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이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도, 때로는 엄청난 희생을 바쳐서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기어이 현실화해온 처절한 과정 그것이라 할 수 있다."  ?


복잡한 심경을 접어버리자... 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덕분에 일주일 내내 강만길 교수와 대화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었다. 출근길 오가는 짧은 시간 전철 안이나 잠자리에 들기 전 틈틈이 읽다보니 600페이지가 넘기는 하지만, 근 일주일이나 걸렸다.

아이폰 덕분에 밑줄 그을 부분이 나오면 그대로 메모할 수 있었다. 점점 손글씨 쓸 일이 줄어든다.

[역사가의 시간]은 강만길 교수의 자서전이다.  우리세대는 강만길 교수가 강의한 고대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그가 쓰고 창비에서 펴낸 근대사와 현대사를 통해 중고등학교때 대충 지나친 역사 공부를 다시 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가 1980년대에 무슨 대단한 운동가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그는 학자로서 자기 양심을 거스르지 않았을 따름인데... 그 이유만으로 대학에서 해직되고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에 끌려가거나 남산의 안기부에 끌려가야 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데에는 궂이 양심을 드러낼 일은 없다. 고단한 시기에,  남에게 자기 생각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요구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자기원칙을 지키는 일.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양심은 개인에게 때로 위험과 희생을 요구한다.  

친일파들에게도 '민족에 해악을 끼쳐야겠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자기 삶에 달콤한 겄을 따라가다보니, 자기 이익만을 좇아 처신하다보니 결국 이웃을 사지로 몰아넣고 민족의 고통을 가중시키게 되었겠지...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친일'과 '반민족'은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친일반민족문제진상규명위원회'의 일부 보수적인 위원들의 '실용'적인 관점에 대해 그는 뚜렷하게 비판적인 견해를 밝힌다.

이른바 '생계형 친일'에 대해서는 이해하자는 입장이면서도 젊은이들을 학병이나 정신대로 내몬 적극적인 친일파들이 고스란히 남한 사회의 기득권세력으로 유전된 과정에 대해 그는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이북에 대해 객관적인 이해, 따뜻한 관심과 연대의식이 느껴진다. 아마도 북에서는 친일파들에 대해 합당한 청산절차를 거친 점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또한, 50년이 지난 뒤에도 나치에 부역한 비시정권 참여자들을 찾아내 종신형을 선고한 프랑스와 우리 현실을 비교하기도 한다. 

일제에 부역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던 강도들이 호위호식하는 남한의 역사에서 '약삭빠른 처세'말고 후손들이 배울 교훈이 무엇이겠는가

또한, 책의 후반에는 확고하게 '평화통일'노선에 대해 강조하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평화통일에 대한 신념은 오히려 통일자문회의의 학자들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념이 더 앞섰다는 서술도 해놓았다. 그처럼, 가치추구형, 학자적 양심을 가친 정치지도자를 우리 역사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래는 책을 읽다 밑줄 그은 몇 군데 구절들이다.
------------------

- 한반도는 전쟁방법으로는 통일될 수 없는 곳임을 그 전쟁을 통해 배우고, 평화통일을 지향해가는 것이 민족사적.세계사적 흐름에 부응하는 길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봐야한다.

- 속없는 사람들이 "남자는 군대에 가봐야된다" 같은 말을 하지만 전혀 그렇지않다고 생각한다. 국방의무는 신성하다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간사회가 미개해서 전쟁이 문제해결의 최고수단이던 시대나 약육강식의 제국주의가 활개치던 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나는 서목사(서남동 )에게 중세 카톨릭의 처지에서 보면 개신교는 종교로 생각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앞으로 세상이 더 발전하게 되면 지금의 기독교에서 섬기고 있는 신이 신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런 때에도 기독교가 존속될 수 있겠는가,하는 대단히'무례한'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서남동목사가 "강교수는 역사학 전공잔데 역사를 움직이는 법칙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느냐"하고 반문하기에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이 존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지금의 신이 신으로 여겨지지 않을 때쯤리면 역사를 움직이는 접칙같은 그것이 곧 그때의 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이다.

