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ㅡ5/30 목   니요도강 (仁淀川)  가다(加田)캠핑장~ 이와모토지岩本寺 뒤 리버파크캠프장

 

운행거리:  126 km


새벽 5시 잠이 깼다.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잤다. 텐트 지퍼를 내리자 아름다운 강변 풍경에 와 ...하고 절로 탄성이 나왔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이런 시각에 이렇게 비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잠을 깨기는 어려웠겠지. 

 

여기도 화장실은 잘 관리돼 있다.

 낙엽이 몇개 굴러 들어가 있을 뿐 무심히 방치된 흔적은 없다. 유명한 관광지나 대로변의 휴게소는 우리나라도 화장실 을 잘 관리하고 있지만,  이 외딴 시골... 야영객이라고는 나 한 사람뿐인데... 마치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청소도 깨끗이 돼 있고 ... 조금 셈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예외 없이 여분의 예비 화장지까지 갖춰둔 게 ... 조금 부러운 지경이었다. 어떤 시스템이 이렇게 치밀한 관리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물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변으로 왜가리나 황새 같은 큰 물새들이 느릿느릿 날아다니다 물 위로 내려앉아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텐트 너머로 간밤에 홀로 어둠 속에서 깨벗고 샤워를 한 식수대도 보인다. 



다섯 시 반이 넘으니 인근 주민들이 한두 명 플라이낚시를 하러 강변으로 왔다. 그들의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집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이 남아있는 것도... 새벽 강에 발 담그고 무심히 낙싯줄을 던지는 그 고요한 심정도...   



아침은 빵을 구워 먹고 일부는 도시락으로... 어제 저녁에 지은 남은 밥과 함께 도시락 싸서 일찍 떠나기로 했다. 



일본에서 텐트를 칠 때 가장 애를 먹은 것은... 땅들이 대개 무른 흙이 아니라 자잘한 현무암(일 것으로 추측되는) 화산암들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지형이라 텐트팩을 박기 힘들었다는 점...  



팩 박기를 포기하고 주변에서 돌을 주워다가 묶는 식으로... 대신했다. 


짐 정리 모두 마치니 8시.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다. 다시 출발. 36번 쇼류지(靑龍寺)까지는 강변 야영장에서 직선거리로 25km 가량 떨어져 있다. 어제 저녁에 달려온  39번 강변길을 거슬러 달려...다시 바닷가까지 달려간 뒤 바다를 건너야 한다. 출근길 차량들이 분주한 도로를 나 홀로... 이물질처럼 뒤섞여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 시간 가량 달린 뒤 토사(土佐)  시내에 도달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거리는 일 순간 고요해졌다.

션샤인마트가 막 문을 열고 있길래... 들러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사이클 패딩 바지가 아무래도 민망해서 덧 입기 위해 헐렁한 7부 바지(990엔)를 하나 샀다. 사찰에서는사타구니가 돌출된 라이딩복을 입고 돌아다니기가 아무래도 민망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아들들이 민소매 속옷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마뜩찮아 하셨다.  


돈암동 산동네에 살던 유년시절에는 늘 문간방을 남에게 세를 주고 두 가구가 어울려 살았는데... 사는 형편이 빤히 들여다보일 만큼... 사생활이랄 것도 없는 그런 시대였다.  하긴, 60년대 중후반... 70년대 초... 전쟁이 끝난 지 불과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는 시절이었다.  



새로 산 바지를 라이딩 바지 위에 덧 입고...  오렌지쥬스 두 팩(180엔)을 사서 패니어에 넣고(자판기에서는 보통 한 병에 140엔 정도였다) 하드(100엔)를 사서 쇼핑센터앞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쉬는 김에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홉 시 반. 아내의 목소리가 잠 기운이 묻어있다.  아이들 등교 시킨 뒤에 잠시 자다 깼다고 했다. 집을 팔고 셋집을 구하는 문제로 이사 날짜가 안 맞고... 셋집을 구하는 일에도 우여곡절이 있어 며칠 속을 끓였다고 했다. 

