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마감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어 휴가랄 수도 없는 짧은 시간...
어디에 가서 뭘 할까. 아내가 금강산 함께 가 알게 된 여성 산악인 서선화씨가
발랄하고 유쾌한 홍반장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정선 덕산기 계곡에 가자고 했다.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굉장히 외진 곳이라고 했다 ...
아내가 전화를 했더니 선화씨 목소리가 잠겨있어 '무슨 일 있어?' 하고 물었더니...
'아니 언니 온종일 말을 안 해서 그래' 할 만큼 깊고 외진  산속이라고...

나는 도시의 이 속된 욕망이 지긋지긋해져서 늘 떠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시골에 살 때
나와는 무관하게 절로 분주한 도시를 떠올리면, 이젠 잊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끔 외로웠다.

이제는 어떨까. 가끔 생각해본다. 도시를 떠나 한 달에 한 번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아도 ...
나는 그 고절감을 이제는 향유할 수 있을만큼... 되었는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그 깊은 계곡 안의 서선화씨는... 평화로워보였다.

홀로된 순간을 기꺼이 즐길 줄 아는 힘. 밖에서 오는 자극 따위에 헛된 기대는 품지 않는 충일감...
늘 그것이 관건이다.

차를 없애고 난 뒤 확실히... 어딘가 갈 엄두를 잘 안내게 되었다. 청량리역에도 오랜만에 가보았다. 새 역사가 들어서 옛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청량리역 시계탑' 앞에 가면 늘 기타를 둘러맨 청년들이 들뜬 얼굴로 모여들곤 했는데... 그런 모습도 별로 없었다. 주말인데도 기차는 한산했다.

청량리발 오전 7시50분 무궁화호. 정선까지는 4시간. 오랜만에 차창밖 풍경을 보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아이들과 게임을 하면서 가도 시간이 남는다. 아내는  차안에서 한살림 면행주에 '밥은 하늘'이라고
수를 놓았다. 덕산기 계곡 안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선물로 주겠다고.

좀처럼 모시기 어려운 두 따님은 처음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도 애원(?)할 생각은 없어 그러라고 했는데 어찌어찌 따라오게 됐다. 결국 주리를 틀어서 하루만에 계곡을 나와야 했지만 말이다.


게스트하우스 '정선애인' 가는 길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마을 끝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져있고 자물쇠를 풀고 그곳을 통과해 4킬로미터를 더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다. 물론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자갈길이고 그나마 4륜구동 트럭으로도 끝까지 가지 못해 마지막에는 이처럼 남부여대 걸어올라가야 했다. 덕분에 일상의 번잡함과는 완전한 단절... 의 평화를 경험할 수 있다.


비가 무섭게 내릴 때면 마당 바로 아래까지 거센 물살이 흐른다는... 이 옛집은 일상의 공간이라기보다 계곡 위에 지어놓은 정자처럼 여겨졌다. 찻상이 놓인 마루에 앉아 내려다보는 눈맛이 시원하다. 누굴까.  이 은밀하고도 아름다운 계곡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단정한 나무집을 지을줄 안 옛날의 그 사람...

마루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만으로도 뿌듯한 마음이 들던 그 집.

계곡 안에는 흙보다 돌이 많았다. 흙들은 쉼없이 쓸려가고 그 자리에 성긴 돌들이 남았기 때문이다. 마로와 아내는 돌을 주워 그 모양에 따라 그림을 그려 주인장에게 선물로 주고 왔다.


아내가 주인장에게 선물하고 온 북벽. 

 옛집 마루에 깔려있던 고재 토막마저도 버리지 않고 조각보처럼 이어붙인 아름다운 문.  문살을 그대로 두고 모기장을 쳐놓은 여름용 문.


