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유스호스텔-  구마코겐 미미도(御三戸)캠프장 

주행거리 69.71km 


고향집에서 자기라도 한 듯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창밖에 그림 같은 강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산책을 하는 주민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두세 량 짜리 작은 전차가 철교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대리석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준비돼 있는 인스턴트 커피와 녹차 ..


여섯시에 일어나 저녁에 사 둔 도시락을 먹고 빵을 구워 잼을 발라 도시락을 쌌다.



아랫 층 레이코상 부부가 깰까 싶어 발 소리 죽여 걸어다녀도 마룻바닥은 계속 삐그덕 거렸다. 


짐을 꾸려서 마당으로 나와  지하 빨래 건조장에 널어 둔 텐트를 걷었다. 잘 말라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짐을 다 꾸리고 난 뒤에도 인기척이 없어...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아까마츠 레이코 상이 마당으로 나왔다. 



방문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며 내 사진을 찍고...나도 기념으로 당신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까... 화장을 안 한 상태이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찍어 달라고...  식수를 받아야 겠다고 하니까...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받아도 된다고... 일본 수도물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굳건했다. 실제로 소독약 냄새도 없고 생수와 무슨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수도물을 받아서 마시고 다녔지만 전혀 트러블이 없었다. 


7시 반 출발.  잊을 수 없는 오즈시여 안녕 .



단정한 마을과 거리...그리고 사람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언제 다시 찾아와 볼 수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올 일이 또 있을까. 




여기도 외곽에는 여지없이 대형 쇼핑센터들... 잠시 꿈을 꾸고 현실세계로 소환 당한 느낌이랄까... 소박한 자급도시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현실로...   


로손에서 카페오레(110엔)를 마시고  56번 국도로로 17km쯤 달린 뒤...  내륙 쪽으로 뻗은 379번 도로 갈림길에 있는.. 우치코(内子) 미치노에키에서 잠시 쉬었다. 이제 가늠할 수 없는 산길이 또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미찌노에키 (道の駅)는 주요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들인데, 나그네들에게는 반가운 장소다. 노숙을 하며 순례를 하는 도보, 자전거 순례자들도 주로 이곳에 잠자리를  정한다. 화장실이 개방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실 물과 화장실, 그리고 피를 피할 지붕만 있다면 사실 극단적인 곤란은 피할 수 있겠으니... 말이다.


지차제에서 운영하는 것인지...  대개는 지역 농산물 판매장이 중심에 있다. 특이하게도 마늘이 있어 두 통(160엔), 그리고 홋카이도 산이라는 우유 (90엔)를 샀다. 일본사람들이 '닌니쿠'라고 부르는 마늘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마늘이야말로... 한국음식은 마늘이 들어간 음식... 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생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다. 무엇인가 억눌린 것이 있던 일본에서 해방된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실감하셔야 했던 것인지 아버지는 날 마늘을 좋아하셨다.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군대에 갈 무렵부터는 나도 그렇게 됐다.  대량급식 찐 밥에 물려 입맛을 잃을 때는 취사병 후배들에게 마늘 한두 쪽을 얻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좋았다. 


첫날 다이소에서 산 붓을 꺼내 자전거를 털고...  산을 향해 뻗은 379번 도로로...  




당분간은 개울을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날도 맑고 평화롭다. 



개울에는 잉어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투망질을 하는 아저씨는 뭐 하나 급할 게 없어 보인다.  



적막감마저 느껴지는 길을 달린다.  차르르... 체인 돌아가는 소리마저 선명하다. 


11시 시골마을 길가에 있는 휴식소에서 간식을 먹고 있자니. 도로 순례자  하야시 미츠오 씨가 도착한다. 도쿄 옆에 있는 요코하마에 산다고... 자기 딸이 서울대학교에 유학해 박사 학위를 했다고... 간밤에 어디서 잤냐고 하길래... 오즈시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하니까... 교도칸 유스호스텔...자신도 안다고...   자신은 줄곧 노숙을 하면서  순례중이라고... 전에 자전거로 순례한 적도 있다고 했다. 




마쓰야마(松山)시에도 유스호스텔이 있으니 만나게 되면 이용해보라고... 


379번 도로에서 다시 42번 도로로 우회전하는 지점에 작은 휴식소가 있다. 순례자들이 많이 쉬었다 가는 곳인지... 그런데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아침에 싸 가지고 온 도시락 먹고 12:40 출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해발 600미터 고개를 공사장 트럭들을 피해 꾹 참고 고개를 올라야 했다.  


해발 570m 시모사카바 (下坂場峠)고개 그야말로... 산판길에 나무를 실어 내리자고 뚫어 놓은 고개인 것 같았다. 고갯길 공사를 하는지 육중한 덤프 트럭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르내리는 것 말고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없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44번 다이호지(大寶寺)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 GPS에 나타나는 지도상으로는 조금 미심쩍다... 고개를 내려간들 바로 절이 있는 게 아니라 다시 뭔가 산이 가로 놓여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어쨌든 다운힐...  


외진 시골에서는  빈집들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만나는 게 이제 낯설지도 않다. 작은 마을에서 지도는 또 다시 산 하나를 넘어가도록 가리키고 있다. 마침 도보 순례자가 앞서 가고 있어 ... 물어보니 자전거가 가기 어렵겠다고 했다. 

가이드북에는 도로 표시가 돼 있다. 비포장이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우편배달부에게 물어보니 조금 멀고 도로가 험하기는 하지만 다이호지까지 갈 수는 있다고...  용기를 얻어 다시 오르기 시작... 


길이 험해 패달을 밟아봐야 헛돌기만 했다. 끌고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토기타고개 해발 770m ... 좀 전에 오른 시모사카바 고개보다도 더 높았다.  이젠 정말 고개를 내려가기만 하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 내리막길에서 안내 책자를 꺼내보기 귀찮아... 내처 타고 달리다가 길을 잘못들고 말았다. 



저류조로 만들어 놓은 호수로 보이는... 이곳에서 길은 끊겨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고개 정상 부분까지... 올라 왼쪽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을 찾았다. 



하루도 곱게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TT 



드디어 쿠마코겐(久万高原町) 마을에 도착했다. 넘어 온 산을 돌아보니 까마득하게 높았다.  44번 다이호지(大寶寺)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편의점도 없는  산속 마을. 놀라운 것은 토키타 고개 입구에서 만났던 도보 순례자가 이미 절에 도착해 있었다. 비포장 산길을 넘는 데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짐일 뿐이라는 것을...실감했다. 


 44번 다이호지(大寶寺)는 701년... 백제에서 온 스님이 12면 관음보살상을 산중에 묻어둔 것이 발견돼 그것을 모시고 세운 절이라고 한다. 역사에는 백제가 533년 성왕 때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돼 있다.



백제에서 건너 간 불교는 코보대사로부터 비롯된 밀교와는 다른 불교였을 것이다. 코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간 것은 804년... 이 다이호지에 관음보살상을 전해주었다는 백제 스님의 전설보다 백년 쯤 뒤의 일이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GPS에 표시된 캠핑장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캠핑장인가요?" "캠핑장은 아닌데요..." 이게 무슨 소린가... 급 당황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반, 못 알아듣는 말 반... 힘겨운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캠프장은 아니지만 캠프는 할 수 있다. 여기 텐트는 없다. 캠핑을 하기에는 너무 춥다. 내게 텐트와 슬리핑백이 있으니 문제 없어요.  잠시 기다려봐라. 지금 있는 데가 어디냐. 다이호지 앞입니다.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라... 


이 산골마을에 무슨 숙박업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로서는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허락을 받다. 일박에 얼마인가요?  무료다. 아.. 그래요? 

그런데  먹을 게 없었다. 캠핑장까지는 직선거리 8.5 km. 이미 다섯 시 시보가 울렸다. 절에서 내려와 좌회전을 한 뒤 다시33번 도로로 좌회전해 강변을 따라 7km쯤 달렸다. 다행히 고개 같은 것은 없었다.  지도에 표시된 미가와 미치노에키도 이미 문을 닫았다. 다시 한 번 좌회전해서 212번 도로로 꺾어진 뒤 캠핑장 바로 위에 도달했다. 바로 위라고 표현한 것은 도라 아래 강변에 캠핑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있어 들러보았다. 먹을 수 있는 건 다 사보기로 했다. 정어리 통조림과 꼬막 같은 조개 통조림. 계란 한 줄 (열 개). 작은 참기름 한 병(작은 건 이 것밖에 없었다) 식빵 하나. 아사히 맥주 작은캔하나,  닭고기 200g (전부 1500엔) 

 

별 기대 안 하고 강변으로 내려섰는데... 뜻밖에 범상치 않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마코겐 久万高原町 미미도(御三戸)캠프장, 캠핑장이라기보다... 강변 유원지 정도라고 해야 맞겠다. 전화로 캠핑을 허락해준 곳은  캠핑장 바로 위에 있는 동사무소였다. 





저녁 5시 50분... 일단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무사히 잠자리에 도달했다고...  인적 드문 산을 두 개나 넘어와 조금 외로웠던 모양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팩을 박을 수 없어 돌들을 주워다 플라이를 당겨 놓고... 



밥을 짓고... 마늘을 볶다가 닭도 함께 볶은 뒤.양파 고추장을 넣고 끓이다. 라면 사리를 넣어서 잡탕 전골을 끓였다.



 맥주도 곁들여서...  한 끼를 해결하고 나니 추위가 몰려왔다.


캠핑장 위쪽에 허름한 화장실이 있었다. 수도도 있어 식수는 거기서 받았다.  

강변에 어둠이 밀려왔다. 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히 흘러갔다. 

이를 닦고  강변에 내려가 수건을 적셔 몸을 대충 닦았다. 

'저문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려고 했는데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그럴 수 없었다.  밤 10시 경 잠들었다. 


지출 카페오레 110엔, 미치노에키 250엔(우유 마늘 양파) 가게 1500엔 




13일 6/3 월  -6/3 화   미나미 레구 오토캠핑장ㅡ오즈시(大洲) 교도칸 유스호스텔

운행 86.63km



편안한 잠자리에서 푹 잤다. 간밤에 비가 쏟아졌다. 떠내려 갈 염려는 없으니 잠결에 빗소리를 들으며 침낭 속에 몸을 움크린 채 더 잤다. 매일 비가 내리는 걸 보면 장마철이 시작된 게 분명한가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내내 비를 맞고 달려야 하나?  


여섯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빵은 운행중에 행동식으로  먹을 생각으로 도시락으로 지참... 




7시10분 출발. 비교적 잘 쉬었으니 오늘은 80km 가량 떨어져 있는 오즈시(大洲市) 캠핑장까지 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다. 텐트와 플라이가 비에 젖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차체가 무거워졌다. 




미나미(南)레구 캠핑장은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우와지마 시(宇和島市) 남쪽에 있는 레크레이션 공원이라는  뜻의 명명일 것이다. 월요일 아침, 공원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달려내려오는 사람은 말이다. 



하룻밤 신세를 진 오토캠핑장(조금 비쌌다. 숙박 2500엔, 세탁과 샤워 600엔... 합 3100엔) 은 난요레크레이션도시공원(南予レクリエーション都市公園) 꼭대기에 있었다. 


다시 56번도로로 나와 북쪽으로 ... 달리기 시작  




시가지 끝에서 56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또 한 번 자전거가 미끄러며 지며 휘청하는 바람에 식은땀이 났다.   



비는 거의  그쳤다. 아침시간에는 힘이 난다. 언덕 위 터널도 거뜬히... 


홈센타 다이키. 도시의 초입에는 이렇게 홈센터와 대형할인매장들이 들어서 있다. 도시라고 해도 우리처럼 성냥갑 아파트들이 밀집된 게 아니라 단독주택들이 이어져 있고, 시골이라 그런지 대개는 집들마다 작은 정원과 텃밭들을 갖추고 있있기 때문인지 홈센터에는 정원용품과 농기구와 퇴비 등 원예용품을 대부분 갖춰놓고 있었다.  


시골에 살 때 수도나 보일러 등을 직접 수리할 일이 많았다. 물론 봄이 오면 퇴비 섞어 밭 고랑을 만들고 토마토 고추, 고구마, 호박 등을 심고 텃밭을 일궜다. 집과 텃밭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부품이나 연장을 사려면 건재상을 뒤지거나 광주나 양평에 열리는 오일장을 이용했다. 오일장에는 계절에 따라 묘목도 나오고 어지간한 게 다 있었다. 


일본에도 장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홈센터에 없는 게 없으니... 이미 장터는 유통자본에 모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이미 농사 짓다가 호미 한 자루 사러 이마트로 달려가야 하는 세상이 됐다고 ... 알고 지내는 농부가 푸념했었다. 다카마쓰(高松市)에서 첫날 장을 봤던 에이스원이 여기에도 있었다. 


도시와 도시는 이런 대형할인점이나 홈센터로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로손이나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다. ... 사람들은 그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다니며 살아간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던 말이 실감난다.  


세탁은 코인란도리에서... 하고 


일본은 그 무렵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일본 공산당은 군소정당이지만...  '즉시 원자력발전 제로' 등 탈핵과 증세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에 비해 자민당의 선거포스터들은... 

"일본을 다시 강하게!" 이 지역에서부터 일본을 재건(재생)하자는 주장을 ... 담고 있다. 이 포스터는 얌전한 편이지만... 어떤 것은 아베와 지역 의원후보의 얼굴을 극적으로 클로즈업 한 뒤 굵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담아 놓고 일본을 재생시키자고 ... 꽤 호소력 있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었다. 


일본 공산당이 무슨 공산혁명을 내걸고 있는 정당은 아닐 테고 ... 온건한 사민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을 텐데... 선거홍보물에서도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우익들의 차이 같은 게 느껴진다. 공산당이 핵발전과 결별하자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면 


자민당은 감정에 호소한다. 그들의 선전물에는 당장에라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것 같은 선동이 있다. 누가 더 호소력이 있을까... 오래 지속된 경기침체와 쓰나미와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우울한 일본 국민들은 아베를 선택했다.  그 결과 일본은 오른쪽으로 마구 치닫고 있다. 실제로 일본이 다시 강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불안해진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나는 순례자의 길을 달린다. 





이 나라에도 사교육이 우리처럼 극성인지는 모르겠다. "믿고 맡기면 된다"고 써 놓은 선전 문구... 순진하다.  




종려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우와지마 시내... 이국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어느 새  비는 완전히 그쳐있었다. 기타우와지마 역을 지난 뒤... 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56번 도로와 헤어져 내륙으로 꺾어 들어가 야  41번 류코지 (龍光寺)쪽으로 갈 수 있다. 



갈림길에서 길을 잃을 뻔 한 뒤 ... 이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편의점 '싼쿠스'에  들러 정비를 하고 음료수도 사서 마신 뒤... 




다시 내륙쪽으로 언덕을 넘어 간다. 


언덕을 넘어가다가 허기가 져... 어제 다이소에서 사 두었던 단팥빵을 먹고...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해둔 휴식소에서 쉬기도 하면서... 




이제 류코지 (龍光寺)까지 800미터 남았다. 아침부터 거의 세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41번 류코지 (龍光寺)는 오래된 마을 안... 까마득한 계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코보 대사가 벼를 짊어지고 가는 노인을 만나고 이 분이 벼의 신 이나리(稻荷)라는 것을 알아보고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나리를 모시는 것은  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지만... 요즘은 장사 등 사업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이 절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높은 곳에 있으니... 류코지 龍光寺 화장실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아름답다. 

참배를 마치고 나니 10시가 됐다. 



류코지 계단을 채 다 내려서기 전에,  42번 부츠모쿠지(仏木寺) 로 이어진 도보순례길이 샛길로 연결돼 있다. 절제된 길 안내 마킹... 미의식마저 느껴진다.




빈집이 늘고 세월 따라 허물어져 가는 것... 농촌의 현실이다. 이 나라나 우리나라가 다르지 않다.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들의 노래처럼 활기차게 울려퍼졌을... 지나간 시절들이 연상 돼 마음이 허전했다. 





족히 백 년은 넘었을 것 같은 핸로미찌 안내석 



새로 붙인 안내 스티커... 


42번 부츠모쿠지(仏木寺)까지는 자동차길로 돌아가도 4km 남짓 짧은 거리였다. 절은 도로에서 살짝 올라 앉아 있었다. 길가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자니 아이스크림 노점을 하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어쩐지 라디오에서 '싱글벙글쇼'가 울려퍼질 것만 같은 나른한 오전이다.  




부츠모쿠지(仏木寺) 는 소와 말... 최근에는 애완동물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코보대사가 이 동네에서 만난 노인이 권하는 대로 소를 타고 가다보니 자신이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던진 보주(宝珠, 구슬? )가 녹나무 위에 걸려있었다고... 




이 절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낳고 기른 것은 부모의 은혜.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터운...  

여행 내내 부모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내게는 조금 더 가슴을 파고 드는 말이다. 

이미 돌아가신 두 분께 무엇을 더 해볼 수도 없는... 이 때늦은 회한. 


두 분의 성장지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 태어난 두 분 (아버지 21년생, 어머니 26년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린 내게 들려준 바에 의하면, 아버지 아홉 살 때... 한국에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외가도 비슷한 이유로 그랬다고... 


7남매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아홉 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공장에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공장에 다니면서 독학으로 중고교 졸업자격과 교사 자격시험까지 합격해...해방이 되던 무렵에는 소학교 선생님으로 도쿄에서 신혼 살림을 하고 계셨다고.. 


그 짤막한 전언 속에... 과목마다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문제가 없었는데, 음악 과목만은 독학으로 어쩔 수 없어서... 인근 소학교를 찾아가 니시이 선생이라는 분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까... 저녁마다 찾아오면 피아노 레슨을 해주겠다고... 이런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11시 부츠모쿠지 참배를 마쳤다. 조용한 마을 뒤쪽으로 길은 말 없이 산을 향해 뻗어있다. 또 등산이 불가피하다. TT 



헨로미치 스티커가 고개 옆 완만한 샛길로 안내돼 있어  혹시나 고개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나 따라 가보았다. 


2km 남짓이나 달렸을까... 길은 산길로 이어져 있다. 역시나 도보 순례자들을 위한 안내 스티커였다.


 다시 도로 쪽으로  되돌아나와 심호흡을 하고...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피로가 누적돼 힘이 빠진 탓인지, 기어에 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넘던 정도의 경사를 오르는데 부담이 된다. 거친 숨을 토하며 땀을 쏟지만 자전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도로에 새겨진 이 스키드마크는 도대체 어떤 상황 때문?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목적지와의 거리를 한탄하며... 오르막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간식을 먹었다.  


벌써 오후 1시 반이다.  아침에 만들어온 주먹밥(김으로 싸서 까맣게 보이는) 과 토스트. 점심식사다.  먹고 난 뒤에는 

5분쯤 의자에 누워 잠을 잤다. 



구불구불한 도로는 곳곳에서 도보 순례길과 만났다 헤어졌다 한다. 


대개 고개의 정상에는 터널이 있다. 다 올랐구나... 여행중 깨달은 또 하나의 진리가 이것이다 끝나지 않는 오르막은 없다... 오르막은 언젠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는 것... 사는 일도 마찬가지 겠지... 

내리막길을 달리다 보니... 도보순례길들이 지름길로 이어져 있다.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까지는 7km 남았다. 

큰 고개를 넘어왔으니 ...이제 더 이상 고난은 없겠지... 적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산길 아래 멀리 보이는 마을들도 적막하다.

일본에서는 드물게 비탈에 들어앉은 마을이다.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는 시모우와 (下宇和) 라는 동네에 있었다.  인근 지명은 모두  우와(宇和)와 관련이 있다. 북쪽에 있으면 기타()우와... 식으로 말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림처럼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우리나라와 모내기 철이 별로 차이가 안 나는듯... 어린 모들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일본의 건물들은 외진 시골인데도 허술한 데가 없어 보인다. 


얼마전... '한옥에 대해 우리가 착각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대궐이나 큰 사찰의 날아갈 듯한 기와 지붕들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과연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주거양식이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이나 솟을대문이었을까... 대부분 흙과 수숫대로 엮은 허술한 담과 초가지붕이었고 기와는 아주 희귀한 정도 였지만... 기와 지붕조차도... 천정 위에 흙을 쌓아 놓는 구조 때문에 내구성이 떨어지고 벌레와 쥐와 새와 뱀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는... 


지금도 시골에 있는 허술한 집들은 한겨울에 노천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추위를 버텨야 하는 점은 크게 변한 게 없다. 단열과 난방을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만큼이나 위대한 업적이 될 텐데... 


2001년에 금강산에 가본 적이 있다. 멀리 보이는 북녘의 집들은 더 대책이 없었다. 지붕의 용마루도 반듯한 게 없고 어딘지 구부정하고 누추했다. 창틀도 반듯해 보이지 않고.  북녘의 겨울은 더 가혹하다지 않는가. 땔감을 해댄 탓에 마을 인근의 산들은 예외없이 민둥산이었다.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로 겨울을 덥히는 일도 한계가 있고... 