  

36번 쇼류지(靑龍寺)는 마치 안면도처럼 시코쿠 섬에 나란히 돌출한 반도에 있다. 오른쪽 끝은 섬에 붙어 있지만 언뜻 보기에 시코쿠 본 섬과 내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처럼 보이는 곳이다. 바다를 건너는 해안까지... 두 개의 길을 두고 잠시 망설였다. 조금 가깝지만 산을 넘어가야 할 것 같은 39번 도로와 좌측 강변을 따라 해안을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 282번 도로... 도저히 산을 넘을 자신이 없어... 10km 돌아가더라도 강변과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여행중에 가장 요긴했던 편의점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자주 뜨이던 로손이다. 보는 것처럼 차량이 수십 대는 더 주차할 수 있을 것처럼... 널찍한 주차장을 가지고 있다. 대개가 그랬다. 



농촌지역이라 그런지... 동네마다 이런 코인정미기가 있었다. 벼농가들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쌀을 찧어 먹으면 편리할 것 같았다.  자동세탁기들이 즐비한... 코인란도리와 코인 정미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시설들이다.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우사(宇佐) 항을 지나   다시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우사대교가 나왔다.  어제 건너던 그 무시무시한 다리에 비하면 비교적 건널 만 했다... 다리를 다 건넌 지점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와 마주쳤다. 왜 이쪽 방향으로 되걸어오느냐고 물어보니... 반대쪽으로 이 반도를 빠져나가는 요코나미(横浪) 스카이라인쪽은 아무래도 경사가 가팔라서 되돌아나와 해안길을 따라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것은 내게도 중요한 정보였다. 



터널을 지나면 바다가 나오고 왼편으로 몇백미터 달리지 않아 36번 쇼류지(靑龍寺)가 있다. 이 절은 코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던 당시 장안(長安)의 청룡사(靑龍寺)에서 중국 진언종의 창시자 혜과(惠果:746~805)를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되어 일본 밀교의 창시자 되었다. 그는 일본에도 장안에 있던 청룡사와 같은 절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에 바다 건너로 '독고저(불구... 안내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를 던졌는데..훗날 이 자리에서 발견하고... 이곳에 부동명왕을 조각하고 이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부동명왕은... 해상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져... 항해를 앞둔 원양어선 선원들이 이곳에 참배하곤 한다고... 



170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본당이 있다. 중간에 이렇게 꾸며둔 불상과 부도 같은 것들이 있다. 



본당은 언덕 위 계단 위에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향을 네 촉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부모님과 두 분 형님을 위해서였다. 계단 아래서 잠시 쉬다가 10시 50분 다시 출발...




 아까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일러준 정보대로 다시 바닷가로 돌아나와 다리를 건너 내해를 끼고 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거대한 종려나무들이 늘어선... 이국적인 해안길...  을 다시 되돌아 나와... 


호수갈이 잔잔한 내해를 끼고 다시 해안길을 달렸다. 내가 시코쿠 순례를 떠나겠다고 하니... 대학 동기인 시인 박시우는... '두멍물같은 시코쿠 바닷길을 걷겠구나...' 하는 문자를 보내와서... 나는 조금 의아했었다. 어디서 무얼 보았길래... 시코쿠 바다를 두멍물(물을 길어둔 큰 독 속에 담긴 물)같다고 했을까... 그런데...딱 이 지역이 그랬다 비릿한 갯내음과 아무렇게 바닷가에 널어 놓은 어구들...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막막한 길...을 30km 달린 뒤에야... 시가지가 나온다고... GPS는 냉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완만한 오르내림. 사람도 차도 왕래가 만날 수 없었다.  파도조차 없는 그 바다는 바다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그래 ... 두멍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나. 56번 도로를 만날 때까지 한참을 달렸다. 



낮 12시  특색 없는 사이렌소리 시보가 울렸다. 쨍쨍한 햇볕도 아니고... 뭉근하게 달궈진 도로가 맥을 빠지게 했다. 기력이 빠진 것 같아 고갯길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길에 선 채 토스트와 레몬을 꺼내 먹었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길 밑으로 짚으로 멀칭한 밭에서 아주머니가 밭을 돌보고 있다. 비닐 대신 짚으로 정성껏 멀칭을 해둔 밭이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 농사규모라면...내다 팔 정도는 아닐 테고... 식구들끼리 나눠먹을 텃밭이라고 여겨졌다. 


