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마감 때문에 주말 동안 머리가 너무 아팠다. 큰 맘 먹고 어제(11월 23일 화요일) 하루 휴가를 냈다. 내처 잠만 잘까  하다가 오래 걷기로 했다. 어디로? 늘 그러듯이 북한산? 아니 아예 서울 성곽을 일주해보자... 싶었다. 재희형도 함께 가시겠다고... 해 오전 10시 창의문 앞 커피집 에스프레소에서 만났다.
'무보급 무산소 연속등반'입니다. 농담으로 킬킬 대다  커피 한 잔 마시고 10시 30분 경 출발 .




에스프레소 뒤에 창의문이 숨어 있다. 내 유년의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있다. 북악스카이웨이와 인왕스카이웨이가 개통되던 무렵.  그 길이 뚤리면서 창의문은 창의롭지 못하게 축대 밑에 옹색하게 낑기고 말았다.  

창의문에서 떠나 창의문으로 돌아오는 성곽 일주길은 17km. 한 시간에 4km가량 걷는다 생각하면 너댓시간 정도 소요되겠지만, 중간에 밥 먹고 차 마시고 쉬는 시간 포함하면 8시간 가량 예상하고 떠났다

북악산은 노무현 정권때에야 개방됐다. 권위주의 통치시절에야 어디 청와대 근처로 오고싶기나 했겠나. 그 서늘한 공기 때문에 말이다.  아다시피 북악산에는 오후 3시 이전까지만 입산이 가능하다. 신분증이 있어야 하고, 신고서 같은 걸 쓴 뒤 패찰을 목에 걸어야만 된다.

성곽 종주는 일단 창의문에서 출발해 북악산에서 혜화동 방향으로 으로 해서 낙산, 남산을 넘은 뒤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까지 돌아오는 길로 잡았다. 반대로 하면 오후에 북악산 입산이 통제되니까...마음이 바빠질 수 있다. 북악산 입산 신고소에서 반대편 청운공원쪽 능선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입산 한 뒤 성벽을 두어장 찍었는데, 경비병들이 사진을 보자더니 다 지우란다.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웠다. 그런데, 그 뒤로는 위축이 돼 사진 찍을 맛이 안났다.  

북악산 정상, 백악산(白岳山 해발342미터) 에서 북한산 쪽을 바라본 광경. 여기서는 촬영이 허용된다.


반대로 남쪽 시내를 바라본 광경... 멀리 남산과 관악산이 보인다.

백운봉 아래 청운대를 지나면 잠시 성벽밖으로 길이 나있다. 이 길을 내려선 뒤 곡창터인가를 지나 조금 더 능선길을 걸으면 숙정문에 닿는다.





숙정문을 지나면 이내 통제소를 벗어나게 된다. 담 너머로 성북동이 내려다보인다.

삼청각과 성북동 고급주택가. 청와대 뒷산 통제구역을 벗어나면 성벽도 공기도 훨씬 자유롭게 느껴진다. 성벽에 붙어있는 이끼와 담쟁이덩굴까지도...


아마도 군인들이 관리했다면...
담장에 기생하는 풀과 나무들도 모두 '작업'을 해 제거하기 십상일 것이다.

성북동 경신고등학교로 내려서는 길...꽃보다 고운 단풍.  아직 가을이 남아있다.


성북동에 내려서서 온 길을 뒤돌아보며 찍은 사진. 만약 종주가 아니라 북악산만 걷는다면 경신고등학교와 서울과학고(예전 우리 고등학교때는 보성고등학교가 있었다.) 사이, 이곳 들머리를 기점으로 삼으면 되겠다.

성북동 성벽 인근에는 내가 알기로도 꽤 알려진 칼국수집이 네 집이나 있다. 대부분 사골국물에 손국수를 끓여내고, 문어나 생선전을 별식으로 내는데... 그 중 세 곳을 가보았다. 성곽종주길에는 굳이 가본 적 없던 '우리밀국시'에 갔는데... 결과는 조금 실망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4곳 중에 4등에 해당한다고 ...


경신고 담밑에... 있는 최순우 옛집.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으로 보존한 옛집 뒷마당. 이 넓지 않은 공간을 이토록 아취가 있는 곳으로 가꿀줄 아는... 그 마음이라니... 갈 길이 바빴지만 잠시 앉아 마음을 쉬다.


경신고등학교와 마주보고 있는 홍대사대부고를 나왔기 때문에... 3년 내 교실 창너머로 이 학교를 내다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어린시절 우리의 영웅,차범근의 출신학교이기도 한  경신고는 무지막지하게도 서울성곽을 깔아뭉개고 그 위로 학교 담장이 들어서 있다. 언젠가 되돌려지겠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의 경신고등학교 학생들도 담을 넘어 다니는 모양이다. '학생들 담을 넘어 다니지 말 것' 단정한 행서체의 판자 알림판이 눈길을 끈다. 학교에 붙인 것일까 주민들이 그랬을까. 담을 넘어다닐만큼 개구진 아이들에게 이 알림판이 어떤 효용이 있을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고나 할까.


경신고등학교를 빠져나오면 서울 성곽은 간간히 빌라 축대와 교회 축대로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그리고 혜화동 고개에 있는 혜화문에 가까워지면 담장이 온전히 드러난다.

내고향은... 돈암동이다. 성문밖 동네였다. 어릴 때 전차종점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남아있다. 주소도 동소문동 2가... 이렇게 시작됐다. 혜화문은 동대문 옆, 시외와 연결되던 동소문이었다. 어릴 때는 문을 본 적 없는데... 아마도 2000년 전후에 복원되지 않았을까... (기록을 찾아보니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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