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스님,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
세 분의 오체투지 2차회향이 6월 6일 임진각 망배단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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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해 하루에 약 4Km씩 천 번 가량
온 몸을 땅바닥에 던져 투지하면서 이분들이 남한의 북단... 이날 행사장의 한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유를 잃어버린 자유의 다리, 이 기막힌 역설의 현장'까지 400여km를 온몸으로 기어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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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를 하실 때도 그랬다. 마음이 편치않았다. 이 분들이 온 국토를 자벌레처럼 굴러가고 있을 생각을 하면, 아무 생각없이 밥 먹고, 발 뻗고 누워자는 이 일상이 어쩐지 송구스럽고 미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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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한 그 누구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던 신영복 선생의 글귀도 이런 일을 두고 쓰신 것이리라.

이들이 이토록 아파하는데, 이토록 처절하게 참회하며 기원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조차 똑똑한 평론을 해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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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해서 내가 그 길을 따라 온좋일 몸을 던져 절을 해야만 하는지, 할 수 있는지...
 내적 필연과 당위가 생기지도 않았다. 아니면 용기가 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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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순례단은 애초에 지리산 노고단(하악단)을 출발해 계룡산(중악단)을 거쳐 6월 15일  묘향산(상악단)에서 천제를 올릴 계획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북측과 접촉한 결과 이북 땅을 오체투지로 통과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고 묘향산에서 천제를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방북과 행사진행을 허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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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현재까지 방북허가를 내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연일 북과의 전쟁불사를 떠들면서 광분하고 있는 실정이고보면 이 정권이 스님과 신부님들이 온 국토를 벌레처럼 기면서 몸을 던져 기원하고 염원한 그 마음과 정신의 수준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돈도 되지 않을 것 같으며 효율도 낮아보이는 이 행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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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에 보면 통일부 장관이라는 자가 강연을 통해 공공연하게 김정일의 건강과 정신이상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누가 미친 것인지 모르겠다. 통일이 화해와 협력의 의미로 쓰이던 시대는 지나간 모양이다. 오로지 서로를 멸망시키겠다는 식의 증오감만이 팽배해 있다.
 
이 세분의 순례자가 망배단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도 이 기막힌 현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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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안은 회향식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 대략의 내용은 이랬다.

이 길고도 긴 길을 하루 천 번 이상 아스팔트에 몸을 던져
기고 또 기어서 임진각 망배단까지 왔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이 기막힌 역주행의 시대, 소통불능 미친 정권은 막가파식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전쟁위협은 높아졌으며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죽은자들의 아들마저 오히려 살인혐의를 뒤집어씌워 가두려고 하고 있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철회하겠다던 이른바 대운하를 4대강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간판만 바꿔 추진하는가 하면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교육정책, 종교갈등을 부추기는 등  순례를 시작할 때보다도 세상은 더욱 위태로워졌으며 공생공존의 생명원칙을 짓밟고 있다.
순례단은 실질적인 교류 협력을 증대시키는 대북정책의 전환 이른바 5대강살리기 사업의 중단, 불행한 죽음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외면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월 15일 묘향산 상악단에서 이러한 기원을 위해 천제를 올릴 때까지 다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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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악단(지리산), 계룡산(중악단), 상악단(묘향산)은 예부터 조상들이 천제를 지낼 때 세 곳을 돌며 간절히 기원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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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에 처음으로 산 '새차'였고
곤지암 시골집에서 서울까지 왕복 130여킬로미터, 근 10년간 나를 출퇴근 시켰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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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이들을 태우고 국토를 종단하며 야영할 때도 함께  했던
레조 2000년식 자동차를 어제 폐차했다.
응암동에 있는 폐차장까지 아내가 몰고갔다.
눈물의 마지막 주행이라며 많이 아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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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기판에 나온 것처럼 주행거리 33만4천7백42킬로미터 만 9년 동안
사람으로치면 거의 심장이식과 간이식 같은 전신마취수술에 해당할
 엔진 들어내기, 미션 들어내기를 몇번 치렀고
그 치료비만 해도 소형차 새로 살 만큼은 치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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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에 웅크리고 잠든 어린 딸들을 싣고 밀양의 어머니 댁이나
바다 건너 제주도 야영장까지 안 달린 길이 없을만큼 수고한 우리의 덜컹이...
옆구리에 군데군데 녹마저 슬어 있어 짠한 마음을 일으키던 그녀석...