자기 나라 농사가 온 국민의 삶의 근간이던 데에서... 무슨 화훼 취미처럼 전락한 현실이... 이 나라나 우리나라나... 


언덕을 위에는 또 터널이 있었다. 터널을 넘어 고갯길을 내려서니 스미토모 시멘트공장 직전에  휴식소가 있어 잠시 쉬면서 ...나그네들이 남겨놓은 기록장을 읽어보았다. 프랑스 사람이 짤막한 영어로 남겨둔 기록도 있었다. 휴식소에 붙어 있는 주택에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배려해주고... 물도 받아갈 수 있게 해 줘 감사하다는 내용이 대부분 이었다. 나도 짤막한 일본어로... 야마시타상이 궁금해 안부를 묻는 내용을 남겼다. 휴식소에 있는 홍보물에 "최근 이 지역에  신흥종교를 권유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대응하는 데에는  무시하는 게  제일" 이라고. 적혀있다.  신흥종교... 뭘 말하는 것일까. 


쉬는 김에 도시락으로 싸온 주먹밥까지 마저 먹고. 오후 1시 경 다시 출발. 이 때까지만 해도 다가오는 고난을 충분히 예감하지 못했다.  조용한  스사키(須崎)시 시가지. 또다시 비가 뿌리다 개다 한다.  모스햄버거가 궁금해서 들어가 한 개(320엔) 사서 랙팩에 넣었다. 비상식량이다. 어쩐지 먹기도 전에 든든해졌다.   



 다시 비가 흩뿌린다. 사기도 떨어지고 기운도 빠진다. 스사키 시나를  벗어나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미치노에키에서 중년의 사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꺼운 안경에 지식인풍의 사내다.  그는 그 짧은 시간에 내게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이런 소리를 했다. 확연히...3,4년 전에 일본에 왔을 때 배용준이나 대장금에 열광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보이던 과장된 호감과... 올해 일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무래도 역사 문제가 있으니까 무시할 순 없겠죠. 그런데 요즘은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특히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해 특별히 나쁜 감정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무관심하다고 하는 쪽이 ... " 


그는 80리터 대형 배낭을 매고 있었다. 20일 가량 걸었을 텐데 지친 기색도 없다. 길에서 만난  대개의 사람들이 그랬다. 일본이 한국을 싫어한다면... 그건 단순히 기호의 문제겠지만... 한국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그럴 만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물론 과거에 집착하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은 과거에 대해 진지한 반성도 사과도...  청산도 하지 않고 있잖은가... 



날이 흐려지고 있다.  이미 잠자리 찾아야할 시간 아닌가 초조해지면서 기운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해안길을 벗어나면서   핸로미치 스티커는 56번 국도를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래 국도를 따라 달리는 것보다는 이런 길이 좋지... 내심 만족스러워하며 조용한 시골마을 길을 10 km가량 달렸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한 할아버지가 차를 세우더니  말을 건다.  



"어디 가고 있소? "  "이와모토지(岩本寺)에 갑니다." "여기는 걷는 순례 길이야. 가이당이 많은 산이라 자전거는 무리야. 갈 수 없어." 


벌써 국도를 벗어나 10km는 달려온 상황이라 기가 막혔다.  "우와! 그래요?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빠꾸해서 56번 도로(공중에 높이 떠 있는 고가도로를 가리키며) 로 가라. " 


"이런 제길 제길 ... 우라질..."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발길을 돌렸다. 



스스로의 얕은 수를 원망하면서 다시 56번 국도로 돌아와 운명처럼 ... 미시령이나 대관령처럼 아스라히 산 위로 뻗어있는 오르막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예의 숨이 가빠오고 평소에 겪어본 적 없도록...엄청난 땀이 쏟아진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싶도록...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땀이 흘러내린다. 걱정이 돼 멈춰 서서 정제 식염포도당을 몇 알 먹고 물을 나눠서 마셨다.   


기분으로는 대관령보다도 두 배는 긴 것 같은 오르막이다. 나는 이 고난이 언제 끝나게 될지... 짐작할 수 있는 조그만 단서라도 찾으려고 애가 탄다. 오르막 저속차량 전용차선이... 몇 미터 앞에서 끝난다는 안내판을 읽으면... 아, 이제 오르막이 끝나나보다...하면서 오른다. 그러나 몇 번이나 저속차량 전용차선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다 타다를 반복하면서 울고 싶은 심정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저 아스라한 길들을 내가 올라왔단 말인가... 


