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ㅡ5/25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공원~ 23 야쿠오지(薬王寺) 인근 하시모토 젠콘야도 


운행거리 : 78km (자전거 속도계 표시 거리. 로프웨이 탑승구간, 도보구간  제외) 

지출:  향(200엔).음료수(130엔),  로프웨이(케이블카, 운임 1300엔)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해안 공원 바닷가 일출 



긴장한 상태로 열두 시 넘어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 4시도 안돼 깼다. 밤새 젊은이들이 강통이라도 차는지 우당탕탕 소란스러운 소음을 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나가서 좀 조용히 해달라고 했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동이 트기 전부터 새들도 시끄럽게 울었다. 우선 바닷가를 잠시 산책했다. 낚시꾼들 서넛이 동트는 바닷가에 무슨 수행자들처럼 서있었다. 



지난 밤 마지못해 야영을 허락하면서 '메츠라레나이데 구다사이(눈에 띄지않게 해주세요)' 라던 순진한 얼굴의 경찰이 당부도 했고,  네시 반부터 먼저 텐트 안에서 짐을 꾸리고 밖으로 나와 텐트를 걷었다. 여섯 시 전에 길을 떠날 생각이었다. 



해수욕장 한 쪽 가, 사용하지 않는 취사장 안에 플라이를 치지 않고 텐트를 치고 잤다. 호수 달린 수돗가까지 따로 있어 새벽에 여기서 샤워도 했다. 



밤새 깡통차는 소음을 내던 친구들은 스무살 먹은 사진 속의 맨 왼쪽 요시가와 등 세 친구였다. 도쿠시마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인 이들 셋은 모처럼 시간을 내 고등학교때  함께 놀러온 적이 있는 이 바닷가에 모여 스케이트보드 연습을 밤새 한 것이다. 몇 마디 나누어보니 순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김연아를 이야기하고, '카라'를 아느냐고 ...했는데, 내가 언뜻 못 알아들었다. '카라'가 댄스그룹 아이돌인지도 한참 설명을 듣고나서야 이해했다. 이들 젊은이들은 카라를 말할 때 눈빛을 반짝이며 '제일 좋아해요.' 했다. 같이 맞장구를 쳐주면 좋았겠는데... 카라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 아쉬웠다. 



언뜻 보기에 껄렁껄렁해 보여서 조금 불안한 마음도 들어 먼저 말을 걸고 옆에서 밥을 지었는데 뜻밖에도 너무 순진하고 착한 젊은이들었다. 선물이라면서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댄스축제때 쓴다는 이지역 특산물 부채도 선물로 주고 사탕 세 알도 건네주었다.  


저녁 밥을 가득 지어놓았기에... 동결건조 육개장에 찬밥을 말고 저녁에 먹다 남은 연어도 마저 구워 먹었다. 맛보다는... 자동차 주유를 하듯 먹어두는 ... 것이다. 후리가케를 뿌려 주먹밥을 말아 도시락을 쌌다. 젊은이들과 수다를 떠느라 시간이 지체됐다. 그러나 기분은 많이 좋아졌다.  오전 7시45분이 돼서야 출발 했다.  




어제 저녁 막막한 기분으로 넘던 언덕을 다시 거슬러 올라왔다. 벌써 두 번째 야영을 해냈다. 또 어떤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막막했다. GPS는 첫번째 목표지점인 18번온잔지(恩山寺) 까지의 직선거리는 불과 7km

 남짓. 바닷가에서 언덕을 넘어온 뒤 고마쓰시마(小松島) 시청을 지나 바닷가로 뻗은 120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가 들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접근하는 길을 잡았다. 논에는 모를 낸 지 얼마 안 됀 벼들이 자라고 있었다. 반가웠다. 우리나라보다 조금 빠른 것 같았다. 



너무 남쪽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되짚어 올라온 뒤 들판을 가로지르는 등 도중에 조금 헤매다 18번 온잔지(恩山寺)시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반.  그리 길지 않지만 마지막은 오르막길이었다.  






온잔지로 오르는 마을 길가에 다락정이라고 씌여있는 젠콘야도(善根宿, 순례자를 위한 무료 또는 저렴한 숙소) 가 있었다. 다른 이들의 순례기에서 보던 젠콘야도를 처음 본 것이다. 저녁에 만났다면 한 번 묵어가고 싶었는데... 





