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연휴를 맞아 국토종주를 결심하고 떠났지만, 

도중에 친구 아버님 부고를 받고 대구에서 돌아와야 했다. 

 

지난 2013년 시코쿠섬 88개 사찰 순례 이후 처음 떠난 장거리 라이딩. 

방치돼 있던 자전거를 다시 정비하고 늘어진 근육을 깨우고

무엇인가,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듯한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한 여행이었다. 

 

- 5월 3일~ 5월 5일 13:00 

- 서울 세검정~충주 앙성 능암온천(1박)~ 상주 자전거민박(2박)~ 대구 강정보, 대구서부고속터미널  

- 주행거리 약 400 Km

 

5월 3일 아침 7시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출발해 야심차게 부암동 고개를 넘어 청운동으로 내달리던 중 

뒷바퀴 흙받이가 덜렁거리면서 뒷바퀴를 간섭해 주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출발선에서 넘어진 꼴이라 사기가 꺾였다.

겨우 달릴 수 있게 지탱하고 용산 바이클리로. 

개점시간이 11시라고 돼 있어 옆에 있는 노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출발이 늦어진 일도 자전거 트러블이 조기에 드러난 일도 다 무엇인가 뜻이 있으려니... 

 

다행히 10시경 출근하시는 트랄라님을 만났다. 문제가 된 흙받이뿐만 아니라 

스포크 장력까지 꼼꼼하게 손 봐주셨다. 늘 그렇듯이 정말 감사합니다.TT  

 

트랄라님이 일일이 나사를 풀고 제 자리에 끼우며 조이는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이 없었나? 비로소 돌아보게 되었다. 

싯포스트에 달린 백에 멀티공구가 들어있었지만 ... 그만큼 나는 자전거와 멀어져 있었다. 

오전 11시. 출발이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내심 첫날 목표로 한 충주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  

자전거 타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 
양수리까지는 가벼운 하이킹을 하듯 달렸다. 

 

오후 1시 양수리에 도착, 점심을 먹고 출발. 

양수리에서 양평이 그리 먼지도 잘 몰랐다. 수 많은 터널을 지나고 해가 설핏 기울 무렵 

양평 미술관 인증센터 오후 2시30분 도착. 

 

아이들 어릴 때 10년 동안 양평 인근에서 살았기에 옛 생각이 많이 났다. 

서른 중반에, 도시를 벗어나 무엇인가 우리 방식으로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겠다고 겁없이 

시골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잘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의 기질적인 문제인지, 그 무렵 일요일 저녁이면 어떤 우울감이 밀려들곤 하던 기억. 

무엇인가 왁자하고 떠들썩한 도시의 삶으로 부터 유폐된 기분.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양평에서 이포로 가는 길은 더 없이 아름답다. 

 

이포보 인증센터 오후 3시 30분. 

아무래도 충주나 수안보까지 가는 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주 인근에 강에서 퍼올린 모래들. 이른바 4대강 사업의 흔적이다. 

역사가 평가하겠지. 이 무모한 국토 개조 사업에 대해. 

강원도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천보 오후 5시. 이제 어디서 숙박을 할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해가 지면서 조금씩 초조해지긴 했지만 해질녘 남한강은 고적하고 아름다웠다. 

트랄라님이 떠나는 내게 톡으로 국토를 천천히 감상하라시던 말씀...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우리 국토에 대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만이 아니라 이름난 관광지만이 아니라

우리 국토도 무척 아름답구나...


첫날 샤오미스마트폰에 나타난 주행거리 156km. 

능암온천 주변 무인텔에서 잤다. 

식당에 물어보니 새로 문 연 무인텔이 깨끗할 것이라고 해서... 

그러나 자전거여행자가 혼자 자기에는 비쌌고(5만원)

 

축협 고기매장에서 고기를 사서 인근식당에 가 

이른바 상차림비(4천원)를 받고 구워먹는 시스템인데 음식은 형편없고 

1인이 가도 2인분 차림비가 기본이며, 된장찌개 공깃밥 각각 다 돈을 계산하게 돼 있어 

나올때 보니 형편없는 식사에 고깃값을 포함해 거의 5만원 지불한 한 꼴이 되었다.  

 

어색한 분위기의 무인텔도 편안치 않았다. 

아침 7시 길을 나섰다.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 풀잎에 맺힌 이슬. 

청량했다. 간밤의 어수선한 잠자리를 충분히 위로해주는 아침 라이딩. 