이제 진짜 이 딸들을 모시고 몇 번이나 여행을 더 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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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해질녘 집을 나섰다. 등산객들이 대개 다 귀가한 시간. 산은 고적했다. 호젓하게 혼자 걷지않는다면 산에는 대체 왜 가야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온 것 같다. 문득 유희나 체력단련으로서의 산행과 홀로걷는 산행은 전혀 별개의 행위라는 생각.  

탕춘대능선을 따라 곧장 걸어가면 향로봉이 있다. 암벽길도 아니고 릿지로도... 난이도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사람들이 추락해 한 명씩 죽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여럿 죽었을 만한 길도 막아놓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야리산장에서 미나미다케쪽으로 아무도 없는 눈길을 향해 떠나려는 나에게... 일본 산악인 할아버지가 한 말은 '가보겠느냐?'는 물음 뿐이었다. 그 뒤로 내가 걲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죽음을 바라보는 생사관이 다른 것인지... 죽고 살고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무책임한 것인지 개인의 자율성을 너무도 존중하는 '쿨함'인지... 하긴, 죽고 사는 것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정해준다는 말인가.

능선에 앉아 커피를 마신 시간들까지 합쳐 향로봉-비봉-문수봉을 거쳐 대남문을 통해 구기동으로 하산하기까지... 2시간 반이 걸렸다. 때로 거친 숨을 토해야 했다. 북알프스에서 눈길을 찍으며 올라갈 때 '숨이 가빠도 스무걸음은 꼭 걸어간 뒤 쉬어야지...' 결심하고도 꼭 열 다섯 걸음정도에서는 쉬어야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또 1992년에...안산에서 병든 몸으로 돌아와... 매일 해야 할 일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걷고 또 걷던 삼성산 자락이 떠오르기도 했다.

구기동으로 내려설 무렵에는 이내가 짙게 깔려있었다. 밤이 오고 사람이든 짐승이든 둥지를 찾아가는 시간. 일상의 공간에서는 늘 산을 그리워하면서 산에서는 또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일... 토요일날, 죽은 친구 희창이가 있는 납골당에 다녀오면서...욱이와 무슨 얘기끝엔가... 쇼펜하우어가 했다던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존재'라는 말. 존재기반을 허무는 일과 자기 정체성을 쌓아가는 일이 인간들에게는... 늘 혼란스럽게 뒤섞여있다...
친구는 죽기 전 일이 년 동안, 앞뒤 안가리고 돈만 벌겠다고 했었다. 실제로도 가족들과 떨어져 오피스텔에 살면서 새벽까지 돈벌이에 골몰했다. 그 때문에 돈은 무엇 때문에 왜 벌어야 하는 것이냐고 말하는  친구들과 언쟁을 하기도 했다.
상황논리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늘 길을 잃는다. 자기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가끔씩, 삶에도 능선이 있어 훌쩍 뛰어올라 스스로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길을 잃고 마는... 그런 일들을 ... 피할 수도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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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이한구씨가 솜씨좋게 꾸며놓은 갤러리 류가헌. 
한옥 기와지붕 사이로 경복궁 잎 가로수들과 서울의 그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하늘이 올려다보인다. 잔디를 깔아놓고 발 딛는 곳에는 섬돌을 놓아둔 마당. 툇마루에 앉아 아내와 한바라와 함께 차를 마셨다.

때마침 시인이며 화가이면서 무용평론가였던 김영태선생 3주기 추모전이 열리고 있었다.
문학과지성 시집에... 수많은 시인작가들의 케리커쳐를 그렸던 그이에 대해 정작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별 게 없었다. 이웃에 사는 류가헌 안주인이 건네준 팜플릿을 꼼꼼히 읽어본다. 인터뷰도 자신이 한 것이었다.  