19번다츠에지(立江寺)까지는 4.5km 거리다. 언덕 위 온잔지에서 내려와 마을에서 우회전한 뒤 남쪽으로 달리다 강을 건너 있는 마을 복판에, 평지에 있다. 날이 흐리고 바람도 거세졌다. GPS에서 가리키는 방향과 길가에에서 만나게 되는 헨로미찌 스티커를 보면서 달릴 뿐, 내가 속해 있는 공간구조가 명확하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가운데... 그저 한치 앞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다츠에지(立江寺) 본당 앞에는 동일본 지진 희생자를 위한 모금함이 있었다. 500엔 동전을 하나 넣었다. 예상을 벗어난 그 엄청난 재난을 일본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이제 그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끊이지 않고 분출하고 있는 방사성물질 말이다... 


사실, 시코쿠섬이 후쿠시마가 있는 도호쿠지방이나 그곳에서 그리 멀지않은 도쿄 인근이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츠에지 절 옆오핸로(御遍路)상가는 주말에는 어떤지 몰라도 가게들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다. 여기서부터 길에 있는 수도에서 2리터 패트병에 물을 받아 그냥 마시기 시작했다. 일본 수도물은 현지인도 그냥 식수로 쓰는 것 같았다. 소독약 냄새도 없고 별 불편이 없었다. 








20번가쿠린지(鶴林寺)까지는 15km.  가쿠린지(鶴林寺)도 21번 타이류지1(太龍寺)도 지도상에는 짙은 녹색의 산지에 있다. 어떻게 되겠지... 일단 달렸다. 가쿠린지 아래 가츠우라(勝浦)라는 마을까지는 순조로웠다. 언덕을 넘은 다음부터 강을 끼고 평탄한 길을 한동안 달렸다. 강을 끼고 있는 길은 고도차가 급격하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문제는 마을에서 가쿠린지로 오르는 길이었다. 까마득한 산 위로 길 표시가 나 있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정류장에 앉아 계시길래... 가쿠린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3 키로메타루(3km)' 거두절미... 손으로 산 꼭대기 쪽을 가리켰다. 갈림길에 '도보3km, 차량5km' 핸로미찌 안내판이 붙어있다. 급경사 오르막 5km... 무릎이 꺾이는 기분이었다.    


버틸 수 있는데까지는 패달을 밟으며 올랐다. 숨이 가빠지면서 가슴을 날카로운 연장으로 찔러대듯...통증이 느껴졌다. 그 다음은 머리 위에 샤워기라도 틀어놓은 듯 땀이 쏟아진다. 이렇게 해발 190m지점까지 오르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도보와 차량 도로 사이에는 2km 거리 차가 있다. 뭔가 수가 없을까... 이렇게 본능적으로 '좀 더 편안 길'을 모색한다. 부질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밀림을 방불케하는 울창한 삼나무 숲... 그늘과 습기 때문에 이끼류 식물들이 파랗게 깔려있다. 


어제, 쇼산지를 오를 때처럼... 길가 비탈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등산모드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산이라면 부담이 없다. 소질도 있고 좋아하기도 한다. 산길을 걷는 기분은 일본 산이라고 다를 게 없다. 다만 삼나무(스기) 일색의 숲... 높은 습도 ... 이런 게 조금 서먹할 따름이다. 



가쿠린지(鶴林寺)... 학림사는 거의 해발 600m 지점에 있었다. 관악산 정상에 가까운 높이다. 


거의 정오무렵에 절에 닿았다. 코오보오 대사가 이 절에 왔을 때 ... 학들이 금빛날개로 지장보살을 지키고 있었다는... 전설 때문에 절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다고 했다. 






12시20분 가쿠린지(鶴林寺) 참배를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도중에 자전거를 두고 올라온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절에서 얼마 안 올라온 지점에서 산을 넘어 21번 다이류지(太龍寺)로 가는 길이 뻗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시 내려가 자전거를 끌고 오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다.





자전거가 있는 해발 190미터까지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올라오던 도로가 아니라 도보 순례길을 선택했다. 내심 지름길을 선택했다는 뿌듯한 기분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의 얕은 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도보기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을 아래로 뻗어있고 도중에 도로를 만나는 길은 아예 없었다. 산을 가로질러볼까...하고 폐허가 된 마을을 가로질러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뭔가 잘못 경영하고 있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다. 지치고 허기도 졌다. 꼬박 마을 아래까지 내려간 뒤 ... 다시 해발 190m 지점까지 되걸어 올라야 했다. 거의 탈진한 상태로 자전거가 있는 지점까지 올라가... 인적이 드믄 길가에 퍼질러 않아 주먹밥을 먹었다. 