폐차를 결정하게 된 것은... 수리비가 200만원가까지 나올 것이라는 정비센터의
진단과 마침 종합보험 갱신기간이 도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달릴 수 있는 그 차를 넘기고 폐차장에서 받은 고철값은 35만원.
아내와 나는 그 돈으로 미니벨로 자전거를 한 대 더 사기로 했다.

당분간,
우선은 1년동안 차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우리도 이 서울에서..,. 보기드물게... 차 없는 가족이 된 것이다.
지구에도 덜 폐를 끼치는 것 같고,
조금은 더... 한살림 하는 사람다운 실천을 하게 된 것 같아...
서운해 하는 아내에 비해...
나는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백무산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프로 정치가 아니야, 바보야
진보란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사이비 민주주의야, 바보야
애국은 그런 게 아니야!

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말뿐이던 우리가 텅텅 빈 우리가
허세뿐이던 우리가 당신 손을 뿌리쳤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열번 스무 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리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철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벼랑에 떠밀고 내려다보니
바위 벼랑 아래 처박힌 피투성이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아,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첫 순간에 종말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는 뜨거운 정의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동경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과 순결한 영혼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높이 세우려는 짓 따위에 열정을 품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운명의 비극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내의
외침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당신을 먹이로 던지고
피의 잔을 나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슬픈 선지자의 꿈이여!
당신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아, 살아서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람이여
다 벗고 인간만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여
정치도 벗고 권력도 벗고 모든 권위도 벗고
오직 벌거숭이 인간만 남기려 했던 사람이여
차별 없는 인간만 남겨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이여

당신의 눈물이 우리들 가슴에 강물처럼 일렁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출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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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0) 2009.06.01

정확해야 아름다울 수 있다.

왜 저널리즘 글쓰기인가?

글쓰기의 장르는 매우 다양합니다. 사적인 글쓰기/공적인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일기,(자서전), 편지, 이메일. 공적인 글쓰기: 시와 소설, 희곡 에세이, 기행문 등 문학적 글쓰기, 기사 칼럼 등 저널리즘적 글쓰기, 광고문안, 연설문, 안내문, 보고서 기획서 청원서 등등

글쓰기는 더 이상 문인, 저널리스트 등 몇몇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과 아울러, ‘문자 시대는 가고 영상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영상 이미지 역시 최종적으로는 문자 언어로 번역되어야 이해와 소통이 가능합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와 같은 뉴 미디어 역시 문자언어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이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문자 문화는 영원할 것입니다.

언어는 대중의 합의에 의해 정착되고, 또 동시에 대중에 의해 변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어에 일정한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대중(언중)에 의해 생성소멸하고 유통되고 기록(저장)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말하기와 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문자세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문자는 영상 혹은 구술문화에 의해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문자시대를 능동적으로, 그리고 당당하게 영위하는 교양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교양인이라면,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한 교양인이라면 전공을 불문하고 정확한 글쓰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의 개별적 삶은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이중에서 쓰는 행위가 가장 논리적이고 또 정확해야 합니다.

글쓰기의 일차적 목표는 자신이 생각한 대로 쓰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쓰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무의식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생각 자체가 정돈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하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은,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짓는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잘 정돈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표현(건축으로 치면 시공능력)할 수 없다면 글쓰기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갖고 있는 몇 가지 미덕

우리가 저널리즘적 글쓰기(기사 쓰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정확한 사실에 바탕해,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쓰기의 모범이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도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게 드러나는 칼럼(사설)이든, 쓰는 이의 관점이 가능한 배제되는(이른바 ‘객관적’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이 강조됩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실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글쓰기 방법입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에서 아름다움은 미덕이 아닙니다. 미사여구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는 사실(fact)을 표현하는 데 있어 장애물일 수도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다른 글쓰기와 달리 취재와 구성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취재과정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널리즘에서처럼 구체적인 현장(인물)과 정확한 사실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취재기법은 우리가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나 평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에도,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꾸밀 때에도 저널리즘의 취재기법을 동원하면 글이 훨씬 입체적이고 풍성해집니다.

