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게 끌어온 재판, 세번째 재판부가 바뀌고 오늘도 공판이 있었다.

법원 가기 전에 함께 일하는 후배 김이 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사다놓고 쓰지않던 것이라며 이케아 스탠드를 준다.

밤에 집에 와 조립해 점등하니 그 실용적이면서도 단정한 디자인이 여간 마음에 들지않는다. 불빛 아래서 책을 읽다가 전화기를 들고 몇자 적는다.

2008년 촛불집회 막바지 . 이명박정부는 두 번이나 국민에게 사과하고도 미국산 소고기를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조건으로 수입하기로 했다. 한살림도 범국민대책위 참여단체였고  내가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청와대인근에서 열리는 항의 기자회견에 참여 하러 가던 길에 경찰 수천명이 시민들을 무차별 연행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12살 초등학생과 여든살 노인, 참여연대 후배들이 연행되는 광경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도 경찰들에게 불법연행한 시민들을 석방하라고 항의했고 나 역시 연행돼 이십년만에 유치장에 갇히게 되었다. 찜통 더위에  이틀을 자고 나왔다. 그날 수십명이 연행됐고 내가 끌려간 구로경찰서에도 열명 넘게 갇혔다. 그 중에는 고등학생도 있었는데, 말썽이 날 것 같으니 경찰들이 이 학생은 바로 석방시켰다.

이 대단치도 않은 지난 일을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검찰은 연행된 우리에게 일반교통방해라는 죄목으로 일괄 벌금 백만원을 내라고  약식명령을 내렸다. 그 중 세 명이 이것ㅇ 부당하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나와 나보다 몇살 아래 선량한 사업가 이모씨 그리고 성대생 조모군. 민변의 이광철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해주었다. 이 간단한 재판이 이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난데없이 공범이 된 우리 세 사람은 몇달에 한 번 씩 법정에서 만나면 반가웠다. 특히 대학생 조군은 나를 잘 따랐다. 우리 사무실 근처로 찾아와 밥도 함께 먹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희망이 없다고 지레 생각했는데 그를 보며 나의 섣부른 속단을 반성했다. 그는 부모님께 꾸중을 들어가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맑시즘, 포스트 맑시즘, 정치경제학, 자본론도 을 읽고 있다고 했다... 쌍용차 사태를 보면서 노동자들을 돕고싶어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해 나는 조금 놀라고 감동했다.

그런데 지난 가을 이후로 그는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나도 그가 걱정돼 몇번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충격적인 소식을 판사가 전해준다. 그 학생 작년 구월에 사망한 거 몰랐어요?

온 종일 그 말이 던진 충격 때문에 정신이 없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이런 일들이 주변에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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