21번 다이류지(太龍寺)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해발 350m까지 오르자면... 뭐든 먹어서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을 수 없다. '에잇...제길...'  산사에 들러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내려온 사람답지않게... 이렇게 거친 푸념을 늘어놓으며... 밥을 우적우적 먹고 있는데... 산길을 올라오던 다마스같은 소형 트럭이 곁에 와서 선다.

'너 밥먹냐? ' 아무리 인적이 드문 산길이라고 해도... 길가에 앉아 밥을 먹다... 사람들 눈에 띈게 쑥스럽기도 해서 서둘러 도시락을 닫는 시늉을 했다. 


'힘든데 이 차에 타라'  트럭을 타고 온 이는 육십대 중분쯤으로 보이는 분이었다.  '저는 다이류지에 가는 길입니다. 가쿠린지에 갔다가 걸어서 내려왔어요'  '그래? 갈림길까지 태워줄게. 다이류지에는 로프웨이가 있다. 1300엔 내면 자전거도 실어줘. 자전거는 내려갈 때는 좋은데. 올라갈 깨 힘들지. 나도 고치까지 자전거 순례한 적이 있다.'



이분이 서두는 바람에 도시락두껑을 닫고... 짐을 대충 트럭에 실었다. 

'무척 친절하시네요' '오셋타이오세타이(お接待)라고 알아? 그건 기브앤테이크가 아니야.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받은 것을 그냥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거야. 당신도 그렇게하면 되는 거야. 오헨로상들에게 오세타이 할 수 있는 게 오히려 고마워.' ' 이 동네 사세요?' '이 동네 살고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  


시코쿠사람들에게는 천년 이상 이어져온 전통이 있다. 다른 지역 일본사람들에게도 이 점은 특이한 문화일 것이다. 순례자를 코우보우(弘法大師)로 여기면서 시주를 하고 ... 어떤 이들은 자기 집에 데려가 재우기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다른 이들의 순례기에서 읽었다. 자전거 여행자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은데도... 사람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다.  




사기가 떨어져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다시 올라야 하는 일에 낙담하고 있던 차에... 또다른 모습의 코우보우 대사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무리 절망스럽다 한들... 헤쳐가는 것이 불가능한 고난은 아니었다.  다마스 아저씨와 헤어지고 난 뒤... 산등성이에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밥을 마저 먹었다. 힘을 내자... 벌써 스무 번째의 절을 지나오지 않았는가...  출발! 오후 2시였다.


21번 다이류지(太龍寺)로 가기 위해서는 가파른 언덕을 20분 가량...다운힐...해야 한다. 속도계는 거의 45km내외를 유지한다. 짜릿한 쾌감이 느껴질 지경이다. 마을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숲길... 설악산처럼 깊은 숲속이다. 


강이 있는 평지까지 산을 다 내려온 뒤... 도보 순례길은 강을 건너 맞은 편 산길을 오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자전거는 우회도로를 달릴 수밖에 없다. ... 강을 따라... 맞바람을 거슬러 힘겹게 힘겹게... 달렸다.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기 시작하면서 바람도 거세졌다. 기분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어렵게 어렵게 바람을 거슬러  다이류지로 올라갈 수 있는 로프웨이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야말로...로프에 매달린 버스만한 케이블카...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케이블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 케이블카는... 바닥에 깔린 케이블이 끌어올리는 다른 모양의 운송수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순례마지막날 케이블카를 타는 코스도 거치게 된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단체 순례객들과 함께... 로프웨이를 타고 순식간에 고도가 높아진다. 편도 1300엔... 비싸기도 했지만... 반대편으로 자전거를 톼고 내려갈 수 있다고 해서 편도만 끊었다. 



로프웨이를 타고 오르는 이들에게 눈요기거리를 제공하려고... 자세히 보면 산봉우리에... 늑대며 곰... 그리고 바위에 앉아 먼 바다를 내려다보며 수행하는 코우보우 대사상까지...  조각들이 만들어져 있다. 




깊은 산속이 아니면 만나기 어려운 울창한 삼나무... 청정한 기운이 느껴진다. 해발 617m 지점이다. 걸어어 왔다면... 고도가 높아질 때마다 다르게 조망되는 풍경들이 멋지겠구나... 



오후 네 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마음이 또 바빠졌다. 로프웨이와 반대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경사가 너무 급해서... 도중에 몇번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오르막뿐만 아니라 급한 경사로는 내리막도 '끌바'를 할 수밖에 없다. 포장의 흔적은 있지만 곳곳에 패이고 토사가 쌓여있어 비포장에 가까운 ... 자전거에 탄 채 앞으로 곤두박질 할 것만 같은 급경사를... 3,40분 이상 달려내려왔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맹수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싶도록 숲은 짙고 어두웠다. 쓸쓸한 길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지... 좋은 사람... 친한 사람... 그런 건 그 다음의 문제가 아닐까... 그저 사람...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만나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다. 마을에는 논이 있고... 모내기 한 흔적이 있고...