- 사람이란 현실에서 안전하게 살지만 역사위에서는 불안전하고 부당한 삶을 살 수도 있고, 반대로 현실에서는 불안전하고 손해보는 삶이지만 역사위에서는 안전하고 당당한 삶을 살 수도 있다.

- 신분제의 울타리 안에서나마 '우리'를 위해 살던 중세적 공동체는 근대로 오면서 모두 해체되었다. 비록 다수 인민의 자유를 제약하던 신분제 울타리는 해체되었다해도, 모든 인간이 굶어죽을 자유까지 보장된 철저한 개체가 되어 홀몸으로 광야를 헤매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고 할 것이다.

-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을 통해 두번이나 통일고문을 맡았지만 상대적으로 통일고문회의 활동이 활발했던 것은 김대중정부 때였다고 기억된다. ... 통일고문들이 자문하기보다 오히려 반평화통일적 생각을 가진 통일고문들이 김대중대통령의 평화통일 강의를 듣는 자리가 되었다 해도 크게 틀리다 않았다.

- "역사는 인간이란 이성적 동물이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도, 때로는 엄청난 희생을 바쳐서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기어이 현실화해온 처절한 과정 그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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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주고 받는 말만 들으면 내일이나 모레 바로 전쟁이 터질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과연 진정으로 저들은 전쟁을 원하는가? 왜 원하는가? 누구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인가.

남북간에 전면전이 진행되면 승패와 무관하게 5백만 명이 죽는다고도 하고 3백만 명이 죽는다고 한다.
터질듯이 조밀하게 밀집된 남북의 군사력,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삼는 미국의 군사력을 감안하면
정말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겠다. 오래 끌다 누군가가 승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우리들 평범한 사람들의 가족들이 죽거나 다치고 직장이 문을 닫고
도로와 철도가 끊기고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굶주림이 만연할 그 상황에서 누가 이긴들 그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그런데도 조중동과 일부 호전세력들이 정부와 함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절대로 안된다. 어떤 명분,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안된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청와대에 앉은 저들에게만 있느 게 아니고, 나에게, 내 이웃들에게 우리 새끼들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줄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 우리는 막아야 한다.
무슨 수를 쓰든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에게 항의하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전쟁을 반대한다. 이념 따위는 어때도 상관없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에 더 잘살게 될 것이라는
식의 사탕발림, 악마의 유혹도 다 필요없다. 지금 이대로 이렇게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식구들과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이 일상을, 이 소박하고도 삶의 모든 것인 이 평화를
누구의 어떤 협박과 꾀임에도 양보할 수 없다.

전쟁을 반대한다.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에 반대한다. 전쟁을 선동하는 자들에게 저항한다.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음 주 6월2일 선거때
전쟁을 선호하는 세력들에게 반대하기 위해 투표 할 것이다.  

친구들과 선후배, 이웃들에게도 함께 그렇게 하자고 호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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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민들레는 어디서나 피어난다.

홀씨로 날리다 뿌리 닿은 곳이

하필이면 옹색한 돌틈이라고

푸념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피어날 뿐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길게 꽃대를 올린 채 노랗게 피어 흔들리면서

씨앗을 준비할 뿐이다.

악착같이 뿌리를 뻗어 축대를 움켜쥔 채

낮과 밤 모든 흔들림과 호흡을

하나의 점으로 모아 자기를 복제하고 진화시켜

씨앗을 날려 보내려 한숨을 몰아쉬고 있다.

