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이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도, 때로는 엄청난 희생을 바쳐서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기어이 현실화해온 처절한 과정 그것이라 할 수 있다."  ?


복잡한 심경을 접어버리자... 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덕분에 일주일 내내 강만길 교수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었다. 출근길 오가는 짧은 시간 전철 안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틈틈이 읽다보니 600페이지가 넘기는 하지만, 근 일주일이나 걸렸다.

아이폰 덕분에 밑줄 그을 부분이 나오면 그대로 메모할 수 있었다. 점점 손글씨 쓸 일이 줄어든다.

[역사가의 시간]은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이다.  우리세대는 강만길 교수가 강의한 고대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그가 쓰고 창비에서 펴낸 근대사와 현대사를 통해 중고등학교때 대충 지나친 역사 공부를 다시 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가 1980년대에 무슨 대단한 운동가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그는 학자로서 자기 양심을 거스르지 않았을 따름인데... 그 이유만으로 대학에서 해직되고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에 끌려가거나 남산의 안기부에 끌려가야 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데에는 궂이 양심을 드러낼 일은 없다. 고단한 시기에,  남에게 자기 생각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자기원칙을 지키는 일.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양심은 개인에게 때로 위험과 희생을 요구한다.  

친일파들에게도 '민족에 해악을 끼쳐야겠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자기 삶에 달콤한 겄을 따라가다보니, 자기 이익만을 좇아 처신하다보니 결국 이웃을 사지로 몰아넣고 민족의 고통을 가중시키게 되었겠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친일'과 '반민족'은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친일반민족문제진상규명위원회'의 일부 보수적인 위원들의 '실용'적인 관점에 대해 그는 뚜렷하게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다.

이른바 '생계형 친일'에 대해서는 이해하자는 입장이면서도 젊은이들을 학병이나 정신대로 내몬 적극적인 친일파들이 고스란히 남한 사회의 기득권세력으로 유전된 과정에 대해 그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북에 대해 객관적인 이해, 따뜻한 관심과 연대의식이 느껴진다. 아마도 북에서는 친일파들에 대해 합당한 청산절차를 거친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또한, 50년이 지난 뒤에도 나치에 부역한 비시정권 참여자들을 찾아내 종신형을 선고한 프랑스와 우리 현실을 비교하기도 한다. 

일제에 부역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던 강도들이 호위호식하는 남한의 역사에서 '약삭빠른 처세'말고 후손들이 배울 교훈이 무엇이겠는가

또한, 책의 후반에는 확고하게 '평화통일'노선에 대해 강조하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은 오히려 통일자문회의의 학자들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념이 더 앞섰다는 서술도 해놓았다. 그처럼, 가치추구형, 학자적 양심을 가친 정치지도자를 우리 역사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래는 책을 읽다 밑줄 그은 몇 군데 구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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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는 전쟁방법으로는 통일될 수 없는 곳임을 그 전쟁을 통해 배우고, 평화통일을 지향해가는 것이 민족사적.세계사적 흐름에 부응하는 길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봐야한다.

- 속없는 사람들이 "남자는 군대에 가봐야된다" 같은 말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않다고 생각한다. 국방의무는 신성하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간사회가 미개해서 전쟁이 문제해결의 최고수단이던 시대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활개치던 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나는 서목사(서남동 )에게 중세 카톨릭의 처지에서 보면 개신교는 종교로 생각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으로 세상이 더 발전하게 되면 지금의 기독교에서 섬기고 있는 신이 신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런 때에도 기독교가 존속될 수 있겠는가,하는 대단히'무례한'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서남동목사가 "강교수는 역사학 전공잔데 역사를 움직이는 법칙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하고 반문하기에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이 존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지금의 신이 신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쯤리면 역사를 움직이는 접칙같은 그것이 곧 그때의 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 사람이란 현실에서 안전하게 살지만 역사위에서는 불안전하고 부당한 삶을 살 수도 있고, 반대로 현실에서는 불안전하고 손해보는 삶이지만 역사위에서는 안전하고 당당한 삶을 살 수도 있다.

- 신분제의 울타리 안에서나마 '우리'를 위해 살던 중세적 공동체는 근대로 오면서 모두 해체되었다. 비록 다수 인민의 자유를 제약하던 신분제 울타리는 해체되었다해도, 모든 인간이 굶어죽을 자유까지 보장된 철저한 개체가 되어 홀몸으로 광야를 헤매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통해 두번이나 통일고문을 맡았지만 상대적으로 통일고문회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김대중정부 때였다고 기억된다. ... 통일고문들이 자문하기보다 오히려 반평화통일적 생각을 가진 통일고문들이 김대중대통령의 평화통일 강의를 듣는 자리가 되었다 해도 크게 틀리다 않았다.

- "역사는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이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도, 때로는 엄청난 희생을 바쳐서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기어이 현실화해온 처절한 과정 그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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