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째 - 5월 24일(금) 요시노가와시 요시노여관~도쿠시마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공원 

11번 후지이데라(藤井寺)~17번 이도지

주행97.56km


사찰들이 납경을 시작하는 시간은 아침 일곱시부터 저녁 다섯시까지다. 문을 닫아놓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이 시간 동안 순례자를 받는다. 여관을 관리하는 청년(?)은 아침 여섯시에 밥을 먹으라고 했다. 여전히 허둥대면서 패니어와 랙팩을 정리하고 여섯시가 조금 넘어 식당에 내려갔다. 다른 순례객들은 이미 짐을 꾸려 여관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일본의 여느 집 아침밥이 이렇겠지 싶은 그런 밥상.
미소 된장국과 베이컨, 계란 프라이, 약간의 채소, 맛없는 일본 김, 열빙어 두 마리 그리고 오차. 입맛이 없었으나 하루 동안 흘릴 땀을 생각하며 남김없이 먹었다. 88개 사찰 가운데 가장 높고 험난한 산길 위에 있다는 12번쇼산지 (焼山寺)까지 자전거를 끌고 갈 일이 걱정이 돼  여관 종업원에게 지도를 펼쳐 놓고 상의를 했다. 혹시 11번 후지이데라에서 가장 단거리로 표시된 산길로 자전거를 가져갈 수 있는지... 터무니없는 소리 말라는 표정이다. 그러면, 자전거를 여기에 두고 걸어서 갔다온 뒤 13번 다이니치로 가는 것은 어떤지... 왕복 12시간은 걸릴 테니 무리다... 그러면 당신이 생각할 때 가장 합리적인 루트는 뭔가요? 
그냥 요시노가와시에서 도쿠시마쪽으로 뻗은 192번 도로를 따라 10km 달리다 우회전해서 산을 넘어가 20번 도로를 따라 쇼산지 뒤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가는 게 제일 낫다는 대답.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 그러나 여기도 오르막이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아... 그렇군요. 

아무리 머리를 써도 정해진 고난을 피해가거나 생략할 수는 없다. 단념 하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래, 가자. 어차피 그러자고 시코쿠에 온 게 아니었나. 



7시, 어제 저녁에 황망하게 들렀던 11번 후지이데라(藤井寺)까지는 그냥 빈 자전거로 올라갔다. 여기까지도 고도가 상당했다. 어제 달린 1번부터 10번까지 절들이 있는 산은 요시노가와 건너 편 산맥처럼 뻗어 있었다. 쇼산지는 반대편 산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본당 왼쪽 옆 산길로 쇼산지 가는 길을 아리는 핸로미치 표지판이 있었다. 

어제 10번 절기리하타지 앞에서 만났던 아저씨를 만났다. 반가웠다. 낡은 자전거를 끌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이 사람도 순례를 하는 오헨로상인 게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아, 어제 만난 사람이구나. 어디서 잤어요." "요 아래 요시노여관에서요. 캠핑장도 무료로 잘 수 있다는 젠콘야도도 못 찾고 시간도 너무 늦어서... 쇼산지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했는데 함께 가도 될까요" " 그래 , 같이 갑시다." 
여관에 내려가 짐을 매달 때까지 근 이십 여분을 그는 길가에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의 이름은 야마시타(山下) 나이는 56세라고 했다. 


 야마시타씨와 함께 7시반 요시노 여관 앞에서 출발해 요시노가와 시내를 10km쯤 달린 뒤 20번도로로 우회전 이때부터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 



야마시타 상이 길을 착각해 오르막 하나를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그래도 동행이 있다는 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그는 내게 오늘은 어디서 잘 생각이냐고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일단은 17번 절까지 간 뒤에 바닷가 야영장까지 가는 게 목표인데...' ' 무리가 아닐까'  '야마시타상은 어디서 잘 생각인가요?' '어디라도 좋아' 중저음의 목소리로 그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이미 걸어서 세 번 순례를 했고 이제 네 번째 순례를 자전거로 하고 있다고 했다. 

오십대 중반에 혼자 순례를 하면서... 어디서 잠을 자도 그만이라는 이 사내... 나는 그리스인조르바가 떠올올리고 혼자 피식 웃었다. 
 
그의 자전거에는 기어가 없었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그는 내게 20번 도로를 따라 가면 쇼산지까지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먼저 가라고 했다.  그와 헤어지는 게 서운해서 그래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자기 때문에 늦어질 수 있다며... 먼저 가라고 ...  


