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6 목 마쓰야마유스호텔~이마바리시(今治市) 사쿠라이해변만남의 광장(桜井海浜ふれあい広場)
운행 79.81 km

 

마쓰야마 유스호스텔에 넘치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느낌. '모두는 개인을 위해, 개인은 모두를 위해' ..... 

이  낯 익은 낭만적인 구호... 



화장실에도 지구를 위해 고지함율 100% 의 재생지를 쓰고 있으니 아껴 써 달라는 당부... 일하고 있는 한살림에서 ... 가능한 모든 홍보물을 재생지로 만들려고 노력고 있는 입장에서... 절로 미소가 머금어질 수밖에... 



만화책과 핸드폰 충전기, 무선공유기, 피싸가 있는 1층 로비 ... 


저녁이면 식당에 둘러앉아 '마지꾸' 공연을 하면서 남녀노소 어울려 킬킬 대는 곳... 


아침 7시 1층 식당에서 전날 예약(550엔)해둔 아침을 먹었다. 비지니스 호텔들처럼 부페식으로 차려둔 음식들은 만족스러웠다. 현미밥에 햄과 샐러드와 채소 미소 된장국을 다 먹고... 옆에 있는 빵도 몇 조각 잼을 발라 든든히 먹고, 커피까지... 


온종일 땀을 흘리며 달리다 보면, 내 몸이 자동차와 다를 게 없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탄수화을 소화시켜 녹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태우면서 달리고 달린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과거의 어떤 순간들...   그리고 집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생각들이 절반 정도의 의식을 지배한다면, 온종일 뭘 먹을까, 어디 가서 잘까 이런 생각도 절반... 아니 절반 이상인 것 같았다. 그래... 이렇게 단순해지는구나... 단순해지기 위해 떠나왔구나... 


집을 꾸려 여덟 시가 다 돼 유스호스텔을 나섰다. 하루 동안 후방으로 휴가를 나왔다가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는 병사만큼이나 마음이 비장해졌다.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던  마쓰야마 시내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해두고 싶었다.  



52번 다이산지(太山寺)로 가려면 출근길 시민들과 뒤섞여  해안쪽으로 달려야 했다. 컨테이너 차량들과 부두가 창고와 산업시설들...을 지나친 뒤 다시 북쪽으로... 도고온천 근방에 있는 마쓰야마유스호스텔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시내에서 조금 헤매느라 오전 9시쯤 절에 도착했다. 본당까지는 일주 문에서 500 미터 가량 산을 올라가야 한다. 신음소리를 내며 오르막을  오르는 내게 승용차로 순례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 어디서 왔냐고 묻고는 서울서 왔다니까 깜짝 놀란다. 예의 줄곧 자전거로 순례를 하느냐고... 



1305년 마쓰야마의 성주인 고노(河野)가 기증했다는 다이산지의 본당은 일본 국보라고 한다. 


53번 엔묘지 (円明寺)는 다이산지에서 불과 3Km도 안 되는 지점, 시내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특이한 건 없었는데, 이 절에는 1924년에 순례를 하던 미국사람 스타르가 발견했다는 가장 오래된 동판 오사메후다(納札)가 유물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오사메후다는 순례도중에 알게 되었는데... 순례자들이 자신들의 이름과 주소, 기원하는 바를 적어 본당과 대사당 앞에 있는 함에 넣은 것으로 순례자들끼리는 이것을 명함처럼 주고받기도  했다.   


엔묘지를 참배하고 나니 9시 30분. 당분간 해안선을 따라 이마바리시(今治市)까지 줄곧 달려야 한다. 54번 엔메이지(延命寺)까지의 거리는 36km다. 


엔묘지에서 나와 건널목 사진을 찍으려 돌아섰더니 옆집 할머니가 나와서 엔메이지 가는 쪽은 이쪽이 아니고 저리로 교각을 지나서 곧장 가라고 말을 한다.  주춤하는 나를 지켜봤던 모양이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가는지... 재잘대며 곁을 스쳐갔다. 어린이들은 무조건 노란 모자다... 시인성 높은 모자로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겠지... 귀여운 녀석들...ㅎㅎ 



내를 벗어나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커피우유와 단팥빵 (252엔)을 사서 우유는 마시고 빵은 핸들바백에 넣고 출발... 

