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마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어 휴가랄 수도 없는 짧은 시간...
어디에 가서 뭘 할까. 아내가 금강산 함께 가 알게 된 여성 산악인 서선화씨가
발랄하고 유쾌한 홍반장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정선 덕산기 계곡에 가자고 했다.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굉장히 외진 곳이라고 했다 ...
아내가 전화를 했더니 선화씨 목소리가 잠겨있어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더니...
'아니 언니 온종일 말을 안 해서 그래' 할 만큼 깊고 외진  산속이라고...

나는 도시의 이 속된 욕망이 지긋지긋해져서 늘 떠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시골에 살 때
나와는 무관하게 절로 분주한 도시를 떠올리면, 이젠 잊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끔 외로웠다.

이제는 어떨까. 가끔 생각해본다. 도시를 떠나 한 달에 한 번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도 ...
나는 그 고절감을 이제는 향유할 수 있을만큼... 되었는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 깊은 계곡 안의 서선화씨는... 평화로워보였다.

홀로된 순간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힘. 밖에서 오는 자극 따위에 헛된 기대는 품지 않는 충일감...
늘 그것이 관건이다.

차를 없애고 난 뒤 확실히... 어딘가 갈 엄두를 잘 안내게 되었다. 청량리역에도 오랜만에 가보았다. 새 역사가 들어서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 가면 늘 기타를 둘러맨 청년들이 들뜬 얼굴로 모여들곤 했는데... 그런 모습도 별로 없었다. 주말인데도 기차는 한산했다.

청량리발 오전 7시50분 무궁화호. 정선까지는 4시간. 오랜만에 차창밖 풍경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게임을 하면서 가도 시간이 남는다. 아내는  차안에서 한살림 면행주에 '밥은 하늘'이라고
수를 놓았다. 덕산기 계곡 안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좀처럼 모시기 어려운 두 따님은 처음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도 애원(?)할 생각은 없어 그러라고 했는데 어찌어찌 따라오게 됐다. 결국 주리를 틀어서 하루만에 계곡을 나와야 했지만 말이다.


게스트하우스 '정선애인' 가는 길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마을 끝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져있고 자물쇠를 풀고 그곳을 통과해 4킬로미터를 더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자갈길이고 그나마 4륜구동 트럭으로도 끝까지 가지 못해 마지막에는 이처럼 남부여대 걸어올라가야 했다. 덕분에 일상의 번잡함과는 완전한 단절... 의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비가 무섭게 내릴 때면 마당 바로 아래까지 거센 물살이 흐른다는... 이 옛집은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 계곡 위에 지어놓은 정자처럼 여겨졌다. 찻상이 놓인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는 눈맛이 시원하다. 누굴까.  이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계곡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단정한 나무집을 지을줄 안 옛날의 그 사람...

마루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들던 그 집.

계곡 안에는 흙보다 돌이 많았다. 흙들은 쉼없이 쓸려가고 그 자리에 성긴 돌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로와 아내는 돌을 주워 그 모양에 따라 그림을 그려 주인장에게 선물로 주고 왔다.


아내가 주인장에게 선물하고 온 북벽. 

 옛집 마루에 깔려있던 고재 토막마저도 버리지 않고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아름다운 문.  문살을 그대로 두고 모기장을 쳐놓은 여름용 문.


이제 진짜 이 딸들을 모시고 몇 번이나 여행을 더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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