터널 앞에 멈춰 뒷등을 켜고 심호흡을 했다. 갓길 폭도 좁아 긴장이 됐다. 터널을  통과한 뒤에는 작은 산맥 뒷편으로 나란히 뻗은 하천을 따라 산골 마을이 펼쳐져 있다. 터널 두 개 통과한 뒤 하천을 끼고 열시 반 까지 줄곧 달렸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도보순례자들이 점점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쇼산지에서 13번 다이니치지로 향하는 이들일 것이다. 



히로노소학교 (広野小学校) 인근 마을에서 구멍가게에 들어가 선블록 (600엔) 생수2리터(240엔) 쥬스(220엔)을 샀다. 시골로 들어온 게 실감났다. 모든 게 비싸다. 아름다운 풍경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게 해준다. 


깨끗한 계곡과 울창한 숲 지나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는 길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순례길 가운데 가장 고즈넉한 길이 이 구간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들은 예외없이 노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교통안전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특히 이 동네에서는 하교길 초등학생들을 위해 동네 경찰과 학부모 교사들이 나와서 별로 차량 통행도 없는 도로에서 대단한 작전이라도 펼치듯이 ... 하교지도를 하고 있었다. 중고생들은 예외없이 하얀 핼멧을 쓰고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고 ... 한쪽 차선을 막고 도로공사를 하는 곳에서는 꼭 양쪽에 교통 통제를 하는 사람이 두 사람 서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작업자는 굴삭기 기사 한 명인데 교통통제 인원은 두세 사람이나 되는 곳도 있었다. 



뭐든 대충 넘어가는데 익숙한 우리 눈에는 조금 과하다 싶도록 ... 일본 사람들은 매뉴에 원칙을 고수하는 것 같다. 배울 만한 점이다. 그런데,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이나 쓰나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전커넥션과 정직하지 못한 도쿄전력과 무책임한 일본정부의  대응...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칙대로, 안전한 나라를 경영하고 있다는 일본의 이미지를 크게 흔들리게 했다. 


조세고교 가미야마분교(城西高等学校 神山分校) 부근에서 강을 건넌 다음부터 본격적으로 쇼산지가 있는 산을 오르게 된다



이 지점이 쇼산지에 올랐다가 돌아올 때 갈림길인 모양이었다. 


 오르막 길에 어제 사 둔 밀감과 에너지바, 물을 거의 1.5리터쯤 마셨다. 열한 시 경, 결국 쇼산지까지 4km 남은 지점부터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헉헉대며 올라오는 나를 길 두 사람이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본인 준과  스페인사람 카를로스. 



 준은 일본을 오토바이로 일주하는 중에 시코쿠에서는 걸어서 45일 예정으로 88번사찰을 순례하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사람 카를로스는 헨로미찌를 순례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고 했다. 그는 내 자전거에 관심을 보였다. '어느나라 제냐?' '제이미스오로라는 여행용 자전거다. 미국메이커이지만 메이드인 차이나' 'ㅎㅎㅎ 지금은 모든 게 메이드인 차이나다' 


두 사람은 내려오는 길이었다. '두 시간 더 끌고 올라가라' 카를로스가 하는 말을 들으니 다리에 힘에 쪽 빠지는 것 같았다. 경사가 너무 급해 더 이상 끌고 올라가는 것도 무리였다. 오백미터쯤 올라가다가  해발 390m 지점에 길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랐다. 



쇼산지는 해발 790m 지점에 있다. 거의 백운대 높이에 가까운 고도다. 산 아래 마을들에 오가는 사람도 드물었다. 


 

60kg은 족히 나갈 자전거와 짐을 떼어 놓고 걷는 일은 호흡부터가 평화로웠다.  