그 허술한 주택들을 보면서 남녘과 북녘의 농촌에  값 싼 태양광 발전 모듈과 방풍 단열이 뛰어난 건축자재와 간편한 건축기술을 전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도 모를 군비경쟁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말이다. 


2시40분... 드디어   메이세키지(明石寺)에 도착했다. 


본당은 공사중이었다. 장막에 쌓여있어 모습 전체를 볼 수는 없었다. 



세계인류평화를 기원하는 표지판에 잠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이 나라에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있으며 그 상징적인 구호가 '강한 일본'과 '인류평화'로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원자탄 피폭을 경험한 나라가 일본인데...  평화헌법을 수정해서 재무장이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자민당 아베 정권이다. '강한 일본'이라는 선동이 침체된 일본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메이세키지는 짙은 산 그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부삼나무 ... 

몇 백년은 되었을 것 같은 삼나무 두 그루 앞에 그런 표지를 세워놓았다.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바쁘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땅에 붙박은 채 제 몸으로 오고 가는 낮과 밤, 세월과 세월을 견딘 나무들은 평생 용맹정진하는 수도자들을 닮았다. 



본당은 공사중이었지만 코보 대사를 모신 대사당에는 참배객들이 모여있었다. 







순례 당시에도 일본 불교의 밀교적 전통에 대해 나는 무지한 편이었다. 코보대사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몰랐다.

  



드디어 절 앞 매점에서 일본 순례자들이 들고 다니는 가이드북을 샀다.(2600엔, 도쿠시마 1번 사찰 료신지보다 조금 더 비싼 것 같았다.) 

말하자면 공식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이드북을 구입한 뒤로는 ... 도보술례길과 도로가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지... 마을과 상점, 민박이나 호텔 등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붉은 점선은 도보로만 갈 수 있는 산길이나 오솔길... 붉은 실선은 도보순례와 자동차, 자전거가 다 갈 수 있는 길이다. 책의 말미에는 지도의 페이지마다 이용 가능한 숙박업소의 전화번호가 안내 돼 있다. 



메이세키지(明石寺) 앞 산길에 서 있는 산불방지 표지판... 





밀과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이들을 베어내고 벼를 심는지는 모르겠다. 



절에서 내려와 GPS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대로 오주시(大洲市)로 가기 위해 좌회전해서 근 10km쯤 달렸을때... 


작은 차가 옆으로 따라붙으면서 운전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구 소리를 지른다. '길이 없어요. 길이 없어요. 멈춰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깜짝 놀라서... 자전거를 멈췄다.  




마사코 미요시와 미요시 에미코.. 모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케릭터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과장된 표정과 행동이 얼마나 수선스럽던지...  

 

"이쪽으로는 길이 없어요. 돌아가주세요." 아예 차에서 내려서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마쓰야마자동차도로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오주시로 이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길이 끊긴다는 것이다. 이들과 잠시 길에 서서 수다를 떨었다, 

내가 서울에서 왔다니까... 딸인 에미코는... 우와...대단해요....를 연발하더니 차에서 새콤달콤 같은 캬라멜 한 통과 커다란 귤을 두 개 가져와서  '오셋타이'라며 준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엄마인 마사코 미요시는... 내게 '결혼 했느냐'고 물었다. 했다고... 대답하니까... 집에 가서 혼나면 어쩌려고 여자와 사진을 찍냐고... 내가 깔깔대며 웃으며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단지 사진을 찍는 것인데... 해도 양손을 엇갈려 엑스표시를 하면서 안돼 안돼(다메 다메) 하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순례자들이 입는 백의인 오이즈루 (소매없는 조끼 형식의 흰옷) 를 입고 엉뚱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나를 보고는 차를 몰고 따라와 기어코 길 안내를 해준 것이다. 참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 


다시 방향을 틀어서 세끼메이지(明石寺) 쪽으로 돌아와 뒤쪽으로 뻗어있는  56번 도로에 합류해 다시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내를 통과하며 로손에서 카페오레 를 사 마시고,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들을 지나... 

논두렁이 진흙이 아니라 반듯한 시멘트 담이라 조금... 생경했다. 




핵발전소 54기를 모두 멈췄다는데..도대체 이 많은 자판기는 어떻게 가동 하는 것인지... 


외양만으로는 이 나라가 도대체 핵발전소 폭발의 재앙을 겪고 있는 나라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나름대로들 애를 쓰고 있겠지만... 절전을 위해 어떤 비상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아직 잠자리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목표로 하고 있는 오주시 가족캠핑장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터널 하나를 통과하니까...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비핵평화 선언도시" 오주시... 마치 오륙십년 전의 세상을 옮겨다 놓은 듯한 풍경들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시청에 내건 플래카드를 보니 자민당이 아니라 사민당이나 공산당 지자체장인 모양이다. 

'강한 일본'을 내 건 곳보다는 훨씬 친밀감이 느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를 것만 같은 풍경들.  



하교 시간이라 흰 교복에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새떼들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곳.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강변 언덕 위에 아름다운 오즈성도 보이고... 






전통 복장을 한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다가 맞은편에서 내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더니 자전거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걸어서 다리를 건넌다. 상대에 대한 배려... 같은 게 느껴진다. 



어찌 되었든 오즈 가족여행촌 오토캠핑장을 향해 달린다. 불행하게도 캠핑장은 언덕 위로 1.3km 올라간 지점에 있었다. 강변에 있으려니 생각하며 방심하며 달려오다가... 또 허를 찔린 기분이다. 


거의 울면서 또 올라갔다. 


그런데, 입구가 가로막혀 있다. 굵은 쇠줄로... GPS에서 관리사무실 전화번호가 링크 돼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자전거를 들고 쇠줄을 넘어갈까...생각하다 말았다. 만약 숙박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고스란히 이 비탈길을 다시 끌고 올라와야 할 테니 말이다.  트럭도 서 있어 관리인이 있는 줄 알았지만... 자전거를 언덕 위에 세워놓고  걸어내려 가보니 아무도 없다.  그냥 캠핑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수도와 화장실도 안 보이고  금지해 놓은 곳에 무리해서 넘어 들어가 잠을 자야 하나... 그것도 걸렸다.  그런데, 당장 이제 잘 곳이 막연하다.  



다시 시내로 나오며... 한글 안내지도에 나와 있는 '오즈 유스호스텔(0893-24-2258)'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미 곤고후쿠지 인근 아시즈리곶에서 예약 없이 찾아간 유스호스텔에서 거절 당한 경험이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다행히... 잘 수 있으니 찾아오라고 했다. 다만, 저녁식사가 안 되니까 먹을거리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또 샤워는 되지만 욕실은 사용할 수 없다고... 괜찮다고... 고맙다고... 




오즈시 (大洲) 교도칸유스호스텔(郷土館ユースホステル 81 893-24-2258  )... 

오즈성 뒤쪽 아름다운 강변에 있는 2층 가옥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지하 창고에 젖은 텐트를 널어 말리고... 짐을 푼 뒤... 시내로 달려나가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빵, 우유 등을 사왔다. 


주인 할머니 아카마츠 레이코 상의 말대로 8시면 수퍼와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시청 가까이에 가서야 겨우 편의점을 하나 발견했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전통가옥들이 늘어선 상가는 아름다웠지만 대개 이제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쇄락하고 있는 지방도시 풍경...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인가...  



유스호스텔은 낡았지만 세심하게 관리된 ... 어떤 면에서 호사스럽기까지 한 집이었다. 

잘 정리된 주방과 냉장고, 토스터도 따로 준비 돼 있고 창밖으로는 그림 같은 풍경들... 



집 전체가 미술품이나 골동품인 것 같았다. 이 때문인지...  체크인을 하고 난 뒤 레이코상과 마주 앉아 근 2~30분 가량 면담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아이패드를 들고 와서 구글 번역기로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너무 느려서 속이 탔다. 어제 어디서 잤냐... 내일 어디로 가냐... 한국에서 하는 일은 뭐냐... 이런 정도인데... 타자가 너무 느려서 내가 옆에서 보고 있다가... 간단한 일본어는 할 줄 안다며... 대신 이걸 묻고 싶은 거냐? 하니까... 

소녀처럼 천진하고 웃으며 그렇다고... 





가옥의 2층을 독점하고  호사스러운 하룻밤을 보냈다. 

아쉽게도 기록이 사라져 2천5백엔이었는지 3천엔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쓰야마(松山)에서 기차로도 연결이 돼 있으니... 한국에서 가자면 마쓰야마를 거쳐 찾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즈는 가족들과  다시 찾아가 어슬렁어슬렁 걸어보고 싶은... 낭만적인 도시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창밖으로 덜커덩 거리며 기차가 지나가고 강물 위로 물새들이 그림처럼 날아다니는... 




저녁에 도착했을 때... 유스호스텔 앞에 있는 이 연못가에서 흰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 수줍은 표정으로 두세 쌍 어울려 대화를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나 볼 것 같은 풍경에 홀린 듯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 호타루(螢)가 살아요." 레이코 상이 말한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연못과 오래된 오즈성... 

스트레스라고는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주민들과 자전거를 타고 노래하듯이 웃으며 등하교 하는 아이들... 


나는 어쩐지 어린시절에 겪어본 삶의 온전한 모습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설렜다. 

우리는 다시 이런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

#13-6/2 일요일.  스쿠모(宿毛)  오시마(大島) ~미나미 레구(南レク)오토캠핑장 

운행 61.21km 

빗소리, 가볍게 출렁이는 파도,  바람에 서걱대는 플라이 소리... 이런 소리들이 가수면 상태에서 의식 속으로 밀려들곤 했다. 밤새 잠을 설쳤다. 4시부터는 고깃배들이 출항하면서 울리는 뱃고동 소리와 엔진소리 때문에 더 이상 누워있기도 어려웠다. 엎드린 채 집에 보낼 엽서를 썼다. 순례 첫날 열 장의 엽서를 사서 두 딸과 아내에게 틈틈이 엽서를 써서 보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열 장 가운데 두어 장은 미처 도착도 하기 전이고 대개는 식탁 유리판 아래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스마트폰을 충전시켜 놓고 텐트 안에 있는 집을  정리한 뒤 찬 밥에 어제 저녁 사 놓은 즉석 카레를 부어 먹었다. 텐트를 걷고 설거지를 하고 짐을 다 꾸렸지만 비가 제법 내리고 있어 떠나지 못하고 처마 밑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여섯 시가 되기도 전인데 주민들이 빗속에 산책을 나왔다.  


나카야마(오른쪽 62세)씨와 이웃에 사는 친구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 분들도 조금 흥분한 상태가 되어 말이 많아졌다. 나카야마 씨는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본에는 이혼이 많다고 ...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집에 키우는 고양이기 이야기까지... 



저 앞에 있는 섬까지 간조 때는 걸어 갈 수 있어요.  한국에 진도도 그런 데가 있다면서요?  어? 진도를 아시네요?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알고 있어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카야마 씨가 빗속으로 달려가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세 개 뽑아 오더니 함께 마시자며 건넨다. 야영을 한 데다 비까지 내려 찬 커피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즐겁게 마셨다.  자신들은 아침마다 여기가 고향이고 아침마다 산보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으니 이제 은퇴했다고...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혼자 살며 새벽같이 일어나 공원을 산책하지만 딱히 출근할 곳이 없는 사내들. 역시 쓸쓸한 얘기다. 자전거 순례 초반에 만났던 야마시타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장성한 자식들은 이미 품을 떠난 상태에서 시코쿠 순례를 몇 번씩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가족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언감생심 가족들에게 호령하던 가부장의 모습은 고사하고 과연 남성이 생물학적인 유전이라도 이어갈 수 있을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가 자랄  때 당연시 되던 남성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초 중고등학교에서 예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여자아이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남성에게는 남성이 남아 있는 게 좋은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성주의자들에게 비판 받을 소리일 수 있겠으나... 말이다. 


자상하고 친절하며 남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피부 관리를 위해 화장품을 차례대로 바르고 패션에 섬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남자들은 늘었는데 오히려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하거나 자기 말이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태도는 어떤 점에서 ... 여성들이 시원시원한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남성에게는 이제까지 전혀 다른... 새로운  성역할이 요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시50분 출발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진 것 같아 출발했다 . 어제 넘어온 국민숙사(國民宿舍) 야자(子)앞 고개쪽이  아니라 오른쪽 해안길로 섬을 빠져나왔다.  


대나무보다 더 큰 갈대가 비바람에 휘어져 길을 막고 있다.  


먹을거리들이 줄어든 탓에 짐이 많이 가벼워졌다.  비가 내리고 있긴 하나 잘 하면 80km 가량 떨어져 있는 기타우와지마(北宇和島)에 있는 41번 류코지(龍光寺) 42번부츠모쿠지(仏木寺) 까지 순례하고 인근에 있는 해변 공원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일요일인데다 비까지 내려 수쿠모 시내의 아침은 한산했다. 우선은 26~7km 가량 떨어진 미나미우와(南宇和)군의 40번 사찰 간지자이지(観自在寺)까지 가는 게 먼저였다. 길은 해안을 따라 나 있는 7번 지방도로와  내륙으로 나 있는 56번 국도 어디를 선택할지 잠시 망설였다

스쿠모 시내로 나와 스쿠모 역 철길 아래를 지나 좌회전 한 뒤 해안을 따라 7번 도로를 따라 달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해안길이 조금 낫겠지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오산이었다. 


 8시 50분 경 드디어 에히메 현(愛媛県)으로 접어들었다. 고치 현(高知県)이 참으로 길고 길었다 싶었다. 

아직은 완만한 경사다. 비도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언덕위에서양식장이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 보였다. 해남과 완도 사이에 있던 한살림 김 양식장이 생각났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어업을 지키는 숲'이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바다와 숲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완만하게 오르던 해안길이 어느새  완전 등산 코스로 바뀌고 있었다. 설마 오늘도 이런 등산을 하게 되리라고는 예상도 못한 상태에서 허를 찔린 셈이다. 맥이 빠졌다.  


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다. 길에는 칡넝쿨이 뒤덮여 있고 인적마저 끊긴 길을 오전 내내 올라야 했다. 그러나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경고는 정말 꼼꼼하게 많이 붙여 놓았다. 그만큼 많이 버린다는 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 


 아침을 좀 더 배불리 먹지 않고 대충 먹은 것도, 해안길이 조금 평탄할 줄 알고 7번 도로를  택한 것도 후회됐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드디어 오후 한 시쯤 ... 지겹게 올라온 고도를 단 몇 분  동안의 내리막길로 탕진한 뒤... 해안길을 벗어나 56번 국도를 만났다.  이곳 역시 뭐 대단히 평탄한 길은 아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길 가로 이 지역 특산물인 귤밭들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었다. 


사실은 아침에 서울에서 온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난 봄... 예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만났던 동료들의 중학교 2학년 아들이 갑자기 목숨을 끊었다. 인물도 좋고, 성적도 뛰어났고...가끔 만날 때 보면...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숙한 게 아닐까 싶게 과묵한 아이였는데...  아무튼 그랬다. 


그 아이의 49재가 오늘 열리는데 참석할 수 있는지 ... 또 다른 동료가 연락을 한 것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나는 상상만 할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봄... 그 충격적인 상가에 가서 나는 뭐라고 위로의 말도 차마 건네지 못했다. 



연락을 한 지난 날의 동료는 ... 나 역시 나름의 사정으로 눈물을 철철 흘리다 마음을 수습하러 일본에 와서 자전거 순례를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갈 수 없는 사정을 짧게 설명하고 순례를 하며 들르게 되는 절에서 그 아이의 명복을 빌겠다고 답을 했다.  


고개를 내려선 뒤.. 만나는 미나미우와(南宇和)시의 풍경은 차분했다. 



40번 간지자이지(観自在寺)에 가서 한국에서 49재를 치르고 있을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선량하기 그지 없는 부모들을 위해 향을 사르고 합장을 했다.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남들 보기에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아이였는데... 



간지자이지(観自在寺)는 1번 절 료젠지(霊山寺)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절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면 정말로 양쪽에 아령처럼 불거진 부분이 있는 좌우로 긴 타원 모양의 시코쿠섬에서 이 절은 도쿠시마에 있는 1번 절 료젠지와 대각선으르 마주보고 있는 지점에 있다.  



사별한 가족과 친구들 때문에 이 섬을 떠올리고 떠나오기는 했지만, 아침에 받는 연락 때문에 나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별을 떠올려며 삶의 비애를 곱씹어야 했다. 



절 앞에는 전통 있어 보이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승용차를 타고 순례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산을 넘어온 피로감도 있고 몸과 마음이 모두 허 해져서 어딘가 들어가  남이 차려준 밥을 먹어야겠는데...마땅한 데가 없었다. 


시코쿠에 오던 첫날 다카마쓰 시내에서 장을 본 대형마켓 'A・MAX에이난(愛南) 점' 이 있길래 들어가서 주먹밥, 장어덮밥, 커피우유 단팥빵 등을 샀다. 어딘가 좋은 자리가 나오면 도시락은 점심으로, 주먹밥과 빵은 운행중에 행동식으로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마땅한 마땅한 자리가 없다. 도로변에 앉아서 밥을 먹기는 싫고... 



오전 내내 고통스럽게 하던 7번 도로처럼은 아니지만 56번 국도 역시 오르막의 연속이다.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도 들고  지쳐가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언제 쏟아질지 모르게 음습한 날씨였다. 


국도 변으로 자전거 도로는 대체로 잘 나 있었다. 도보 통행인이나 자전거를 위해 따로 터널들이 나 있고...  


또 다시 큰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라면집을 발견하고는 랙팩 안에 도시락과 먹을 거리가 잔뜩 들어있는데에도 더 이상 못 가겠다 싶어 들어갔다. 


라면 달라고 하니까 알아서 미소라면과 밥 한 공기를 갖다준다(700엔). 

 

주인 내외의 정성이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먹고 나니 조금 몸도 마음도 회복되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말라 싶어서 ... 조금 타고 오르다가 고개 중턱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고개 너머에서  오사카에서 왔다는 예순 살,  지식인풍의 도보순례자를 만났다. 


그와 20 분 가량 왼쪽으로 펼쳐진  해수욕장(室手海水浴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했다. 태반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도 역시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남북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의 대답은 '전과 동'이다. 남북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적대적인 긴장이 빨리 해소되기를 바란다는 정도... 



무슨 이야기 끝엔가... 한국과 일본은 천 년 전에는 한 나라처럼 오갔다고  '시바료타로 (司馬 遼太郎) 같은 사람들도 주장하던데, 두 나라의 개성이 지금 너무 다른 것 같다는 말을 했더니...  한국에도 시바 료타로가 알려져 있느냐고... 우연히 아주 오래 전에 한국에 번역돼 출판된 그의 책을 두어 권을 읽은 적이 있다...고 하니까... 호오... 한국에도 그의 책이 출판됐다고요...  하면서 묘한 표정을 지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그와 헤어진 뒤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넘어졌다. 


우와지마 시 (宇和島市)를 향해...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게 부담스러워  자전거 도로로 올라타는 순간... 내작은 턱에 바퀴가 미끄러졌다. 내리막길이었고 시속 30km쯤 속도를 내고 있었다. 



무르팍이 깨지고 .바지도 찢어졌다. 새로 사 입은 지 며칠 안 된 것인데... 그나마 이 옷을 덧 입지 안았다면 부상이 좀 더 심각했을 것이다. 자전거 핸들이 훽 돌아가 있고... 그립 부분의 브레이크도 손잡이도 틀어져 있었다. 핸들바에 테잎도 찢어졌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계속 운행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일어나 어디 부러진 데가 없는지 사지를 움직여 보았다.손목에 충격이 있었는데...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음은 자전거... 틀어진 부분들에 힘을 주니까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천천히 굴리면서 변속을 해 보았는데... 그나마  미끄러지면서 브레크를 잡아 충격이 그리 큰 것 같지는 않았다.  

 

열흘 동안 두 번 넘어진 것이다. 갈비뼈와 무릎. 그렇잖아도 침울하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나빠졌다. 오후 네 시가 넘었다. 더 전진하는 것은 무리다.  지도에 보니 미나미 레구(南レク) 오토캠핑장이 있어 그리로 가기로 했다. 예정에 없던 야영을 하게 됐으니 일단 마을 입구에 있는 대형마트'마루나가'에 들러 ... 부탄가스와 반짓고리 리 그리고 먹을 거리를 좀 더 샀다. 



 아침에 목표로 삼았던 기타우와지마(北宇和島)에 있는 41번 류코지(龍光寺)나 42번 부츠모쿠지(仏木寺)에는 한참 못 미친 지점이었다. 레구(レク)가 무슨 뜻인지 한참 갸웃거렸는데... 레크리에이션의 일본식 축약인 모양이었다. 



시내에서 3km 가량 바다쪽으로 들어가면 언덕 위에 오토캠핑장이 있다. 정문을 통과한 뒤 언덕 위로 오르니까... 차량 차단봉이 내려져 있고, 예약자에 한해 출입이 허용되며 예약은 인터넷을 통해 하라고 돼 있다. 이러 제길... 다행히 자전거 한 대는 겨우 통과할 틈이 옆으로 나 있어 살살 피해 올라가 보았다. 



