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유스호스텔-  구마코겐 미미도(御三戸)캠프장 

주행거리 69.71km 


고향집에서 자기라도 한 듯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창밖에 그림 같은 강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산책을 하는 주민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두세 량 짜리 작은 전차가 철교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대리석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준비돼 있는 인스턴트 커피와 녹차 ..


여섯시에 일어나 저녁에 사 둔 도시락을 먹고 빵을 구워 잼을 발라 도시락을 쌌다.



아랫 층 레이코상 부부가 깰까 싶어 발 소리 죽여 걸어다녀도 마룻바닥은 계속 삐그덕 거렸다. 


짐을 꾸려서 마당으로 나와  지하 빨래 건조장에 널어 둔 텐트를 걷었다. 잘 말라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짐을 다 꾸리고 난 뒤에도 인기척이 없어...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아까마츠 레이코 상이 마당으로 나왔다. 



방문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며 내 사진을 찍고...나도 기념으로 당신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까... 화장을 안 한 상태이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찍어 달라고...  식수를 받아야 겠다고 하니까...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받아도 된다고... 일본 수도물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굳건했다. 실제로 소독약 냄새도 없고 생수와 무슨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수도물을 받아서 마시고 다녔지만 전혀 트러블이 없었다. 


7시 반 출발.  잊을 수 없는 오즈시여 안녕 .



단정한 마을과 거리...그리고 사람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언제 다시 찾아와 볼 수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올 일이 또 있을까. 




여기도 외곽에는 여지없이 대형 쇼핑센터들... 잠시 꿈을 꾸고 현실세계로 소환 당한 느낌이랄까... 소박한 자급도시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현실로...   


로손에서 카페오레(110엔)를 마시고  56번 국도로로 17km쯤 달린 뒤...  내륙 쪽으로 뻗은 379번 도로 갈림길에 있는.. 우치코(内子) 미치노에키에서 잠시 쉬었다. 이제 가늠할 수 없는 산길이 또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미찌노에키 (道の駅)는 주요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들인데, 나그네들에게는 반가운 장소다. 노숙을 하며 순례를 하는 도보, 자전거 순례자들도 주로 이곳에 잠자리를  정한다. 화장실이 개방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실 물과 화장실, 그리고 피를 피할 지붕만 있다면 사실 극단적인 곤란은 피할 수 있겠으니... 말이다.


지차제에서 운영하는 것인지...  대개는 지역 농산물 판매장이 중심에 있다. 특이하게도 마늘이 있어 두 통(160엔), 그리고 홋카이도 산이라는 우유 (90엔)를 샀다. 일본사람들이 '닌니쿠'라고 부르는 마늘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마늘이야말로... 한국음식은 마늘이 들어간 음식... 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생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다. 무엇인가 억눌린 것이 있던 일본에서 해방된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실감하셔야 했던 것인지 아버지는 날 마늘을 좋아하셨다.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군대에 갈 무렵부터는 나도 그렇게 됐다.  대량급식 찐 밥에 물려 입맛을 잃을 때는 취사병 후배들에게 마늘 한두 쪽을 얻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좋았다. 


첫날 다이소에서 산 붓을 꺼내 자전거를 털고...  산을 향해 뻗은 379번 도로로...  




당분간은 개울을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날도 맑고 평화롭다. 



개울에는 잉어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투망질을 하는 아저씨는 뭐 하나 급할 게 없어 보인다.  



적막감마저 느껴지는 길을 달린다.  차르르... 체인 돌아가는 소리마저 선명하다. 


11시 시골마을 길가에 있는 휴식소에서 간식을 먹고 있자니. 도로 순례자  하야시 미츠오 씨가 도착한다. 도쿄 옆에 있는 요코하마에 산다고... 자기 딸이 서울대학교에 유학해 박사 학위를 했다고... 간밤에 어디서 잤냐고 하길래... 오즈시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하니까... 교도칸 유스호스텔...자신도 안다고...   자신은 줄곧 노숙을 하면서  순례중이라고... 전에 자전거로 순례한 적도 있다고 했다. 




마쓰야마(松山)시에도 유스호스텔이 있으니 만나게 되면 이용해보라고... 


379번 도로에서 다시 42번 도로로 우회전하는 지점에 작은 휴식소가 있다. 순례자들이 많이 쉬었다 가는 곳인지... 그런데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아침에 싸 가지고 온 도시락 먹고 12:40 출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해발 600미터 고개를 공사장 트럭들을 피해 꾹 참고 고개를 올라야 했다.  


해발 570m 시모사카바 (下坂場峠)고개 그야말로... 산판길에 나무를 실어 내리자고 뚫어 놓은 고개인 것 같았다. 고갯길 공사를 하는지 육중한 덤프 트럭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르내리는 것 말고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없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44번 다이호지(大寶寺)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 GPS에 나타나는 지도상으로는 조금 미심쩍다... 고개를 내려간들 바로 절이 있는 게 아니라 다시 뭔가 산이 가로 놓여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어쨌든 다운힐...  