쇼산지 입구에는 어른 대여섯 사람의 품으로도 벅찰 것 같은 거대한 삼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부모님을 떠올렸다. 여행길에서 내게 말을 거는 할아버지들의 말투와 태도가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비슷했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끝내 재기 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절망적인 가난 속에서 마루에 앉아 붓글씨로 승상사당 하처심 (丞相祠堂何處尋) 금관성외백삼삼(錦官城外柏森森)...   장사영웅루만금(長使英雄淚滿襟) ... 두보의  시를 끝없이 되풀이해서 쓰시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서울에 올라와 정착한 동네가 돈암동이었다. 서울 성 밖이었고, 멀리 인수봉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산 비탈의 허름한 집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내게 아버지는 이 시를 해석해주시며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이며 조자룡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천하제일 청빈(天下第一 淸貧)' 이니 군자는 무소불위(無所不爲)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어머니는 이런 아버지가 야속하셨을 것이다. 당장 끼니가 막연한데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시는 아버지가 말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내게 '어떻게 그 세월을 헤쳐나왔나 꿈만 같다.' 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래도 너희들 교육시키고 남들한테 손가락질 안 받고 살아낸 게 기적같은 일이었다.' 


산길에서도 걷는 길과 차도는 수시로 갈라졌다 합쳐졌다 하면서 산록에 있는 쇼산지까지 이어진다.  


자존심을 지키느라 이익과 상충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면이다. 조카들 가운데에도 몇이 그렇다. 


시코쿠미찌... 사코쿠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 표지판을 앞으로 지겹도록 만나게 된다. 




절에 올라갔다가 자전거를 세워놓은 지점까지  내려오니 오후 1시. 눈물이 날 만큼 고된 길이었다. 터덜터덜 내려오다  적막한 삼나무 숲에 세워둔 제이미스오로라가 고요히 서 있는 광경을 보니...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오랜 벗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갑다.  대물 애착이 생길 지경이다


어쨌든 한 고비를 넘었다. 오후 1시반,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내리막길을 한참 달렸다. 올라갈 때 그토록 아득하던 길이... 허무하게도 짧았다.  


쇼산지에서 13번 다이이치지(大日寺)까지는 27km. 과연 아침에 이길을 달렸단 말인가 싶게 길었다. 두어 번 길이 헷갈려 되짚어 길을 찾아야 했다. 골프장 앞 다리에서 강을 건너 다이이치지를 향해 가는 업힐 강변 구간을 외롭게올랐다.

 

언덕위로 올라선 뒤 다시 평탄한 강변길을 달리다가 야마시타 상을 만났다. 그는 천진한 표정으로 길 안내 표지판을 보고 있었다. 


'너 12번 쇼산지 갔다왔냐?' '야마시타상도?'  '길이 엇갈렸나? 이제다이이치가 바로 근처다. 너 참 빨리 달리는 것 같으니 네가 말한대로 17번 이도지(井戸寺) 까지 간 뒤에 야영할 수 있겠다.' 


 피난길에 헤어진 형제라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동행이 있다는 게 이토록 위안이 될줄이야. 


'아,  잠깐 뒷바퀴가 이상하다.' 야마시타상이 내 자전거를 가리켰다.  뒷바퀴 크랭크에 비닐이 감겨 있었다. 일일이 띁어내느라 시간이 꽤 소요됐다.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또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뒤편 왼쪽 패니어 아래쪽 고리가 랙에서 빠져나와 바퀴와 마찰이 돼  반쯤 갈려 있었다. 어쩐지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자전거가 매끄럽지 않다 했더니...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강변으로 뻗은 21번 도로를 달려...오후 3시경 13번 다이니치지(大日寺)에 도착했다. 



다이니치지(大日寺)는 길가에 면해 있어 자전거를 대고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첫날 언덕 위에 있던 4번 사찰도 다이니치지(大日寺)였다다이니치(大日)라는 말이 ... 야마토(大和)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는 대한(大韓)처럼 국가정체성을 강조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야마시타 상이 납경소에 들어가 뭔가 이야기를 했더니... 납경을 해주던 노인이 나에게 들어와 보라고 했다. 한국사람이었다. 자신의 딸이 이 절의 주지 김묘선씨인데... 지금은 절에 없다고... 자신은 한국에 살며 가끔 절에 와서 납경장에 글도 써주고 있다고 했다. 어렴풋이 전날 9번 절 호린지 앞에서 탁발승이 말해준 한국인 '옥상'(おくさん, 奥さん) 이 이 절 주지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 싶었다. 

 

김묘선 주지스님(?)은... 절 인근에 한국전통무용 강습소를 지어서 운영하는가 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 공연도 자주하는 유명한 고전무용가 이기도 하다고 ...한다.  다이니치지 옆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대규모 숙박시설도 있었다. 얼핏 듣기에 저녁과 아침밥을 포함해 1박에 7500엔 쯤 한다고 했다.  한국사람이 어떻게 88번 사찰 가운데 하나의 주인이 되었는지... 나로서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었다.