그 때 반대차선 ...위쪽에서 새카맣게 그을은 젊은이가 자전거에 패니어를 주렁주렁 매달고...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얼굴이 까맣게 탄 탓에 유난히 흰 이가 두드러져 만화  주인공 같다.  당신은 내리막을 한참 달리겠구나.  

오르고 오르다보니... 눈 아래 까마득하게 산봉우리들이 펼쳐진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고갯마루에 도달했다.  


끝나지 않는 고난은 없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이 자전거를 끌고 이 산을 올랐구나... 감격에 겨워 있는 그 순간이었다.  



순진한 표정의 중년 남자와 화장이 짙은 할머니가 너무나 환히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다. 몇마디 하다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니 유관순 조용필 자기들이 아는 한국사람들 이를을 나열하면서 여러가지 말들을 한다. 한국사람이라 반갑다는 것인지... 순례자라서 반갑다는 것인지... 


와카소지 아키상 64 도쿠히로세츠코 상... 자신들의 이름을 써서 보여준다. 남자인 와카소지아키씨는... 옆에 있는 도쿠히로세츠코씨가 부인이 아니라 ... 여자친구... '거루후렌도'라고 했다. 누가 물어봤나?... 그냥 비실비실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는 높은 고개를 넘어섰다는 감격 때문에...혼자만의 세레모니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순간을 이들의 떠들썩한 수다가 방해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속내를 드러냈다. 자신들은 고치시 남묘호랑개교 소속이라고... 아 참 이 사람들이... 휴식소에 적혀 있던 요주의 신흥종교 사람들이구나... 나는 소위 말하는 이단시 되는 신흥종교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나 신념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규범과 도덕을 파괴할 때 뿐이어야 한다고... 우리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정도의 교양은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소박한 신념이다. ... 



내게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버젓이 대형교회나 사찰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맹신의 태도들이다.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종종 '정말 믿느냐?'고 묻곤 한다. 그 흔들림 없는... 남들에게 강요하다시피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 확신에 찬 태도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 사회적으로 핍박 받는... 이단시 되는 신흥종교 사람들을 일상에서 직접 만날 기회는 드물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최인석의 소설 '세상의 다리밑'에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고...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잠시 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나... 신혼 때 이웃에 살던 부부를 보아서도 알지만... 그들이 남에게 해꼬지를 할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80년대...온 세상을 건질 것처럼 허세를 부리던 우리 주변의 운동권 출신들에 비해서... 그들은 신념을 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직접 만난 그들은 대개가... 존경스러운 정도로 건강한 생활인들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는... 일본 천리교 (남묘호랑개교) 사람들의 떠들썩한 선교를 오래 듣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 네 시가 다 돼 가고 있는데... 당장에 어디서 잘 것인지도 정하지 못해 초조한 탓도 있었고... 내게 보였던 그 친절과 환대가...선교라는 목적을 감춘 수단적인 행위였단 말인가... 싶으니 어쩐지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보험영업을 하는 선후배들이나  다단계판매를 하는 이들에 대해서 느끼는 불편한 기분도 그런 것이었다. 이삼십 년 전부터 알아 온 이들에게 어느 순간 관계가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 들 때...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쓸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차 뒷좌석에서 빵 하나를 꺼내 내게 주면서... "남묘호랑개교는 세상의 가장 가치 있고 평화로운 상태로 당신을 이끌어 줄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어쨋든 감사한 일이다. 


진언을 외거나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번뇌를 끊을 수만 있다면... 매 순간 격랑이 이는 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되도록 티 안 나게... 가야 할 길이 바쁘다며... 작별을 고하고...  거의 울면서 올라야했던 높이를... 허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달려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분명한 진리는 우리가 중력에 얽매어 있다는 것 ...이로구나...  

내리막길은 한 동안 산길로 이어졌다.  한참 달려 내려가다가 만난 휴식소에서  잠시 쉬었다.  

