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3일, 무위당 선생님 15주기 행사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 무위당선생이 26살 때 스스로 설립한 원주 대성학교 교정에서 교훈'참되자'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은 '좁쌀만인계')

그 즈음 주말마다 비가 내렸고 그날도 원주 가는 길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모내기철이라 달게 느껴지는 비였다. 무위당 선생님 추모행가 열리는 5월에 원주에 오기 시작 한 지 5년쯤 되었다.

나는 선생님 살아계실 때 직접 뵐 기회가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기록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읽은 것도 200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이 엷고 어느 모로 보나 얼띠기만 한 내가 추모행사에 참여하는 게 어쭙잖게 여겨져 약간 망설여지는 면도 있었다. 그러나 원주에 가면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그 독특한 호방함,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는 분위기가 늘 좋았다.
토요일 오후 상지대에서 열린 추모행사는 이미 4월에 광주에서 무위당선생 서화전이 열린 탓인지, 조금 조촐하게 진행된 느낌이었다.

'생명운동 활성화'를 위한 대화마당에서 마리학교 교장을 지낸 황선진 선생과 한살림강릉의 김대진 상무가 발제를 했다.  황선진 선생은 무위당 선생이 '운동한다'고 내걸고 사시지 않은 것처럼 생명평화 뒤에 굳이 운동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며 생명평화운동은 독자적으로 대안적인 가치와 체계를 지향하되 기존의 체계를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오가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대진 상무는 생평평화운동이 먼 훗날 생명평화세상이 온 뒤에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서 행복한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토론에 나선 이들 가운데는 이혜숙 전 부산생협 이사장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협 활동을 하면서 어느 순간, 스스로 '개인 앞에 조직을 앞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던 말, 그리고 일본에 가서 만난 생협의 노 활동가에게 조직활동을 오랜 동안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나 질문을 하니까 대답은 안 하면서 자꾸 '호호… 사람이 얼마나 다양하고 재미있던지…' 이런 말만 되풀이 하더라는 말.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떤 당위로 개인을 억누르는 운동이나 조직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오래 가더라도 사회에 그다지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들은 또다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원주로 내려가던 그날 아침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황망하고 어수선한 심정이었다. 그 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갑자기 수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퇴행적인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보기관이 전횡을 일삼고 개인의 의견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갇히는 그런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고자 하는 개인의 소망은 적어도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주변이 무사할 때나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닐까.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소박한 일상의 평화를 뿌리째 뒤흔드는 일들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무사함에 대해조차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다음 날, 구룡사 가는 길에 있는 소초면 장일순 선생 묘소에서 진행된 추모행사에서는 원주출신의 국악인 정유숙 선생이 단가 사철가와 춘향가 가운데 춘향이 옥에 갇힌 대목을 불렀다.
 


"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 왔건만은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노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누군들 삶이 속절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랴. 신록 짙어가는 무위당 선생 묘소에서 듣는 단가는 빈 가슴을 예리하게 찌르는 것 같았다.

원주에서 돌아온 지 꽤 시간 흘렀다. 세상은 예전처럼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무위당 선생의 말씀을 다시 찾아 읽어본다.

단체마다 시국선언을 하고 그 때문에 처벌을 받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무위당 선생은 유신반대 투쟁으로 사람들이 줄줄이 감옥에 갇힐 때 가만히 직장에 다니는 일이 죄 짓는 일 같다고 말하는 제자에게 ‘죄는 무슨 죄 월급 타면 감옥에 간 사람 옥바라지 좀 하면 되지 않겠어? 일선이 있으면 후방이 있는 법인데 후방 없는 일선이 있는가? 자네는 후방을 지켜줘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말씀하신 대목이 새롭게 읽힌다.

어쩌면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좀 더 쉬운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분노와 굴욕을 견디면서 심지를 세우고 삶을 꾸려가며 스스로의 생각대로 세상이 조금씩 변화되게 하는 일에 비하면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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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무위당 선생 추모행사가 원주에서 열렸다. 15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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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모였다.
지난 4월 광주에서 전시회가 열렸던 탓인지, 예년에 비해 관련 행사는 조촐했다.
'생명운동 활성화'를 주제로 전 마리학교 교장인 황선진 선생과 한살림 강릉의 김대진 상무가 발제를 했다. 
황선신 선생은 무위당이 '운동한다' 고 내걸면서 사시지 않은 것처럼 생명평화 뒤에 운동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대진 상무는 생평평화운동이 먼 훗날 생명평화세상이 온 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었면 좋겠다고 했다.

토론에 나선 이들 가운데는 이혜숙 전 부산생협 이사장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생협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개인 앞에 조직을 앞세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말, 그리고 일본에 가서 만난 노 활동가가 '호호 .. 사람이 얼마나 다양하고 재미있던지...' 이런 말만 되풀이 하더라는 말이 그랬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개인을 당위로 억누르는 운동, 조직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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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추모식때 묘소 근처의 논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이다. 해마다 보는 풍경이다.
장일순 선생 추모와 모내기는 어쩐지 잘 어울린다.
모를 내는 저 손이 안도감을 준다.
밥이 우주의 젖이라고 말한
해월 선생의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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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아래 나무그늘에서 판소리를 하는 정유숙 선생이 단가 '사철가'와 '춘향가' 가운데 춘향이 옥에 갇힌 대목을 불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음 날이라 분위기는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 버렸으니 ......"

사철가의 가사가 더욱 가슴을 파고 든다. 노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누군들 삶이 속절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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