김영태 선생의 그림들을 보자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도다리를 먹으며 같은... 황동규 오규원 황지우 김광규의 시집들... 늘 배가 고팠던 20대 때... 몽롱한 눈으로 버스 차창에 기대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시집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로부터...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무뎌졌고 타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고스란히 빗물을 스며들게 해줄... 그 살아있는 마당...
요만한 마당이라도 있다면... 원주에 가있는 강이를 데려올 수 있을 텐데... 10살도 넘은 강이가
늙어죽기 전에... 다시 데려와 새벽산책을 같이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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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북알프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다. 1996년께부터였다. 그러나 꼭 가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대개 그렇듯이 떠올려보고 마는 정도였다.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다.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슬픔과 괴로움. 그에 맞서고 있는 나 자신을 휩싸고 있는 무력감... 이런 것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준비하는 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일도 바빴다.


안내산행은 대개 7월 이후에나 일정이 잡혀있다고 했다. 그때부터는 잡지 마감이시작되고 시간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6월 17일  혼자 도쿄로 가서 그날 밤11시 신주쿠에서 버스를 타고 아침 7시에 가미코지(上高地)에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나의 산행은 대개 혼자 오래 걷는 식이었다. 
지리산 종주나 설악산의 공룡능선, 서북능선을 걷는 식으로. 말이다. 
교회에 가는 일이나 요근래 직장 동료들이 떼로 몰려가고 있는 아바타 같은 자기 이해 과정들에 어떤 효용이 있다면... 
내가 산길을 오래 걷는 일과 비슷하겠거니... 혼자 걷는 일은, 온전히 스스로를 위무하는 일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일이며 
숲의 속삭임에 조응하는 일이기에... 상처투성이 내 몸과 마음은 그 과정에서 치유가 된다. 분명히 효과가 있다. 어차피 그런 목적으로 떠난 길이었다.  


가미코지에서 계곡을 따라 한 시간 간격으로 있는 갓파바시(河童橋), 묘진칸(明神館), 도쿠사와(德沢) 요코오(橫尾)를 거쳐 
야리사와(槍沢)롯지 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계곡길이다. 울창한 숲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눈 쌓인 연봉들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일반 관광객들은 대개 갓파바시나 묘진칸까지가서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북알프스 관광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이 설악동에 가서 권금성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타거나 좀 더 결심을 해 한 시간쯤 거리에 있는 비선대까지 올라 가서 계곡물에 발담그거나 조금 더 용기를 내 울산바위까지 올라가는 것처럼말이다. 



행동식은 모두 한살림물품으로만 가지고 갔다. 산에 갈 때마다 스니커즈같은 수입초콜릿 같은 걸 먹으면서 입안이 개운치 않았는데 한살림 건강 행독식은 참 좋았다. 화성한과의 약과와 땅콩캬라멜, 그리고 우리쌀 채소건빵.


묘진을 지난 뒤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모처럼 하산중인 팀 하나를 만났는데, 대학산악부로 보이는 세 명의 젊은이들, 배낭에 피켈을 달고 있었고 옷차림이나 행색이 격전을 치른 것처럼 보였다. '피켈이 필요한가?' 걱정이 됐다. 

오전 11시 야리사와 롯지를 떠나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됐다. 흙길과 눈길이 뒤섞인 길 시작되더니  天狗原부터는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규모의 거대한 눈사면이다. 거대하게 뚫린 구멍 아래로는 삼킬듯이 산정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눈 녹은 물이 계곡으로 빨려들어가는 게 보였다. 조금 긴장이 됐다. 마침 산에서 내려오는 이가 한 사람 있길래 길이 어떤가 물어보았다. '계속 눈이 쌓여있으니까 주의해야 한다' 며 여태 오버트라우저도 꺼내입지 않고, 또 아이젠도 없이 날나리같이 걸어올라가고 있는 나를 걱정스레 바라본다. 그래도 조금 더 그 상태로 그냥 걸어올라갔다.