이제 시내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지도에서 보듯이 줄곧 해안을 달리게 돼 있다.  시코쿠 지도를 보면 좌우로 조금 길게 뻗어 있고 북쪽 바다를 향해 양 끝에 뿔 두 개가 혼슈 쪽으로 솟아 있는데, 오늘은 왼쪽 뿔을 돌면서 196번 국도(이마바리가도)를 따라 해안을 돌아야 한다. 지도를 보면서 가늠하기로는 이마바리시에 있는 59번 고쿠분지 (国分寺)까지 참배하고 뿔의 오른쪽 사면에 있는 바닷가 사쿠라이 해변공원에서 야영을 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태평양에 면해 있는 남쪽 바다와 달리 이쪽, 세토내해는  파도도 거의 없다. 바다다운 호방한 느낌도 없다. 게다가 바이패스로 자동차 전용도로가 분리된 곳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뒤에서 달려오는 트레일러들을 의식하면서 긴장한 채 달려야 하는 구간이었다. 



보행자나 자전거를 위한 도로가 구분이 돼 있지만 하수관로가 밑에 깔려 있거나 요철이 심해 자전거로 달리기는 상당히 불편한 곳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자동차 도로로 빠르게 달리다가... 엄청난 속도로 추월하는 트레일러들에 한번씩 휘청하고 나면... 급격히 위축돼 다시 자전거 도로로 피해 들어가는 일이 반복 됐다. 


또 이용자가 많지 않은 해안 길이이라 갈대와 풀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곳들도 있었다. 괜찮겠지 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가다가 풀들에 부딪쳐 단차가 있는 도로 아래로 굴러 떨어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더러는 호조(北条)같은 작은 마을들을 관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오전 내 인가가 없는 해안길들을 달려야 했다. 


마쓰야마시와 이마바리시 중간 지점 쯤에 있는 가자하야노사토후와리(風早の郷 風和里)  미찌노에키 . 


해안을 바라보고 있는 널찍한 휴게공간... 한 동안 쉬었다.  


처마 밑에 제비들이 많아서 한참 구경했다.  우리 생전에 서울 인근에도 제비가 돌아오는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휴게소에서  로드 자전거를 타고 들렀다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끔 만나던 도보 순례자들을 해안길에서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줄곧 시속 30km 가량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달리는데도 다소 지치는 길이었다. 구름에 가려 해가 '쨍하게' 비치지 않으면서도 뭉근하게 달아오른 날씨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김동리는 '역마'라는 소설에서 화개장터 인근 섬진강 길을 묘사하면서 아무리 걸어도 '길멀미'가 나지 않는 길이라고 했었다. 쌍계사 쪽으로 지리산에 갈 때마다 그 구절이 떠오르곤 했다. 어쩌면 그리도 적확하게 묘사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어쩐지... 이마바리가도를 달리는 나는 길멀미가 나는 기분이었다. 바다쪽에서는 상쾌한 바람 한 자락 불어오지 않았다. 파도도 치지 않는 숨죽인 바다... 





시외로 드라이브를 나왔다가 해안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해적우동... 시간이 맞았다면 일부러라도 들러보고 싶은 바닷가 우동집... 


12시30분 ... 길가에 있는 라면집 '돈돈라멘'을 보고 무조건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립기도 했다. 



혼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기가 미안해 주방과 마주 보고 앉는 바에 않아 라면을 먹었다. 덕분에 라면을 어떻게 조리하는지 고스란히 지켜보았는데... 비닐 봉투에 든 공장 양산 생면을 뜯어서 거름망에 담은 뒤에 가스렌지 위에 올려둔 커다란 국물 솥에 몇 차례 토렴을 하고 돼지 뼈를 우려냈을 국물을 부은 뒤 양파와 숙주 같은 채소들을 한 줌 올려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라면은 그런대로 맛이 있었다. (500엔) 


 인근에서 계속 엷은 연두색 유니폼 입은 사람들 자주 눈에 띄었는데 근처에 있는 태양석유  직원들이었다. 식당 손님들도 대개 그들이었다. 


점심시간에 회사를 빠져나온 직원들은 라면집에성 만화책을 보면서 라면을 먹고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후다닥 회사로 돌아갔다.  



라면집을 나와 정유탑에서 불을 뿜고 있는 태양석유를  지난 뒤에도 한동안 달렸다. 


이마바리시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호시노우라 해변공원. GPS에 캠핑장으로 표시된 곳이었지만, 공원 관리사무소는 비어있었고...샤워를 할 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텐트를 치더라도 국도변이라 편한 잠을 자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급수대가 있긴 했지만...아무래도 야영을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굳이 잠을 자자면 안 될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인근에 혼슈의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까지 연결하는 니시세토자동차도로(세토우치 시마나미카이도)가 있다고 했다.  세토나이카이의 섬을 9개의 다리로 연결하는 약 60km 달하는 자동차 도로고, 다리들에는 자전거ㆍ보행자 전용도로도 있다고 하지만... 감히 넘어가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나쳐야 했다. 