 


또, 한국의 절들처럼 비구와 비구니들의 승가공동체가 전국의 사찰을 거의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과는 역시 다른 분위기가 있다는 점... 이것은 1200년 전통을 가진 88번 사찰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80 넘었다는 김선생은 이미 이 절을 거쳐간 한국사람들... 최성현씨나 현직 판사 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한국 사람이 시코쿠 88 순례를 하다니 대단하다며 무료로 납경을 해주고  빵과 떡, 사탕이 들어 있는 간식꾸러미를 건네주며 지칠 때는 단 게 필요할 테니 순례중에 먹으라고 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동포를 만나 반가웠다. 국가니 민족이니 넘어서야 한다는 말을 쉽게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위축된 상태로 낯선 공간을 여행하다가 한국사람을 만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까지 전해들으니 괜시리 콧끝이 찡해질 지경이었다. 

다이니치지를 나오며 야마시타 상은 또 '다시 만나자' 며 앞서 가라고 했다. 순례길이 어차피 한 길이니 또 만날 일이 있겠지... 하며 이번에도 범상하게 헤어졌다. 


14번 절 죠라쿠지(常樂寺)는 다이니치지에서 2.3km 떨어져 있다. 강을 건너 만나는 마을 뒤로 올라가 있는 산 기슭, 조그만 호수 위에 ... 바위를 그대로 조금씩 파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15번 고쿠분지(国分寺)는 골목을 끼고 조금 돌아나오니 있었다. 불과 0.8km. 



단체 참배객 한 할아버지가 '너 어디서 왔냐? 한국에는 88개 절이 없냐? 나는 부산에 가봤다. 날이 더구니까 물을 자주 마시고 자주 쉬고 저녁 다섯시까지만 달린 뒤에 꼭 멈춰서 쉬어야한다. ' 이런 말을 자상하게 일러주었다. 감사하다고 답을 하니 헤어지면서 '간밧데!'  외쳐주었다.


 고쿠분지에서 16번까지는 작은 골목길 사이로 달려야 했다.  이날부터 오후 4시는 심리적인 제한선 같은 게 되었다. 4시부터는 새 절을 찾아가기보다 잠자리를 물색해야 한다... 첫날 요시노여관에서 엉겁결에 자면서 깨달은 점이다. 실은, 서울 바이클리에서 강의를 하던 이영덕 사장님도 이 점을 강조했었다. 달래 경험자들이 그런 조언을 했던 게 아니었다. 



16번 간온지(観音寺) 까지는 1.8km. 이제부터는 시내 주택가를 달려야 한다. 


도쿠시마시내까지 계속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 오전에 달리던 호젓한 산길들을 떠올리면 웅성거리는 시가지와 전차와 밀려다니는 자동차... 밀집해 있는 주택들 모두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저녁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집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웠다. 




사찰 옆에는, 조금 더 큰 규모의 신사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불교신자보다는 신도를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17번  이도지(井戸寺)에 저녁 5시경 도착했다.  


훗날에야 알았지만... 이날의 여정은 무척 무리를 한 것이었다.  가장 난코스라고 여기는 쇼산지를 올라갔다 내려온 뒤... 다시 도쿠시마 시내까지 ... 아직까지 잠자리도 정하지 못한 상태로 저녁이 다 됐다. 

 



마지막 순례자들이 빠져나가자 절 마당에는 긴 그림자와 적막감만 남았다. 



목표로 삼은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공원 해변 캠프장까지, GPS에서 가리키는 직선거리는 9km미터. 어두워지기 전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힘을 냈다.



한 시간쯤 달려 도쿠시마 시내 마트에서 연어 세 토막 (180엔) 우유 500 미리 두 개 작은 팩 1개 김치 한통 (260엔) 사서 우유 한 팩은 그 자리에서 다 마셨다. 엄청 먹어 대지만 소모량 너무 많아 먹어도 계속 허기가 졌다. 


저녁 6시가 전후로 퇴근길 자전거 물결이 거리를 메웠다. 다들 바쁘게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틀 전에 묵었던 곳도 도쿠시마시였다. 엉겁결에 와서 자고 간 도시. 도쿠시마시는 도쿠시마현의 중심도시이고... 시코쿠에서 가장 큰 도시인 것 같은데... 여전히 내게는 잠 잘 자리가 모호하다




gps가 가리키는 캠핑장을 찾아 가려고 보니...가는 곳마다 물길이 막아섰다.  