더 이상 길도 없고 눈 사면 위로 나란히 꽂혀 있는 1m 남짓의 대나무깃대만이 가야 하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눈이 쌓여있었도 기온이 낮은 것은 아니라서 처음에는 아이젠도 착용하지 않고 눈을 찍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2600미터쯤부터는 비바람에 시야도 흐려지고 거대한 자연 속에 나 혼자 그 불투명한 길을 오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바지도 겨울바지로 갈아입고, 오버트라우저를 꺼내 덧 입은 뒤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카메라도 배낭 안에 넣고 행동식으로 기력도 보충했다. 예기치 못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야겠다는 각성이 들었다고나 할까. 고난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면이 있다면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르고 올라도 산장이 보이지 않았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으면 이미 능선에 올라도 벌써 올랐을 시간인데도 그랬다. 스케일이 다르다는 게 실감됐다. 

이제 방향 분간도 지형 판단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대나무 표지에만 의지에 오를 뿐이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에서는 아무리 길어도 너댓 시간이면 능선에 도달하는데...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다섯시간을 꼬박 걸어올라간 끝에 야리산장을 만났다. 

시계(視界)가 불과 10여 미터밖에 안돼 얼마나 더 가야할지 가늠할 수 없었고 이미 오후 4시가 다 돼 가고 있어 초조했는데, 거짓말처럼 갑자기 눈 앞에 산장이 나타났다. 지도에는 중간에 삿쇼산장(殺生山荘)_이 있다고 했는데 안개때문에 보지 못했다. 눈 때문에 야리산장으로 직등하는 길이 생긴모양이다. 


산장의 외양은 우리나라 지리산이나 설악산 산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젖은 옷과 장비를 말릴 수 있는 건조실이나 잘 관리되고 있는 침실과 침구, 자연발효식 화장실 등에서는 일본사람들 특유의 세심함이 느껴졌다. 
저녁과 아침을 주는, 1박2식에(9천엔), 다음날 도시락까지 포함하면 1만엔. 


아무도 없는 침실에서 스트레칭을하고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고 캔맥주를 마시고 8시경 잠이 들었다. 

밤새 버스를 타고와 온종일 걸어 해발 3천1백미터지점에 와 눈비가 몰아치는 광경을 보면서 잠든 것이다. 나를 덮친 슬픔과 고난도 어쩌면 비현실적인 꿈처럼 그런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산 아래의 일들이 가물가물 현실감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배터리 때문에 꺼두었던 전화를 켜 아내와 딸들과 통화를 했다. 


가고시마에서 왔다는 67살 동갑내기 친구들과 나, 산장에 묵은 손님은 네 명이 전부였다.  
가운데 서 있는 이가 코기라는 산악인이고 이 팀의 리더였다. 일본산악연맹과 관련이 있다고 하고, 전국에 안 가 본 산이 없다고 했다. 

예순일곱살에 나 역시 또 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그런 정신과 몸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해야겠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방에서 혼자 잤다. 매트리스와 침구도 깨끗했다. 매트리스는 땀을 흡수하면 열이 나는 발열시트가 들어있다고 씌여있었다.

다음 날 가고시마 노인들과 앞서거니뒤서거니 야리다케에 올랐다. 

산장에서 불과 2,30분만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하지만... 비바람 때문에 산 아래 광경은 전혀 조망되지 않았다. 


할아버지들은 야리사와를 거쳐 도쿠사와에 가서 자고 놀다 귀가한다면서 내게 미나미다케 능선길을 가보겠냐? 고 묻고는 조심하라고(오 기오츠케테 구다사이) 인사를 하고는 휙 내려가버렸다. 지난 5월 중순 월간 마운틴 이영준기자가 한중일 대학생들과 함께 그 길을 갔다와 쓴 기사에... 곳곳에 눈이 있어 애를 먹었지만 뭐 그리 심각하게 묘사해놓은 부분이 없었기에... 혼자였지만 가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침 8시30분경, 야리산장을 떠나 그 길을 갔다. 지난 저녁에 주문해둔 도시락은 주먹밥 한 덩이와 패트병에에 든 오차가 전부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나미다케(南岳)까지 가지 못한 채... 오후 3시쯤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비바람이 거센데다 방향구분이 어려웠다.  