길 건너편에 에이코프(A Coop) 대형 매장이 보여, 일부러 들러보기로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한살림은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린코프 생협이나, 도쿄를 중심으로 주로 관동지방에서 활동하는 생활클럽 생협과 오랫동안 교류를 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생협의 역사가 20년 쯤 앞서고, 규모도 훨씬 크다. 그 가운데 앞 서 말한 두 생협은 반전평화, 주민자치, 복지 등에서 대단히 진보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생협들은 시민네트워크('네또')라는 준 정당적인 조직까지 결성하고(일본도 생협법에서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시민후보를 지방자치단체 등에 출마시켜 단체장이나 시의원들을 상당 수 의회에 진출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대개 조합원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분들이고, 이들은 받는 월급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200만원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네또'에 내놓고 있으며, 개인의 경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협이 내세우는 식량자급, 반전, 반핵 평화, 주민 복지 등을 위해 시 예산을 감시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2번까지만 출마가 허용되고, 그 뒤에는 후배 활동가에게 출마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우리나라 생협운동은 한살림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일본생협들에 비해 유기농, 친환경물품에 대한 기준은 더 엄격하다. 다만, 일본의 고베 시 같은 곳은 전 주민의 80% 조합원일 정도로 대중적인 기반이 훨씬 넓어, 일반 시장에서도 생협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고 한다. 그린코프나 생활클럽 같은 생협들은 운동성도 강하지만 다른 생협들은 또 그런 경향들이 강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값 싼 중국식재료를 수입해다가 파는 일도 서슴지 않는 생협들도 있다고 ... 





그러나 어쨌든, 반갑기도 해서 생협매장을 둘러보려고 자전거를 세워 놓고 매장으로 걸어가는데...  육십 세쯤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더니...  천엔짜리 지폐를 꺼내 전해준다. 도로에서 달리는 걸 보고 따라온 것 같았다. 여전히 오셋타이를 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몇 번 거절했더니 ' 실례인 줄 알지만 이걸 받아 주세요.  주스라도 마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하다시피 한다. ..또 거절 못했다. 


생협매장은 우리나라의 한살림 매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단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일반 마트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는 저가의 중국산 생활용품까지 파는 백엔숍 (세리아) 마저 있었다. 한쪽에  접골원,  카페인 듯한 마마스키친 등까지... 매장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수제 도시락과 주먹밥(오니기리) 정도가 남 달라보이는 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 였다. 


이곳에서 오니기리 쵸코칩쿠기,  우유, 어느 절엔서가 풀어 놓고 잃어버린 반다나(등산용 스카프), 아이이스 크림 등을 쇼핑했다.(모두 750엔) 




곧 이마바리(今治) 시내로 접어들었다. 


 54번 엔메이지(延命寺).   오후 2시에 도착했다. 시내에 있고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해안을 따라 멀리 달려온 게 감격스러워 오늘의 납경을 이 절에서 받았다. 



 여기도 드넓은 묘지를 끼고 있었다. 



인간이 불안하고 나약하다 보니 종교가 필요하겠지... 불안의 근원에는 사멸에 대한 공포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 아예 죽음 뒤에 펼쳐질 상황들에 대해 나름의 종교적 신념에 기대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은 것이리라... 





나 역시, 우리 세대 많은 이들처럼 20대에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물질이며, 정신의 작용마저도 물질의 반응이라는 설명이... 어떤 면에서는 위안을 주기도 했다. 죽어서 물과 바람과 흙이 된다는 것,  ... 관계했던 사람들의 기억에나 잠깐 남을 뿐 ...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믿음... 


그 믿음이 튼튼할 때는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다. 오로지 이성적 합리와 양심에 따라 걸어가면 되었다. 설령 그것이 고난이나 죽음을 조금 앞당길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로부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세계도 인간도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차츰 깨닫게 됐다. 영혼의 문제나 우주를 관장하는 어떤 힘이나 권위에 대해... 느끼고 깨닫는 순간이 많다. 그리고 생명( 이 역시 우주를 관장하는 어떤 힘과 의지에 닿아 있는 부분이겠지만) 은 '물질의 합법칙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라는 점도... 믿게 되었다. 



세계를 물질로만 보는 관점... 그런 신념이 세계를 망가뜨려온 게 근대의 역사가 아닐까. 이성에 대한 오만한 신념. 문명이나, 산업... 이것이 이제 인간의 생존 자체를 극한까지 위협 하고 있잖은가... 후쿠시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성물질들...  