 

지난 일요일 장모님 모시고 길상사에 갔다.
모진 겨울 끝에 잠시 화사한 봄날이 왔다. 동네 자하수퍼 앞 벚꽃이 눈부시다.
세검정 산등성이가 등불이라도 밝힌 것처럼 꽃사태.
겨우내 죽은 듯 시들어 있던 그 어디에 저런 화사한 빛깔들이 웅크리고 있었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울동안 어머니가 집에 와 계실 때. 걸음도 겨우 걸으시며 힘겨워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봄을 기다렸다. 날이 풀리고 어머니 건강도 좋아지면
모시고 길상사 나들이를 가야지 생각했는데... 이제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길상사에 매달린 울긋불긋 연등보다 그 아래 드리운 꼭 그만큼의 그늘에 눈길이 머물렀다.
우리 삶에 빛나는 무엇이 있었다면, 꽃다운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침묵과 희생의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꼭 제 크기만큼의 그늘을 땅에 드리우고 꽃처럼 화사하게 바람에 흔들리더
실상사 연등.

트위터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 보았을까. 아마 생각만하다 '다 아는 얘긴데 뭘 새삼스레...' 하고는 말았을 것이다. 다 알 것이라는 예단.
트위터에서 귀담아들을만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짧은 감상을 읽으면서 꼭 가서봐야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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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교수가 37년만에, 소위 참여정부가 들어선 고국에 돌아와... 감옥에 갇혔던 2003년.
아마도 나 역시 그 당시의 일반적인 분위기와 다른 기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본의였든 아니든. 아니 냉정하게 말하자면, 세월이 흐른 뒤에 '본의 아니게 (노동당에)입당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정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입당이 카드가입하는 것도 아닌데, 본의의 의지와 무관하게 처리될 수 있단 말인가...  

37년을 해외에 표류하며 박해받던 양심적인 학자가
전향을 강요당하는 포로처럼 옹색한 신세로 전락했을 때... 그것을 그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며 냉담했던 것 같다. 영화에 보니 한겨레신문은 나보다도 더 보수적으로 그를 비판했던 모양이다.

영화감독 마저도 ... 스스로도 레드컴플렉스와 그것을 넘어서서 이성적으로 사태를 보려는 내면이 뒤엉켜 혼돈스러웠다고 했다. 그런 혼돈은 모처럼 독대한 송두율교수에게 '왜?' 라고 질문하고 싶어하다가... 지친 그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할 말을 참는... 장면.  

진보신당마저도 자신들의 탈당 명분을 설명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 운운하면서 사상의 자유와 선을 긋지 않았던가. 남한 땅에서는 이렇게 진보마저도 왜곡되는 모양이다. 그게 남한의 수준이고 한계일까.

영화에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국가대표급 인사들이 많이 출현한다.
세월이 흐른 뒤에 ... 그 분들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니 실용적인 처세는 있어도 귀담아 들을 그럴 듯한 이야기들은 거의 없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관되게 정확한 입장을 말하는 이는 송두율교수의 부인 한 사람이었다. 남편이 감옥에 갇히게 되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줄곧 말한다. 남편이 경계인으로 살고자 했지만, 북쪽으로 기우뚱하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 남쪽으로는 귀국조차 허용되지 않던 과거의 현실을 생략한 채 실용적인 처세를 강조하는 이들에게 ...

그의 아내는 목소리조차 높이지 않고... 한번도 주저하지 않고 원칙을 말한다.
그리고 송두율 교수가... 전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대학시절의 친구들, 공대교수'같은 이들이 전화로 '지금 네가 너 자신을 포기하면(전향)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
김영삼, 이명박, 김문수, 이재오 같은 이들 ...
조금 다를지 몰라도 본질에서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야당의 386세대 정치인들.