일요일 오후라 오토캠핑을 한 주민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관리인 한 사람이 당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정을 말하니까... 야영을 하시라고... 숙박계를 쓰라고 내 준다. 




다만 요금은 조금 비쌌다. 1박에 2500엔... 자동차든 자전거든 똑 같이 한 구획을 이용하게 되니 요금이 동일하다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샤워는 코인샤워... 200엔, 세탁도 건조기도 모두 200엔씩 600엔... 모두 합하면 3천100엔... 차라리 시내에 호텔을 잡을 걸 그랬나... 빗방울까지 후두둑 떨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시설은 훌륭했다. 후회는 해서 뭐 하겠나... 텐트를 치고... 

의자를 빌려서 잠시 쉰 뒤....


샤워를 하고 빨려를 돌려놓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자... 

저녁 다섯 시부터 ... 여섯 시 반까지... 고기에 김치도 사 왔기에... 엄청나게 먹고... 맥주도 한 캔 마시고... 


기왕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 거... 대충 빨아서 가지고 다니던  옷들까지 다 꺼내 빨고 말렸다. 


헤드램프를 켜고... 찢어진 바지를 꿰맸다. 너덜너덜한 채로 다닐 수는 없겠다 싶었기 때문에... 

짐을 정리하고... 기록을 하고... 자잘한 일들을 다 하고 나니 열 시가 다 됐다. 스트레칭을 하고...잠을 청했다. 


집을 떠난 지 이주 가량 지났다. 지친 모양이다. 가족들이 그리웠다.  오늘의 가벼운 사고는 쉬어가라는 신호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크게 다친 데도 없고 자전거도 멀쩡하니까 말이다. 새벽녘에 텐트 위로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방수가 잘 되는 텐트라 걱정할 건 없었다. ... 힘 내자!


12일ㅡ6/1 토  아시즈리곶(足摺岬) 핫토민박 ㅡ스쿠모宿毛 오시마(大島) 야영장

운행거리  81.57 km


간밤에 기록을 남기지도 못하고 골아 떨어졌다. 5시에 잠에서 깨어 하루 동안 지난 일들을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기록 했다.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보니 주인 아저씨 기타다상이 웃통을 벗은 채 의자에 앉아 아사히신문을 읽고 있다. 어린 시절 잠결에 깨어 졸린 눈을 부비고 보면 아버지가 조간신문을 읽고 계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일본 신문들은  세로짜기에 컬러 인쇄도 별로 없다.  신문의 영향력이 여전히 센 것 같다. 



매체 환경의 변화는 우리나라가 가장 빠르지 않을까. 종이 신문이 몰락하고 ...  대신 SNS 등 뉴미디어가 컨텐츠 소통의 주요한 플랫폼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신문의 몰락은 자신들 스스로 '사실'이나 '객관'이 아니라 편향된 주의주장을 무리하게 ... 그것도 선정적으로 해댄 탓에 자초한 면이 있다. 


아침 밥은 여섯 시 반에 먹는다고 신문을 읽던 기타상이 말해준다. 어제 저녁에 안주인도 해준 말이다. 야영을 했다면 아침밥을 준비해야 하지만 느긋하게 짐을 꾸리고 식당에 가서 차려진 밥을 받아먹었다. 


아침상은 저녁에 비해 소박했다. 생선구이와 생선과 두부를 넣고 맑게 끓인 국, 김과 무즙, 단무지, 그리고 날 계란, 계란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잠시 망설였는데... 핸로인 나카무라씨가 밥 위에 탁 깨트려서 간장을 뿌려 비벼 후루룩 먹는다. 따라 했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계란에 밥을 비벼 많이 먹었다. '심야식당'에 일본사람들의 '소울푸드'로  버터라이스가 나오는 걸 보면서 아하... 싶었던 적이 있다. 우리도 어린시절에 비록 버터는 없었지만 마가린에 간장을 뿌려 비벼먹곤 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기타다상의 '늠름한'(?) 가부장적인 태도는 일본에서도 이제  변방이랄 수 있는 아시즈리곶에나 겨우 남아있을 것일 터다. 도쿄나 이곳 시코쿠 섬의 도회지랄 수 있는 다카마쓰나 도쿠시마... 그리고 서울 거리에 마주치는 사내들이 어딘지 위축되고 쓸쓸해보이는 것과는  다른 모습...   


나카무라(65세)씨와 핫토 민박을 떠나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독일 사람 미하일은 이미 길을 떠난 모양이었다. 


39번 절 엔코지(延光寺)까지는 기필코 최단거리로 가리라 결심. ... 그래도 직선거리로만 60km다.  실제 주행은 100km 가까이 하게 될 것 같다. 밥을 먹고 나니  기타다상이 약도를 가지고오더니 오르막 없는 길을 그려가면서 알려준다. 오른쪽 해안을 따라 올라가다가  우회전 해서 토사시미즈(土佐清水) 가는 길을 택하라고...그래야 오르막이 덜하다고 일러준다. 그 마음이 고맙다. 



기타다상이 일러준 길의 핵심은 아시즈리에서 해안을 따라 올라가다가 토사시미즈를 향해 좌회전 한 뒤  토사시미즈시를 지나 한동안 해안을 따라 달리다가 28번 현도로 우회전을 한 뒤 소로가와 (宗呂川)을 따라 내륙으로 달려 스쿠모에 도착하는 것이다. 평면도 만으로는 선뜻 해안도로인 321번 도로를 버리고 택하기 어려운 길이었다. 그러나 강을 따라 달리는 길은 내내 평탄했고 고요했다. 


7시45분 핫또 민박집을 나서서 곤고후쿠지(金剛福寺)에 가서  참배를 하고 납경을 받았다. 



코보대사가 823년에 개찰한 절이라고 한다. 



절 경내에는 아열대 식물들과 차분한 연못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경내는 고즈넉 했다. 


태평양을 향해 탁 트여있을 아시즈리곶에서 바다를 본다. 심리적인 이유 때문일까... 우리 동해의 수평선도 광막한데 이보다도 훨씬 아득한 느낌이다.

광활한 바다를 등지고1852 나카하마만지로(中浜万次郞, 죤 만지로) 라는 사내의 동상이 서 있다. .. 



동상에 새겨진 설명을 읽어보니 이 지역 사람 만지로는 14살 때 고기잡이 나갔다가 무인도에 표류했다가 미국 포경선 존하울랜드호 선장에게 발견돼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라고...


,

어쩌다 보니 최초의 일본인 유학생이 된 만지로는 24살 때까지 영어, 항해술, 측량술, 포경술 등을 배우고 1852년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막부 치하의 일본으로 돌아와 정책 조언을 하고 항해술, 포경술, 근대적인 조선술에 대한 자료를 번역해 일본에 소개하고  도쿄대 전신이라는 개성학교(開城學校) 교수가 되어 어를 가르치다 71살 때 죽었다는 설명... 



바닷가에 살다보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이 우연한 표류가 그를  미국 유학생이 되게 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고 조선과는 다른 길을 걷게 만들었구나... 


섬의 끝... 관세음보살이 사는 보타낙가(普陀洛迦) 에 가장 가깝다는 전설이 있는 곳... 아시즈리곶(足摺岬).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이곳 절벽에 와서 투신자살을 한다고 한다. 그것이 보타낙가에 다다르는 길이라고 믿는 것일까. 


부산 영도 태종대에 있는 자살 바위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스무 살 무렵, 사는 일이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던 시절... 태종대에 간 적이 있다. 친구들과 그냥 놀러 갔던 길이었다. 몇 걸음만 곧장 걸어가면 수직 절벽 아래.. 흰 파도가 포말로 부서지는 까마득한 졀벽 있었다. 삶과 죽음이 이렇게 맞붙어 있구나... 갑자기 손에 땀이 쥐어지고 어떤 긴장감에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있을 만한 곳에는 당연히 신사가 있다.




안내 책자에  민박집 인근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족탕이 8시에 문을 연다고 나와 있어 참배를 마치고 다시 되돌아가 보았다. 나카하마 만지로가 이 동네 대표선수는 선수인 모양이다. 가는 곳마다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해안 절벽 위에 바다를 바라보며 계단식으로 앉아 족욕을 할 수 있게 해놓은 족탕은 일부러 찾아간 일을 후회하지 않게 할 만큼  아릅다웠다.


기타상이 일러준 대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족탕을 하는 동안 나카무라 아저씨는 앞서 걷고 있었다. 그를 추월하면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이별했다. 



토사시미즈 시(土佐清水市)로 가기 위해 해안도로에서 우회전 하는 지점 


토사시미즈 (土佐清水). 어제 저녁에 그냥 가던 길을 멈추고 숙소를 잡을까 망설이다 지나친 곳이다. 아시즈리곶에서  아침에 떠나 도착한 방향과 반대쪽으로 해질 무렵 우울한 마음으로 패달을 밟던 생각이 났다.   


쓰리에프에 들러 카페오레 5백밀리(110엔)과 쵸코빵 (152엔)을 샀다. 점원이 녹차 한 병을 오세타이(接待)라며 꺼내준다. 쓰리에프 편의점에서 이런 일은 두어 번 겪었다. 순례자들에게 그렇게 하기로 정해 놓은 모양이었다. 일년에 15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섬을 찾아온다는데, 적은 비용이 아닐 것 같았다. 


가게 앞에서 고등학생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학생인가? 아니오 고등학생이오. 오 그래?  이들도 강남스타일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며 나에게 관심을 나타냈다. 오하이오고자이마스가 한국말로 뭐예요... 응 안녕하세요. 


사진에서 맨 왼쪽에 있는 친구는 개그맨처럼 계속 친구들을 웃겼다. 순진하고 유쾌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마음이 즐거워졌다. 


편의점 인근에 우체국이 보이길래 간밤에 써두었던 엽서를 발송했다.  오르막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일러준 기타다상에게 고마워하면서 달리고 달렸다. 



채석강을 연상하게하는 해변을 지나 터널을 지난 뒤 알려준 평탄한 길이 나온 것 같아 한번 더 물어보고  28번 현도로 우회전, 소로가와(宗呂川)를 따라 달렸다. 인적조차 드문 고요한 길이다. 

작은 오르내리막을 지나 고개 위이 터터널을 지난 뒤 스쿠모 시(宿毛市)까지 18km는  줄곧 하강길이었다.


오후 2시경 스쿠모에 거의 도달한 지점에 있는 스쿠모 서니사이드파크  미찌노에키에서  도시락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찬밥에 후리가케를 뿌려 김에 싸서 주먹밥을 만들어 먹었다. 


미치노에키 한쪽 끝에 남아 있는... 이 목조누각(하마다노 도마리야)는 고지현 서부지역에 남아 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축제 준비 등 성인이 되어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담당해야 할 일 등을 교육시키는 장소였다고 한다. 


한동안 조용한 시골길을 달리다가 다시 해안도로인 321번 도로와 만나고, 스쿠모시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분주해졌다. 갑자기 날도 궂어지고 바람도 거세졌다. 스쿠모시에 들어서마 마쓰다 강(松田川)을 건너게 된다. 


 39번 사찰 엔코지(延光寺)는  강을 건넌 뒤 우회전 해서 8.5km 정도 들어가야 한다. 갑자기 구름이 끼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자전거는 역풍에 속도가 나질 않는다. 아침부터 이제까지는 순탄하게 달려온 편이었는데 걱정이 밀려왔다. 


캠핑을 하려고 마음 먹고 있는 오시마 (大島) 휴식의 광장 (憩いの広場) 캠핑장은 정 반대 방향이라 엔코지까지 갔다가 다시 시내로 돌아와 왼쪽 해변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거센 역풍을 뚫고 엔코지에 도달했다.  39번 사찰 엔코지(延光寺)에는 코보대사가 지팡이로 땅을 치니까 샘이 솟아나 물부족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을 구원했다는 전설이 있다. 



붉은 거북이가 용궁에서 범종을 가지고 왔다는 전설도... 

,

참배를 하고 절을 나오다 자신을 은퇴한 회사원이라고 소개한 사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인생의 과제를 이제 내려놓았다는 듯한 홀가분한 표정으로 도보순례를 하고 있었다. 대개의 남자들이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어릴 때부터 각별하게 지낸 친구가 나보다 삼 년 먼저 결혼을 했었다. 그는 이십 년 전,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내게 '결혼을 하고 나면 어떤 점에서 자기로서의 자기는 이제 끝'이라고 다소 우울한 이야기를 했다. 유아기와 청년시절까지는 자신에 대해, 주로 어린 시절의 결핍과 억눌린 내면에 대해 골몰하지만, 어느 순간에 가장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골몰하면서 나이를 먹는다. 그 짐을 내려놓고 나면 이제 늙어있다.


나는 친구가 했던 그 말에 대해 일면 수긍했고 일면 부정했다. 어떤 점에서 존재는 관계인데, 자신이 선택해 출발하는 가족 관계를 떠나 '나로서의 나'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물론, 시간과 노력의 대부분을 가족들과 먹고 사는데 쏟다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왜 살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드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런 의식도 감각도 없이 그저 출퇴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을 하는 순간에도 또 묵묵히 길을 걷는 순간에도 '나로서의 나'는 생각하고 느끼고 모색하면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잖은가... 그것이 나로서의 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엔코지를 나서자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어쨌든 오늘 하루 목표로 한 순례는 모두 마쳤다. 이제 이 한 몸 누울 자리를 찾기만 하면 된다. 비를 맞으며 스쿠모시로 달려나왔다. 


엘마트라는 편의점에 들어설 즈음에는 비가 너무 쏟아져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고등어통조림(147엔) 즉석카레 288 (엔) 식빵 (116엔)을 산 뒤   알바생에게  오시마에 캠핑장이 있는지,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 친구도 기다렸다는 듯이 인근 약도를 꺼내더니 '네 캠핑 가능합니다. 이렇게 이렇게 바다쪽으로 가신 뒤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바닷가에 있는 현립 자연공원에 갈 수 있고, 거기서 캠핑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똘똘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더니 약도는 가지고 가라고... 


오시마(大島)는 이름과는 달리 스쿠모시 앞바다에 떠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섬이었다. 비를 맞으며 언덕을 올라선 뒤 국민호텔 (國民宿舍)를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과연 바닷게에 공원이 있었다. 국민숙사라는 대중호텔들도 대개 일박에 6천5백원에 저녁과 아침을 주는 곳이 많다고 한다. 주말이라 호텔 주차장에는 차들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야영을 하기로 했으니 그냥 지나쳤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혼자 텐트를 쳐도 될지 조금 망설여졌다. 비도 주룩주룩 내렸다. 


관리동이랄 수 있는 건물 안에는 코인샤워장과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었다.



다만, 경찰관이 이곳을 관리하고 있 건물 안에서 화기 사용, 전원 사용을 하면 안 되고 ... 등등의 주의 사항은 조금 고압적인 어투로 붙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카메라와 핸드폰을 충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 건물 뒤 바닷가쪽 처마 밑에 텐트를 치고 동전을 넣고 더운물 샤워를 하고... 콘센트를 찾아 카메라 등 전기기구를 모두 충전시키고... 저녁을 지어 먹었다. 


빗소리와 차분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 오늘도 캠핑장에는 혼자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고 있다. 


지출 : 계.1513엔 - 쓰리에스 262 (카페오레 110, 쵸코빵 152)  미찌노에키 꼬치구이 100엔,  스쿠모 편의점 엘마트 551엔(카레 288 고등어통조림 147 식빵 116)  납경 2회 600엔  



11일-5/31 금   리버파크 ㅡ  아시즈리곶 (足摺岬), 38번 절 곤고후쿠지(金剛福寺) 인근 호토민박


운행95.78km

다섯 시 경 잠에서 깼다.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웠다. 한적한 야영장... 산책도 하고...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지만 걱정할 건 없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텐트 한 동이 있지만 인기척은 없다.



바베큐장 한쪽에는 텐트를 치고 한 쪽에는 빨래까지 해 널었다. 


관리동은 내가 야영한 공터 위쪽에 있었다. 주말에나 야영객이나 관리인들이 오는지... 덕분에 캠핑장 이용료는 무료. 


일본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지겹도록 많이 본 것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안내문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그런 안내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버리지 말라는 안내, 경고, 협박에 가까운 문안을 인적이 드문 곳이면 예외 없이 마주칠 수 있었다. 조금 지나치다 싶도록 많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어떤 강박증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러나 이 나라 역시 ... 인적 드문 길가나 하천변에서는 일부러 내다 버린 쓰레기가 적잖이 눈에 띠었다. 그 점에서 조금 안도감이 느껴졌다...면 ㅎㅎ  


외딴 강변에 있는 캠핑장  화장실에서 마주친 계몽적인 안내문도 그 연장선에 있다. '나 하나니까 하고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면 지상에 1억 개의 쓰레기가 버려지는 것'이라고... 이성에 호소하는 내용이 조금 색달랐지만 말이다. 


이곳에도 역시 예비 화장지까지... 누군가 관리 당번이 있는 게 분명한 듯 싶다. 


100엔 동전을 넣으면 3분 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코인샤워... 옷을 미리 벗고 어떤 순서에 따라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칠 것인지.. 계획을 세운 뒤 동전을 넣었다. 저녁에도 아침에도 ... 샤워를 했다. 언제 또 샤워장을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ㅎ 

 

라면을 끓여 저녁에 지어 놓은 찬 밥을 말아 아침을 먹었다. 며칠 전 슈퍼에서 산 일본 미소 라면인데, 입맛에 맞지 않아 조금 고역이었다. 설거지를 하고 짐을 다 꾸리고 나니 아침 8시. 햇살도 화사하고 몸과 마음이 다 개운했다.

비도 완전히 개이고... 날씨도 만족스럽다.  


늘의 목표는 시코쿠 섬의 최남단 아시지리곶 (足摺岬) 38번 절 곤고후쿠지(金剛福寺). 

직선거리로만 8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야영장을 찾아오느라 해안을 따라 뻗어가던 56번 국도에서 시만토다이쇼(四万十大正) 방향으로  20km 이상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다시 해안쪽으로 나가지 않고 중앙을 가로질러 시만토시를 거쳐 도사시미즈까지 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걱정은, 지도상의 439번 지방도로가 산중으로 난 길을 가리키고 있는 점이다. 어제 겪을 만큼 겪었으니 오늘은 덜 호된 경사를 겪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야영장에서도 충전 콘센트는 찾을 수 없었기에... 핸드폰  파워뱅크에 연결해서 예비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달리게 되었다. 


어쩐지 너무도 순조롭다 싶었다. 

야영장을 떠나기 전 느긋한 마음으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다보니까... 무엇인가에 씌였는지... 자전거 변속기 와이어가 늘어진 게 눈에 들어왔다. 기어가 풀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발동했다. 어쩐지 어젯 저녁 빗길을 달릴 때 기어 변속을 하고 난 뒤에 한두 번 다시 미끄러지면서 저단으로 떨어지던 일도 생각났다. ... 바이클리에서  정비교실도 이수하지 않았는가... 무심코 늘어져 있는 와이어에 연결된 조절 나사를 돌려서 조였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손 댄 것이다. 


야영장을 빠져나올 때부터 기어가 헛돌며 미끄러졌다. 마을에서 저전거숍을 만나면 손 봐 달래야지 생각하면서 439번 도로로 만나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계곡을 끼고 완만하게 오르막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어가 뜻대로 변속이 안 되는 상태에서 ... 마음은 초조해졌다. 지나는 이 한 사람 없는 산속으로 도로는 이어졌다. 


일본의 지방도로는 어떤 곳은 이게 마을 뒷길인지 번호가 버젓이 붙은 지방도로인지 구분이 안 되게 좁고, 별다른 표식도 없는 곳이 많았다.  



애매한 갈림길에서 좀 더 넓은(그래봐야 폭 3m 조금 더 되는 차선도 없는) 길을 439번 도로인 것으로 판단하고  선택한 게 잘못이었다. 지도상에는 이 이치노마타계곡(一の又渓谷) 온천이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표지판은 왼쪽으로 안내하고 있지 않은가... 불길하다.



'이웃의 토토로' 에서 메이네 가족이 시골로 이사하며... 터널을 통과하면서 뭔가 신비롭게 원시적인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 터널도 그랬다. 도로변에는 군데군데 토사가 허물어져 쌓여있고...부러진 나뭇가지들... 도대체 사람이 이용하기나 하는 도로인지... 해발 600m 지점까지 끌다 타다를 반복하면서 또다시 등산을 했다.


이러한 고난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묵묵히 땀을 흘렸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는데도 GPS가 가리키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뭔가 잘못 됐겠지... 나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잖은가...  


산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리막길을 한참 달렸다. 내가 오른 길은 도로라기 보다는 삼림을 관리하는 임도(林道)였던 것 같다. 도중에 ... 산사태로 무너진 산을 복원하는  공사장이 나오고... 그 길을 오가는 덤프트럭들을 만나고... 비포장도로를 지나면서... 캄캄하게 짙은 숲을 빠져나왔다. 


