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다는 소식을 듣고 퇴근하고 가보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삼복 염천에...
선풍기마저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근 지하철공사장 현장소장의 배려로 전기를 끌어다 조명을 밝히고 선풍기를 돌려왔는데
시행사에서 지하철공사를 하는 회사에 압력을 넣어 전기가 끊여졌다고...
성의있는 협상도 단 한 차례 하지 않고...
뒷구멍으로 몰래 전기를 끊는 수작이나 벌이는
재개발 시행사 GS건설과 그 앞잡이들 남전개발에게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인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가게에 대한 강제 철거가 시작됐고...
이내 유채림형과 졸리나 형수는 농성을 시작했다.
나는 이 싸움에 처음부터 비관적이었다. 용산에서 철거민들이 불타죽은 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이었다.


은근히 두리반의 형과 형수가 고단한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
이런  패배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들이는 품에 비해 뭘 얻을 수 있겠냐. 이 정부 아래서...  
용산에서 사람을 여섯이나 죽이고도 사과도 대꾸도 안하는 놈들이다.  이런 생각들...

그러나  이것은 옆에서 관전하는 평론가들이나 할 법한 말들이었다.
형과 형수에게 그 가게는 삶의 모든 것, 젊은 날 10년을 바쳐 이룬 재산의 모두였다.
물러나려도 물러날 곳이 없었다. 유채림형의 표현대로 이 팍팍한 사막을 건너는데 꼭 필요한
그들 가족의작지만 소중한우물이었다.
 
나같이 말이나 보태는 놈들이 비관적인데 비해 ...
젊은이들은 달랐다. 홍대근처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
개인적으로 각성한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두리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살림이야기에 삽화를 그려준 소복이님이 철거깡패들이 쳐놓고 간 바리케이트에 그림을 그려놓고 가셨다. 두리반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힘은 끝내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고 ... 씌여있다.  


용산의 철거민들이  내몰리다 끝내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불타죽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에 기가 막히고 참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두리반마저 그렇게 방치할 수 없다며... 몰려왔다.

처음에는 보통의 이웃들이 지나가는 길에
호박즙이나 빵과 떡 같은 음식을 들고 찾아왔다.
곧이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젊은 활력이 두리반을 7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매일저녁 철거된 칼국수집에서는 독립가수들의 콘서트가, 또  영화제가 열린다.
마포구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그리고 성미산 마을의 주민들이 함께 한다.
두리반은 이제 더 이상 유채림 형과 안졸리나 형수만의, 외롭게 고립된 섬이 아니다.  

어젯밤에도 환경단체 사람들이 태양열발전기와 자전거발전기를 가지고와 설치해주었고
젊은 자원봉사자들은 기타반주에 맞춰 춤이라도 추듯이 발전기를 돌렸다. 또 단전에 맞서
시민 모금으로 작은 전기촛불로 두리반을 뒤덮는 퍼포먼스가 준비되고 있었다.

유채림 형이 건물 옥상에서 불빛 휘황한 홍대입구쪽을 바라보고 있다. 밤마다 홍대주변에는 클럽 등 밤문화를 즐기려 장안의 젊은이들이 떼로 몰려든다. 변두리에 사는 나 같은 이들에게는 무슨 촌놈 서울 나들이 한 것만큼이나 어리둥절하고 낯선 풍경이 많다.

자본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자생적인 생기와 발랄한 창조성이 두리반에 넘친다.
이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http://cafe.daum.net/duriban/9LvY/30?docid=1K90q|9LvY|30|20100720001259&q=%B5%CE%B8%AE%B9%DD&srchid=CCB1K90q|9LvY|30|2010072000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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