능선에 쌓인 눈때문에, 등산로 표지가 중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이라면 표지기나 표시판, 쇠줄 같은 게 곳곳에 박혀있었겠지만, 

일본은 달랐다. 바위에 간혹 흰페인트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경우가 있지만, 이것을 한 번 놓친 뒤로는, 사방에 가득찬 가스(안개) 때문에 방향 구분도 어렵고 등산로를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등산로이겠거니 짐작되는 암릉을 한 시간 가량 너덜지대를 오르내리며 전진했지만 그 뒤로는 페인트 표시도 없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비바람이 조금 더 거세졌다. 이 산에 산다는 뇌조가 무슨 몽환적인 그림처럼 꾹꾹 울음소리를 내며 주변을 스쳐갔다. 

방수 재킷을 뒤집어 쓰고 주먹밥과 오차를 마시며 점심을 먹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자칫하면 이국의 산록에서 조난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히 능선 정상으로 되돌아온 뒤 야리산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산장으로 돌아오니 산장 직원은 길을 못 찾았냐? 고 예사롭게 묻는다. 식당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몸을 덮히고, 오후 4시부터 하산하기 시작했다. 산장 직원은 시간이 늦었으니 바로 밑에 있는 야리사와 산장에 연락을 해둘 테니 거기 가서 자라고 했다. 

온 종일 비바람속을 혼자 걷다보니 호젓하고 좋았지만, 정도가 조금 심했다. 한국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원시적인 공포가 있었다.  

저녁 6시에 야리사와 롯지에 도착해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고 말해주고 그곳에서 잘까 하다가 빙하 녹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너무 시끄럽기도 했고 좁은 협곡에 자리잡은 산장이 갑갑하게 여기지기도 해 한 시간 더 걸어내려가 요코오 산장에 가서 지기로 했다.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산길을 한 시간 남짓 더 걸어내려갔다. 이제 산행은 다 끝났다. 

요코오 산장은 북알프스에서 오호다카와 야리가다케 갈림길에 있는 곳이다. 빙벽 같은 일본 소설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곳이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듯 깨끗하고 시설도 훌륭했다. 직원들은 친절하고 무엇보다 여기부터는 더운 물에 목욕도 할 수 있었다. 목욕탕도 훌륭했다. 다만, 산중에서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비누와 샴푸와 치약은 못쓰게 했다. 

예약도 하지 않고 늦게 도착했는데도 식당에는 다행히 밥이 남아있었다. 목기로 된 이중 밥통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양껏 밥을 떠먹게 했고, 뜨거운 미소된장국과 생선구이와 절임 야채 몇 가지, 달걀말이. 목욕도 했겠다.맥주도 한 병 시켜 느긋하게 밥을 먹고 있는데, 일본여자와 함께 온 서양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냐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며... 자신은 터키사람이라고..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라고...고구려가 중국과 대항할 때 투르크 족도 서쪽에서 그런 인연으로 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까, 얼핏 그런 일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지만 긴가민가 했는데 터키사람들이 오히려 한국에 대해 그런 유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다. 내 기억 속에는  한국과 터키는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과 2002년 월드컵에 뜻밖에도 한국과 터키가 4강에 올랐던 점 정도말고는 별 배경지식이 남아있지 않았다. 

요코 산장에서 자고 일어난 다음날은... 등산이랄 게 없었다. 

느릿느릿 가미코지를 향해 내려오며 일반 관광객들처럼 기념품점을 구경하고 가미코지 안내관을 관람하고 ...도쿄행 버스를 기다리며 온천욕을 하고 밥을 먹은 일정도. 언젠가 초가을 다시 찾아와 야영을 하며 야리가다케 오호다카를 잇을 능선 종주를 해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20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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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길을 따라 이어진다. 길은 집에 닿아 있다. 집에서 뻗어 나간다.
집은 길 위에 있다. 길 위에 오래 머무는 지점이 집이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우리의 삶도 기억도 사랑도. 떠난 자만이 돌아올 수 있고
영원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조금 지체된 순간이라는 것도
떠나고 난 뒤에야 깨달을 수 있다.