셋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사건이나 사고, 사태나 현상 등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고 심층적인 보도 못지않게, 남과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저널리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넷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독자 대중의 알 권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물이나 사건 사고, 사태 등에 대한 독자의 기본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사회 변화와 그 변화의 방향성을 파악하는 데 시야를 넓히고 시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표현뿐 아니라 전달에 큰 비중을 둡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새로운 지식과 정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독자(수용자)에게 전달되고 소통(커뮤니케이션)되지 않는다면 저널리즘적 글쓰기는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은, 우리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정보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환경 속에서 진행됩니다. 송신자이면 수신자인 우리가 소통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그 삶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소통 능력이 였는 시민들로 구성된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저마다 ‘1인 미디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이어, 사용자 제작 컨텐츠(UCC User created contents)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듯이, 우리는 저마다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의견과 주장이 분명하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든, 그 의견과 주장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든 이미 저널리스트인 것입니다.

자식정보사회를 살아가면서 단순한 지식정보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지식과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동시에 지식과 정보, 의견을 개성적으로 생산하고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저널리즘적 글쓰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널리즘적 글쓰기를 체득하면, 보고서뿐만 아니라 한 권의 책을 집필할 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한 편의 기사와 한 권의 논픽션의 구조와 글쓰기 방법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노력한 만큼 잘 쓸 수 있다.

1.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유형
스트레이트 기사, 인터뷰기사, 스케치. 분석 및 해설기사(feature story), 르포르타쥬, 칼럼, 논설 등.

2. 기사를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방법

1)주제를 분명하게 설정합니다.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가령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고 하면 각 분야에서 한국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하는 기획일 것입니다. 기사의 주제는 분명한 계기가 있어야 하며, 독자에게 유익한 저보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성이 부족하다면 흥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2)주제를 뒷받침할 자료와 전문가, 현장(사례), 관련 기사를 찾습니다. 주제가 정해졌다면 가장 먼저 관련 시사를 검색해야 합니다. 한창 취재하다가 비슷한 기사가 몇 년 전에 나온 사실을 알고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를 검토하다보면, 주제를 바꾸거나, 취재 영역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3)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역피라미드형: 전문(요약)-중요한 사실-흥미 있는 이야기 순으로 구성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AP통신이 개발한 기사 구조로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흔히 사용합니다.

. 피라미드형: 도입-중요한 사실-서스펜스 형성-클라이맥스 순입니다. 피라미드형은 피처 기사에서 자주 씁니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끌고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학적이고 연대기적인 서술방식입니다.

. 혼합형: 클라이맥스(요약)-서론 -본론-결론 순

* 신문기사의 종류는 크게 스트레이트와 피처기사-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답니다. 스트레이트기사는 말 그대로 객관적인 정보와 사실 전달에 중점을 둔 기사입니다. 정책의 변화나 새로운 사실, 사회 현상 등 기자의 의견을 넣지 않고 보도하는 형식인데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뉴스의 대부분이 바로 ‘스트레이트기사’입니다.

반면 피처기사는 사건, 사고, 인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작성한 ‘읽을거리 기사’를 말합니다. 사실보다는 주로 어떤 사건과 관련된 미담, 사례, 화제거리, 가십성 소재 등을 담는데요. 흔히 스케치기사, 르포기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피처기사는 특별한 시사성이 없더라도 정보적인 가치가 있고 알릴만한 얘기가 된다면 소재로서 무방합니다. 주로 평상식을 넘는 독특한 소재,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 감동을 주는 상황 등이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여간첩 원정화 검거’라는 스트레이트기사가 있다면 ‘원정화는 누구인가, 화려했던 원정화의 삶, 한국판 마타하리’ 등의 기사는 피처에 속하겠죠.