산을 다 내려와 드디어 마을을 만났다.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길 물으니 가뜩이나 말도 못 알아듣는데 사투리도 심해 더욱 알아들을 수 없다. 내 판단에는 산에서 내려 서면서 우회전을하면  남쪽에 있는 시만토 시(四万十市)를 거쳐 아시즈리곶 (足摺岬)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을 돌다 내려와 방향이 헷갈린 모양이다. 



내가 생각한 것과 반대 방향인 왼쪽 방향으로  15km 가면 439 번도로를 만나게 된다고... 알려주신다.  


진로와는 무관하게... 도로를 오른쪽으로 벗어나 산 하나를 괜시리 올랐다가...원점에 가까운 지점으로 하산을 한 셈이다. 어흑... 


중력의 힘으로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 의식하지 못했던 기어의 이상이 고스란히 신경을 자극한다.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고 기어 변속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 나는 도대체 바이클리 자전거교실에서 뭘 배웠단 말인가... 이런 자책도 심해졌다. 덜그럭덜그럭 소음을 내면서 느린 속도로 시만토시(四万十市)까지 달렸다. 숲속과는 달리 산 아래는 제법 더운 여름날씨. 자전거 상태가 안 좋고, 내 힘으로 그 문제를 해결 하지 못했다 생각하니 기분도 나빠졌다. 


강변을 따라 한동안 달려 12 시 경 시만토 시(四万十市)에 도착했다. 시내에 들어오니 기분도 전환이 됐다. 오래된 목조 건물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 차분한 도시. 길 가는 사람에게 자전거포가 어디에 있나 물어보니  두 곳을 알려준다 . '아케이드' 라는 지붕이 덮인 상가 안에 있다는 숍과 마을 안에 있다는 오래된 가게... 먼저 아케이드 안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별로 넓지 않지만 깨끗한 식장인데, 카페테리아처럼 진열된 반찬을 하나씩 골라서 가면 선택한 만큼 값을 치르게 된 곳이었다. 돈가스와 반찬 한두 개를 선택하고 후식으로 커피까지 ...600엔



밥을 먹고나서 먼저 마을 안에 있는 오래된 자전거포를 찾아갔다. 가게주인인 할아버지는... 자신은 이런 자전거는 못 다룬다며 아케이드 안에 있는 숍을 찾아가라고 했다. 텐진바쓰라는 깔끔한 숍에 가서 기어텐션을 조절해줄 수 있냐고...하니 가지고 들어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5분이나 걸렸을까... 기어 와이어를 풀고  천천히 조여가면서 장력을 조절한다. 그렇지...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지... 그의 손길에 따라 패달을 돌릴 때마다 기어가 기분 좋게 착착 변속이 된다.  수리비는 1500엔. 



브레이크 레버  나사를 조인 것은 서비스라고... 하면서 능청스럽게 씩... 웃는다. ㅎ하 아리가또고자이마스... 이렇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럼 그것도 돈을 받을 생각이었냐...' 싶었다. 


오전 내내  괴롭던


 문제가 해결됐다. 패달을 밟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졌다.  불구 상태에서 벗어난 기분이다. 여전히38번 절 곤고후쿠지(金剛福寺)까지는 50km나 남았다. 편의점에 들러 우유를  사서 패니어에 넣고  2시 다 돼 다시 출발. 



기어 텐션을 조정하는 문제는... 뒤에 귀국한 뒤 바이클리를 찾아가 사장님을 붙들고 나머지 공부를 하며 동영상으로 기록을 해두었다.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유투브에 올린 뒤 링크를 걸어놓기로 한다. 




어젯밤에 야영을 한 리버파크도 시만토(四万十)강변이었다. 이제 이 강은 섬의 내륙을 길게 돌고 돌아 태평양과 만나는 하구에 도달하고 있다. 



강을 건너 해안을 따라 곶의 끝단까지 달려가면 오늘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해안길이니... 큰 경사는 없겠지.... 기대를 품고 달렸다. 



터널을 건너... 해안도로로 막 접어드는 시점에서 앞서 걸어가는 핸로 한 분을 만났다. 그는 뜻밖에도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36번 쇼류지(靑龍寺)를 향해 우사(宇佐)대교를 건너면서 ... 만나, 왜 반대편  요코나미(横浪) 스카이라인쪽으로 가지 않고 돌아나오는지 물어본 그 사람이었다. 






내가 이와모토지를 지나쳐 야영장을 찾아서 내륙을 헤매다 돌아나오는 동안 그는 해안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아시지리 서니로드 ...햇살이 쏟아질 것 같은 해안도로를 생각하면서...달렸다. 단순하게 생각한 길이 또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도에서 아시즈리를 가리키면서 왼쪽에서 돌아들어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니 오른쪽 바닷가를 택해서 내려가라고 일러주었다. 


고개를 오르내리락 하다보니 이미 오후 다섯 시가  넘었다. 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방향을 잘못 선택해 왼쪽 해안가로 접어들지 않고  우측으로 빠져 길에서 만난 도보 순례자가 오르막 20km 라며 주의를 준 그 길로 접어들게 되는 도사시미즈 (土佐清水)시내로 오고 만 것이다. 항구를 끼고 있는 시내에는 호텔도 여럿 보였다. 운행을 중지하고 여기서 묶을까... 망설이면서도 자전거를 멈추지 못했다. 멈췄어야 했다. 

  

아시즈리 곶(足摺岬)을  꼭지점으로 놓고 볼 때 왼쪽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접근하는 도로를 따라... 어둠이 짙어가는 도로를 달렸다. 38번 곤고후쿠지(金剛福寺)까지는 가보자... 어딘가 잘 곳이 있겠지...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어두워가는 바닷가를 암담한 마음으로 달렸다. 


절은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절 앞에는 드넓은 주차장이 있고 과 잘 관리된 화장실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 옆에 텐트를 쳐도 되겠구나... 


전망대가 보이는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가 바다를 조망했다. 장쾌한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나라에서 만나는 태평양과는 또 다른... 넓고 넓은 수평선... 파도는 해안을 향해 무섭게 달려와 부서지고 있었다. 


절 앞에서... 한글판 지도를 펼쳐보니... 인근에 유스호스텔이 있다고 나와있다. 마침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어딘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면서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우더니 물어봐 준다. 차를 몰고가던 아주머니는 내게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언뜻 봐서는 유스호스텔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단층 주택. 가다카나로 유스호스텔이라는 팻말이 있는 집 앞에다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걱정한 대로... 예약을 하지 않은 탓에... 숙박이 어렵다고 했다. 이제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다행히 관광지라 인근에 호텔과 여관 민박 간판이 밀집해 있어...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유스호스텔에서 나올 때까지... 나를 안내해준 아주머니는 차의 미등을 켜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크인 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더니 그럼 자기를 따라오라고... 마을 안쪽에 있는 민박집 '호토'로 데리고 가더니 주인부부에게게 내 대신 흥정을 해준다. ... 우락부락한 인상이지만 마음씨 좋게 생긴 주인 아저씨가 나오더니... 들어오라고 ...  일박에 얼마냐고  물으니... 6천5백엔이라고... 소데스까... 하니까... 왜 비싸? 그럼 6천엔만 받을게 한다... ㅎㅎ 


주인 아저씨는 기타다 히로시 였다. 이미 식당에는 독일인 미하엘(37세)과  일본인 나카무라(中村 65세)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게 다다미방을 안내하고는 빨랫감을 들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사용하는데 각각 100엔씩이라고... 저녁 식사가 늦었으니...밥을 먼저 먹고 목욕을 하라면서 욕실을 안내해주었다. 


저녁 밥상을 환상적이었다. 고등어 한 마리를 통째 회를 떠 놓고... 세 사람이 나눠 먹게 했다. 생선을 넣고 맑게 끓인 국과 생선구이, 셀러드... 무척 감동적인 밥상이었다. 핸드폰도... 카메라도 모두 방전돼 사진은 찍지 못했다.  


독일사람 미하엘은 나보다 일본어 실력이 훨씬 좋았다. 그는 독일 회사의 일본 지사에 2년 째 근무하고 있는데, 한 달간 휴가를 내 도보순례를 했고... 이제 휴가가 끝나 오늘을 마지막으로 도쿄로 돌아가게 된다고 했다. 그는 내게 일본에 와 본 적이 있냐고... 예닐곱 번 와본 적 있다고 하니... 그게 언제 언제 인지 일곱 번을 다 물어 보았다. 독일 사람 성격이 그런 것인지... 그의 개성이 그런지 모르겠다.  


주인 아저씨 기타다 히로시는... 내게 두 가지 이야기를 했다. 자기는 박근혜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요? 저는 별로 안 좋아 합니다... 왜? ... 역사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라서 그러냐? ... 누구의 딸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느냐 때문인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 ... 이렇게 말하니까... 호오... 그래요. 나는 한국 사람들이 다 박근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했다. 


또 하나는 예의 일본 사람들 표현대로 기타조센(北朝鮮)에 대한 이야기. ...  기타조센 때문에 걱정이 크다. ... 한국에서도 걱정이 많겠다. 너는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냐....  북한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빨리 이런 대결 상황이 해소되고 서로 사이좋게 오고 가고 서로 도우며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사람 역시 내게 무엇인가 북에 대해 화끈한 적대적인 말들을 기대하고 질문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일본 언론이 북한을 다루는 시각도 그런 것이겠지...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마치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래서 일본도 무장을 해야 한다는 식의 여론몰이... 


일본어 실력이 짧아서... 또...길게 말해봐야 생각의 차이만 확인할 것 같아서... 나는 그 뒤로 입을 닫고... 입맛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맥주도 한 병 시켜서 천천히 마셨다. 분단 국가의 현실이 새삼 서글프게 다가왔다. 


실제로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 쏘아올렸다는 인공위성이 아니라 후쿠시마에서 폭발한 핵발전소고... 거기서 다량으로 분출되고 있는 방사성물질들이 아닌가... 그리고 아시아에서 다른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 가장 많은 고통을 준 나라가... 어디였나... 



목욕을 하고 다다미방에 돌아와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잠자리를 쾌적하고 방과 욕실은 깨끗했다. 밥도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주인집 부부도 친절했고... 그런데도 울적한 심정은 어쩔 수 없었다.




지출: 점심600엔  자전거 수리 1500엔, 우유 150엔, 음료수 150엔,   민박집 6000엔  

# 10일ㅡ5/30 목   니요도강 (仁淀川)  가다(加田)캠핑장~ 이와모토지岩本寺 뒤 리버파크캠프장

 

운행거리:  126 km


새벽 5시 잠이 깼다.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잤다. 텐트 지퍼를 내리자 아름다운 강변 풍경에 와 ...하고 절로 탄성이 나왔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이런 시각에 이렇게 비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잠을 깨기는 어려웠겠지. 

 

여기도 화장실은 잘 관리돼 있다.

 낙엽이 몇개 굴러 들어가 있을 뿐 무심히 방치된 흔적은 없다. 유명한 관광지나 대로변의 휴게소는 우리나라도 화장실 을 잘 관리하고 있지만,  이 외딴 시골... 야영객이라고는 나 한 사람뿐인데... 마치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청소도 깨끗이 돼 있고 ... 조금 셈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예외 없이 여분의 예비 화장지까지 갖춰둔 게 ... 조금 부러운 지경이었다. 어떤 시스템이 이렇게 치밀한 관리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물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변으로 왜가리나 황새 같은 큰 물새들이 느릿느릿 날아다니다 물 위로 내려앉아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텐트 너머로 간밤에 홀로 어둠 속에서 깨벗고 샤워를 한 식수대도 보인다. 



다섯 시 반이 넘으니 인근 주민들이 한두 명 플라이낚시를 하러 강변으로 왔다. 그들의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집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이 남아있는 것도... 새벽 강에 발 담그고 무심히 낙싯줄을 던지는 그 고요한 심정도...   



아침은 빵을 구워 먹고 일부는 도시락으로... 어제 저녁에 지은 남은 밥과 함께 도시락 싸서 일찍 떠나기로 했다. 



일본에서 텐트를 칠 때 가장 애를 먹은 것은... 땅들이 대개 무른 흙이 아니라 자잘한 현무암(일 것으로 추측되는) 화산암들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지형이라 텐트팩을 박기 힘들었다는 점...  



팩 박기를 포기하고 주변에서 돌을 주워다가 묶는 식으로... 대신했다. 


짐 정리 모두 마치니 8시.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다. 다시 출발. 36번 쇼류지(靑龍寺)까지는 강변 야영장에서 직선거리로 25km 가량 떨어져 있다. 어제 저녁에 달려온  39번 강변길을 거슬러 달려...다시 바닷가까지 달려간 뒤 바다를 건너야 한다. 출근길 차량들이 분주한 도로를 나 홀로... 이물질처럼 뒤섞여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 시간 가량 달린 뒤 토사(土佐)  시내에 도달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거리는 일 순간 고요해졌다.

션샤인마트가 막 문을 열고 있길래... 들러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사이클 패딩 바지가 아무래도 민망해서 덧 입기 위해 헐렁한 7부 바지(990엔)를 하나 샀다. 사찰에서는사타구니가 돌출된 라이딩복을 입고 돌아다니기가 아무래도 민망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아들들이 민소매 속옷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마뜩찮아 하셨다.  


돈암동 산동네에 살던 유년시절에는 늘 문간방을 남에게 세를 주고 두 가구가 어울려 살았는데... 사는 형편이 빤히 들여다보일 만큼... 사생활이랄 것도 없는 그런 시대였다.  하긴, 60년대 중후반... 70년대 초... 전쟁이 끝난 지 불과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는 시절이었다.  



새로 산 바지를 라이딩 바지 위에 덧 입고...  오렌지쥬스 두 팩(180엔)을 사서 패니어에 넣고(자판기에서는 보통 한 병에 140엔 정도였다) 하드(100엔)를 사서 쇼핑센터앞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쉬는 김에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홉 시 반. 아내의 목소리가 잠 기운이 묻어있다.  아이들 등교 시킨 뒤에 잠시 자다 깼다고 했다. 집을 팔고 셋집을 구하는 문제로 이사 날짜가 안 맞고... 셋집을 구하는 일에도 우여곡절이 있어 며칠 속을 끓였다고 했다. 

  

36번 쇼류지(靑龍寺)는 마치 안면도처럼 시코쿠 섬에 나란히 돌출한 반도에 있다. 오른쪽 끝은 섬에 붙어 있지만 언뜻 보기에 시코쿠 본 섬과 내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처럼 보이는 곳이다. 바다를 건너는 해안까지... 두 개의 길을 두고 잠시 망설였다. 조금 가깝지만 산을 넘어가야 할 것 같은 39번 도로와 좌측 강변을 따라 해안을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 282번 도로... 도저히 산을 넘을 자신이 없어... 10km 돌아가더라도 강변과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여행중에 가장 요긴했던 편의점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자주 뜨이던 로손이다. 보는 것처럼 차량이 수십 대는 더 주차할 수 있을 것처럼... 널찍한 주차장을 가지고 있다. 대개가 그랬다. 



농촌지역이라 그런지... 동네마다 이런 코인정미기가 있었다. 벼농가들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쌀을 찧어 먹으면 편리할 것 같았다.  자동세탁기들이 즐비한... 코인란도리와 코인 정미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시설들이다.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우사(宇佐) 항을 지나   다시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우사대교가 나왔다.  어제 건너던 그 무시무시한 다리에 비하면 비교적 건널 만 했다... 다리를 다 건넌 지점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와 마주쳤다. 왜 이쪽 방향으로 되걸어오느냐고 물어보니... 반대쪽으로 이 반도를 빠져나가는 요코나미(横浪) 스카이라인쪽은 아무래도 경사가 가팔라서 되돌아나와 해안길을 따라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것은 내게도 중요한 정보였다. 



터널을 지나면 바다가 나오고 왼편으로 몇백미터 달리지 않아 36번 쇼류지(靑龍寺)가 있다. 이 절은 코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던 당시 장안(長安)의 청룡사(靑龍寺)에서 중국 진언종의 창시자 혜과(惠果:746~805)를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되어 일본 밀교의 창시자 되었다. 그는 일본에도 장안에 있던 청룡사와 같은 절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에 바다 건너로 '독고저(불구... 안내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를 던졌는데..훗날 이 자리에서 발견하고... 이곳에 부동명왕을 조각하고 이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부동명왕은... 해상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져... 항해를 앞둔 원양어선 선원들이 이곳에 참배하곤 한다고... 



170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본당이 있다. 중간에 이렇게 꾸며둔 불상과 부도 같은 것들이 있다. 



본당은 언덕 위 계단 위에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향을 네 촉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부모님과 두 분 형님을 위해서였다. 계단 아래서 잠시 쉬다가 10시 50분 다시 출발...




 아까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일러준 정보대로 다시 바닷가로 돌아나와 다리를 건너 내해를 끼고 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거대한 종려나무들이 늘어선... 이국적인 해안길...  을 다시 되돌아 나와... 


호수갈이 잔잔한 내해를 끼고 다시 해안길을 달렸다. 내가 시코쿠 순례를 떠나겠다고 하니... 대학 동기인 시인 박시우는... '두멍물같은 시코쿠 바닷길을 걷겠구나...' 하는 문자를 보내와서... 나는 조금 의아했었다. 어디서 무얼 보았길래... 시코쿠 바다를 두멍물(물을 길어둔 큰 독 속에 담긴 물)같다고 했을까... 그런데...딱 이 지역이 그랬다 비릿한 갯내음과 아무렇게 바닷가에 널어 놓은 어구들...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막막한 길...을 30km 달린 뒤에야... 시가지가 나온다고... GPS는 냉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완만한 오르내림. 사람도 차도 왕래가 만날 수 없었다.  파도조차 없는 그 바다는 바다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그래 ... 두멍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나. 56번 도로를 만날 때까지 한참을 달렸다. 



낮 12시  특색 없는 사이렌소리 시보가 울렸다. 쨍쨍한 햇볕도 아니고... 뭉근하게 달궈진 도로가 맥을 빠지게 했다. 기력이 빠진 것 같아 고갯길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길에 선 채 토스트와 레몬을 꺼내 먹었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길 밑으로 짚으로 멀칭한 밭에서 아주머니가 밭을 돌보고 있다. 비닐 대신 짚으로 정성껏 멀칭을 해둔 밭이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 농사규모라면...내다 팔 정도는 아닐 테고... 식구들끼리 나눠먹을 텃밭이라고 여겨졌다. 


자기 나라 농사가 온 국민의 삶의 근간이던 데에서... 무슨 화훼 취미처럼 전락한 현실이... 이 나라나 우리나라나... 


언덕을 위에는 또 터널이 있었다. 터널을 넘어 고갯길을 내려서니 스미토모 시멘트공장 직전에  휴식소가 있어 잠시 쉬면서 ...나그네들이 남겨놓은 기록장을 읽어보았다. 프랑스 사람이 짤막한 영어로 남겨둔 기록도 있었다. 휴식소에 붙어 있는 주택에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배려해주고... 물도 받아갈 수 있게 해 줘 감사하다는 내용이 대부분 이었다. 나도 짤막한 일본어로... 야마시타상이 궁금해 안부를 묻는 내용을 남겼다. 휴식소에 있는 홍보물에 "최근 이 지역에  신흥종교를 권유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대응하는 데에는  무시하는 게  제일" 이라고. 적혀있다.  신흥종교... 뭘 말하는 것일까. 


쉬는 김에 도시락으로 싸온 주먹밥까지 마저 먹고. 오후 1시 경 다시 출발. 이 때까지만 해도 다가오는 고난을 충분히 예감하지 못했다.  조용한  스사키(須崎)시 시가지. 또다시 비가 뿌리다 개다 한다.  모스햄버거가 궁금해서 들어가 한 개(320엔) 사서 랙팩에 넣었다. 비상식량이다. 어쩐지 먹기도 전에 든든해졌다.   



 다시 비가 흩뿌린다. 사기도 떨어지고 기운도 빠진다. 스사키 시나를  벗어나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미치노에키에서 중년의 사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꺼운 안경에 지식인풍의 사내다.  그는 그 짧은 시간에 내게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이런 소리를 했다. 확연히...3,4년 전에 일본에 왔을 때 배용준이나 대장금에 열광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보이던 과장된 호감과... 올해 일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무래도 역사 문제가 있으니까 무시할 순 없겠죠. 그런데 요즘은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특히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해 특별히 나쁜 감정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무관심하다고 하는 쪽이 ... " 


그는 80리터 대형 배낭을 매고 있었다. 20일 가량 걸었을 텐데 지친 기색도 없다. 길에서 만난  대개의 사람들이 그랬다. 일본이 한국을 싫어한다면... 그건 단순히 기호의 문제겠지만... 한국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그럴 만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물론 과거에 집착하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은 과거에 대해 진지한 반성도 사과도...  청산도 하지 않고 있잖은가... 



날이 흐려지고 있다.  이미 잠자리 찾아야할 시간 아닌가 초조해지면서 기운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해안길을 벗어나면서   핸로미치 스티커는 56번 국도를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래 국도를 따라 달리는 것보다는 이런 길이 좋지... 내심 만족스러워하며 조용한 시골마을 길을 10 km가량 달렸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한 할아버지가 차를 세우더니  말을 건다.  