그들이 청춘의 한 때, 때로 목숨을 내걸고 불의에 저항했던 것. 그것이 자신의 정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들은 결과적으로 젊은날 스스로의 분투를 '헤프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된 데에는 그들 나름의 절박한 당위가 있었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송두율 교수를 향해 '지금은 수세국면이니 축구에서 온선수가 수비에 치중하듯 테크니컬하게 생각해 사과도 하고 반성도 하자'고 충고하던 이들처럼... 상황에 대응하는 조금더 실리적이고 조금 더 나아보이는 선택을 하다보면... 어느 덧 자신이 발딛고 있던 지점과는 정반대쪽에서 허우적거리며 다음 내디딜 땅만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 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살다보니 이제 그 원리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원칙없는 실용...이냐 죽어서 사는 길을 택할 것이냐 . 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오롯이 자신만의 일이다. 옆에서 훈수두는 이들의 몫이 아니다.

이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이십여년 동지가 돼 버린 아내와 극장을 나서 팔짱을 끼고 안국동으로 걸어나오며 우리는 씁쓸한 기분에 휩싸였다.

2010년 봄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2003년 무렵의 국가대표급 진보진영선수들을 향해 냉소는 할 수 있다.  그러나 ... 당시의 나는 달랐던가.

그의 '불가피했을' 입당과 또  그와 다르지 않을 전향을 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마음이 과연 당시에도 있었던가... 그러고보면 냉소해야 할 것은 영화속의 국가대표들이 아니라 늘 평론가연하는 나 자신이 아닐까... 정작 입맛이 쓴 것은 이 대목에서 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합리 살 때 아침에 일어나 키우던 개 강이를 데리고 달리기를 하거나
집 뒤에 산으로 산책을 하곤 했다. 해 뜨기 전 건너 편 산들이 안개에 싸인 채
희붐하게 보이던 그 광경...

집으로 내려오다보면 부엌 창으로 아내가 밥짓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사무실까지 두 시간이나 걸리는 그 먼곳에 살던 그 무렵 아침이
어찌 그리 길고도 여유로웠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현기영 선생님.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9/0912/IE001105310_STD.jpg

일면식도 없는 독자의 한 사람일뿐인 제가 이렇게 불쑥 편지를 드려도 되는 것인지 잠시 망설이다가 독자의 한 사람으로 독후감을 전해드리는 것 자체야 무슨 큰 흉이 되겠나 싶어 용기를 내 편지를 씁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는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소설들은 현실과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발언했으며 생동하는 문제적 개인들을 형상화해내면서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위로했고, 그러한 울림들이 사회를 바꾸는데 기여하면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순이삼촌>이나 <마지막 테우리> <지상의 숟가락 하나> 같은 작품들이 그러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몸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 소설가 현기영. 소설가 현기영.
ⓒ 민족문학작가회의

오랜만에 나온 선생님의 소설 <누란>(창작과 비평사)을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심하게 몸살이라도 앓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선생님께서 이 시기에 왜 이런 책을 쓰신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소설의 말미에 붙어있는 '작가의 말'에는 "절망의 바닥을 천착함으로써 수면 위로 다시 솟구치기를 희망한다"고 써 놓으셨더군요. 오늘의 현실이 비관적이라는 것은, 이 지긋지긋한 도시에서의 밥벌이를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고 푸념하곤 하는 저도 인정합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현실을 냉정하고 정직하고 마주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현실을 극복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쩐지 중고등학교 때 단체 기합을 받을 때처럼 막연한 죄책감을 강요당하는 것 같기도 했고, 우리 세대의 사는 꼴이 다 이 모양인가 싶어져 스스로와 주변 친구들을 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어쩐지 억울하고 불편한 감정도 들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소설책을 읽으며 왜 그런 마음이 들어야 했을까요.

소설의 주인공 허무성은 1987년 6월항쟁 당시 거리시위 때 버스 위에 올라가 뛰어난 대중 선동을 했던 학생운동 조직의 핵심이었으며 그 때문에 안기부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알려진 바대로 사람을 인격이 가진 존재가 아니라 작업의 대상물처럼 혹독하게 다루는 그곳의 고문은 가혹했습니다.

