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모의 자식이고 대개는 자식의 부모가 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는 주인공 옥스발(하비에르 바르뎀)의 아내가 흐느끼며  

‘아이들 원하는 걸 나는 해줄 수가 없어요’ 하던 말이다.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옥스발은, 전립선암이 손 쓸 수 없게 번져 죽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멘토인 여자 무당을 찾아가 어린 아이들을 두고 죽을 수 없다며 괴로워한다. 

무당은 옥스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미 죽음의 징조에 휩싸여 해줄 게 없으니 주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받아 들이라고 말한다.

‘아이는 네가 아니라 온 우주가 키우는 것을 알잖니... ’ 

옥스발은 말한다. 

‘온 우주가 월세를 내주지는 않아’ 

옥스발 역시 프랑코총통의 압제 때문에 멕시코로 도망 갔다가 2주만에 폐렴으로 죽었다는 아버지를...  당연히,  얼굴도 못 보고 자랐다. 그런 아버지를 연민하고, 한편으로는 아버지 부재상태에서 자라야했던 자신을 연민하고, 결국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 세상에 홀로 서야 할 고작 다섯 살인 아들과 열두어 살 딸 아이 때문에 괴로워한다.

자식에게는 할 수 있는 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모든 것을 해주려는 게 대개의 부모들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부모와 완전히 단절될 때 자식은 온전히 제 힘으로 세상에 선다. 과보호가 자식을 망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제 힘으로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위해 어떤 동물이 최선을 다해 능력을 기르고 땀을 쏟겠는가.  

어떤 술자리에선가 ...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물은 결핍감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라고 ...누구가 말했다. 그 말을 이해하더라도... 자식을 위해 일부러 불행한 가정환경을 조성하거나, 미리 사라져주려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부모는 애면글면하면서 간도 쓸게도 다 바쳐가며 자식을 위해 살다죽게 되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것은 인간이 정한 게 아니라 '온우주'가 그렇게 해놓은 것일 게다.

영화에는 돈이 파괴한 우울한 인간사가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떼죽음을 당해 해변에 주검으로 밀려온 고레떼처럼... 세네갈에서 건너와 경찰의 곤봉에 두들겨 맞으면서 언제 강제추방 당할지 모르는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 지하실에 폐기물처럼 널부러져 자면서 열 몇 시간씩 고된 노동을 감당하다 결국 가스중독으로 비참하게 떼죽음을 당하는 중국인 노동자들.

요근래 시네큐브에서 상영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유럽은 대개 잿빛 하늘 아래 암담한 풍경이 이어진다. 얼마전에 본 '웰컴'도 그랬고... 바르셀로나의 빈민가가 주 무대인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다양한 장치와 발언들이 모두,  "나는 어떤 부모의 자식이고 또 자식에게 어떤 부모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환호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고 아이가 아플 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 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감정이입이 돼 무시로 눈물이 주루륵 흐르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또 대개는 누군가를 자식으로 두고 있지 않은가.
부모들도 나처럼 자식에게 할 수 있는한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혜로운 무당이 하던 말처럼,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고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온 우주라는 사실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으랴.

밥상이 무너진 황량한 풍경... 

감독이 의도한 것이겠지만, 영화속에는 쓸쓸하고 황량한 밥상이 몇 차례 나온다. 아내가 없는 부엌에서,  해산물과 야채를 상상하는 아이들에게 그것처럼 여기라는 듯 말하며 쏟아붓던 시리얼에 설탕을 듬뿍듬뿍 뿌려대던 메마른 밥상.  그리고... 다시 ‘제대로’ 가족을 꾸려 살아보자고 재활의 의욕을 보이며 돌아온 아내가 차려주었다는 (영화에서는 냄비만 보이고 음식은 보여주지않았다) ‘맛없는 스파게티’.

다들 ‘먹고살자고’ 이 눈물세상을 견디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 저 세네갈 이주민들과 지하창고에서 떼로 잠을 자다 죽는 중국노동자들은 가족들과 단란한 밥상에 둘러앉을 수 있을까. 자본의 탐욕이 마을의 울타리와 가족을 무너뜨린 이 세상에서 그런 세계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영화는 이런 의문에 대한 비극적인 전망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희망하는 곳에 도달하기 전에...  누구나 그랬듯이 그냥 죽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눈 덮인 자작나무 숲에서 죽은 아비가 나타나 저 세계로 인도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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