"어디 가고 있소? "  "이와모토지(岩本寺)에 갑니다." "여기는 걷는 순례 길이야. 가이당이 많은 산이라 자전거는 무리야. 갈 수 없어." 


벌써 국도를 벗어나 10km는 달려온 상황이라 기가 막혔다.  "우와! 그래요?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빠꾸해서 56번 도로(공중에 높이 떠 있는 고가도로를 가리키며) 로 가라. " 


"이런 제길 제길 ... 우라질..."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발길을 돌렸다. 



스스로의 얕은 수를 원망하면서 다시 56번 국도로 돌아와 운명처럼 ... 미시령이나 대관령처럼 아스라히 산 위로 뻗어있는 오르막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예의 숨이 가빠오고 평소에 겪어본 적 없도록...엄청난 땀이 쏟아진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싶도록...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땀이 흘러내린다. 걱정이 돼 멈춰 서서 정제 식염포도당을 몇 알 먹고 물을 나눠서 마셨다.   


기분으로는 대관령보다도 두 배는 긴 것 같은 오르막이다. 나는 이 고난이 언제 끝나게 될지... 짐작할 수 있는 조그만 단서라도 찾으려고 애가 탄다. 오르막 저속차량 전용차선이... 몇 미터 앞에서 끝난다는 안내판을 읽으면... 아, 이제 오르막이 끝나나보다...하면서 오른다. 그러나 몇 번이나 저속차량 전용차선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다 타다를 반복하면서 울고 싶은 심정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저 아스라한 길들을 내가 올라왔단 말인가... 


그 때 반대차선 ...위쪽에서 새카맣게 그을은 젊은이가 자전거에 패니어를 주렁주렁 매달고...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얼굴이 까맣게 탄 탓에 유난히 흰 이가 두드러져 만화  주인공 같다.  당신은 내리막을 한참 달리겠구나.  

오르고 오르다보니... 눈 아래 까마득하게 산봉우리들이 펼쳐진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고갯마루에 도달했다.  


끝나지 않는 고난은 없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이 자전거를 끌고 이 산을 올랐구나... 감격에 겨워 있는 그 순간이었다.  



순진한 표정의 중년 남자와 화장이 짙은 할머니가 너무나 환히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다. 몇마디 하다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니 유관순 조용필 자기들이 아는 한국사람들 이를을 나열하면서 여러가지 말들을 한다. 한국사람이라 반갑다는 것인지... 순례자라서 반갑다는 것인지... 


와카소지 아키상 64 도쿠히로세츠코 상... 자신들의 이름을 써서 보여준다. 남자인 와카소지아키씨는... 옆에 있는 도쿠히로세츠코씨가 부인이 아니라 ... 여자친구... '거루후렌도'라고 했다. 누가 물어봤나?... 그냥 비실비실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는 높은 고개를 넘어섰다는 감격 때문에...혼자만의 세레모니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순간을 이들의 떠들썩한 수다가 방해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속내를 드러냈다. 자신들은 고치시 남묘호랑개교 소속이라고... 아 참 이 사람들이... 휴식소에 적혀 있던 요주의 신흥종교 사람들이구나... 나는 소위 말하는 이단시 되는 신흥종교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나 신념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규범과 도덕을 파괴할 때 뿐이어야 한다고... 우리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정도의 교양은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소박한 신념이다. ... 



내게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버젓이 대형교회나 사찰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맹신의 태도들이다.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종종 '정말 믿느냐?'고 묻곤 한다. 그 흔들림 없는... 남들에게 강요하다시피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 확신에 찬 태도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 사회적으로 핍박 받는... 이단시 되는 신흥종교 사람들을 일상에서 직접 만날 기회는 드물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최인석의 소설 '세상의 다리밑'에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고...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잠시 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나... 신혼 때 이웃에 살던 부부를 보아서도 알지만... 그들이 남에게 해꼬지를 할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80년대...온 세상을 건질 것처럼 허세를 부리던 우리 주변의 운동권 출신들에 비해서... 그들은 신념을 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직접 만난 그들은 대개가... 존경스러운 정도로 건강한 생활인들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는... 일본 천리교 (남묘호랑개교) 사람들의 떠들썩한 선교를 오래 듣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 네 시가 다 돼 가고 있는데... 당장에 어디서 잘 것인지도 정하지 못해 초조한 탓도 있었고... 내게 보였던 그 친절과 환대가...선교라는 목적을 감춘 수단적인 행위였단 말인가... 싶으니 어쩐지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보험영업을 하는 선후배들이나  다단계판매를 하는 이들에 대해서 느끼는 불편한 기분도 그런 것이었다. 이삼십 년 전부터 알아 온 이들에게 어느 순간 관계가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 들 때...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쓸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차 뒷좌석에서 빵 하나를 꺼내 내게 주면서... "남묘호랑개교는 세상의 가장 가치 있고 평화로운 상태로 당신을 이끌어 줄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어쨋든 감사한 일이다. 


진언을 외거나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번뇌를 끊을 수만 있다면... 매 순간 격랑이 이는 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되도록 티 안 나게... 가야 할 길이 바쁘다며... 작별을 고하고...  거의 울면서 올라야했던 높이를... 허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달려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분명한 진리는 우리가 중력에 얽매어 있다는 것 ...이로구나...  

내리막길은 한 동안 산길로 이어졌다.  한참 달려 내려가다가 만난 휴식소에서  잠시 쉬었다.  

미치노에키에서 도달하고 나니 이미 다섯 시가 다 돼간다. 너무 늦었다. 37번 사찰 이와모토지 (岩本寺)가 머지않은 시만토쵸( 四万十町) 마을에서 일단 장을 봤다. 대형할인점 마루나가에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는 아내의 충고대로 소고기200g을 780엔에 샀다. 반값도 안 되는 미국산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선택하지 않는 미국소를 일본에서 살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일본 국내산을 샀다. 


목표로 하고 있는 이와모토지 뒤편 근 20km 뒤쪽에 있는 야영장까지 갈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은 안 섰지만...일단 야영 할 준비를 한 것이다. 장을 보고 나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지... 56번 국도에서 우회전 해 1km 남짓 들어간 곳에 이와모토지가 있었다. 이미 다섯시가 지났기 때문에 절을 관리하는 할머니가 납경을 받겠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답하고... 그저 내가 가지고 온 향을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절을 나섰다.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절앞에서 도보 순례를 하고 있는 젊은이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도쿄의 신주쿠에 산다며... 내게  왜 왔냐고... ' 조용히 생각도 하고 삶을 돌아보기도 하려고....' 대충 답을 했더니...그는 미소를 지으며 핸로들이 다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 짧은 순간에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냐고... 김기덕 감독은 오히려 해외에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했더니 자기도 안다고 했다.  나도 일본 영화 중에서 '카모메식당'이나 '굿 바이'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는 또 씩 웃으면서 그런 영화도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디서 잘 거냐고 물으니 자기는 5km  떨어진  민슈쿠(民宿)예약을 해두었다고... 나보고도  어디서 잘 거냐고... '나는 15km 떨어진 캠핑장에 간다고...  아... 그러냐... 잘 가라... 함내요... 다들 쿨하다... 마음에 든다. 


 

인사를 나누고 그와 헤어졌다. 날도 어두워지고 있는데다가 비도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캠핑장이 있다는 방향으로 일단 계속 달렸다.  순례길과는 정 반대라서 민숙이나 여관같은 게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그 방향에 미치노 에키가 있다고 표시돼 있으니 야영을 못하게 되면 미찌노에키 화장실 옆에서라도 야영을 해야겠다 싶었다. 


이와모토지에서 내륙쪽으로 뻗은 시만토(四万十) 강을 따라 뻗어 있는 381번 도로... 적막한 시골길을...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달렸다. 비를 피할 잠자리를 못 만난다면... 어쩌지...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룻밤 잠을 안 잔다고 무슨 대수랴... 이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달리고 달렸다. GPS 상에는 두 개의 야영장이 1~2 km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했다. 



리버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저문 시간이었다. 사지은 다음날 아침에 찍은 광경이다. 


드디어 미찌노에키도 두 개의 야영장도 근거리에 있는  시만토다이쇼(四万十大正)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첫번째 야영장은 언덕 위에 있었다. 올라가 보았지만... 청소년 수련시설은 있는데... 관리인을 만날 수 없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언덕을 내려와 다시 다리를 건너 GPS 가리키고 있는 강 건너 리버파크를 찾아갔다... 


어두워져... 라이트를 켜고 들어가야 했다.  숲은 짙어지지만 사람의 기척은 볼 수가 없어 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2~3 km 강변을 따라 들어간 지점에... 야영장이 있었다. 깊숙이에 사람의 기척은 느낄 수 없지만... 텐트도 한동 세워져 있었다. 일단 여기서 잠은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금 떨어진 공터에 지붕이 있는 바베큐장 안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습기를 머금은 잡초 밭 위에 텐트를 치자니 깨름칙 했기 때문이다. 


텐트부터 치고...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관리동에.. 사람은 없고.. 샤워장이 있었다. 코인샤워... 200엔을 넣으면 더운물이 나오게 돼 있어... 일단 샤워를 했다. 텐트도 설치했고... 일단 부러울 게 없는 밤이다. 저녁은 헤드램프를 켜고... 소고기를 구워... 천천히... 먹었다.  고되고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일단 잠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것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서움 같은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감정일 수 있었다. 



지출 :  토사시 선샤인마트 1400(7부바지 990 하드 100 오렌지쥬스 2 180 
절앞 무인판매대 오렌지5개 200  모스버거 320 로손 초코우유 150 
37번 절 앞 마트 1250엔 (소고기 780 우유 2개 )



9일ㅡ5/29  고치시 도사지호텔~ 니요도강 (仁淀川)  가다 캠핑장(加田キャンプ場)

운행  62.54km



새벽에 깨어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빗줄기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마음이 무겁다. 이왕 이리 된 거 느긋하게 떠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 고치 지역은 오후 3시 이후에 날이 개일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 전이라도 빗발이 가늘어지면 떠나야지... 


아침 7시 호텔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니기리와 미소시루, 계란말이, 프랭크소시지, 김... 한쪽에 빵과 버터와 딸기잼...그리고 커피와 오차가 후식으로... 더 비싼 호텔들은 어떨지 몰라도... 어느 호텔이나 이렇게 나오는 것 같다. 출장 때 가본 후쿠오카나 도쿄의 비즈니스 호텔이나... 이번 여행에 몇 번 묵은 토요코인은 다 이랬다. 


어제 휴식소에서 비를 피하다가 만났던 와카야마 할아버지와 순례 22일째라며 다리를 절며 걷던 분 ... 모두 식당에서 만났다.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호텔이었는데...  어제. 그 상태에서 이 호텔을  못 만났다면 낭패를 당할 뻔 했다 싶었다.  


비를 맞기 싫어 최대한 늦장을 부리다 오전 10시 다 돼  출발했다.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눌릴 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  떠나기 무섭게 랙팩을 위에 한 번 더 결속한 고무줄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크랭크에 휘감겼다.  빗발이 조금 가늘어지긴 했지만 길가에 선 채 비를  맞으면서 벗겨내느라 애를 먹었다. 단단히 꼬여들어간 고무줄을 가위로 한 가닥씩 잘라가며 떼어내야 했다. 기어를 풀고 텐션 가이드를 뒤로 밀면서 한 30분 애를 먹었다. 손아귀 근육이 곱아져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뭘 야무지게 집어서 당기지를 못한다. 일시적인 일이겠지만  일종의 장애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지도 방향이 거꾸로 돌아가 1km가량 반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시 외곽, 유니클로와 대형 할인점 마루나가 그리고  다이소 등 거대한 쇼핑몰이 도열 해 있다. 대개 도시들이 다 그랬다. 


방금 '해먹은' 결속용  고무줄도 살 겸 다이소에 들렀다.식품은 여러 대형 쇼핑몰들이 혼전을 벌이고 있고,  동네의 가게들은 거의 다 소멸한 것 같다. 길목마다  편의점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고  다이소도 동네마다 들어서 있다. 20년 넘게 이른바 버블이 꺼진 뒤 경기침체가 지속돼온 일본은 다이소 세상이 된 것 같다. 다양한 생활용품과 간단한 식음료까지 안 파는 게 없다. 12번 쇼산지 가는 길에 산골 점방에서 시세에도 선블록을 600엔 주고 샀는데 이보다 용량도  더 큰 게 단 돈 100엔이다. 중국제인가 봤더니 메이드인 코리아다. 


31번 사찰 치꾸린지(竹林寺)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제 비를 뚫고 찾아가다 불의의 추락사고로 나를 좌절하게 만든  절. 자전거를 위한 길 안내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다시 터널을 건너고 강을 건넜다가 다시 넘어와 헤맸다. 세밀한 부분까지 내려받지 않아  지도에 등고선 표시가 안나타나는 게  문제였다.  길가에 서 있는 순찰차에 다가가 물어보니  골목길 끝 산 위로 올라가는 들머리를 가르쳐준다.  도보 순례자들은 촘촘히 붙어 있는 스티커를 따라가고  자동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있겠지만 자전거를 사정이 다르다. 


언덕길을 또다시 끌다 타다 하면서 올랐다. 만약 이 산이 아니라면 ...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백미터쯤 남은 지점서 아까 만난 순찰차와 순경을 다시 만났다. '이 위에 치쿠린지가 있습니다.'  알려준다.  


치쿠린지(竹林寺)가 있는 산 이름이 고다이산(五臺山)이다. 724년...쇼무 천황이 중국에 있는 오대산을 닮은 산으로 이 산을 지정하고 스스로 문수보살을 새겨 절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있다.   절 입구에 식물원도 있다.



 절에는 일부러 구경할 만한 고색창연한 일본식 정원이 잘 갖춰져 있다.  전통있는 절이라는 게 느껴진다.



 17세기 이후로... 이 절은 학문의 절로 인근 지역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절이라고 한다. 



가늘게 흩뿌리는 빗속에 천천히 참배를 했다.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아니다. 돌이켜보면 여유는 있었다. 누가 강제하는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날 안에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둥대고 있었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초조감이 여전히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마저 그렇게 허둥대는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기분은 참... 더럽다. 

절 위에 고치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다고 했는데... 올라가보지 못했다. 오늘은 꼭 야영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자판기에서 비타음료 (150엔)를 사마시고 12:00 다시 출발.


32번 사찰 젠지부지(禅師峰寺)는 31번 주쿠린지로부터 6.8 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산을 내려와 좌회전을 한 뒤  강변 도로를 달리다 세번째 다리에서 우회전 해 다리를 건넌 뒤 2km 쯤 달려가 만나는 바닷가 언덕 위에 있다.  바닷가에 있는 절이라고 방심하고 달리다가 또다시 업힐 구간을 만난다... 허를 찔린 기분.  


절 입구에는 대단히 규모가 큰 공동묘지가 함께 있다. 철죽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회양목에 붉은 꽃이 피어있다. 원래는 꽃을 피우는 관목인데 추운나라에 와서는 꽃피우기를 거부해온 것인지...


허리가 땅에 닿을 듯... 거의 백세는 돼 보이는 꼬부랑 할머니가 쓰러질 듯 절 계단을 오르고 있다. 저 간절하고 절박한 걸음 앞에 나는 잠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악산 봉정암에 오르다 보면 그런 노파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잿빛 옷들을 입고 기듯이 산을 향해 오르면서 연신 무엇인가 간절히 희구하던 그 분들의 표정도 그랬다. 노파들이 자신의 복락이나 극락행을 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ㅡ


내가 운전하는 차 뒷자석에만 오르면 '나무관세음보살' 부터 찾으시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참배를 하고 계단을 내려 오는데, 후배 P의 부친상 소식이 문자메시지로 날아온다. 어차피 문상을 갈 처지가 아니니 집에 전화를 했다. 아내가 저녁에 조문하겠다고 한다. 다들 부모님들이니 세상을 떠나고 있다. 세대가 이렇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젠지부지(禅師峰寺)는 토사만의 태평양이 조망되는 미네야마(峰山)위에 있어  미네지寺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코보 대사가 807년에 방문해 11면 관음보살상을 새겼다는 전설이 있다.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절로 여겨진다고 한다. 

1291년에 만들었다는 금강역사상은 국보라고... 




우리나라 동해안 강릉과 삼척 인근  해신당에는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처녀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20년 전에 ... 취재차 갔던 그 당집들에서... 나무로 깎은 남근을 제물로 올리며 제를 지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누구를 모시고 무엇을 바치든... 풍어를 기원하고 재난을 피하게 해달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는 것은 같다.     



참배를 마치고나니 오후 1시 반. 계단을 내려와 절 주차장에 있는 휴식소에서 어제 산 빵과 주쿠린지에서 마시다 남겨온 비타음료와 함께 먹으며 잠시 쉬었다. 아까 계단을 기듯이 올라가던 할머니를 모시고 온 택시 기사가 다가와 관심을 나타내며 전부 자전거로 도는 것이냐고...대단하다고 ... 그러면서 일주일 전 23번 야쿠오지에서 어떤 예쁜 여자(かわい 女)가 당신처럼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호오... 그래요?  여자도 자전거 순례를 하는구나... 과연 내가 겪은 고난에 찬 과정을 그 여자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것도 혼자서... 싶었다. 


계속 비가 내리다 그치다 한다 ...  정말 쓰유(梅雨)가 시작되기라 한 것인지.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30m 이상 고공에 떠있는 편도 1차선 다리를 건너야 했다. 우라도대교(浦戶大橋).  멋모르고 도로를 따라 올라갔는데 어느샌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 너무 무서웠다 까마득한 바다 위를 달리는 것도, 뒤에서 굉음을 내며 다가와 스치듯이 지나쳐가는 화물차들도 ...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난간에 철망이 쳐있어 심리적으로 조금 위로가 되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내리막길로 해안길에 내려선 후 바다를 끼고 3~4km 달린 뒤


33 번  셋케이지(雪蹊寺)까지는  10.2 km.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굳이 무시무시한 다리를 넘지 않고... 우측으로 조금만 더 가면 무료로 운행하는 도선장이 있었다. 배에 실려 직진할 수 있는 것을 다리를 건너 우회한 것이다. 



셋케이지는  다행히 평지에 있었다. 날이 개고 잠시 해도 났다.


16세기 후반, 이 절에서 수행하던 겟포우오쇼(月峰和尙)의 귀에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운율에 맞춰 짓는 일본의 옛 시가인 와가(和歌)의 후반부 구절만 되풀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겟포우화상은 이 귀신이 시를 짓는 게 서툴러 이를 한탄하느라 성불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뒷구절의 댓구가 될 앞부분을 지어주었더니... 울음소리가 그치고 귀신도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단다. 뭐 그런 일로... 울고불고... 남들에게 민폐를 끼친단 말인가... 소심한 귀신 같으니라고... 



 

참배를 바치고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바빠진다. 절 입구 무인판매대에서 귤 한 봉다리를 200엔 주고 샀다. 껍질이 두껍고 씨가 있어 골라내야 하지만 달고 시원해서 음료를 사 마시는 것보다 ... 여러모로 좋았다. 


세케이지에서 해안도로쪽으로 나오다보면 34 번사찰 타네마지(種間寺)까지 이정표가 있다. 자동차 3.6km로 표시된 거리가  내가 달려야 할 길이다. 



34 번사찰 타네마지(種間寺)도 평지 길가에 있었다. 



코보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며 ...쌀, 보리, 좁쌀, 수수, 콩 등 5곡의 종자를 가져와 이 절에 뿌려서 채종했다는 전설이 있다. 절의 이름도 그래서타네마지(種間寺)라고...  


 577년에 이 절을 지을 때는 백제에서 화가 목수 등 장인들이 와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절이 완공된 뒤 귀국하려고 할 때 풍랑이 일었는데... 절에서 안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 뒤에 무사히 돌아갔다고 한다. 



여기서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 까지는 로커스 GPS가 가리키는 방향과 교통표지판, 핸로미찌 스티커가 가리키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일단 도로표지판과 GPS를 보면서 달렸다.  


고즈넉한 동네였다. 오가는 차도 없고 비에 젖은 5월의 신록이 뿜어내는 숲의 고요.  

하천이 마을을 관통하는 동네를 지나 56번 국도를 한참 달린 뒤 니요도가와 (仁淀川) 강변에서 토사시(土佐市)시의 제법 번화한 시가지를 지나게 된다. 



길가에 있는 모스버거 매장을 지나...  갈림길에 휴식소가 보이길래 잠시 앉아 쉬면서 아침에 싸놓은 주먹밥을 먹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자전거로 순례하냐? 대단하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는 저쪽으로 가는데 알고 있냐며 살짝 지나친 갈림길에서 뒤쪽으로 뻗은 길을 가리킨다. 네에? 자세히 살펴보니 교차로 가로등에 핸로미찌 스티커가 붙어있다.  