피처기사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보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르포기사’가 여기에 속합니다. ‘르포’는 기자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생생하게 중계하는 형태의 기사를 말하는데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스트레이트기사에 반해 기자가 직접 체험한 내용을 의견과 함께 전달하는 형식입니다. 따라서 ‘현장감’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겠죠.

1), 2), 3)이 충분히 준비되었다면 기사 작성에 들어갑니다.

. 간결하게 써야 합니다. 국내 신문은 일반적으로 5행 이상(65~75자)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문을 쓰라는 것입니다.

. 가능하면 구어체를 씁니다. 이야기하듯 쓰라는 것입니다.

. 주어와 술어를 분명히 합니다.

. 매력적인 언어를 찾습니다.

. 쉽게 씁니다. 좋은 기사의 첫째 조건은 쉬운 문장입니다.

이상은 언론학 입문서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권장하는 지침입니다.

필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기사를 잘 쓰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십시오. 이것이 나중에 기사 제목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획과 취재의 매 단계에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민물낚시, 환경오염 주범’ 이라는 기획기사를 준비한다면, 바다낚시의 오염 문제에 관한 자료는 읽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기획과 취재 단계에서 기사의 첫 문장, 즉 리드를 구상하십시오. 전 문장이 결정되지 않으면 기사를 쓰기 어렵습니다. 취재를 충분히 해놓고서 도 첫 문장, 즉 도입부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기자들이 제법 많습니다. 오죽하면, 작가들이 ‘첫 문장은 신의 선물이다’라고 말하겠습니까. 필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제목과 첫 문장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를 쓸 때에도, 산문이나 논문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복잡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취재한 내용을 주위 동료나 가까운 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흥미로운 인물을 인터뷰 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취재한 내용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상대방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으로부터 더 취재해야 할 부분, 더 강조해야 할 부 분 등 의외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관련서적을 찾으십시오. 인터넷 검색은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가장 새롭고 신뢰할 만한 정보와 자료는 책에 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열심히 취재서 기사를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섯째, 소설을 많이 읽고 영화,TV드라마를 자주 보십시오. 소설은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문학 분야가 아니라도 베스트셀러 책은 따라 읽어야 합니다. 관객이 많이 드는 영화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책과 영화에서 한 줄 인용하면서, 혹은 등장인물을 끌고 들어가면서 기사를 시작하면 독자들의 눈길을 더 많이 또 오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기사의 궁극 목표는 더 많은 독자들이 읽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늘 기사만 생각하십시오.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기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카페 옆자리에서 얻어들은 한 마디가 대형 기사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찬반양론이 팽팽한 기사일 경우, 가족이나 친구들의 의견을 청취해보면, 취재나 기사 작성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사는 혼자 쓰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읽고 느끼고 생각한 만큼 글은 달라집니다.

개성적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 다지기

정확한 문장이 관건입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은 특히 저널리즘에서 문장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정확성이 우선입니다. 아름다운 문장은 그 다음 입니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작가는 아름다운 문장, 개성적인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정확하고 개성적인 쓰기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필요합니다. 글쓰기를 위한 기초체력을 다지는 필자의 체험적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1. ‘나쁜버릇’부터 찾는다.

어떤 글이든 좋습니다. 자기가 쓴 글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자주 나타나는 단어나 표현이 발견됩니다. 사람마다 특유의 말투(말버릇)나 몸짓이 있듯이 글에도 특유의 ‘버릇’이 나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것이다’라는 종결어미를 자주 씁니다. ‘~것이다’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글 버릇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식어가 많은 문장, 접속사가 많은 문장, 나열이 많은 문장이 나쁜 문장입니다. 자기 글에서 나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입니다. 자기 글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올라가야 합니다. 자기 글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문제점만 제기해도 글쓰기는 순식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됩니다.

자기 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자기 글을 들여다보십시오. 자기가 쓴 글을 ‘원수가 보내온 편지’라고 생각하고 여러 차례 읽어보십시오. 버릇이 발견될 때까지 읽으십시오.