허무성이 경험한 지옥은 안기부 수사실이라는 극단적인 공간이었지만, 자근자근 자의식이 짓밟힌 뒤 비로소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는 대한민국 많은 어른들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현기영의 <누란>은...

87년 6월항쟁을 이끄는 전위에 섰던 주인공 허무성은 오랜 수배생활 끝에 검거되어 남산 지하고문실에서 김일강 등의 손에 모진 고문을 당한다. 겁똥을 쌀 지경에 이른 허무성은 끝내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과 운동조직에 대해 자백을 하고, 장학금으로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김일강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여 일본에서 유학생을 한다.


역사를 전공한 허무성은 귀국 후 김일강의 사촌형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김일강은 국회의원이 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관계를 지속하며 김일강의 정신적 노예가 된 허무성은 자신의 무기력한 현실과 잊히지 않는 고문의 기억으로 인한 공포, 과거의 배신에 대한 죄책감 등으로 정신적·육체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출처 출판사 리뷰

군 훈련소의 입영문을 통과하는 순간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대가리 박아!'를 감당해야 하는 군대의 경험이나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순간 똑같은 트레이닝복을 지급받고 새벽구보를 하면서 기업의 창업사를 외우며 회사인간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거치는 광경들이 바로 그러한 예들일 겁니다.

젊은 날의 이상과 가치를 포기했다고 전향서를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하는 폭력. 또 어떤 면에서는, 사적인 사이버 공간에서 한국에 대해 좋지 않게 발언했다고 사회에서 퇴출당한 아이돌 가수의 경우처럼 사회 통념이나 상식과 다른 지향이나 가치관을 발설하는 순간 감당키 어려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들도 허무성이 마주했던 지옥과 크게 다른 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소설의 출발점인 안기부 지하 수사실에서 대학생 허무성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것이 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근태 선생이 1985년에 고발한 것처럼 사람의 어깨뼈를 뺐다 끼웠다 하면서 딱 죽지 않을 만큼씩 극한의 고통을 주며 없는 간첩단도 만들어내는 기술자들과 맞서기에 당시 대학생들은 약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친구들 가운데도 누군가가 먼저 잡혀가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다른 이들이 줄줄이 잡혀가고 섬뜩하게 과장된 조직도와 함께 학생운동 조직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일들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고문에 굴복했다고 모두 허무성처럼 살까요?

그러나 과연 아무리 힘이 없고, 유약했던 당시의 대학생들이었다고 해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친구의 이름을 끝까지 숨기지 못했다는 것을 추궁하며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몰인정하게 몰아붙였는지는 의문입니다. 이 지점에서부터 저는 소설에 빠져들지 못하고  남의 이야기처럼 시큰둥하게 읽기 시작했던 같습니다.

아직도 순진한 믿음을 버리지 못한 탓일지 모르겠으나 저는 당시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기심을 넘어서 상당한 위험과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학생운동에 나서게끔 했던 것, 우리 세대를 열광하게 했던 그 힘은 어떤 열병과도 같은 시대정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정희 정권과 신군부의 무단통치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가슴에 응어리지고 싹튼 탈권위에 대한 열망, 표현의 자유, 어느 조직에서건 의사결정의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일, 인권, 분단극복, 약자에 배려와 사회복지에 대한 지향, 여성의 차별과 무권리를 개선하는 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가치를 얼마나 확대했는가가 어쩌면 대통령을 누구로 뽑았나 하는 문제보다도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이웃들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저는 여전히 그런 생각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기영의 소설 <누란>
ⓒ 창작과비평사
누란

소설 속의 허무성이 고문에 굴복했다고 해서 스스로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끊겼다고 생각하는 일. 위대한 혁명가로 성장하지 못했다고 해서 김일강 같은 세력에게 자신의 운명을 모조리 의탁한 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은 상태로 세상에 대해 오만 냉소를 다 퍼붓는 일들이 저는 조금 뜨악하기도 하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학생운동 조직의 한 그룹이 붕괴됐다고 해서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 자체가 파산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구요.