더 늦으면 안되겠다 싶어 짐을 꾸려 떠나며 보니까...아까 그 아주머니가 길 건너편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말 이해했어요? 괜찮겠어요? "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참 친절하고 사려 깊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이 많고 친절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는데... 싶었다.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 역시 언덕 위에 있었다. 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통과한 뒤 산 위로 올라야 한다. 산 입구에는 어둑어둑 음산한 묘지가 있다. 땀 깨나 쏟으며 경사면을 한참 오른 뒤 기오타케지까지 500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맥이 풀렸다. 마지막 100m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핸들바백만 들고 올라 갔다. 시가지가 다 조망되는 자리다. 



코보대사가 금강장으로 대지를 찌르니 푸른 폭포가 생겼다는 전설에서 이 절 이름이 유래했다고... 

참배하고 하산하다 보니 오후 5시 시보가 울려퍼진다. 안개낀 밤의 데이트... 차임벨 연주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니... 애수가 밀려온다. 낡은 표현일지라도 그냥 애수(哀愁)라고 적고 싶은 그런 쓸쓸함. 동네마다 매 시각 시보를 울리는 건 같은데, 어떤 곳은 사이렌을 울리고...어떤 곳은 학교에서나 쓰는 딩동뎅동...실로폰연주를, 또 이렇게 귀에 익은 경음악들을 트는 곳도 있다. 담당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아무튼 이 동네 오후 5시 시보는 안개낀 밤의 데이트였다. 나는 언덕을 내려온 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허전한 가슴을 추슬러야 했다.   


니요도가와(仁淀川) 강변에 있다는 캠프장까지는  직선거리로 4km 떨어져 있다고 GPS가 가리킨다. 아무리 멀어도 7km는 넘지않겠지... 4~50분 안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상은 접어두고 부지런히 패달을 밟았다. 


도중에 편의점 스리에프에 쌀이 있나 싶어 들어갔으나 2kg들이만 있어 포기했다. 한끼에 200남짓 먹을 텐데 내내 무게를 달고 다닐 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대신 순례자코스에 있는 사찰 주변 숙박업소와 식당 등을 안내한 가이드북, 우유 1리터, 주스, 식빵 등을 샀다. 퇴근길 차량들이 이미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편의점에서 나와 강을 건너... 좌회전... 이제 캠프장까지 직선 거리는 2km. 강변을 따라 달리면 된다.  다시 빗발이 굵어진다. 마음이 바빠졌다. 가다(加田)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강변으로 내려가기 전 둔덕 위에 있는 화장실과 강변에 수도꼭지 대여섯 개 달린 급수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차들 강변에서 플라이낚시를 하는 이들이 세워둔 서너 대의 차량.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텐트도 한 동 세워져 있다. 


급수대에서 50m쯤 떨어진 지점에 텐트를 세우기로 했다. 텐트를 조립하고 있는데 작은 트럭이 다가왔다. 


운전석에서 앉은 채 순박해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기서 캠핑 할 거냐?" "네 캠핑해도 되나요? "  "됩니다. 바닥에 물이 있으니 텐트를 뒤쪽으로 옮겨요." 그런데 그가 말한 지점은 약간 움푹 패인 탓에 낙엽들이 쌓여있지만 물 구덩이였다. 캠프장 관리인인가 ?  싶었지만 그렇게 물어보기도 뭐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그가 차에서 내려 자기가 지정한 지점을 확인하더니... 미안하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차를 몰고 떠났던 그가 잠시 뒤 다시 왔다. 


"술 마시냐?" 이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캠핑장에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소린지... "조금..." 이렇게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 동네 토산품이라며 일본 술(사케) 한 팩을 주면서 "푹 자라"며 두 손을 포개 얼굴옆에 대며 자는 시늉을 해 보인다. 귀엽다. 그리고 충분히 합법적인 야영을 하게 됐다 싶으니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비 안개가 자욱한 강변으로 가끔 왜가리같은 물새들이 느릿느릿 날아다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이제 부러울 게 없는 밤을 보내면 된다. 다만, 쌀이 떨어진 게 허전했다. 첫날 다카마쓰역에 있는 A마트에서 산 1Kg을 다 먹은 것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어지는 법이니라" 어머니가 내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고달프게 걷는 사람은  말만 타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싶지만 말을 타고 나면, 앞에서 이끌어줄 견마꾼(牽馬 -)마저 바라게 된다는 말인데, 나는 대학 2학년 때인가 어머니가 이 말씀을 하실 때  말뜻을 확실히 듣지 못했다. '견마가 아니라 경마가 아닐까? 천천히 걷던 사람이 말을 타면 더 빨리 경마도 하고 싶어진다는 말인가 보다.'  이렇게 지레 짐작을 했다.  


늘 사는 게 아슬아슬 했지만, 1985년에 셋째 형을 그나마 몇 백만 원짜리 전세방을 구해 장가보낸 뒤 서울에 남은 어머니와 나는 갈 곳이 막연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단칸방을 구하러 아파트단지로 개발 되기 이전의 방학동, 의정부 등으로 버스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 내가 방을 구하면 뭐도 필요하고 뭐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그런 말씀을 하셨다.  경마가 아니라 이끌 견(牽)... 견마였다는 것은 한참 지난 뒤에 알았다. 소설에 그 속담이 나오길래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게 나와 있었다. 


텐트를 다 설치하고나서  짐을 정리하고 난 뒤 빈 자전거를 타고 이웃 동네에 가보았다.  다행히 골목 안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초로의  아주머니께 쌀이 있는가 물었더니  5kg들이밖에 없다고... 얼마나 원하냐고 ...  1kg이면 좋겠다고 하니까...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가게 안쪽 살림집에 있는 남편에서 허락을 받는다. 도시에서 만나던 ...어딘지 약하고 외로워보이는 일본 남자들과 달리.... 가장의 권위가 여전히 등등해 보이는 아저씨가 아뭇소리 없이 5kg 쌀푸대를 들고 나와 저울에다 1kg이 훌쩍 넘게 달아서 비닐 봉투에 담아준다. 고마웠다. 



물에 삶아 껍질째 먹는 줄콩이 있길래 달라고 하니 ... 먹을 줄 아는지 묻는다. 염려 말라고 달라고... 바나나 한 송이, 정어리통조림까지 먹을 것을 조금 더 샀다. 주판으로 계산하더니.1500엔인데.1000엔만 받겠다고... 또 잠시 실랑이를 했다. 그럴 수 없다고 1500엔을 내겠다고 ...  한사코 500엔은 오셋타이(接待)라고 하신다. 콧끝이 찡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게를 나와 자전거에 매달고 온 빈 패니어에 주섬주섬 장본 것들을 넣고 있으니  따라나와 단팥빵 하나를 쥐어주고는 내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신다. 


이제 저녁은 과식을 할 지경이 되었다. 이틀 전...츠키미산 어린이숲 (月見山 こどもの森) 에서 구워 먹으려다가 갑자기 탈출하는 바람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 돼지고기 200g.  호텔에서 버릴까 하다가 그럴 수는 없지 싶어... 끓는 물에 데쳐서 후추를 뿌려 꽁꽁 싸서 가지고 왔는데 ... 다행히 상한 것 같지는 않아 ... 토스터에 구웠다.  



정어리와 남은 김치... 가게에서 사가지고 줄콩을  반 넣어 찌개를 끓였다. 나머지 콩은 데쳐서 그냥 먹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준 사케까지...  



게다가 캠핑장은 무료다. 다만 샤워시설이나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는 찾지 못했다.

  


뿌듯한 저녁을 ...다 먹고.. 쉬다가... 밤 10시가 넘어, 더 이상 통행인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급수대 앞에 가서 코펠로 물을 떠 샤워를 했다. 급수 대 옆 가로등 스위치를  끄니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일본에 와서 노천에서 너무 자주 벗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캠핑장을 전세 낸 날이다.  



지출:  다이소 630엔 (반다나 105 선블륙 105 결속 파소토 105 전지 2종 210 케이블타이 105) 스리에프 1453(가이드북 880 우유 1L218 주스 500ml 157, 식빵 198)  무인판매대 귤(200엔)
가다 캠핑장  加田キャンプ場 인근 동네가게 1000엔 ( 쌀 1kg 바나나, 정어리통조림, 풋콩1 빵1) 

정종1캔 ㅡ 오셋타이



* 5월 28일, 화요일. 고난시(香南市)  야스(夜須) 역 인근 

야시파크 해변~ 고치시 도사지(土佐路)호텔   
주행거리:  35.92 km

새벽에 돌풍이 불고 비가 쏟아졌다. 텐트가 흔들릴 때마다 설핏 잠이 깼지만 그냥 잤다. 
그 수밖에는 없었다. 텐트 위에 튼튼한 지붕이 있고 텐트도 비바람을 막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4시 반에 일어나 텐트를 정리했다.  간간히 비가 뿌리는데도 다섯 시부터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자전거에 짐을 매달고 있는 나를

 곁눈질로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바삐 걸었다. 날이 밝으면서 비는 그쳤다.


어릴 때부터 남들에게 방심한 채 잠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를 두고 어린시절 친구들은 '잔 정이 없다'고 했다. 너무 깔끔을 떤다는 말일 것이다. 

대학 1,2학년 때 나는 서울에 홀라 남겨진 채 수원 못 미친 곳 부곡역 시골 집에 방을 하나 세 얻어 살았다.

역에서부터 캄캄한 시골길을 이십 분쯤 걸어들어가야 도달할 수 있는 외딴집이었다. 

수원가는 전철은 종로5가에서 열한 시도 되기 전에 끊겼다.

 

스무 살의 우리들은 출신 고등학교에서 가까이에 있는 대학로에서 자주 어울렸다. 

튀김이나 동태찌게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며 합창을 하고... 

그 시절 대학생들이 많이 가던 저렴한 술집들의 풍경이 그랬다. 

 이 테이블에서 목청껏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르면 옆 테이블에서 '진주난봉가'를 합창하고 

이렇게 돌림노래를 하듯이 노래를 주고받다가 '5월의 노래'를 다 함께 합창하는 식의...

 

나는 술을 마시면서 늘 막차 시간을 초조하게 확인하다가 열시 반이 넘으면 벌떡 일어나 

전절을 타러 달려가곤 했다. 친구들은 그런 내가 못 마땅하다고 했다. 

어울려서 같이 토하고, 등 두드려주고...또 친구집에 몰려가 뒤엉켜 자면서 깊은 정을 나누지 않고...

 발딱 일어나 기어이 막차를 타고야 마는 내게 '새끼가 잔 정이 없어...' 이런 말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나는 수원 전철 막차를 타고 가 캄캄한 부곡역 플래트포옴에 내려 밤길을 걸어서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자취방에 걸어들어가야만 안도감에 마음이 놓이곤 했다. 

자정무렵 부곡역에 내려면... 호숫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자욱한 날이 많았다.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려 있는 동안도 좋았지만... 휘엉청 밝은 달 아래 

인적 끊긴 시골길을 혼자서 걸어가던 고즈넉한 그 정취가 좋았다.



아침 6시.  야스(夜須) 역 미찌노에키()에 나가보았다. 

미찌노에키마다 있는 안내센터 문에 9시반에문을 연다고 ... 와이파이도 가능하다고 써있었지만 

그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야스 역에서 전철로 네 정거장 떨어진 곳에 호텔 온천이 있다고 해 

가보기로 했다. 예정에 없는 곳에서 겨우 야영은 한 때문에 씻지도 못하고 잠을 잤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쳐 잠도 설쳤다. 온천에라도 들러 씻고 피로를 풀어야 겠다 싶었다.




마침 28번 사찰 다이이치지 (大日寺)가는 길이다. 호텔 마당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프런트에 가서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니 10시부터 문을 연다고... 호텔온천을 무슨 10부터 연단 말인가. 

호텔은 일박에 5천240엔, 체크인은 오후 2시부터라고 했다. 호텔 앞에 순례자들을 위한 

무료 족탕 휴게소가 있다.지역농산물 판매장 앞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시설을 해놓았는데,  

이곳 역시 닫혀있다. 아쉽지만 계속 길을 가는 수밖에 ...



당장에 쉴 곳이 없다.

28번 다이이치지 (大日寺고난시(香南市) ...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55번 국도에서 내륙쪽으로  4,5km쯤 

올라간 지점에 있었다. 등교시간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무리지어 달리고 있다.  

남여를 불문하고  대개들 교복에 흰 핼멧을 쓰고 씩씩하게들 달린다.

속 사정은 어떤지 몰라도 아이들은 유쾌하고 건강해 보인다.  

 

 

 

아침8시반 다이이치지 참배를 마쳤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순례자들은 거의 없었다.

 

 

 

이 절에서는 나를 이 순례길로 나서게 한 친구 W를 생각하며 향을 살랐다. 

다섯 살배기 어린 아들을 두고 갑자기 죽어버린 친구.  80년대에 그는 도무지 망설임이나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친구였다. 졸업을 한 뒤에도 그랬다. 그 때문에 두 번 구속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어느 순간에 '변혁'은 낡은 추상이 되었다. 그의 비타협적인 강직성은 때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그랬다. 다들 속으로 자기 이익을 챙기고 약게 처신하면서 제 갈 길을 갔는데 ... 

그는 여전히 원칙에 대해 말했다. 함께 하던 후배들에게도 그는 어느 순간 부담스러운 선배가 되어 있었다. 



사진학과 출신인 그는 ...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올 때까지... 

사진가로 사는 일을 잠시 유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도시살이에 점차 지쳐갔다. 귀농운동본부 귀농학교를 마치고... 

2000년대에 되살린 [뿌리깊은나무]라고 이야기되던 잡지에 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잡지는 오래 가지 못하고 폐간 됐다. 그는 거창군으로 귀농을 했다. ]

그러나 농사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웠다. 

끝없이 밖으로 나돌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시들어 가던 시골 초등학교에 교장공모제를 통해 진보적인 교장을 모시겠다고... 

경남 교육청 앞에서 단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암으로 쓰러진 뒤 불과 두어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현대의학의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죽기 전날까지 호기롭게 나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길 수 있다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 했었다. 

그가 항암치료를 받아들였다면 ... 어땠을까. 글쎄... 그의 삶이 수십 년 연장되는 반전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그는 암 투병마저도 자기답게 하다가... 떠나버렸다.    



29번고쿠분지(国分寺)까지는 6km 가량 떨어져 있다. 모내기를 마친 드넓은 들판과 마을 지나게 된다.
들판을 달리면서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하늘은 여전히 잔뜩 찌푸려있다. 

핸로미찌 스티커를 보면서...


도보순례자(아루키 헨로 遍路)들은 여기까지 오느라  다들 십이삼 일 이상 지난 탓에 

대개들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신록이 돋아나고...꽃들이 피어나는 봄...  


들판을 가로지라다보니 서산묘원이라는 묘지 옆에  젠콘야도(善根宿)가 있다. 

다다미 두 장과 소파 화장실이 있다.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 잠시 앉아서 쉬며 식빵 두 쪽에 딸기잼 발라 먹고 

사람들이 남겨놓은 기록을 들춰보았다.



어젯밤과 같이 비바람 몰아치는 밤이나...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밤... 

도보 순례자들에게 이런 공간은 얼마나 안락한 휴식을 주었겠는가.



순례자들에게 주는 교훈들도 유인물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살생을 하지말라거나... 음란한 마음을 갖지 말라거나... 이간질을 하지 말고...화를 내지 말라거나... 하는 말들...

 너무 뻔한 말이긴 하지만... 

순례자 매너에 대해서는... 오세타이(接待)를 베푸는 것은 수행을 전제로  것이니 

미혹을 갖지말라는 말...   남의 선의에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바른지... 

나는 여전히 서툴다. 이들도 그런 착오가 서로들 있는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병적일 정도로 예민한 선배가 한 사람 있다. 그는 내게...언젠가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언제 하차벨을 눌러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정류장을 떠나자마자 누르면 운전기사가 내가 지난 정거장에 못내린 사람으로 착각할 것 같고... 

너무 늦게 누르면,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미처 준비없이 멈추게 돼 성가시게 될까봐...'  

 

이 젠콘야도는 이 묘역을 운영하는 이가 순례자를 위해 베풀어 놓은 오세타이인 모양이다. 

동네 들판 한 가운데 묘원이 있는 것도 우리와는 조금 다른 정서고... 순례자들을 수행의 동지로 생각하며 

무엇인가를 베푸는 태도도... 이 지역의 특색인 것 같다.



 순례자가 남겨놓은 기록에 보니... 1년에 한 번 시코쿠병원에 입원한다는 말...이 눈길을 끈다. 

내게도 일년에 서너 번 찾아가는 지리산이나 설악산이... 매주 한 번은 걷게 되는 집 근처 북한산이  

병원이었구나 싶었다.


헨로미찌 스티커를 따라가다보니... 이렇게 도로를 벗어나 들판을 가로질러 논두렁을 지나기도 했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29번고쿠분지(国分寺)까지 11km 들판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평탄한 길이었다. 

고쿠분지는 인왕문부터 삼나무들이 곧게 뻗어있어 꽤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그 절에서는 떠올린 사람은.. 우리 6남매의 맏이었던 큰형이었다. 

장손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형에게 그 운명은 버거운 것이었다. 

스스로도 그런 삶이 힘겨웠을 것이다. 오히려 집안의 기둥이 된 사람은 둘째 형이었다.  

부산에서 성장하다 사춘기를 갓 넘겨 서울에 올라온 뒤로... 타향살이도 힘겨웠을 것이다. 

대학 진학도 실패하고, 변변한 직업을 갖지도 못한 채 늘 집안 어른들로부터 면박을 당해야 했다. 

 

형은 신혼이던 1981년, 경산열차사고를 당했다. 부산 처가에 신행을 다녀오다  경산역에서 

추돌당한 통일호 열차 맨 마지막칸에 타고 있었다. 벗어둔 양복 재킷이 사망자 옆에 

떨어지는 바람에... 형과 형수는 뉴스 속보 사망자 명단에 발표가 됐었다. 

어머니가 실신을 하고... 그날 밤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다행히 큰형 부부는 부상을 당한 대구 시내 파티마 병원에 후송돼 있었다.  


그 사고를 겪은 뒤 형수는 뱃속에 있던 큰 조카를 출산했고, 얼마 뒤 부산으로 이주해 

형님은 버스회사 직원이 된 뒤 정년 퇴직을 할 때까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성실하게 일했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조카들도 잘 자라주었고...  아이들이 대학 졸업하고 취직을 해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때쯤... 형은 허망하게도 불과 육십에 죽고 말았다. 

 

고쿠분지에서 사른 향은 형을 위한 것이었다.


고쿠분지를 나설 때부터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고어텍스 재킷을 꺼내 입고... 

뺨을 때리는 빗줄기를 감수하면서 ... 자전거를 타는 일이 쉽지 않았다.  



 

30번 센라쿠지(善楽寺)까지는 서쪽으로 들판과 산기슭으로 헨로미찌가 이어져 있었다. 

빗줄기가 너무 거세져 길가에 있는 남의집 차고 겸 농기구 보관소에서 잠시 비를 피하고 있었다. 

한 30분쯤 망연자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고 있자니... 소형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려다가...

나를 보고는 그냥 안심하라면서 집 안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뒤 따라 들어오던  할아버지도 괜찮다며 안심라는 손짓을 하고 뒤따라 들어갔다.

 

10년 동안 경기도 광주군... 끄트머리 시골집에 살 때,  우리집은 산 위 막다른 지점에 있었다. 

차들이 성묘를 위해 산을 올라오거나  길을 잘못 든 때문에 산으로 올라왔다가 차를 돌리려고, 

한동안 울타리가 없던 우리집 마당 안에 들어와 차를 돌려 나가고 어떤 이들은 마당에 있던 수도를 마음대로 틀어놓고,  아무데나 오줌을 누고  담배 꽁초를 던져놓고 가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의 무례한 태도 때문에  화가 치 밀어 오르곤했다. 왜 그리 여유가 없었을까. 

시코쿠 사람들의 한결갈은 친절한 태도를 보면서 마흔 살 전후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빗줄기가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아 다시 길을 나섰다. 작은 언던을 오르는 도중에 공장 축대 아래 비를 

가릴 수 있는 휴식소가 있었다.

신문을 오려서 붙여둔 것은 보니...공장에서 헨로들을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간식이 들어 있다고 쓰여진 통도 열어보았지만 비어 있었다.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 달린 전선이

 하나 연결돼 있었다.


다리는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멈추고 설 때 관성에 출렁이는 자전거 패들이 맨 다리에 자잘한 상처를 

많이 냈다. 비를 피하고 있자니  두 사람 도보순례자들이 들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다 과묵하다. 한 분은 66번 사찰에서부터 시작해 거꾸로 돌고 있는데 22일 째라고 했는데 

다리를 많이 절었다. 또 한 분은 고야산이 있는 와카야마(和歌山)에서 와  6일째 걷고 있다고 했다. 