2.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찾아라.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기자나 작가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으십시오. 글쓰기의 모델을 하나 설정하는 것입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은 반드시 좋아하는 가수가 있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가 지망생은 필사하고 싶은 선배 소설가가 한둘은 꼭 있습니다. 좋은 기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그대로 베껴 쓰십시오.(필사). 외우면 더 좋습니다. 자기기 좋아하는 글을 적극 모방해보십시오. …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들은 도정일(문학평론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고종석(소설가, 언론인), 김훈(소설가, 언론인), 배병삼(정치학, 동양학), 한형조(동양철학), 송호근(사회학), 고미숙(문학평론가),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등입니다. 이외에도 좋은 필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분은 한겨레신문에 칼럼 쓰는 황현산 교수)

3. 새롭지 않으면 쓰지 말라

저널리즘의 생명은 새로움 입니다. 새롭지 않으면 뉴스가 아닙니다. 저널리즘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모든 글쓰기는 새로워야 합니다. 사실이나 의견에서 새로워야 합니다.

...

4. 자세히 관찰하라

관찰은 모든 글쓰기의 스타트라인 입니다. 사물이든 사건이든 인물이든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정확한 글쓰기가 불가능합니다. 관찰이 부정확하면 사실관계가 흔들립니다. 정확히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특히 부정확합니다. 주변 환경에 따라 착시현상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상기해보십시오.

관찰은 단지 시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많이, 그리고 정확히 느끼는 것도 관찰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 관찰은 대상에 대한 집중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선입견을 버리고, 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판단을 중지하고) 대상에 몰입했다가, 다시 대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이 관찰 단계에서 나옵니다.

관찰 훈련의 첫 단계는 자기가 본 것을 소리 내어 말해보는 것입니다. 관찰대상이 인물이라면, 머리 모양과 색깔, 길이에서부터 이목구비를 거쳐 구두까지 관찰하면서 하나하나 말해보십시오. … 그동안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발견입니다. 낯익은 것에서 낯선 것을 찾을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최고의 글쓰기 재료입니다.

5. 메모하고 메모하고 또 메모하라...
......

개성적인 글쓰기를 위한 세부지침

1. 나로부터 시작하라 : 저널리즘적 글쓰기,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에서 ‘나’는 차가운 전달자입니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글 쓰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활자 매체의 기사는 연성화하고 있습니다. 피처기사, 칼럼 등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문제를 구사합니다. … 나에 대한 글쓰기는 자기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계기를 제공합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같은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글쓰기 말고 거의 없습니다.

2. 반복하지 말라 : 반복은 강조할 때 말고는 피해야 합니다. 반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표현의 반복과 내용의 반복이 그것입니다. 같은 단어,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마십시오.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의어를 쓰십시오. ‘그녀는 아름다운 숄을 두르고 아름다운 가방을 들었으며 아름다운 마을에 산다’ 이 문장에서 ‘아름다운’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습니다. …

3.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 이것은 문장을 짧게 쓰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한 문장에는 하나의 정보, 한 문단에도 하나의 정보군을 담는 것입니다. 한 문장에 두 개 이상의 정보를 담는 순간, 문장은 길어집니다. …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 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한 문장, 하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글로 써보십시오. 처음에는 대단히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몇 번 고쳐 쓰다보면, 문장을 짧게 쓰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할 것입니다.

4. 접속사를 쓰지 말라 : 통학 또는 통근과정을 ‘한 문장 한나의 정보’ 원칙에 따라 쓰다보면, 수시로 접속사가 끼어들 것입니다. 접속사 없이 쓰려고 애써보십시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접속사가 거의 (‘전혀’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없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남한산성] ...

접속사는 글 쓰는 이의 마음속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연결형, 나열형 접속사를 피하십시오.

5. 나누고 묶어주어라 : 기사를 쓸 경우,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공해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럴 때는 유사한 것끼리 묶어줘야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종류를 소개한다면 국적별, 재료별, 계절별 등으로 나누어 묶어줍니다.

6. 병치할 때 조심하라 : 같은 기능을 가진 단어, 구, 절 등이 나란히 놓일 때 자주 오류가 나타납니다. ‘사과와 큰 배’ ‘철수는 중학생이고 영희는 공부를 잘한다’ 와 같은 문장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과’라는 단어와 ‘큰 배’라는 구는 병치하면 안 됩니다. 단어는 단어끼리, 구는 구끼리 병치하십시오. ‘사과와 배’, ‘작은 사과와 큰 배’ 가 적확한 표현입니다.