자신들이 민중들의 삶을 좌지우지한다고 착각한 학생운동 그룹이 있었을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생각을 되짚어보자면 자신들만이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시종일관 어떤 지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소아적인 착각이 극단적인 전향도 불러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에 나오는 허무성의 주변의 인물들이 모조리 허무와 냉소에 빠져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학생운동 관련자들 대부분이 학생운동 경력을 팔아 정치권에 구걸하면서 국회의원이 돼  보수세력의 앞잡이가 되거나, 뚜렷한 주장도 자긍심도 없이 자조하면서 논술학원의 강사가 되거나, 절망에 빠져 텔레비전에 넋을 빼앗기고 만 소설 속의 문정선 같은 사람들뿐일까요?

1980년대 대학에 다닐 때 저희 또래들은 스스로를 4.19세대와 자주 비교하곤 했습니다. 당시 이미 4.19혁명과 6.3운동 세대들은 이미 현실에 발이 묶인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고,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그들 세대로부터 진보적인 예민함, 탈권위적이고 민주적인 가치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없었던 탓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세대들은 1980년 5월 광주를 기점으로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운동을 시작했으며,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굴러가게 될 것임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시의 우리들에게는 주장은 많았지만 성찰은 부족했고 스무 살 청년들다운 순수함도 있었지만 미숙함도 많았습니다. 그런 부족한 가운데서 대개의 사람들은 삶의 문제를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했으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숙했던 20대들이 그렇게 건강한 상식을 가진 선량한 이웃들로 성장하면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조금씩 개선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 초중반에 쏟아져 나오던 성찰 없는 후일담 소설들을 혐오한다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생각과 지혜가 부족했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조악했던 면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쉽사리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북의 주체사상을 지고지순의 가치인 양 목소리 높여 주장하던 자들이 어느 순간에 표변해서는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이북을 무력침공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매카시즘을 선동하는 모습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을 유지하고 움직이며 조금씩 인간다운 가치를 진전시켜온 것이 그런 분열적인 인간들의 선동에 의한 것은 아닐 겁니다.  

고민하던 그들은, 여전히 선량한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속의 우울한 인간들을 안쓰러워하면서 생각했습니다. 스스로의 이념에서 파산한 채 삶의 어떤 희망과 전망도 스스로 세우지 못하고 있는 그 우울한 인간 군상들,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더러는 거들먹거리기도 하던 미성숙한 인물들. 그들은 어쩌면 동시대 동년배들 전체를 떠올려보면 지극히 예외적인 소수가 아니었을까요?  그 당시 전대협 발대식에 모여들던 5만, 10만 명의 학생들만 떠올려보아도 그렇습니다.

정확한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고 하지만 당시 대학생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노동현장에 위장취업을 했던 이들이 1만 명 이상은 된다고 하는 자료를 본 적이 있습니다.  대개가 현장을 떠나오기는 했습니다만 그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선량한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저는 선생님이 소설에 그린 것처럼 극단적인 절망에는 빠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 세대들은 이제 세월이 흘러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대개 배도 좀 나오고 흰머리도 희끗희끗해진 중년이 되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그들이 젊은 날 스스로가 그리던 혁명가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분투하며 땀 흘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학부모가 되었고 사춘기 아이들의 갈등을 이해하려고 골머리를 싸매기도 하지만 그러면도 자식들에게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강한 상식을 가진 이들입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 현실은 비극적입니다. 용산철거 현장에서의 살인진압이나 파업현장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에게 광적인 적대감에 휩싸여 무자비한 폭력을 쏟아 붓는 일.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정보기관들이 온 국민을 사찰하면서도 반성이 없는 지금의 정부가 예전에 우리가 겪었던 박정희나 전두환 정권에 비해 덜 잔혹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촛불의 광장에서 낙관하던 시민과 다중의 힘이 종잡을 수 없게 불규칙한 복류를 하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망동이 터무니없다고 여기는 상식의 힘이 20년 전에 비해 훨씬 커진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교육현실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과거의 우리들에 비해 더 발랄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역사는 피 흘리며 신음하면서면서라도 조금씩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그런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글을 맺자니 선생님의 소설을 마음대로 읽고 터무니없는 저만의 생각을 늘어놓은 게 아닐까라는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결례를 무릅쓰고, 어렵게 쓴 편지를 선생님께 보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정직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선생님의 소설을 오래도록 읽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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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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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는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바더마인호프 컴플렉스' 는 드라마로는 썩 훌륭지 않았다.
사실을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긴, 삶에 무슨 기승전결의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단 말인가.