길에서 만나는 쓸쓸함.
그것이 왜 쓸만한 감정인지.
세월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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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에도 지리산 종주를 했다.

걸으면서 ... 눈 쌓인  겨울에 다시 와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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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봉 고사목들도... 늙어서 머리숱이 빠지는 우리들처럼 죽은 채 늙어가는 모양이다.
이제 몇 그루 안 남았다. 고사목 지대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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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산장에만 가면 언제나...  그냥
내처 걷는 일을 포기하고 하염없이 앉아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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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에서 장터목 가는 길가의 죽어서 수십 년 서 있는 '나의 나무'는
아직은 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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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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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의 산정묘지의

만일 내 영혼이 천상(天上)의 누각을 꿈꾸어 왔다면
나는 신이 거주하는 저 천상(天上)의 일각(一角)을 그리워하리.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이 구절과 함께
떠올리게 되는 곳

오도록 혼자 걸어야만 오롯이 만날 수 있는 그 곳의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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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노먼의 책 제목도 똑 같다. 

아비가 딸과 소통하는 일은 어렵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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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도 되기 전부터 딸을 품에 안고 무수히 많은 산행을 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딸들은 좀처럼 산행에 따라나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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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에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예닐곱시간 우중 산행도 힘든 기색없이 거뜬히 해냈다.
스스로 제 할 일을 찾아내 하려고 하고... 제법 어른스런 면모도 보였다.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아이에 대한 걱정은 노파심일 수도 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송과 손. 
이미 고등학생, 중학생이 된 큰 아이들만 데리고 산행을 하기로 오래 전에 약속하고
지난 주에 실행했다. 장맛비로 산행 내내 비를 맞았다. 쉽지않은 산행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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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예정된 지리산이나 설악산은 산장 예약을 하지 못해 포기하고 대신 오대산으로 갔다.
진고개에서 출발해 노인봉을 너머 소금강 계곡으로 하산하는 길. 계곡길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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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없앤 뒤 증평 평화당 한약방에 가기 위해
처음으로 먼 길 나들이를 했다.
동서울에서 증평 가는 버스에는
우리 부부와 할머니 세분, 승객이라야 모두 다섯 명이 전부였다. 

차안에서 위클리경향에 실린 박변호사님 인터뷰를 읽었다.
작심을 하고 국정원과 청와대를 겨냥한 발언들...
어쩌면 우리들의 이 평범하고도 나른한 일상을... 또 다시 가책하면서
일손을 놔야 할 순간이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증평터미널 차표는 여전히 손으로 써서 끊어주었다.
그런데, 인체권과 승차권... 이게 무슨 뜻일까... 한참 고민했다.  인체(人體)로 읽으면
나머지 부분의 승차는 뭐란 말인가...  승차(乘車)도 인체가 하는 게 아니고?

승객은 승차권을 갖고, 인체권은 기사님이 회수해 갔다.  그러면 인체는 뭐란 말인가...

우리는 필시 '인원체크'의 준말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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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터미널을 빠져나와 평화당약방이 있는 곳까지 택시를 탔다.
1985년쯤에서 시계가 멈춘 것처럼 그 순간의 사물들, 풍경들이 증평 터미널,  그곳에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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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왔을 때는 드넓은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나
평일이라 그런지 가자마자 이내 진맥을 해주셨다.

그러나 약을 지어주지는 않으셨다.
꼭 약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약을 지어주시는 까닭에 그러셨겠지...
아래층에서 한방차만 한 통 사서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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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을 방불케하는 뜨거운 낮,  지역의 읍내는 이렇게 한가하다.
텅 빈 거리는 증평만의 문제가 아니다. 괴괴한 정적에 휩싸인 전국의 모든 읍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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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정신을 놓고 잠들었다 깨어보니 차가 한강을 건너고 있다.