30-3-30 법칙을 명심한다.

언론인들은 ‘30-3-30’법칙을 자주 언급합니다. ... 독자들이 처음 30초동안은 제목이나 부제, 사진 그래픽요소, 기사의 도입부 등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처음 30초 안에 기사를 읽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일 읽기로 마음 먹었다면 3분 동안 기사의 도입부를 읽습니다. 그리고 도입부가 흥미롭다면 30분 동안 기사를 끝까지 읽는다는 것입니다. 가자와 편집자는 처음 30초를 3분으로 늘리고, 다시 3분을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

이문재 / [글쓰기의 최소원칙]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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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 백무산  (0) 2009.06.04

노무현 때문에 울었다.


서울 광장에서 그가 대선때 불렀다는 상록수 가운데
'...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하는 대목이 울려퍼질 때,
그의 실패가 우리 모두의 실패인 것 같이 여겨져 눈물이 났다.
또한 그가 즐겨 불렀다는 해바라기의 노래 가운데,
' 우리 살아가는 동안 할 일이 꼭 하나 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이 구절에서도 역시 감정이입을 되어 누선을 자극했다. 살아가는 동안... 살아가는 동안...
그가 바람부는 벌판에서 외롭게
세상에 홀로인듯 걸어갔을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장례가 끝났다.
불교의 생사관에 따르면 그는 49일동안 중음신으로 구천을 떠돌다가
49제를 치른 뒤 영원히 저승으로 떠날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처럼 그의 죽음 앞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를 비판한 것은 그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에 대한 항의였지,
세상에서 죽어없어지라는 저주는 아니었는데,
그는 벼랑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그의 절망이 그토록 컸을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열광하고 환호했으나 이내 실망했다. 
 때문에 권력의 속성이란 이런 것인가...절망했고
그를 욕하며 버렸다.
그의 주변에 있는 참모들, 386세대들의 허물이 들려올 때마다
'그럼 그렇지 권력지향의 네 놈들이 하는 짓이...' 이렇게 혐오했었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되는 것은...
도대체 왜, 후보시절의 그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의 그가 그토록 달라져야 했는가.. 였다.
사실은 우리가 그를 버린 게 아니라
그가 우리를 버렸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왜 그래야 했을까.
명분없는 침략전쟁인 이라크 파병이나...
농민들을 때려죽이면서까지 일방적으로 추진한 한미FTA...
대추리 미군기지이전 문제를 보면서...우리는 도저히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욕했다.
그는 대통령이었고, 국군 통수권자였으며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좌에 있었고
우리는 무기력한 개인이었고 시민이었다. 그래서 그를 원망했고, 마음에서 그를 버렸다.
이 때문에 그는 임기 말년에 혼자가 되었다.
그가 미국과 FTA를 추진한다고해서 조중동이 그를 지원할 리 만무했다.
시민사회는 당연히 그와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명석하고 논리적이며 정의롭까지 했던 그가...
도대체 왜 그런 길을 갔는지
나는 지금도 잘 이해가 안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본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 같다.
그가 시민사회를 배신하며 추구한 정책들은 하나같이 미국과 관련된 것들이다.
우리는 온전한 자주독립국가가 아닌 게 분명하다.

미국이 멱살을 틀어쥐고 '자주? 너 죽을래?' 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대를 당장의 국익과 무관하게 이라크에 파병해야 하고,
광우병 걸린 미국소고기도 수입해야 되고, 미국과 국토가 연결된 캐나다 멕시코처럼
세계에서 가장 앞장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도 체결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인 모양이다.

이 때문에 그는 지지세력과 등을 질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그는 혼자 외톨이가 됐기에, 이명박 하이에나 일당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물어뜯겼다.
시민사회가 그를 굳건히 지지했던들...그렇게 함부로 물어뜯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미국에 종속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된 때문이 아닐까.