자칫... 오늘도 예정에 없는 민박이나 호텔잠을 잘 수도 있겠구나... 마음이 바빠졌다. 일단은 여섯이가 될 때까지 달리는 수밖에... 언덕을 넘고... 산속으로 난 도로를 달리고... 터널을 넘으며... 일본의 시골길을 함참 달렸다. 그리고 닿은 곳이... 



 22 뵤도지(平等寺)에 도착한시간은 오후 4시 반이었다. 안내도에는 다이류지로부터 13km 거리로 나와 있다. 




여기서도 조금 신기한 일을 겪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지친 탓인지... 울적한 마음으로 절에 들어가다가... 야마시타상을 또 만났다. 네 번째 만난 것이다. 그도 무척 반가워했다.  마치 친동생이라도 챙기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 반가움을 표시했다. 


내게 참배를 마치고 문앞에서 만나자고... 먼저 마치는 사람이 기다리기로 하자고...  했다. 


어디서 잘 생각이냐고... 오늘도 잘 모르겠다고... 당신은 어떠냐고... 그는 예의 '도꼬데모 이이데스요(어디라도 상관없어) ' 이렇게 쿨하게 대답하며 웃었다. 어딘들 어떠랴...나도 금방 낙관적인 기분이 되었다.  

 




우리는 콧노래라도 부르듯이 경쾌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평탄한 시골길을 달렸다. 그는 도중에 편의점 앞서 뭔가를 먹어야 겠다며 멈췄다.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제 다이니치지에서 받은 떡과 과자 등을 도중에 먹은 탓도 있고... 어딘가 잠자리가 정해지면 제대로 저녁을 먹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야마시타상은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사들고 나와 길가에서 먹었다. 그리고 담배도 한 배 피워물었다. 그는 내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무슨 일을 하냐... 왜 88개 사찰일주를 하냐(일본 사람들은 하치주하치 마와리 라고 했다.) 가족은 어떻게 되냐... 사적인 질문들...  


나도 그에게 물었다. 나이는 56세...집은 다카마쓰에 있다고 했다. 아들은 26살 도쿄에 살고 딸은 22살 교토에 산다고... '부인은?' 그는 조금 씁쓸한 웃음을 띄며 양손을 들어 엑스표시를 만들면서 '헤어졌어' 이렇게만 대답했다. 


편의점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앞서 달리던 그는 잠시 기다려달라며 자전거를 멈췄다. 그리고는 길가에 있는 묘지에 들어가 어떤 묘 앞에 가 향을 사르고... 예를 올렸다. ' 할아버지 무덤'이라고 했다.  '여기가 고향이냐..? ' 고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고향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한 때 머둘던 곳일 수도 있겠다. 자식들과 떨어진 채... 아내와도 이별하고... 순례길을 하염없이 되풀이 해 돌고 있는 이 사내... 

역시 쓸쓸하다. 




그가 길을 확실하게 알고 있을 테니...나는 지도 보는 일을 그만두고 그를 따랐다. 그는 내게 텐트에서 둘이서 잘 수 있을 만큼 크냐고 물었다. 잘 수 있다고 대답했다. 



여섯이가 다 돼 가고 있어... 어딘가 잘 곳을 정해야 할 즈음에... 이런 휴식소가 나왔다. 순례길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시설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수롭지 않은 곳인데... 일본인들에게는 꽤 의미가 있는 장소인 것 같다. 


일본 순례자들은 아무데나 노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휴시하는 곳으로 지정된 곳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야마시타상은 여기서 자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물도 없는데?' 주변에 화장실도 물도 안 보여 내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그럼 더 가보자고 했다. 터널 위에 또 다른 휴식소가 있다... 




정말로 터널을 지나 있었다. 고야산(高野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휴식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두 사람이 잘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쿄에서 왔다는 오오모토씨와  나카타씨.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계속 잠 잘 곳을 향해 달려야 했다. 



한시간 반 이상을 더 달렸다. 날도 완전히 어두워졌다. 밤이 오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야마시타상이 함께 하고 있으니 느긋한 마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딘들 텐트를 치고 몇시간 잠 든 뒤 또 길을 떠나면 또 어떠랴...  야마시타 상의 '어디라도 괜찮아(도코데모 이이데스요)' 하는 낙관이 내게도 옮아 있었던 모양이다.  터널도 세 개를 통과하고... 힘겹게 언덕길을 오른 뒤에... '해적바이킹'이라는 간판을 단 식당 앞에서 야마시타씨가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어딘가로 전화통화를 길게 했다.  


