던 게 생각나 오늘도 그럴까 싶었는데, 열댓 명은 족히 버스에 탔다.
 증평을 거쳐 괴산까지 가는 버스였다. 버스요금 1만200원, 소요시간 1시간50분. 생각보다 멀지않다.

▲ 괴산터미널 시간표

괴산서는 충주, 청주 그리고 이천을 거쳐 수원가는 버스 등이 이다. 청주, 서울 가는 버스가 제일 많다.
서울까지 편도 1만원, 왕복 2만원...소요시간, 편의성을 따져보면... 기대보다는 비싼 것 같다.  '차 사고 말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괴산 터미널 건너편 골목 안에 한살림매장이 문을 열었다. 운영이 되겠나? 많이 걱정들 했는데... 와글와글... 물건이 동나는 일이 잦을만큼 잘 된다고 한다. 그날도 물품 보충하러 김관식 사무국장이 충주에 다녀오셨다고... 지난 한 달 남짓동안 이 매장을 통해 신규회원도 150명이나 늘었다고 한다.

솔뫼에 가서는 사진을 찍은 게 없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는 카메라질 하는 게 꺼려진다.

회장님 묘소에 가보았다.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묘 앞에는 작은 항아리에 구절초 같은작은 국화들이 생생하게 꽂혀 있다. 나중에 김관식 국장께 들으니 따님들이 거의 매주 찾아오고 있다고...

아내와 절을 하고, 돋아난 잡초들을 잠시 뽑고... 앉아서 잠시 건너편 용산을 바라보았다. 조희부 선생, 이남선 이사와 함께 회장님 모시 그 땅을 처음 보러 갔던 그 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못내 아쉬움이 남는 그 뒤의 일들... 

오후 5시55분차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현주는 우리가 자고 갈 줄 알고 녹두지짐에 막걸리 마실 기대를 했었다고... 우리도 아쉬웠지만 집에 두고 온 딸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마을에 잘 뿌리내리고 있는 것 같아 적이 안심이 되었다. 집도 농지도 마련하고 그들이 꿈꾸듯이... 사람들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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