서울에 살기 위해 다들 발버둥을 친다.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여유있게 사는 꿈을 서울에서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백년 전에 소로우는 그런 우리에게 질문한다. 

왜 지금 당장 고향에 돌아가 그렇게 살면 안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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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스님, 문규현 전종훈 신부님.
세 분의 오체투지 2차회향이 6월 6일 임진각 망배단에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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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체투지를 시작해 하루에 약 4Km씩 천 번 가량
온 몸을 땅바닥에 던져 투지하면서 이분들이 남한의 북단... 이날 행사장의 한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유를 잃어버린 자유의 다리, 이 기막힌 역설의 현장'까지 400여km를 온몸으로 기어서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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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를 하실 때도 그랬다. 마음이 편치않았다. 이 분들이 온 국토를 자벌레처럼 굴러가고 있을 생각을 하면, 아무 생각없이 밥 먹고, 발 뻗고 누워자는 이 일상이 어쩐지 송구스럽고 미안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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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한 그 누구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던 신영복 선생의 글귀도 이런 일을 두고 쓰신 것이리라.

이들이 이토록 아파하는데, 이토록 처절하게 참회하며 기원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조차 똑똑한 평론을 해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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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해서 내가 그 길을 따라 온좋일 몸을 던져 절을 해야만 하는지, 할 수 있는지...
 내적 필연과 당위가 생기지도 않았다. 아니면 용기가 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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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순례단은 애초에 지리산 노고단(하악단)을 출발해 계룡산(중악단)을 거쳐 6월 15일  묘향산(상악단)에서 천제를 올릴 계획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북측과 접촉한 결과 이북 땅을 오체투지로 통과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고 묘향산에서 천제를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방북과 행사진행을 허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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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현재까지 방북허가를 내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연일 북과의 전쟁불사를 떠들면서 광분하고 있는 실정이고보면 이 정권이 스님과 신부님들이 온 국토를 벌레처럼 기면서 몸을 던져 기원하고 염원한 그 마음과 정신의 수준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돈도 되지 않을 것 같으며 효율도 낮아보이는 이 행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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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에 보면 통일부 장관이라는 자가 강연을 통해 공공연하게 김정일의 건강과 정신이상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누가 미친 것인지 모르겠다. 통일이 화해와 협력의 의미로 쓰이던 시대는 지나간 모양이다. 오로지 서로를 멸망시키겠다는 식의 증오감만이 팽배해 있다.
 
이 세분의 순례자가 망배단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도 이 기막힌 현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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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안은 회향식에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그 대략의 내용은 이랬다.

이 길고도 긴 길을 하루 천 번 이상 아스팔트에 몸을 던져
기고 또 기어서 임진각 망배단까지 왔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이 기막힌 역주행의 시대, 소통불능 미친 정권은 막가파식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전쟁위협은 높아졌으며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죽은자들의 아들마저 오히려 살인혐의를 뒤집어씌워 가두려고 하고 있다. 국민에게 사과하고 철회하겠다던 이른바 대운하를 4대강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간판만 바꿔 추진하는가 하면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교육정책, 종교갈등을 부추기는 등  순례를 시작할 때보다도 세상은 더욱 위태로워졌으며 공생공존의 생명원칙을 짓밟고 있다.
순례단은 실질적인 교류 협력을 증대시키는 대북정책의 전환 이른바 5대강살리기 사업의 중단, 불행한 죽음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한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명쾌한 진리를 외면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월 15일 묘향산 상악단에서 이러한 기원을 위해 천제를 올릴 때까지 다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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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단(지리산), 계룡산(중악단), 상악단(묘향산)은 예부터 조상들이 천제를 지낼 때 세 곳을 돌며 간절히 기원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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