알고보니...  다른 이들 순례기에서 읽었던 하시모토씨가 운영하는 폐 버스에 꾸려진 젠콘야도에 가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었다. 일곱시도 훨씬 지나... 이 버스에 도착했다. 



버스에 있는 하시모토씨의 젠콘야도는 23번 야쿠오지(薬王寺)에서 멀지 않은 제법 번화한 마을 초입 도로변 공터에 있었다. 이곳에는 이미 스물 네 살 동갑네기 두 젊은이가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보(아루키)헨로들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키 큰 젊은이는 한국사람이었다. 24살 ...대전에 사는 용이라는 젊은이... 그리고 길에서 만나 길동무가 되어 함께 열흘을 걸었다는 도쿄에 사는 야마구치(山口)


이들은 캄캄한 밤에...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우리들을 신기해하며 반겨주었다. 특히 한국에서 온 젊은 용이는 ... 준비없이 떠나와 열흘을 걸었는데... 다리를 다쳐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노숙을 하거나 폐교의 강당에서도 잠을 잔 이야기... 짧은 밤 시간동안 무척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례를 하는 동안 내게 참고가 될 만한 정보들도 많이 일러주었다. 특히 고마운 것은... 한 장짜리 순례자를 위한 안내지도였다. 한장 안에 시코쿠 전도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절 사이의 거리, 절이 있는 해발고도가 산 모양으로 표시돼 있어... 앞으로 다가올 상황을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돼 있었다. 


한국 라면 먹고 싶다길래 가지고 있던 라면 세 개를 끓이고, 밥도 코펠 가득 새로 지어 넷이서 함께 나눠 먹었다. 모두들 맛있다며 허겁지겁 먹었다. 한국사람을 근 이주일만에 처음만난 용이가 특히 반가워했다. 



열흘 넘게 걸었다는 두 젊은이... 야마구치군은...발에 잡힌 물집을 터트리며 치료를 하고 있었다. 대전에 산다는 용이는 다음날 따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용이는 군대에도 갔다왔고...이제 복학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인상적인 것은...자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한 번도 집에서 돈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레스토랑 웨이터 등 끊임없이 알바를...했다고. 심지어는 군대에서 매월 받은 십만원씩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 제대할 때도 220만원을 모아서 나왔다고... 

그렇게 알뜰하게 한 덕분에.. 학비를 스스로 벌어 학교에 다니면서도 이천만 원을 모았고... 제대하면서 부모님께 독립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씀드려... 아버지가 이천만 원을 보태 줘 사천 만 원짜리 방 두 개에 거실이 딸린 집을 구했다고... '대전은 서울처럼 집값이 안 비싸요...조금만 더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학은 ... 꼭 졸업할 생각도 없어요. 전공을 살려서 취직을 할 생각도 없고요.... 그런데, 얘는 더 지독해요. 취직 안 하고 인생의 목적을 찾겠다고 순례를 하고 있다는데... 아침에 150엔짜리 단팥빵...작은 빵 세개 들어 있는 걸 하나 사서...아침에 하나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 이걸로 하루를 버텨요. 음료는 물이면 족하다고 하고...'  


그의 말을 들으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요즘도 이런 젊은이가 있구나... 그런면서 나의 순례를 조금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더 낭비를 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이 젊은이들처럼 노숙을 이어갈 생각은 없다. 또...나를 보는 일본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고 말이다. 


나는 버스 옆에 텐트를 치고 잤다. 공터에 버려진 폐차처럼 놓여있는 버스였지만 순례자들에게는 참 고마운 공간이었다. 야외이긴해도 수도도 있고...수도꼭지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찬물샤워도 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샤워를 했다. 바람이 제법 거셌다. 가림막도 없었지만 칠흑같은 어둠속이라 별 상관없었다. 아직 추운데... 찬물에 괜찮겠냐고 다들 걱정을 했다... 잠시 찬물을 끼얹더라도 씻고 자는 게 피로 회복에 훨씬 도움이 된다. 




오늘 하루도 근 백킬로미터를 달려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고...또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용이는...'여기 참 이상해요. 매 시간마다 사이엔이나 음악이 나와요.' 

했다. 생각해보니...그랬다. 동네마다 시보가 울렸던 것인데... 나는 달리면서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지나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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