그런데 같은 충주라고 해도 앙성에서 충주, 충주에서 수안보가 이리 멀 줄이야
탄금대 인증센터 오전 8시 30분 

 


수안보에서 올갱이 해장국을 먹고 11시 15분 다시 출발. 

이후로 줄곧 오르막 구간이 시작되면서  

국토종주 구간의 상징적인 고난구간 소조령과 이화령을 넘었다. 


소조령 11시45분. 


이화령 정상까지 5.2km 업힐. 

자! 가보자. 


한 발 한 발이 고통스러웠지만 숙명처럼 견디며 페달을 밟아가니 고갯마루에 도달했다.

사는 일도 그렇겠지.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묵묵히 꾸준하게 ...

이화령 도착12:40 
까막득하게 이화령 터널을 통과하는 차들이 내려다 보였다.

한 시간 남짓 거친 숨을토하며 패달을 밟아 

업힐 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13:05 다시 출발. 


고갯마루를 지나면 경상북도 문경이다. 백두대간을 넘은 것이다. 

 


보상처럼 주어진 내리막길을 달려 

순식간에 문경을 통과하고 불정역 인증센터 14:20 

 


오후로 접어들며 볕이 뜨거워졌다.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날씨. 


문경을 지날무렵, 아들 3형제가 모두 미국에 체류중인 고등학교 동창 아버님 부음을 받았다. 

유년시절 추억을 고스란히 공유한 친구.

 

자전거로 출발하던 아침에, 아버님이 위독하신 것 같아 급히 

뉴욕에서 티켓을 끊었다고 전갈이 왔었고, 며칠은 버텨주실 것 같아 

종주 마치고 서울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바 있었다. 

발인 전에 서울로 돌아가 함께 장례를 치러야 겠다. 

 

부음을 받은 뒤로는 자전거 주행에 마음이 집중되지도 않았다. 

다음날 오후 대구까지 가서 상경하면 친구가 도착할 시간까지 빈소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종주는 중단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상풍교에서 상주보까지 하도 고난의 오르막이 있다고 해서

상풍교를 건너 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는 자전거 도로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상주보 도착 17:30. 

 

 

둘쨋날 달린 거리 약 140km

 

탄금대 인증센터부터 홍보물이 붙어있던 '상주자전거민박'에 전화해서 숙소를 예약했다.

자전거길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트럭으로 픽업을 하러 오고, 저녁과 아침 식사도 만족스러웠다. 

 

 

여섯 명씩 이층침대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형 숙소는 숙박비(2식 포함 3만원)를 생각하면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다만, 두 분이 하도 코를 심하게 곯아 잠을 설쳤다. 고된 일정을 소화한 이들의 단잠이다. 

잠이 깰 따마다 거실에 나갔다가 마당에 나갔다 하면서 밤을 보냈다. 

다시 묵게 된다면 귀마개를 준비해야 겠다. 

아침 7시 민박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는 역시 상쾌하다. 

대구 강정보까지 100km 남짓이라고 하니 마음이 조금 느긋해졌다. 

오후 4시 버스를 예약하고 


유장한 낙동강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낙단보를 지나고 구미보를 지나. 

 

구미에서 한 차례 길을 잃고 시내로 한 시간간 가까이 헤맨 끝에

 다시 강변길을 찾아 나온 뒤. 

 

 

이팝나무, 언뜻 보기에 라벤더인가 착각하게 되는 보라색 갈퀴나물꽃이 지천인 

강변길을 달려... 


낙동강 하구둑까지 남은 거리 275km 

예정대로라면 1박 2일을 더 달려 완주를 했을 테지만... 

버스 시간을 감안하며 천천히 달렸다. 

어린이날이기도 한 일요일, 대구에서 출발했지 싶은 라이더들이 많았다. 


12:00  성주대교 공사현장 아래 

트럭 노점에서 3천원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13:10  잠정 중단지점으로 잡은 강정고령보... 도착. 

쉴 때마다 마주쳤던 종주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셋째날 상주 자건거민박~ 강정보  85km

나는 왼쪽으로 금호강 자전거길로 꺾어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지방국도로 접어든 듯

풍경도 달리는 이들도 분위기가 다르다. 



금호강을 끼고 20km 남짓 달려 

염색공단 인근에서 자전거길읏 벗어나 

14:40  서대구고속터미널 도착 

15:20  프리미엄고속버스가 있다 해 표를 바꾸고 탑승 

  

짧았던 2박 2.5일의 자전거 여행은 이렇게 마쳤다. 

작은 언덕을 오를 때에도 나의 엔진은 허덕거렸다. 다시 근육을 당기고 

더 자주 달릴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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