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86km : 다카마쓰 토요코인호텔~ 도쿠시마 달맞이언덕 텐트촌 (츠키미가오카 月見ヶ丘海岸)

 

 

본격 자전거 여행 첫 날.

무척 피곤했지만 잠 못들고 뒤척이다 늦게 잠들었는데도 4시 경 잠이 깼다. 긴장해 있었다. 짐을 다시 풀고 꾸리고, 7시 경 1층 로비에 내려가 주먹밥과 된장국, 감자셀러드와 계란말이, 단호박과 해조류 초절임 등. 입맛이 없었지만 달리면서 후회할 게 분명해  억지로 라도 먹어두었다. 그러나, 여행 마친 뒤에 이 사진 보면서 웃었다. 달리는 중에는 적어도 한 끼에 이보다는 세배는 더 먹었으니 말이다.


 

 패니어 네 개와 랙팩, 핸들바백까지 모두 다섯 개의 가방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보고 대충 손으로 들어보며 무게를 맞추고 이러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났다.  결국 아홉시 다 돼 호텔을 나섰다. 뙤약볕에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 갑자기 한 여름 복판으로 밀려들어와 있었다.  


호텔문을 나서니 방향조차 가늠하기 막막했다. 목표는 시코쿠 88개 사찰 중 1번 사찰 료젠지(靈山寺)에서 10km쯤 떨어져 있는 도쿠시마(德島) 공항 옆 바닷가 달맞이언덕 캠핑장. 이 낭만적인 이름의 바닷가 캠핑장이 어떤 곳일까? 이름만으로는  살짝 기대도 됐다. 


 

출발하기 전, 패니어를 달려고보니 앞쪽 오른쪽 랙 나사가 헐거웠다. 렌치로 조여보려고 해서도 계속 겉돌기만 했다. 일단 지도를 보면서, 해안을 따라 나 있는 11번 도로는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 남쪽으로 가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 뒤 12번, 10번 도로 등을 조합해가며 도쿠시마로 가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길가에 자전거포가 있으며 들러서 전반적으로 점검을 받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를 만났다. 나사 이야기도 하고  점검을 부탁했다. 나사 몇개를 조이더니 1천엔이라고 했다.  이 정도였으면 내가 스스로 한번 더 꼼꼼히 살펴도 되는 것이었는데...하는 후회,이미 늦었다.

 

자전거포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어보니 계속 남쪽으로 가다보면192번 도로가 있고, 계속 가다 강을 건넌 뒤193번 도로를 타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192번도 193번도 찾지 못했다. 오르락 내리락, 첫날답게 오전 내 무척 헤맸다. 10번 도로를 타고 도쿠시마가 있는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일관되게 달릴 수 있게 된 건 정오가 다 되어서였다.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GPS의 표시도 달리는만큼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비로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게 됐다.

그런데, 계속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자전거를 멈추고  혹시 앞 펜다가 바퀴에 긁히는지 살펴도 그런 낌새는 없다.  좀 더 달리면서 보니 뒷 팬다를 고정해놓은 나사가  빠져 달아나고 랙팩을 묶어둔 줄도 풀려 뒷바퀴에 마찰되면서 긁히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긴장한 때문이리라. 배도 고팠다. 어디서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처음에는 막막했다.

 

정오가 조금 넘어,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되는  365일 싸다는 코스모스 마트에 들어가 더위도 식히고,  사이다, 우유, 빵과 잼을 사서  그늘에 앉아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랙팩에 넣은 뒤 다시 달렸다.

 

다카마쓰를 벗어나 사누키시를 지나고... 사누키를 거의 다  벗어난 지점에서 오후 세 시경 우동을 사 먹었다. 맑은 국물에 국수가닥 뿐인데 맛은 괜찮았다. 국수만으로는 허전해서 튀김과 주먹밥까지 합쳐서 600엔.  



우동집에서 물통에 얼음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출발. 볕이 무척 따가웠다. 견딜만한 언덕들이 나타나고 꾸준히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평균속도 30Km 가까이 꽤 부지런히 달렸다. 긴장감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다.


 

바다다. 내륙의 단거리 길찾기를 포기하고 해안길을 달리기로 했다. 얼핏 지도에 보기에 1번 사찰 료젠지(靈山寺)로 가려면  히가시카가와 시 (東かがわ市)를 지난 뒤에 무척 고된 경사가 가파른 산을 넘어야 하지만, 어차피 첫날은 절에 갈 게 아니라 캠핑장이 있다는 도쿠시마공항 인근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계속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국도 변에 자전거 도로는 잘 정비돼 있었다. 오가는 차들 말고 사람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도쿠시마에 거의 다 도달해, 해안가 약수터를 발견했다. 다시 수통에 물을 채웠다. 물통을 가득 싣고와 물을 긷고 있던 아주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어디로 가냐고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외진 도로변, 시멘트 옹벽안에 있는 약수터에 둘만 있는 걸 조금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서... 얼른 자리를 비켜드렸다. 

 

도쿠시마에 들어선 뒤, 정신없이 국도 갓길에 난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다보니 아래 사진처럼 길을 내려서야 하는 순간도 있었다.

 

 

 

야영장까지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시내를 가로지르고, 공단을 지나서

 

 

마을과는 동떨어진 공항 인근 동네...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항 안내판에 도쿠시마아와오도리공향( 徳島阿波おどり空港)이라고 쓰여있다. 도쿠시마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댄스파티가 '아와오도리'라고 한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달맞이 언덕 캠프촌에 6시 도착했다. 빈 캠프장 철문이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무단 캠프를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맥이 빠졌다. 다행히 전화번호가 있길래,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 입니다. 캠핑을 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가능하지만, 내가 캠프장까지 가려면 30분 정도 걸린다. 괜찮냐? 텐트는 가지고 있냐?  일박에 600엔이다. " 

 


어찌되었든, 첫날 캠핑이 가능할 것 같아 마음이 느긋해졌다. 기다리고 있으니 노년의 내외가 작은 트럭을 타고 왔다. 600엔을 내고 아무데나 편한데다 텐트를 치라고 해서 샤워장,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쳤다. 그런데 사워를 하려면 100엔 더 내야 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드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서둘러 샤워를 하라고 했다. 샤워를 하고 옷도 갈아 입었다. 주인 내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몸과 마음이 지쳐, 밥을 간단히 차려 먹으려고보니,  라이터가 없어 버너를 켤 수 없었다. 

 

공단을 가로질러 왕복 8킬로미터 .. 편의점 로손을 찾아 가스라이터를 사가지고 다시 아무도 없는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를 겨우 찾아  핸드폰 등을 충전해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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