이마바리시 역시 차분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예의 시내 한 복판에는 언덕 위에 오래된 성이 있었다. 골목을 달리고, 물길을 건너면서 시내를 헤매다 보니 절이 나타났다.   



55번 난코오보오(南光坊). 오후 2시 50분에 도착했다. 88개 사찰 가운데 유일하게 절 사(寺)자가 아니라 동네 방(坊)자가 붙은 절이다. 절 자체 휑 하고 별 게 없는데 산문은 도로변에 거대하게 서 있었다. 이곳에도 예의 바로 옆에 더 큰 규모의 신사가 있었다. 



두어 시간 내로 56번 다이산지(泰山寺)부터  59번 고쿠분지 (国分寺)까지 참배하고 해변 캠프장에 도달할 수 있을지...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적하지만 잘 정비된 시내. 차량 통행에 비해 도로가 과한 게 아닐까 싶은 길을 3km 가량... 다시 내륙쪽으로  달려 

56번 다이산지(泰山寺)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절이었다. 전설에는 인근에 있는 하천이 해마다 범람하자, 코보대사가 주민들을 지도해 제방을 쌓아 치수 했다는 ... 



그 때문인지... 다이산지는  축대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57번 에이후쿠지(栄福寺)는 고속도로(196번도로 바이패스) 너머에 있었다.

하교길의 학생들이 얼마나 티 없어 보이던지... 그렇다고 믿자... 그렇겠지... 비록 내면이 들끓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청소년들 만큼 괴롭지는 않겠지... 


하나같이 삭발한 머리에 흰색 헬멧을 쓰고 예외 없이 자전거다... 교복이겠지만 흰색셔츠와 감색 바지...  



시의 외곽, 논들이 한가롭게 펼쳐져 있는 시골 동네... 



 별 다른 표지도 없이 있어 하마터면 절을 그대로 지나칠 뻔했다. 아니, 들머리를 지나쳐 200미터쯤 지나친 뒤 혹시 지나친 이 가게가  절 앞 기념품 가게 아닐까 싶어 되돌아와 절을 찾았다. 

오후 4시.   에이후쿠지(栄福寺) 참배를 마쳤다. 


모내기 마친 지 얼마 안 지난 어린 모들이 심어진 논들이 펼쳐진 들판 위에 살짝 올라 앉은 어

대절 버스를 타고온 단체 순례자들이 오늘의 마지막 절에 들렀다는 듯... 한가로운 표정으로 본당에서 내려서고들 있었다. 




58번 센유지(仙遊寺)... 그토록 높은 산 위에 있는지 몰랐다. 


완만한 언덕 위로 뻗어 있는 길을 느릿느릿 조금 한가한 마음으로 오르다보니... 



고도가 장난이 아니다. 시내가 온통 내려다 보이는 산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생협매장에서 사 둔 주먹밥을 먹으며 기운을 내지 않았다면... 다리가 후들거려 애를 먹을 뻔 했다. 



예상치 못한 고도. 절은 가히  선유 할 만 한 높이에 있었다.  결국 인왕문 못 미친 지점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걸어서 올라야 했다. 


온천도 있고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잘 되어 있고... 내려다보는 경치도 그만이라... 그냥 하룻밤 여기서 자고 갈까...




 망설이다가 ... 내려가서 자전거 끌고 올라올 일도 암담하고 예정에 없던 숙박도 내키지 않아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규모도 크고 건물들도 물론, 세로 지은 현대식 건물도 있지만 본당은 제법 연륜이 느껴졌다. 



공수도 강습도 한다는 안내도 있고... 규모가 상당한 절이다. 


지친 때문인지... 갑자기 회의감이 밀려왔다. 지금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느닷없는 ...  


혼자 터덜터덜 산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갑자기 급습을 당한 듯,  밀려 든 회의감을 주머니속에 든 조약돌처럼 만지작거리며 걸었다. 



혼자 이렇게 침묵하는 순간을 느끼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지 않을 자유. 얼마나 갈망했던 순간인가. 