노무현같이 자존심과 자의식 강한 인간이 남한의 대통령이 되는 순간
죽음은 예견된 게 아니었을까...

서울광장 영결식때 이런 생각이 드니까... 눈물이 났다.
서러운나라의 서러운 대통령이 죽었다는데 생각이 미치니까...
나도 모르게 비질비질 눈물이 스며나왔다.
게다가 이제 이 미친 정권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전쟁마저 불사할 태세다.

정말 두렵다.
달아날 곳도 없게 섬처럼 갇힌 이 나라에서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우리가 새끼들이나 제대로 건사할 수 있을까...

당장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뭔가 해야 한다.
초조하다.

 

잘가요 노무현 ... 정치가 같지 않았던 사람이여.
우리는 당신에게서 희망을 보았고, 열광했으며
실망했고, 비판하며 당신을 버렸습니다.
당신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야수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물어뜯겼습니다.


그토록 격하게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벼랑 투신을 해버리고 나니..
이 모든 일들이 허망해졌습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걸어간 예수와 당신을 비교하기도 하더군요.
베드로마저도 배신한 것도 그렇고,  죽어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도 그렇다더군요




설령 당신이 예수와 같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좀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면서
이 바닥 모를 절망을 함께 헤쳐갔더라면...
오늘 새벽 대한문 앞 흐느끼며 장사진을 이룬 시민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

올해도 무위당 선생 추모행사가 원주에서 열렸다. 15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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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모였다.
지난 4월 광주에서 전시회가 열렸던 탓인지, 예년에 비해 관련 행사는 조촐했다.
'생명운동 활성화'를 주제로 전 마리학교 교장인 황선진 선생과 한살림 강릉의 김대진 상무가 발제를 했다. 
황선신 선생은 무위당이 '운동한다' 고 내걸면서 사시지 않은 것처럼 생명평화 뒤에 운동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대진 상무는 생평평화운동이 먼 훗날 생명평화세상이 온 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었면 좋겠다고 했다.

토론에 나선 이들 가운데는 이혜숙 전 부산생협 이사장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협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개인 앞에 조직을 앞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말, 그리고 일본에 가서 만난 노 활동가가 '호호 .. 사람이 얼마나 다양하고 재미있던지...' 이런 말만 되풀이 하더라는 말이 그랬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개인을 당위로 억누르는 운동, 조직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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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추모식때 묘소 근처의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해마다 보는 풍경이다.
장일순 선생 추모와 모내기는 어쩐지 잘 어울린다.
모를 내는 저 손이 안도감을 준다.
밥이 우주의 젖이라고 말한
해월 선생의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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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아래 나무그늘에서 판소리를 하는 정유숙 선생이 단가 '사철가'와 '춘향가' 가운데 춘향이 옥에 갇힌 대목을 불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 날이라 분위기는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

사철가의 가사가 더욱 가슴을 파고 든다. 노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누군들 삶이 속절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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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에서 사회적경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2009년 5월 13일 오전 장충동의 한살림을 방문했다.
Emma Clarence, Roger Spear, Marguerite Mendell, Antonella Noya (OECD) 네 사람의 연구자들은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으며 관련 대학과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방한 기간인 5월 11일부터 15일 사이에 한국의 사회연대은행 등 사회적 기업 등을 방문하며, 협동조합 가운데는  한살림의 사회공공성을 주목해 한살림을 특별히 방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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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 Clarence
OECD  LEED  프로그램  정책  분석가로  이탈리아  트렌토(Trento)  시에  위치한
지역개발을  위한  OECD  LEED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2007 년부터  OECD 에서
사회적경제의  역할과  사회통합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OECD 에서  공동 
발간한  저서로는  사회적  경제:  참여적  경제  조성(Social  Economy:  Building  Inclusive
Economies)이 있다.

Roger Spear
Roger  Spear 는  협동조합  연구과(the  Co-operatives  Research  Unit)의  장이며,
Ciriec 과학 위원회(Ciriec Scientific Committee)의 회원, 사회적기업에 관한 유럽
최대  규모의  연구  네트워크인  EMES 의  창립자이며  부대표이자,  영국
개방대학교(Open  Univ.)  ‘커뮤니케이션&시스템과’에서  조직체계와  연구
방법론을  가르친다.  University  College  London 에서  학사,  Lancaster 대학에서
조직론(Systems)을 전공으로 석사를 받았다.