외진 시골에서는  빈집들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만나는 게 이제 낯설지도 않다. 작은 마을에서 지도는 또 다시 산 하나를 넘어가도록 가리키고 있다. 마침 도보 순례자가 앞서 가고 있어 ... 물어보니 자전거가 가기 어렵겠다고 했다. 

가이드북에는 도로 표시가 돼 있다. 비포장이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우편배달부에게 물어보니 조금 멀고 도로가 험하기는 하지만 다이호지까지 갈 수는 있다고...  용기를 얻어 다시 오르기 시작... 


길이 험해 패달을 밟아봐야 헛돌기만 했다. 끌고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토기타고개 해발 770m ... 좀 전에 오른 시모사카바 고개보다도 더 높았다.  이젠 정말 고개를 내려가기만 하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 내리막길에서 안내 책자를 꺼내보기 귀찮아... 내처 타고 달리다가 길을 잘못들고 말았다. 



저류조로 만들어 놓은 호수로 보이는... 이곳에서 길은 끊겨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고개 정상 부분까지... 올라 왼쪽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을 찾았다. 



하루도 곱게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TT 



드디어 쿠마코겐(久万高原町) 마을에 도착했다. 넘어 온 산을 돌아보니 까마득하게 높았다.  44번 다이호지(大寶寺)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편의점도 없는  산속 마을. 놀라운 것은 토키타 고개 입구에서 만났던 도보 순례자가 이미 절에 도착해 있었다. 비포장 산길을 넘는 데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짐일 뿐이라는 것을...실감했다. 


 44번 다이호지(大寶寺)는 701년... 백제에서 온 스님이 12면 관음보살상을 산중에 묻어둔 것이 발견돼 그것을 모시고 세운 절이라고 한다. 역사에는 백제가 533년 성왕 때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돼 있다.



백제에서 건너 간 불교는 코보대사로부터 비롯된 밀교와는 다른 불교였을 것이다. 코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간 것은 804년... 이 다이호지에 관음보살상을 전해주었다는 백제 스님의 전설보다 백년 쯤 뒤의 일이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GPS에 표시된 캠핑장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캠핑장인가요?" "캠핑장은 아닌데요..." 이게 무슨 소린가... 급 당황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반, 못 알아듣는 말 반... 힘겨운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캠프장은 아니지만 캠프는 할 수 있다. 여기 텐트는 없다. 캠핑을 하기에는 너무 춥다. 내게 텐트와 슬리핑백이 있으니 문제 없어요.  잠시 기다려봐라. 지금 있는 데가 어디냐. 다이호지 앞입니다.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라... 


이 산골마을에 무슨 숙박업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로서는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허락을 받다. 일박에 얼마인가요?  무료다. 아.. 그래요? 

그런데  먹을 게 없었다. 캠핑장까지는 직선거리 8.5 km. 이미 다섯 시 시보가 울렸다. 절에서 내려와 좌회전을 한 뒤 다시33번 도로로 좌회전해 강변을 따라 7km쯤 달렸다. 다행히 고개 같은 것은 없었다.  지도에 표시된 미가와 미치노에키도 이미 문을 닫았다. 다시 한 번 좌회전해서 212번 도로로 꺾어진 뒤 캠핑장 바로 위에 도달했다. 바로 위라고 표현한 것은 도라 아래 강변에 캠핑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있어 들러보았다. 먹을 수 있는 건 다 사보기로 했다. 정어리 통조림과 꼬막 같은 조개 통조림. 계란 한 줄 (열 개). 작은 참기름 한 병(작은 건 이 것밖에 없었다) 식빵 하나. 아사히 맥주 작은캔하나,  닭고기 200g (전부 1500엔) 

 

별 기대 안 하고 강변으로 내려섰는데... 뜻밖에 범상치 않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마코겐 久万高原町 미미도(御三戸)캠프장, 캠핑장이라기보다... 강변 유원지 정도라고 해야 맞겠다. 전화로 캠핑을 허락해준 곳은  캠핑장 바로 위에 있는 동사무소였다. 





저녁 5시 50분... 일단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무사히 잠자리에 도달했다고...  인적 드문 산을 두 개나 넘어와 조금 외로웠던 모양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팩을 박을 수 없어 돌들을 주워다 플라이를 당겨 놓고... 



밥을 짓고... 마늘을 볶다가 닭도 함께 볶은 뒤.양파 고추장을 넣고 끓이다. 라면 사리를 넣어서 잡탕 전골을 끓였다.



 맥주도 곁들여서...  한 끼를 해결하고 나니 추위가 몰려왔다.


캠핑장 위쪽에 허름한 화장실이 있었다. 수도도 있어 식수는 거기서 받았다.  

강변에 어둠이 밀려왔다. 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히 흘러갔다. 

이를 닦고  강변에 내려가 수건을 적셔 몸을 대충 닦았다. 

'저문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려고 했는데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그럴 수 없었다.  밤 10시 경 잠들었다. 


지출 카페오레 110엔, 미치노에키 250엔(우유 마늘 양파) 가게 15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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