게다가 부모님을 깊이 만나고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이 베풀어 주는 과분한 사랑이 당연한 듯 받았고,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나의 내면은 조금 복잡해졌다. 삼국지류나 채근담 같은 책을 자주 읽던그 무렵의 나는, 스스로 갑자기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 대해 '나는 이미 충분히 어른이 되었으니 나 스스로 아버지의 역할을 나 자신에게 해줄 수 있다'는 식의 자기 암시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미 우리가 낳은 딸들이 내가 아버지를 여읜 나이보다 더 자랐다. 나의 아버지보다, 내가 어떤 아버지인가에 더 많은 생각이 머무는 때가 되었다. 과연 나는 딸들에게 어떤 아비일까. 사실은 대학 1학년이 된 큰 딸 아이와는 떠나오던 무렵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사이가 나빴다.  갈등의 원인은 다양했다. 자정까지로 정해 놓은 귀가 시간, 아무리 입시지옥에서 풀려난 1학년이라고 해도 책 한 줄 안 읽는 것 같은 실망스런 학습 태도... 이런 말을 안 해도 얼굴에 쓰여있기 마련이라...딸은 되도록 나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오후 5시가 다 돼 간다. 다시 이마바리 시내로 내려가야 한다.


이곳도 분위기가 조금 독특하다. 시내로 내려오면서 만나게 되는 일본의 조용한 소읍의 풍경.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찌 키우고 있나... 자정이 되어야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나라의 중고등 학생들을 시코쿠에서 떠올리자니... 무슨 괴기스러운 부조리극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산을 내려서자마자  다섯 시 시보가 울려 퍼졌다. 베르너의 '들장미'. ' 한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 중학교 음악시간에 친구들과 미소를 교환하며 합창을 하던 음악시간이 생각났다. 

해 질녘, 귀가를 재촉하듯 울려 퍼지는 시보까지... 마음은 더욱 애수에 젖어 

59번 고쿠분지 (国分寺)까지는 9.3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센유지에서 산 중턱까지 내려와 우측으로 산간 도로를 한동안 달리다가 좌회전해서 해안 쪽으로 한참을 달려 내려가야 했다. 이미 납경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지나 있었다. 동네 수퍼에 저녁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 분주한 시간이었다. 



시 외곽에 있는 고쿠분지.  이미 불 꺼진 향로에 향 세 촉을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하루 동안의 순례는 또 마무리 되었다. 온종일 침묵 하는 가운데에도 마음 속에 무수히 피어나고 사라진 수많은 번민과 회억들...  그리고 오전에 ... 굳이 달리는 자전거를 쫒아 와 생협매장 앞에서 천원짜리를 쥐어주고 가던 그 할머니... 


오후 5시 50분.  잠자리를 찾아가야 할 시간이다. GPS가 가리키는 해변 캠핑장까지는 5.6km. 시내를 벗어나자 도무지  상점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먹을거리도 없이 야영장에 가서 처량한 밤을 보내야 하나? 이 난감한 상황을 어째야 하나 갈등하는 순간에 작은 시골 구멍가게를 발견했다. 


드르륵 소리가 나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인 할아버지가 나오신다.그 새 쌀이 거의 다 떨어졌다.  이곳에도 소포장 쌀은 없었다. 사정해서 쌀 1kg을 샀다.  감자1kg 바나나 한 송이까지(모두 752엔)  쌀을 사고 나니까 마음이 느긋해졌다. 이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시외의 인적 드문 도로를 달렸다. 



차도 사람도 전혀 없는 무섭도록 조용한 시골길을 한 동안 달려 바닷가에 도착했다. '사쿠라이 해변 만남의 광장'이라는데... 개 한 마리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종료나무가 길게 뻗어있고 제법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하지만,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은 곳들이 그렇듯이...뭔가 퇴락하고 서글픈 분위기... 


조금 무섭기까지 한 바닷가였다. 


물을 길을 수 있는 음수대가 있고 화장실이 있을 뿐  쓸쓸하다. 물과 화장실이 있으니 잠은 잘 수 있겠다.  화장실은 낡기는 했어도 깨끗이 청소 돼 있었다. 역시나 이곳도 '깨끗한 공중화장실은 지자체의 자존심' 인 모양이다. 

어디에 텐트를 칠까... 쳐도 되나... 조금 주저됐지만 ...달리 대안도 없었다. 



시멘트로 지어놓은 배 모양의 어린이 놀이기구가 있길래 이 안에 텐트를 쳤다. 바람을 막아주었고,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세 칸 있어 걸터앉아 밥을 먹기도 좋았다.  


내일 가야 하는  60 번 절 요코미네지(横峰寺)는 지도상으로 보면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산 위에 있다. 해발 696미터... 또 북한산 높이에 가까운 산을 올라야 한다. 어떻게 갈 것인지 아직 방침을 정하지 못한 채... 밤을 맞았다. 


모르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조금은 자포자기한 상태로 잠을 청했다. 가끔씩 퉁퉁퉁...고깃배들이  엔진을 울리리면서 잠을 깨웠다.  조금은 서글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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