Prof. Marguerite Mendell 
Marguerite Mendell교수는 Concordia대학의 지역사회, 공공 행정 단과대 (School of
Community  and  Public  Affairs)의  부학장이자  부교수이며,  동  대학  칼  폴라니
정치경제학 연구소 (Karl Polanyi Institute of Political Economy)의 이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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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하늘을 먹다

남해에서 삼천포 가는 길 위에서 먹을거리가 되기 위해 트럭에 실려가는 천진한 눈망울의 개들을 만났다. 해월 최시형은 우리가 먹고 사는 일이 ‘하늘이 하늘을 먹는 일(以天食天)이라고 했다. 우리가 먹고 나서 이루려고 하는 일이 하늘을 먹어야 할 만큼 절실하거나 먹는 하늘보다는 좀 더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밥상 앞에서 늘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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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환갑을 기념해 처남내외와 여수, 남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둘째날 숙소는 남해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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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사러 갔더니 수박이고 참외고 남해에서 나는 것은 없고 진주를 거쳐 들여오는 것들 뿐이라 다 비싸다고 했다. 마늘 농사와  드믄드믄 흩어져 있는 논들과 마늘밭. 그리고 고단한 투망질로 섬사람들은 고립된 채 고단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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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과  나 사이에 가끔 서로 유리벽을 사이에 둔 것처럼 의사가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
아이들은 가난한 아비와 살면서도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이나 낭만처럼 가난도 아이들에게 추상이기느 마찬가지다.
독일마을은 서구식 건축물과 좋은 풍경만 보면서 감탄만 하기에는 마음이 짠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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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전쟁이 끝난 지 몇년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에 내다 팔 수 있는 것은 우수한 노동력뿐이었다. '양질의 노동력' 국민학교때 사회교과서에 언제나 내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구절이었다.
노동력이 자원이라는 말도 이해가 안됐고, 노동이 질이 높고 낮은 건 또 무슨 말인가?

아무튼 박정희는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을 방문해 넘쳐나는 '질좋은 노동력'을 팔고 대신 유무상의 차관을 들여다 길도 닦고 사회기반 시설들을 닦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독일로 간 간호사와 루우르 탄전지대의 광부들이 마주했을 캄캄한 어둠과 견디기 힘들었을 노동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몸집이 작은 동양 여자들이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서구 환자들의 몸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병간호를 했던 일이 죽음과 같은 고역이었을 것이라고... 언젠가 누가 말했다.

남해의 독일 마을은 40년 전 독일로 갔던 우리의 삼촌, 고모, 이모들을 위해
남해군이 조성한 마을이다. 풍광좋은 고국 땅에 돌아와 은퇴의 노후를 휴식하라는 취지말이다.

남해군이 스포츠파크나 독일마을을 조성한 것 역시... 팔아서 돈 되게 할 것은 마늘이나 좋은 경치밖에 없는 궁벽한 섬 살림을 어떻게든 헤쳐나가 보려는 고심에서 그렇게 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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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에서 자고 새벽에 눈이 떠지길래... 장모님 모시고 보리암에 올라갔다.
몇 해 전 아내와 태풍을 맞으며 상주해수욕장부터 걸어서 등산한 적은 있지만 차를 몰고 등산해본 적은 없었다. 차로 등산하는 일은 역시 삼가해야 할 일이다.  된비알을 치오르는 일은 아찔하기도 했고 새벽의 적막을 요란한 바퀴 소리로 뒤흔드는 일도 마음 편치 않았다.

그러나 나도 장모님도 비안개에 싸인 보리암에서 각기 108배를 하고 하산했다.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여러가지 몰상식은 이제 산꼭대기 사찰에 내걸린 플래카드에도 등장하고 있었다.
앞으로 5년 우리들 삶은 얼마나 요동을 치게 될지...
날마다 108배 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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