이 분은 구간을 끊어서 걷고 있다고 했다. 이 분은 복장도 순례자들의 정장이랄 수 있는 상하의를 

모두 갖춰 입었을 뿐만 아니라 인상도 여간 강직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마냥 앉아 있을 수 없어 길을 나섰다. 헨로 스터커를 보고 따라 갔더니 비탈 경사가 심한 공동묘지를 통과하게 돼 있었다. 절은 이 묘지 아래 있었다.



30번 센라쿠지(善楽寺)까지는 6.9km였다. 긴 거리가 아닌데 비를 피하고 머뭇거리다보니 정오가 다 됐다

30번이 되었으므로 납경도 받았다.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비가 그렇게 만들었다. 뭔가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고치시(高知市)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센라쿠지 인근에 대형 할인점이 보이길래 들어가 옷도 말릴 겸 점심을 시켜 먹었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우동덴뿌라정식... 500엔. 소박하다.



길가 작은 전차... 무심코 지나려다 보니...'헌법9조호' 라고 쓰여있는 게 눈길을 끈다.

일본의 우경화... 인접국가들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차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은 이른바 

'평화헌법'을 제정하고 군대의 보유와 교전 권한을 포기한다고 명시한 헌법 9조를 지금껏 지켜왔다.

 


20년 넘게 경기침체를 겪은 일본 국민들의 정서는... 최근 급격하게 국수적, 보수적인 경향을 띠어왔고.

 아베 같은 자들이 정권을 잡은 것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겠지...  일본 아베정권은 ... 

헌법 개정 요건을 완화한 뒤에... 순차적으로 헌법 9조를 바꾸고 군사대국으로 탈바꿈 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내밀고 있다. 아마도 이 전차를 운행하는 노조가 헌법9조를 지키자고 주장하는 

진보적인 성격이라 평화헌법 수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일본을 여행하는 동안 ... 일본사람들로부터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북이 은하수 3호를 발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북한의 위협을 조금 과장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재무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 같았다.

 

"북한(기타조센北朝鮮)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같은 대립 상태를 끝내고 서로 사이좋게 오고가며 

평화롭게 지내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런 대답을 하면...일본 사람들의 표정에는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그들은 내가 뭔가 화끈하고 호전적인 말을 해주기를 기대했었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비는 잦아들지 않았다. 점점 더 거세졌다. 그래도 오후 2시도 되기 전이니 일단은 

좀 더 달리기로 했다. 31번 치쿠린지(竹林寺)까지는 8.4km 길도 시내의 평탄한 길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아 

일단 거기까지 달린 뒤에 잠자리를 고민하기로 했다.  



그런데...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방수 팩에 감아서 매단GPS를 확인하는 일도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지쿠린지(竹林寺) 주변 도로들은 길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아 무시무시한 터널을 두 번이나 

오락가락 한 뒤에... 폭우가 쏟아지는 강변을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산 위로 올라가는 진입로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오후 4시가 지나면서부터는 마음도 초조해졌다. 침착하자. 

스스로에게 다시 다짐을 하고... 헨로미찌 스티커가 있었던 시내쪽으로 다시 돌아가 일단 스티커를 

따라 가기로 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사고가 생겼다.

 

폭우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좁은 골목길을 꺾고 꺽으며... 이게 아닌데...또 자전거가 갈 수 없는 산길로 

안내하는가? 의구심을 가지면서... 골목길을 꺾어드는 순간 자전거가 미끄러지면서 나는 어이없게도 

노변 배수로로 추락했다. 떨어지면서 가슴을 부딪쳤는데, 충격을 받았다. 

잠시 숨이 멎는 것 같은 고통이 오고 가슴을 움직일 때마다 고통이 느껴졌다. 

제기랄... 운행을 못 할 정도로 부상을 입었을까? ...그 잠시 허리를 굽히고 숨을 고른 뒤 몸을 좌우로 틀어보았다. 

움직일 수 있었다. 자전거를 다시 세우고 큰 고장이 없는지 살핀 뒤에... 오던 길을 뒤돌아...

자전거를 끌며 걸어서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운행이고 뭐고 일단 대피가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무작정 빌딩들이 있던 시내 방향으로 달려보았다. 

퍼붓는 비를 뚫고 호텔이 있을 만한 곳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비지니스호텔 도사지(土佐路).  빗속에서 다행히 이 호텔을 발견하고 무조건 방이 있나 물어보았다. 

있다고... 일박에 4천300엔. 저렴하다. 아침도 준다고... 시설은 낡았다.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패니어를 모두 풀어 방으로 옮기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호텔이미지는 인터넷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빗속에서 사진 찍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지난 저녁...야심차게 구워먹으려다 그냥 가방 속에 가지고 온 날 것 그대로의 돼지고기,  

도시락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찬밥들을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했다. 고기는 호텔에서 조리를 하기는 어려우니 

일단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도시락에 챙겨두었다. 


저녁때까지 쉬면서 정신을 차린 뒤... 인근에 있는 할인점에 가서 장을 봐가지고 들어왔다. 

캔맥주500밀리리터(283엔) 즉석카레 (88엔) 우유 (138엔) 모리나가 카라멜(158) 쵸코 쿠키 (99엔) 

이런 것들을 사가지고 들어왔다.  

 

카레를 데워 찬밥에 부어 저녁을 먹고... 온탕에서 한참 동안 몸을 데운 뒤 차가운 맥주를 마시는 것... 

창 밖에 무섭게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다. 

빨래를 해서 방안에 줄을 매고 빨래를 널어 말렸다. 내일 아침... 어떻게 될 것인지... 일단 잠을 자기로...

 


호텔 4300엔 점심 500엔  빵196엔 ... 저녁에 장 본 것들...캔맥주500밀리리터(283엔) 

즉석카레 (88엔) 우유 (138엔) 모리나가 카라멜(158) 쵸코 쿠키 (99엔) 



7일 - 5월 27일  저녁놀 캠핑장~ 츠키미산 어린이숲 (月見山 こどもの森) 

운행 87.6 km

새벽 4시쯤 잠에서 깼다. 꽤 깊은 산속에서 혼자였지만, 편히 잘 잔 편이다. 충전 안 한 걸 깨닫고 스마트폰스위치를 꺼놓았다. 스마트폰에 무척 많이 의존하고 있다. GPS, 사진, 메모... 충전을 안 한 채 하루를 시작하자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테지만... 


취사장에 빨랫줄까지 걸어 놓고 텐트를 펼쳐 놓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일어나 텐트도 걷고 짐을 꾸린 뒤 아침을 지어 먹었다. 가는 곳마다 새벽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다. 빵을 굽고 이디야(EDIYA)에서 사온 분말 커피까지 곁들여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이 토스터는 한국에 돌아와 주로 맥주 안주로 오징어를 구울 때 잘 쓰고 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오늘 저녁에는 어딘가 숙소를 구해 정비를 해야겠다. 무로토 관광도 하고 여유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일단 달리면 또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7시가 되기도 전에, 막  떠나려고 하는 순간...  캠프장 관리인이 미니 밴에 개를 싣고 올라왔다. 밤늦게 도착했고 전화번호가 없어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 캠핑장 사용료를 내겠다고 하니... 의례적으로 살짝 뭐 그냥 가도 좋다는 제스처를 한다. 그래도 캠핑을 했으니 돈을 내겠다고 하니... 그러면 1,000엔이라며 영수증까지 끊어주며...  샤워를 하겠냐고 묻는다. 간밤에 취사장 수도가에서 샤워...했다고 말할 수도 없어 그냥 괜찮다고 ... 화장실 쓰겠냐고... 썼으면 싶다고...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는 관리동 셔터를 올려준다. 


간밤에 아무리 찾아도 옥외에서는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를 찾을 수 없었기에... 충전 가능하냐? 물으니  관리동 사무실 안에 있는 콘센트를 안내해준다.  숙박계도 쓰라고 해서 주소를 한자와 가타가나로 로 써주니 한국사람이 한자를 어떻게 쓸 줄 아냐... 따로 공부했냐?고 묻는다.  한국도 한자를 쓴다. 다만 일본과 읽는 게 조금 다르다. 한국은 겨울이 춥냐? 아무래도 북쪽이니까 일본보다는 추운 것 같다. .. 이 근처에 한국 중고등학교 야구 선수들이 겨울에 훈련하러 온다. 오늘 비가 온다고 한다. 아무래도 일본에는 쓰유(梅雨, 매화필 무렵에 오는 일본의 장마) 가 있으니 준비를 해야 한다. ... 나도 비가 오면 어떻게 할까 고민중이다.



GPS로 쓰는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충전되기를 기다려며 관리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7시 30분, 짐을 챙겨 출발했다.  갈림길에서 캠핑장으로 내려오던 급경사 오르막은 천천히 끌고 올라갔다.

갈림길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정상에 있는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 보았다. 올라가 볼 수만 있다면 무로토곶에서 태평양을 향해 뻗어간 경치가 시원했을 텐데... 무슨 이유인지 폐허가 된 채 방치돼 있었다.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파괴된 문명의 잔재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24번 사찰 호츠미사키지(最御崎寺). 어제 저녁 그냥 스쳐 지나간 호츠미사키지에 들러 참배를 했다.



어제 지나쳐온 천연동굴(미쿠라도우), 코보대사가 19살 때 수행했다는 그 곳과 관련 있는 절이라고 한다. 문화재를 전시한 미술관까지 있는 꽤 규모가 큰 절이다. 무로토미사키(곶)을 돈 기념으로 모처럼 납경을 받을까 싶었지만 납경첩을 절 아래 주차장에 세워둔 자전거에 두고 올라온 탓에 포기.



이 절에도 붙임바위가 있다. 아마도 우리 동네... 부암동 (付岩洞)도 바위에 돌을 붙여서 아이 갖기를 기원한 데서 동네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고 하는데... 아마도  비슷한 염원들이 바위에 저렇게 굵고 선명한 흔적을 남겼으리라...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밤새 전화가 불통이라 걱정했다고... 경기도 광주에서 살다가 서울에 올라와 5년 가량 살던 집을 ... 오늘 팔기로 결심했다고... 일본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며칠 동안 이 문제로 몇 번 통화를 했었다. 부동산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요즈음이었는데... 계속 집을 팔라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아마도 구기동 쪽으로 전철이 연결된다는 소문 때문에 뭔가 들썩이는 분위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올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 내 빠듯한 월급으로 등록금과 학비 대는 일도 버거워져 줄일 수 있는 지출은 최대한 줄이고 있는 중이었다. 집을 처분해 집 살 때 은행서 빌린 돈도 갚고 당분간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전세를 살자는 것이 내 의견이었고... 백사실 계곡 아래 홍제천변 꽤 호젓한 우리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다... 좀처럼 결심을 못하더니 마음을 정했다고... " 좋아, 여보!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은행 빚도 없는 홀가분한 삶을 살아보자고..." 아내가 한 이 말이 계속 생각나 종일 피식 웃었다. 


절 입구 화장실 앞에 있는 벤치에서 헐거워진 킥스텐드 나사를 조이고 9시가 다 돼 다시 출발. 이제 다시 산을 내려간다.



어제 저녁... 암담한 마음으로 올라오던 오르막. 바다를 힐끗힐끗 보면서 오르기는 했지만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아침에 내려가면서 보자니 탁트인 해안선... 시원하다. 동일한 장소가 이렇게 달라보일 수 있구나...

 

내게 지금 절망스러운 일들이 있다면, 마음을 달리하고 뒤돌아 보기도 하자. 이렇게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을지 모르니... 절망스러운 일이 있다면... 그 순간 인생의 한 고빗사위를 넘어서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곧 능선에 올라서게 되면 탁 트인 광경을 조망하게 될 수도 있겠지... 


목조주택들이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무척 조용하고 깨끗한 시가지였는데...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지나친 게 아쉽다.



우리나라에 비해 ... 우체국이 여전히 많다. 국민학교 3,4학년 때 몇 년 우표수집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는 날이면 우체국에 가서 줄을 섰다가 사서 모으곤 했다. 광복30주년이니... 가봉의 봉고대통령 방한 기념이니...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기념 등...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취미와 결별했는데, 중학생이 되었으니 어쩐지 좀 더 어른스러운 취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진해에 살던 고종사촌 형이 서울에 놀러와서는 내 우표책을 부러워하니까 막내형이 선물로 주라고... 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알았어 가져! 하고는 빼곡하게 정리돼 있던 우표책 두 권을 통째로 줘버렸다.  


그 가운데 한 권은 빨간 표지에 갈피마다 유산지가 덮여있는 꽤 고급스러운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때 이 우표책을 갖고 싶어 몸살을 앓았다. 돈암동 로터리에 있던 우표가게에서 600원쯤에 팔던 것으로 기억한다. 라면이 하나에 20원 할  때였이니... 지금 시세로는 3만 원쯤 했을까? 내가 돈을 모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 구두를 닦아두면 기특하다고 10원이나 20원을 주시곤 했다. 손님들이 와서 용돈을 주는 일도 거의 없었고... 아버지께 망설이다가...우표책을 정말 갖고 싶다고 말씀드리니...아버지는... 내게, 한자를 1000자 외우면 사주시겠다고 했다... 10번씩 쓰면 그 글자는 외운 것으로 쳐주겠다고... 




1974년 여름방학 동안 외롭고도 고독하게...한자 쓰기를 했다.  천자문이나 그런 책이 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동네 중학생 형들 한자 교과서를 빌려다가... 옥편을 찾아가면서 쓰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나는 700자 가량을 쓰고 외운 것 같다. 그랬는데도...아버지가 그 우표책을 사다주셨다. 그런 우표책을 고종사촌에게 다 넘기면서... 뭐랄까, 나는 유년시절과 결별하는 어떤 의식을 치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듬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뭐 대단한 한자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고등학교 때 한자투성이 인문교양서들을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26번 절 곤고쵸지[金剛頂寺]나  27번 절 고노미네지(神峯寺)... 모두  높은 곳에 있다 하니 절대 무리하지 말고 ... 급경사에서는 걸어서 올라가야지... 오늘내일은 무리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뜻대로 잘 될지는 모를 일이다. 




25번 신쇼지(津照寺)까지는 지극히 평탄한 해변길을 따라 6.5km 쯤 달리면 된다.  절 앞에서 승용차로 순례를 하는 노 부부가 내게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88개 사찰 순례를 자전거로만 하느냐며... 대단하다고...   일흔 살쯤 돼 보이는 이들 부부는 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절들을 순례하고 있어... 평화롭고 다복해 보였다. 절 앞에 있는 상점(헨로노에키遍路)에서 물 2리터(260엔) 향 한 통(560엔)을 사고 갓 튀긴 고로케 (102엔)가 맛있어 보여서 사 먹었다.



신쇼지(津照寺) 는 바닷가 마을에 있는 절이라 ... 그런지... 풍랑 때문에 침몰 위기에 처한 어부들 앞에 지장보살이 나타나 배를 안전하게 인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26번절 곤고쵸지(金剛頂寺)도 신쇼지(津照寺)에서 불과 3.8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나 1.5 km 가량은 해안도로에서 우측 마을로 꺾어진 뒤 이내 오르막이다. '고생총량의 법칙'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 이제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다. 어차피 오늘 치러야 할 고생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절 아래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올라갔다.


 


이 절에는... 이 부근에 살던 상상 속의  괴물인 덴구 (天狗)가 사람들을 괴롭히자 코보대사가 덴구를 잡아서 타일렀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말라... 이르고 절에 자신의 상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그것을 코보대사로 생각하고 덴구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이 섬과 절들에게서 코보대사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절에서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오는데 조금씩 비가 뿌린다. 아직 채비가 부족한데... 마음이 바빠졌다. 인근 이사노사토라는 미찌노에끼 (道の駅)가 있다고 해 쉬어가려고 들렀더니 월요일은 정기 휴일이다. 바닷가에 야자수가 늘어선 풍경이 사뭇 이국적이다.  다행히 비는 그쳐있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바닷가를 향해 난 벤치에 앉아 마시고 있자니...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다가와 말을 건다. 해안도로에서 달리는 것을 보며 따라온 모양인지... 천진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다가오면서 익살스런 표정으로 자전거 타는 시늉을  해 보인다. 88 개 사찰 순례를 모두 자전거로 하냐고. 와 스고이데스네...  이런 인삿말을 나눈 뒤 ...  앉아서 주변 사진을 찍고 있자니 아주머니가 다시 와서는 천엔짜리 지폐를 준다. 오세타이(接待)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 당황스러웠다.  


오세타이는(接待)는 ... 시코쿠섬에 자리 잡은 고유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순례자들을 코보대사와 함께 걷는 존재, 또는 코보대사의 현신이라고까지 여긴다. 순례자(오헨로御遍路)를 동행이인(同行二人)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에게 시주를 하거나 어떤 경우에는 자기 집에 데려다가 먹이고 재우는 것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몇번 거절했는데도 '꼭 받아주세요.' 하는 말에...사양하기를 그만 두었다. 뜻밖의 호의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남에게 무엇을 받는 일... 도움이든 친절이든 물건이든... 영 불편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어떤 컴플렉스가 있는 게 아닐까 싶도록 ...그렇다. 그런 내게 아내는 우리 집 큰스님 다운 법어를 가끔 한다.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상대를 위하는 길이에요. '



뜻밖의 오세타이를 받은 뒤 ... 조금 더 달리다가 또 다른 휴식소 에서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이 역시 어젯밤에 많이 지어둔 밥을 후리가케와 한국에서 싸온 김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렇게 화장실과 수도만 있다면... 충분히 하룻밤 묶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야밤에 도착해서 건물 옆에 조용히 텐트를 치고 간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일본이 신도(神道)의 나라라는 것을...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자연지형에는 이렇게 어김없이 작은 당집 같은 것이 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마을 어귀나 당산나무에는 당집들이 있었다. 바위나 물가에 깃든 정령들을 경외하는 것... 이건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자연물을 경외하는 것이... 전통적인 신앙일 텐데...박정희 정권 때 우리 고유 신앙은 전근대의 상징으로 지목 돼 대대적인 '청소'를 당하고 말았다. 종교가 근대 문명과 어긋나는 것은 기독교나 불교라고 해서 다를 게 없을 텐데... 종교든, 이데올로기든 ... 헌법은 자유롭게 믿고 가지라고 보장한다고 해놓았지만 관용되는 범위는 늘 한정돼 있다. 국가권력이나... 힘 있는 세력이 용인하는 수준까지만... 말이다. 


비는 잠깐 뿌리고 말 모양인지 구름이 잔뜩 끼긴 했지만 비가내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내처 달리기로...



길가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몇 개 사서 (6백엔) 패니어에 넣고 조금 더 달린 뒤 후도이와(不動岩)미찌노에끼 ()에 있는 편의점 스리에프에서 커피우유 하나를 사서 단팥빵과 함께 먹었다.


 27번 절 고노미네지(神峯寺) 고도가 높대서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뭔가 먹어서 힘을 비축해야 한다는 초조감이 있었다. 



고노미네지(神峯寺)는 고노미네산(神峯山 596m) 정상 가까이에 있었다.  26번절 곤고쵸지(金剛頂寺)로부터 31km ... 해안도로로부터 3.4km 내륙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자전거로 오를 수 있는 데까지 오른 뒤, 또다시 자전거를 세워 놓고... 옆으로 질러 나 있는 도보자 순례길로 절에 올랐다. 시계에 있는 고도계로는 해발 200m 지점이다. 절은 해발 500m 쯤에 있다.



길가에 마무시(マムシ) 주의라는 말이 써있어... 무슨 뜻인지...사전을 찾아보니... 살모사라고... 오르내리는 길에 뱀을 보지는 못했지만...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절마다 절 입구에 있는 인왕문에 ... 이렇게 간절한 마음들이 매달려 있다. 짚신도 있고...천 마리 학도 있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표한 것이겠지 싶은...  I ♡MOM ... 저 주머니를 보자니 콧끝이 시큰해졌다. 


어머니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났지만 나 역시 어머니와 온전히 이별하지 못했다고 여겨질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베풀었던... 그 경지... 모든 상식과 이성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그 경지 ... 



155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만 본당과 대사당이 있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 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산에서 내려오는 약수가 있다. 



고노미네지노미즈(神峯寺水)라는 이 약수는 중병을 앓고 있는 여인의 꿈 속에 코보대사가 나타나 이 물을 마시라고 해... 병을 고쳤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나 역시 이 물을 양껏 마셨다.



오후 3시 반.  고노미네지노미즈(神峯寺) 참배를 마치고 출발. 이제 잠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직선거리 27km 떨어진 곳에 츠키미야마(月見山) 어린이 숲 (月見山こどもの森) 야영장을 보고 부지런히 패들을 밟는다. 조금 초조해질 만한 시간이다.  코도모노모리는 GPS 지도상으로는 바닷가 얕은 언덕 위에 있는 야영장인 것 같다.



오야마 미치노에키를 지나고...   야영장이 있다는 고난시(香南市)10km 앞둔 지점, 아키시(安芸市)에서 조금은 느긋한 마음이 되어...  마트 두 곳을 들러 계란 한 줄(150엔)과 돼지고기 212그램( 207엔) 우유 1리터 물 오징어 한 마리 (98엔) 양상추 반 통 (58엔) 미소라멘 5개 덕용포장 (120엔) 이렇게 장을 봤다. 뭔가 대단한 저녁을 지어 먹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해안으로 뻗은 자전거 길이 기가 막힌다.