미치노에키에서 도달하고 나니 이미 다섯 시가 다 돼간다. 너무 늦었다. 37번 사찰 이와모토지 (岩本寺)가 머지않은 시만토쵸( 四万十町) 마을에서 일단 장을 봤다. 대형할인점 마루나가에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는 아내의 충고대로 소고기200g을 780엔에 샀다. 반값도 안 되는 미국산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선택하지 않는 미국소를 일본에서 살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일본 국내산을 샀다. 


목표로 하고 있는 이와모토지 뒤편 근 20km 뒤쪽에 있는 야영장까지 갈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은 안 섰지만...일단 야영 할 준비를 한 것이다. 장을 보고 나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지... 56번 국도에서 우회전 해 1km 남짓 들어간 곳에 이와모토지가 있었다. 이미 다섯시가 지났기 때문에 절을 관리하는 할머니가 납경을 받겠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답하고... 그저 내가 가지고 온 향을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절을 나섰다.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절앞에서 도보 순례를 하고 있는 젊은이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도쿄의 신주쿠에 산다며... 내게  왜 왔냐고... ' 조용히 생각도 하고 삶을 돌아보기도 하려고....' 대충 답을 했더니...그는 미소를 지으며 핸로들이 다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 짧은 순간에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냐고... 김기덕 감독은 오히려 해외에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했더니 자기도 안다고 했다.  나도 일본 영화 중에서 '카모메식당'이나 '굿 바이'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는 또 씩 웃으면서 그런 영화도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디서 잘 거냐고 물으니 자기는 5km  떨어진  민슈쿠(民宿)예약을 해두었다고... 나보고도  어디서 잘 거냐고... '나는 15km 떨어진 캠핑장에 간다고...  아... 그러냐... 잘 가라... 함내요... 다들 쿨하다... 마음에 든다. 


 

인사를 나누고 그와 헤어졌다. 날도 어두워지고 있는데다가 비도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캠핑장이 있다는 방향으로 일단 계속 달렸다.  순례길과는 정 반대라서 민숙이나 여관같은 게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그 방향에 미치노 에키가 있다고 표시돼 있으니 야영을 못하게 되면 미찌노에키 화장실 옆에서라도 야영을 해야겠다 싶었다. 


이와모토지에서 내륙쪽으로 뻗은 시만토(四万十) 강을 따라 뻗어 있는 381번 도로... 적막한 시골길을...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달렸다. 비를 피할 잠자리를 못 만난다면... 어쩌지...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룻밤 잠을 안 잔다고 무슨 대수랴... 이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달리고 달렸다. GPS 상에는 두 개의 야영장이 1~2 km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했다. 



리버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저문 시간이었다. 사지은 다음날 아침에 찍은 광경이다. 


드디어 미찌노에키도 두 개의 야영장도 근거리에 있는  시만토다이쇼(四万十大正)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첫번째 야영장은 언덕 위에 있었다. 올라가 보았지만... 청소년 수련시설은 있는데... 관리인을 만날 수 없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언덕을 내려와 다시 다리를 건너 GPS 가리키고 있는 강 건너 리버파크를 찾아갔다... 


어두워져... 라이트를 켜고 들어가야 했다.  숲은 짙어지지만 사람의 기척은 볼 수가 없어 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2~3 km 강변을 따라 들어간 지점에... 야영장이 있었다. 깊숙이에 사람의 기척은 느낄 수 없지만... 텐트도 한동 세워져 있었다. 일단 여기서 잠은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금 떨어진 공터에 지붕이 있는 바베큐장 안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습기를 머금은 잡초 밭 위에 텐트를 치자니 깨름칙 했기 때문이다. 


텐트부터 치고...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관리동에.. 사람은 없고.. 샤워장이 있었다. 코인샤워... 200엔을 넣으면 더운물이 나오게 돼 있어... 일단 샤워를 했다. 텐트도 설치했고... 일단 부러울 게 없는 밤이다. 저녁은 헤드램프를 켜고... 소고기를 구워... 천천히... 먹었다.  고되고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일단 잠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것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서움 같은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감정일 수 있었다. 



지출 :  토사시 선샤인마트 1400(7부바지 990 하드 100 오렌지쥬스 2 180 
절앞 무인판매대 오렌지5개 200  모스버거 320 로손 초코우유 150 
37번 절 앞 마트 1250엔 (소고기 780 우유 2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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