이란의 전제군주 팔레비 국왕내외가 독일을 방문하고 68혁명이 휩쓴 독일의 진보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반대시위를 한다. 이어지는...몸서리치는 백색터러와 경찰들의 폭력진압. 곤봉에 머리가 깨지고 짓밟히는 사람들. 

우리도 수없이 겪어본 그 공포스런 광경이 스크린에서 재현될 때
나도 모르게 거의 의자에서 엉덩이가 붕 떠오를 정도로 감정이입이 돼 몸이 경직됐다.
호흡이 가빠지고 체온이 올라갔다.

백골단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면 1980년대의 학생들은 거의 속수무책으로
맹수들에게 물어뜯기는 병아리들처럼 짓밟히고 머리가 깨지고
붙잡힌 뒤에는 온갖 야비한 조롱을 견뎌야 했다.

이 때문에 어김없이 악몽을 꾸곤 했다. 
한 동안 잊고 살던 그 악몽이 이명박이 집권하고
광장에서사람들이 또다시  무참하게 두들겨 맞는 일들이 벌어지는 시대가 된 뒤로는
다시 꿈 속에서 재방송 되곤 한다. 몸서리친다.
진보적인 언론인 마인호프는 적군파의 탈옥을 돕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의 대열헤 합류한다. 그러나 결국 체포된 뒤 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리고 일행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면서 분열적인 상태로 자살하고 만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대략 1만 명 정도의 학생운동가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으로 '투신'했다고 한다.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분노, 개인의 무력감을 넘어서려는 생각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일 적군파를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이 영화... 그러나
혁명을 외친 자들이 이렇게 대책없었나 ... 싶었다.
권력과 자본의 폭력을 넘어서는 더 좋은 가치, 더 인간다운 관계...
그런 것이 없다면, 혁명은 왜 하는 것일까...

사람만 바뀐 채 그 권력이 똑 같은 악행을 되풀이 한다면, 
혁명은 어디에 쓸모가 있다는 말인가...  
 


장일순 선생은 '혁명은 보듬어 안는 것'이라고 했고,
줄탁동시卒啄同時...
병아리가 알 속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려 입질을 할 때... 어미 닭이 밖에서 같이 쪼는 것처럼...
사람들의 요구가 충만하고, 그것을 벗어나려는 결심이 가득할 때 ...
혁명을 꿈꾸고 기획하는 자들이 함께 껍질을 쪼듯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혁명은 누가 내려주는 선물일 리도 없고,
그렇다고해서 사람들의 고통이 목에 차오르는데 고상한 말만 해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 판단이 자의성을 넘어서는 지점...
그것을 깨닫는 지혜. 그것이 관건일 것이다.
kCYfynJkFCR-uYnjglCyr4GrbLqKM6isu4FEWiffY6M,




웬델베리라는 이, 미국 켄터키에 사는 농부이며 시인, 소설가. 그가 쓴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를 읽다보니 먹는 일에 대한 생각들에 눈길이 머문다.