아, 저 다리를 넘어가면 최단거리로 캠핑장에 도달할 수 있겠구나... 하고 다리에 다가갔으나... 자전거 통행제한... 자동차 전용다리였다. 또 다시 5km 가량을 시내쪽으로 되돌아와  최대한 보수적인 선택을 하면  도로를 따라 바닷가에 있다는 히노미네오미코(日峰大神子)공원 캠핑장에 접근해보려고 노력했다. 


아래 보이는 언덕 너머 바닷가 끝 지점쯤에 캠핑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물길이 막아섰다. 속이 탔다.

 

마지막에는 언덕을 따라 마을길을 계속 돌면서 바닷가에 인접한 접근로를 겨우 찾았다. 저녁 7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마지막 고비는 500미터쯤 되는 언덕을 하나 넘는 것이었다.  조깅을 하는 젊은이가 있길래 ...언덕 너머에 캠핑장이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 달려내려갔다. 이제는 캠핑장이 없대도 아무데나 공중 화장실 근처에라도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안 공원에는 해수욕장 앞에 넓은 솔숲이 있고... 유스호스텔과 테니스코트가 있었다. 퇴근을 하고 테니스를 즐기는 동호인들의 경쾌한 웃음소리... 공을 네트너머 넘기면서 '사요나라!, 아리갓또!' 하면서 유쾌하게 웃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쩐지 쓸쓸했다.

 

해수욕장 솔숲은 깨끗하게 관리된 조리대와 화염소(火焰所)라고 적힌 바베큐장이 함께 있었다. 나중에 여행하면서 들러본 거의 모든 캠핑장에는 이렇게 바베큐장이 마련돼 있었다. 아예 캠핑이라는 말 자체가 야외에서 하는 '숙박'의 의미보다는 바베큐를 해먹을 수 있는 장소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텐트를 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여가 서너 명씩... 몰려와 고기를 구워먹는 이들은 두어 팀이 보였다. 일단 텐트는 꺼내지 않은 상태에서 ... 수도가 있는 조리대에서 밥을 짓고, 연어를 굽고, 즉석 육개장을 끓여 저녁을 지어먹었다. 옆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이곳에서 캠핑이 가능하냐?' 고 물었더니 '아마 안 될 것!' 이라는 비관적인 대답... 게다가 경찰이 자주 순찰을 하기 때문에 ... 시내에 가서 호텔에서 자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언...까지...  



밥을 지어먹고 나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순찰차가 왔다. 어쩌면 좀 전에 조언을 해준 그 친구가... 수상한 외국인이 야영을 하려고 한다고 이른 게 아닐까 의심이 갔다. 꽤 넓은 솔밭에서...  순진한 인상의 경찰이 나를 향해 정확히 걸어와...'오늘 어디서 잘 거냐?'고 물었다. ' 88번 사찰 일주 하고 있는데, 여기에 캠핑장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 '미안하지만 여기는 숙박을 할 수 없다. 밥을 지어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래? 나는 구글에서 캠핑이 가능하다고 해 찾아왔는데, 지금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침 6시 이전에 떠날 테니 여기서 잠시 자고 가면 안 되겠냐?' '나는 상관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곤란하다.' 내가 계속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그는 할 수 없다는 듯...'남들 눈에 띄이지 않게 주의해주세요.' 이렇게 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경찰관으로부터 야영 허가를 받은 것이다.

 

밤 9시...완전히 날이 어두워지고 인적도 뜸해질 때까지는 텐트를 펼치지 않았다. 오히려 느긋한 마음으로 설거지도 하고,  커피도 타 마시고... 해변가 산책도 했다. 아베크족들... 가족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 폭죽을 터트리고... 한강변의 공원처럼...  아름다운 해수욕장에 다들 불안한 마음도 없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밤 10시가 다 돼서야... 해수욕장 한쪽 끝 인적이 드문 취사장에 텐트를 펼쳤다. 일단 누워서 스트레칭을 하고 쉰 뒤... 11시 넘어서 수둣가에서 코펠로 물을 떠 샤워를 했다. GPS 포인트가 가리키는 캠핑장이... 모두 다 야영이 가능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이날의 경험으로 알 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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