때로는 바닷가 송림 속으로... 15km 가량 뻗어 있다고 한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지만... 길이 너무 좋아 가벼운 마음으로 달리고 달렸다. 오르막도 없고... 자동차길과는 완전히 구분된 자전거도로가 여간 고맙지 않았다.



일부러 자전거 전용 터널을 낸 것인지... 아니면 옛길을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고 자동차용 새 길을 뚫은 것인지... 아마도 후자 인 것 같다... 자동차 도로는 산 위로 넓게 뚫려 있었다.



바닷가 솔숲가에 있는 니시번 젠콘야도...는 잠겨 있었다. 만약... 누군가 열어둔 사람이 있었다면... 이곳에서 야영을 하고 싶었지만... 굵은 철사로 문마다 다 묶인 채 굳게 잠겨 있었다. 


아름다운 바닷가 자전거길을 달린 뒤 고난시 야스(夜須)에 도착한 것은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였다. 역은 해안공원 앞에 있었다. 역 앞에는 꽤 규모가 큰 미찌노에키도 있고... 그 너머에는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먹을 것도 충분하고 이제 야영장에 가서 텐트를 치고 편안한 야영을 하면 된다.



야스역을 지나쳐  2km쯤 달린 뒤 우측에 보이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인근에 자위대 훈련장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다. 산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 오르막을 한 동안 올라야 했다. 산 뒤로 돌아들면서 분위기가 침침해지면서 어째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마을이나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산을 오르는 초입에는 공동묘지만 어둠속에...펼쳐져 있었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을라고...




숲길을 힘겹게 올라갔지만 역시 아무도 없다. 캠핑장이라고 표시된 지점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건물들도 폐허는 아니지만 너무 낡았다. 다행히 화장실에는 자동 센서가 있는지 불이 밝혀져 있었다. 화장지도 구비돼 있고 청소도 말끔히 돼 있다. 어디를 가나 화장실이 이렇게 잘 관리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어제 캠핑 한 저녁놀언덕 캠프장과는 사뭇 다른 어떤 음습한 분위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게다가 태풍이라도 불어오려는지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무들이 진저리를 친다. 어두운 숲 속, 바람마저 요란하니 여간 심란하지 않았다. 




쉽게 짐을 풀지 못한 채 일단 관리동 앞에 작은 수도가 있길래... 그 앞에서 바람을 가린 채 버너를 피워 밥을 지었다. 이때까지도 잠을 이곳에서 자야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자전거에서 패니어와 랙팩을 풀지 않고... 버너와 식량들만 꺼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 때문에 그랬다. 



일단 밥을 짓고 물 오징어를 그대로 구어서 남은 밑반찬들과 함께 허겁지겁 먹었다. 계란을 한줄 다 삶아 챙겨 넣고... 여기다 짐을 풀어야 하나...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그때... 어둠 속에서... 4,50미터쯤 떨어진 지점으로부터 전등 불빛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 안내인이 있구나...  반가운 마음에 라이트를 켜 신호를 보냈다. 그런데 저쪽에서 뜻밖의 반응이 왔다. 천천히 다가오던  불빛이 황급히 숲 속으로 숨어 들어간 뒤  사라져버렸다. 이게 뭔가... 이때부터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며칠 동안 자전거 핸들과 브레이크를 쥐고 달린 탓인지... 근육이 곱아져 손가락 끝으로 물건을  잘 집을 수없는 상태가 돼 있었다. 이 때문에 헤드램프 스위치가 눌러지지 않았다. 


상대가 무슨 이유인지... 라이트를 끈 채 뭔가 나를 적대적으로 인식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나는 불빛 아래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여간 초조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라이트는 눌러도 꺼지지도 않고...  그대로 주머니 속에 넣어 일단 불빛을  가렸다. 도저히 여기서 잠을 잘 수는 없겠다 싶었다. 서둘러 짐을 꾸렸다. 대부분 랙팩에 주섬주섬 담고.. 황급히 그 음산한 언덕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바닷가 야스(夜須) 미찌노에키로 도망치듯 달렸다. 이국의 낯선 행인들 뿐이지만 사람들, 불빛 속으로  들어오니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게 전혀 겁이 없는줄 알았는데... 이상스레 음산 분위기가 나를 겁 먹게 만들었다.  

미치노에키에는 불이 환히 밝혀져 있었지만 이미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았다.  해안도로로 거쳐온 마을에 여관이 있으면 가서 자야겠다 싶어 왔던 길을 되짚어 가보았지만... 아무 정보도 없이 야밤에 여관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미치노에키에 오헨로상들이 더러 노숙을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나도 그렇게라도 해보자... 싶어 가보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자동차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그곳에서 선뜻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막막한 심정으로 미치노에키를 좌우로 돌아다니다가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았다. 바닷가에는 길게 나무테크가 깔려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자전거 라이트를 비추고 해변길을 달리다보니 곳곳에 아베크족들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진다. 본의 아니게... 미안하다.  바로 라이트를 끄고... 해변에 있는 화장실에서 멀지 않은 곳,  지붕이 있는 취사장 아래 텐트를 쳤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지붕 아래 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야영이 허용된 곳인지... 그것도 알 길이 없다. 


도대체 그 산속의 불빛은 무엇이었을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심란한 야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차분한 파도소리... 새벽녘에 몇 차례 비가 쏟아졌다. 지붕 아래 텐트를 친 것은 잘 선택한 일이었다.




#6- 5월26일 일요일... 하시모토씨 버스 젠콘야도~무로토(室戸) 석양의언덕야영장(유히가오카 夕陽丘  キャンプ )


운행거리 75.5 km


새벽 3시. 텐트에서 자고 있다가 누군가 버스 밖으로 나와 소변 보는 소리에 깼다. 하지모리 씨의 젠콘야도에는 화장실이 없다. 4시 반이 넘으니 도로에 차들이 다니기 시작한다. 어제 용이가 일러준 대로 자전거를 타고 로손에 가서 화장실을 쓰고 왔다. 어스름 미명 속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이국의 거리를 느릿느릿... 자전거 패들을 밟으며 달렸다.  


다들 아침을 안 먹는다고 해서 혼자 밥을 지어 미역국에 말아 먹고 남은 밥은 도시락을 쌌다. 단 하룻밤, 게다가 나는 마당에서 텐트에... 함께 잤을 뿐인데 다들 가족 같은 일체감이 생겼다. 용이는 7시45분 전철로 도쿠시마로 간 뒤 오사카 간사이 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며 출발했다. 열흘 동안 걸어서 사찰 23개에 들러 참배를 하면서 ... 그는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자저거 순례를 하자면, 간사이공항으로 오는 비행기가 훨씬 더 많을 테니... 그리로 해서 자전거 포장을 풀지 않은 채 도쿠시마까지 전철로 온 뒤... 도쿠시마에서 자전거 조립을 한 뒤 인근 바닷가 야영장을 이용하고 1번 료잔지부터 순례를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젠콘야도에 있는 방명록에 하지모리상에게 고맙다는 글을 남기고 나도 짐을 꾸려 야마시타 상과 함께  출발했다. 다시 로손에 들러 어제 용이가 준 사찰 인근 젠콘야도와 휴식소 목록을 복사해 한 부씩 나누어 가졌다.   

 23번 야쿠오지(藥王寺).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한결 여유있는 표정으로 절을 찾고 있었다.  


야쿠오지(藥王寺) 옆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다. 지난 밤 여유가 있었다면 들렀을 텐데... 


야쿠오지가 도쿠시마현의 마지막 사찰이다. 이제 시코쿠 섬에 있는 네 개의 현 가운데 남쪽에 가장 넓게 자리잡고 있는 고치현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치질지... 


액막이를 해준다는 계단을 올라 탑이 있는 데까지 오르니 바닷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일본에서는 남자 나이 42세, 여자 나이 33세에 액이 끼어 있다고 여겨 액막이를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절도 코우보우 대사가 42세 때 자신과 중생들의 제액을 위해 기도를 한 곳이라고 한다.  


액(厄)이나 삼재(三災)... 이런 말들에 대해 어릴 때는 의식할 이유도 없었지만 살다보니 이게 간단히 무시할 문제가 아니로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지난 3년 동안이 내게는 이른바 삼재 기간이었고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힘겨운 일이 많았다. 삼재 기간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뛰어넘거나 피해갈 수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근신 하거나 힘겨운 일들을 겪을 때... '아, 내가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이다. 


다 지나갈 일... 아닌 게 무엇이 있겠는가.  

  


참배를 마치고 난 뒤, 야마시타 상이 하시모토씨 식당에 가서 인사를 하고 가자고 했다. 하룻밤 재워준 데 대해 인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시모토씨의 식당은 넓은 주차장을 끼고 있는 3층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다. 야마시타 상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하시모토씨는 보이지 않고 부인인 것 같은 여자 분에게 ... 간밤에 편안하게 잠을 잤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 오십대 중반의 저 허름한 사내가 저토록 순진한 표정과 말투로 진심을 다해 감사의 뜻을 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그러면서, 남들의 친절과 배려에 은혜 입은 일이 한둘이 아닐 텐데...  건성으로 지나쳐 오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와 야마시타상은 잠만 잤지만, 미리 도착한 용이와 야마구치군에게는 호화로운 도시락을 저녁으로 주었다고 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순례자들에게 저녁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  보통 일이 아니다. 


순례자들을 재워주고 할 수 있는 한 밥을 먹여 보내는 것은 하시모토씨가 스스로 자임한일일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쓸 돈을 버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수입보다 소비 욕망은 늘 조금씩 더 크고 말이다. 그런데, 그 욕망 때문에 평생 허기진 상태로 분주한 것보다... 기부든 무엇이든... 어느 지점에서 욕망을 딱 절제하고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순간... 우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 게 되는 게 아닐까...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가난하지만 기품 있는... 자기 삶의 주인의 반열에... 오르는 일 말이다.   


절 맞은 편에는  무척 큰 미치노에키(道の駅)가 있어 들러보았으면 했다. 간밤에 용이가 이곳에서는 와이파이가 터진다는 말도 했기에... 인터넷에 접속도 해볼까 싶기도 했다. 야마시타 씨는 자신은 먼저 가고 있겠다고 했다. 와이파이는 담당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이라 비번을 물어볼 수 없어 쓸 수 없었다.



 어제 저녁... 휴식소에서 만났던 오오모토씨가 벌써 야쿠오지에 도착해 있었다.  보통 빠른 게 아니다. 




미찌노에키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족욕탕이 있었다. 이른 아침인데... 아버지를 따라 온 아이가 귀여웠다. 일본에서 사시던 영향 때문인지...


 아버지도 새벽에 목욕탕에 가시는 걸 좋아하셨다. 막내이던 내가 단골로 따라다녔다. 예닐곱 살때부터 캄캄한 새벽에 아버지를 따라 돈암동 신신탕에 가던 일이 생각났다. 온탕에 들어갈 때의 막막함... 들어가서 참고 있으면 또 견딜만 해지던 그런 일들. 조막 손으로 등을 밀어드리면 흡족하게 허허허 웃으시는 소리를 등 너머로 들으면서 더욱 더 기를 쓰던 일... 




지도에서 보듯이 23번 야쿠오지에서 24번 호츠미사키지(最御崎寺)까지는 해안으로 미끈하게 뻗은 55번 국도를  줄곧 달리게 되어 있다. 호쾌한 바다를 보겠구나... 기대도 됐다. 오르내림은 덜하겠지... 


얼마 안 가 야마구치군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호스에서 쏟아지고 있는 쉼터에 앉아 있었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면서 내게도 물을 받아가라고 했다. 잠시 터널 아래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먼저 떠났던 야마시타 상을 만났다. 그는 내게 또 앞서 가라고 했다. 나도 대수롭지 않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지금까지처럼 또 만나고 헤어지고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마지막이었다. 연락처도 나눠갖지 않고 ... 이렇게 영영 헤어지고 말았다.  


여기서 길을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산으로 뻗은 옛길과 바닷가로 새로 난 '미나미아와선라인' 나는 망설임없이 바닷가길을 택했다. 이미 산길에 대한 공포가 마음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한동안 바닷가를 달린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종종 마을을 지나친다. 

일부러 자동차 전용도로를 버리고 마을 안쪽으로 달려본다.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 아마도 오래도록 이런 모습을 간직했으리라. 우리나라의 시골집들보다 단단해 보인다. 7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에도 드문드문 초가집이 있었다. 


시골에 살 때 ...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이 난방비였다. 도시가스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시골에는 꼼짝없이 등유를 때는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절약을 해도 겨울에는 약 2 드럼 매월 4~50만원 가량의 비용이 들었다. 서울로 이사온 뒤로, 밀폐된 아파트가 적응이 안돼 갑갑하기는 했지만 시골에 살 때보다 훨씬 더 따뜻한 겨울을 났는데도 난방비가 10만원 도 안 나왔다. 시골에서 실내온도 15~6도에서 생활하던 습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골의 노인들이 겨우 전기장판 위에서 동사를 면한 채 겨울을 나고 있는 현실을 ...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문제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난방, 그리고 단열인데... 정부나 지자체가 할 일은 이런 게 아닐까...  



지도상으로는 단조로운 해안선이 그어져 있지만 곳곳에 작은 만과 해수욕장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그냥 해수욕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개가 서핑보드를 타고 있었다. 



오후 두 시 시라하마 해수욕장(白浜海水浴場) 옆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남쪽에서부터 족히 70리터는 돼 보이는 대형 배낭을 매고 걸어오던 여행자가 나를 보고는... 지금부터 20km는 물도 자동판매기도 없으니 준비를 해야 한다고...일러주고 지나간다. 자신은 오늘 아침 무로토에서 출발했다고... 

무로토...시코쿠 섬에서 남쪽으로 뾰족하게 뻗은 두 개의  곶 가운데 하나....오늘의 목적지다.     



물도 자동판매기도 없다는 20km...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열심히 밟으면 한 시간 안에 지나갈 수도 있는 거리다.  


정말로 막막한 바닷길만 이어진다. 마을도 없다. 날도 꾸물꾸물하고 바람도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뻗은 해안 도로를 외롭게 달렸다. 가파른 산과 깎아지른 벼랑 위로 아슬아슬하게 나 있는 해안길을 가끔 스포츠카를 탄 아베크족들이 지나쳐갔다. 얼마나 호쾌한 드라이브 코스이겠는가. 다만,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자니...거센 바닷바람을  뚫고 나아가는 일이 고되다. 날씨에 따라 기분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흐리면 덩달아 마음도 가라앉는다. 일요일 오후, 다음날 출근 할 것도 아닌데 마음이 어쩐지 어수선하다. 



해변 절벽 막막한 도로변...  작은  휴식소가(이제 습관이 돼 휴게소가 아니라 나도 이 나라 어법대로 휴식소가 된다.) 있어 잠시 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20분 가량 잔 것 같다.  야마시타 상은 어디쯤 있을까. 바닷길을 무사히 잘 달리고 있는지...   



오후 2시 20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출발...


두어 시간 달린 끝에 작은 마을을  만났다. 무로토시(室戸市) 경계가 멀지 않은 지점. 사키하마(佐喜浜)라는 마을... 편의점도 있다. 물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음료수를 한 통 사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마시며 쉬고 있으려니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할머니가 말을 건다. 



물끄러미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쓸쓸하고... 지쳐 보인다. 여든은 되어 보이시는데 꽤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다. 자신은 교토에 살다가 은퇴하고 이곳에 왔다고...  



마을이 큰 것도 아니고... 온종일 먼 바다...태평양을 눈이 짓무르도록 바라보면서 노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내가 덩달아 외로워졌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희망하건데... 니어링 부부처럼 부부가 함께... 죽는 순간까지 노동을 할 수 있는 건강... 또 이웃에 마음을 나눌 이웃들이 함께 살아 겨울 긴긴밤... 정겹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러자면 술을 절제해야지... 이런 생각들이 스쳐갔다. 



무로토 곶의 최남단에 조금 못 미친 지점에 코우보우 대사가 수행했다는 동굴이 있었다. 뭔지 모르고 지나치다가 관광버스가 있길래 들러보았더니... 천연동굴에 그런 설명이 돼 있었다. 


몇 년 전, 수은 선생이 수행했다는 천성산 적멸굴에 가본 적이 있다. 내원사로 오르다가 왼쪽으로 산 비탈을 몇백 미터 오른 지점에 있느 천연 암굴... 안쪽에 암반수가 솟아 오르던 곳... 우리를 그곳에 안내했던 표영삼 선생께서는... 명상수련을 하던 수은 선생이 산속에 들어가 기도를 한 뒤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학습과 명상이 이성적인 수련의 차원이라면 기도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힘에 대해 온전히 의식을 의탁하는 것일 텐데...  차원을 뛰어넘는 경지는... 어쩌면 이런 일들을 통해 비약하는 것이 아닐지... 


무로토곶(무로토미사키 室戸崎) 최남단에는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라는 비장한 표정을 한 사내의 동상이 남쪽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19세기 에도막부 시대의 지사라고 하는데... 그 시대 일본의 역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통과... 



저녁 여섯 시가 다 돼 무로토시(室戸市)... 삼각뿔의 최남단 지점에 도착했다. 남쪽으로 내려온 때문인지... 양명한 지세 영향인지.., 볕도 따사롭고 기온도 높다.  삼각뿔의 꼭지점을 도는 순간 북사면에서 남사면으로 돌아서며 햇볕을 전면에 받게 되니 그랬다. 아열대 식물들이 가로수로 늘어서 있고 ... 바닷가에는 공원도 잘 갖춰져 있다. 24번 사찰 호츠미사키지(最御崎寺) 발음도 어렵다...  


이미 저녁 6시가 넘었다. 무로토곶에서 1.5km 떨어져 있다는 것만 알고 안심하고 언덕을 잠깐 올라가면 있겠지 하고 방심한 채 달려왔는데... 목표로 삼고 있는 저녁놀언덕 캠프장(유히가오카 夕陽丘  キャンプ )까지는 GPS가 까마득한 오르막 쪽으로 직선거리로만 1.5km가  떨어져 있다고  표시된다.  

 


잠시 망설였다. 시간은 늦었고 장을 보지 않은 채 야영장으로 향해야 한다. 산 위로 올라가면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먹을 것은 쌀과 라면 한 개 그리고 아내가 싸준 황태와 김, 먹다 남은 김치가 조금 남아있다. 충분히 저녁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눈을 질끈 감고 오른다. 호츠미사키지... 절 입구까지 끌다 타다 반복하면서 고도를 높인다. 으스아슬한 고도감이 느껴지는 길이다.


바다 쪽으로 점점 더 극적인 전망이 펼쳐진다. 숨이 차고 땀은 비 오듯 흐른다.


절 입구에는 화장실과 자판기, 벤치가 있다. 세수를 하고 심기일전.다시 페들을 밟는다.


기어를 최저단으로 놓고 또다시 5백m가량 오르니 다시 평탄한 지형이 나온다. 심지어는  다운힐 구간까지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몰라도 일단은 좋다.  다시 업힐 구간... 을 한번 더 통과한뒤  드디어 캠핑장 입구 표지가 나왔다. 

산정까지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좌측으로 내리막 표시. 내려가는 일... 언젠가는 되갚아야 할 빚을 지는 일이다.  두렵기조차 하다.  3~4백m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니 드디어 캠핑장이 나왔다. 일요일 저녁, 이미 7시가 다 됐다. 그 때문인지 아무도 없다. 


붙어있는 안내문에 보니 오토캠핑 1박은 2천엔, 일시이용 1천엔, 텐트사이트는 1천엔 일시 이용은 5백엔이라고 되어 있다. 누가 있어야 비용을 낼 게 아닌가... 


야외 취사장과 바베큐시설. 화장실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깊은 산속에서 혼자 야영 하는 건 상관없지만 ... 어쩔 도리가 없다. 넓은 야외 취사장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밤에 비가 쏟아져도 문제없다. 



빨려줄을 걸고, 간단히 옷도 빨아서 널고... 수돗가에서 샤워도 하고... 적막한 산중에서혼자 바빴다. 오늘도 무척 극적인 하루가 지나갔다. 지도상으로 74km 떨어져 있다가 했는데... 해안길을 줄곧 달려온 탓인지 자전거 속도계에 표시된 이동거리도 큰 차이가 없었다. 75.5 km



거의 탈진한 모습이다. 


우선 텐트 치고 밥 지을 준비 해 놓고 샤워..빨래하고 밥을 짓고 나니 완전히 어두워졌다. 헤드램프를 끼고 밥을 먹었다. 설거지까지 다 마치니 여덟 시. 뒷정리를 마치고 텐트 안에 들어와 핸드폰 메모 앱에 기록을 하려고 했으나...얼마 안 지나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이미 시코쿠의 깊은 산속까지 들어와 버렸다. 


* 음료수 두 통 280엔.  볼펜 두 개 250엔. 홈센타 코난에서 산 자전거 고무줄(랙팩 묶는 용도) 98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