우리는 먹는 일이 곧 '농사'라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이 먹는 음식에 스스로의 세계관이 반영돼 있다늠 점.
결국 음식이 자신의 몸, 존재 자체를 결정하게 된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먹을 것인가.  먹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세상 사는 일의 모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원델베리가 '책임있게 먹는 일'을 위해... 제시한 몇가지 실천지침은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다.

제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이 어디서 길러진 것인지, 어떻게 운반된 것인지, 누가 어떻게 조리하는 것인지...모르는 채 먹고 사는 것은 부당하다.

관심을 기울이고, 책임있게 먹어야 한다.
또 가능한한 스스로 길러야 하고,
또 가능하다면 제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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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가능한 한 음식의 생산에 참여하자. 마당이나 베란다, 해가 들어오는 창문에 화분이 있다면 거기에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키우자. 주방에서 비료가 될 만한 것들을 조금씩 모아 흙을 비옥하게 하는 데 사용하자. 조금이라도 당신 스스로 음식들을 키워야만 땅으로부터 시작해 씨앗으로, 꽃으로, 열매로, 음식으로, 찌꺼기로, 결국 썩어가고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는 아름다운 에너지 순환을 깨달을 수 있다. 당신은 스스로 키운 그 음식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지게 될 것이고, 그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음식의 전 생애를 알고서 그 음식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게 될 것이다.

둘, 자신이 먹을 음식을 스스로 준비하자. 이것이 당신의 정신과 생활 속에서 부엌과 집안살림의 기술들을 되살려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은 더욱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되고, ‘음식의 질 조작’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신은 당신이 먹는 음식에 첨가된 것들에 대한 믿을 만한 지식을 어느 정도는 얻게 될 것이다.

셋, 당신의 사는 음식의 원산지를 알아보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식품을 사도록 하자. 자기가 먹는 모든 식품의 재료가 가능한 한 가까운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물은 가장 안전하고 신선하다. 또 지역 소비자들이 그 재료들에 관해 손쉽게 알 수 있으며, 그것의 생산과 생산 방식에 직접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넷 가능하다면 그 지역 농부, 채소 재배자, 과수원과 직접 거래하자. 앞서 제안하면서 나열된 모든 이유들이 여기에 적용된다. 덧붙이면 그런 직거래를 통해서만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희생시켜 번성하는 상인이나 운송업자, 가공업자, 포장업자, 광고업자들을 배제시킬 수 있다.

다섯, 자기방어라는 의미에서, 산업적 식품 생산의 경제적 측면과 기술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만큼 알아보자. 음식이 아니면서 음식에 첨가되는 것이 무엇이며, 이러한 첨가물들에 대해 당신이 무엇을 되는지 등에 대해서도.

여섯, 최선의 농사와 채소가꾸기에 포함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일곱, 다양한 식품이 살아가는 역사에 해해 직접적으로 관찰하고 경험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우자.

...

먹은 것의 즐거움은 단순히 미식가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마땅히 광범위한 즐거움이어야 한다. 자신의 채소들이 자라난 정원을 알고 있고, 그 정원이 건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라나는 작물들의 아름다움을 기억할 것이다. 이슬이 맺혀있는 아침 햇살 속에서 빛나는 작물의 아름다움 말이다. 그러한 기억은 그 음식과 관련이 있고, 먹을 때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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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이 암반 계곡을 따라 크게 휘어돌아가는 곳
백사실계곡에서 흘러내린 개울이 하천에 합류하는 지점
세검정 성당과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을 신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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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이미 재개발 계획이 세워져 있는 모양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경작본능에 따라 이 낡은 마을에 사람들은 어김없이
문 앞에 작은 텃밭상자를 만들어 푸성귀들을 기른다.

고향에서 뿌리뽑힌 사람들이 치솟는 집값이 쫓겨 또다시
도시의 외곽에 밀려나듯... 이 동네에 번듯한 아파트들이
들어서고나면 저 옹색한 텃밭상자들도 말끔히 치워질 것이다.
돈 주고 사는 꽃화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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