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정1권~5권 /웨이웨이 글 선야오이 그림 송춘남 옮김 보리출판사

지난 여름...참 끔찍했다. 멈추지 않고 내리던 비...
그런 8월에, 윤구병 선생 인터뷰 하러갔다가
엉겁결에 받아온 다섯 권까지 소설 [대장정]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근심하면서 사나흘남짓 잠자기 전 침대맡에서 읽었다.
하룻밤을 새워 단숨에 다섯 권을 읽었다는 분들도 있었다.
워낙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 문장도 번역도 훌륭했지만,

한두 페이지 넘기면 끝없이 나오는 삽화들이
소설 속의 장면들과 인물들의 심경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주어
대장정을 하고 있는 주은래나 주덕 같은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손에 땀이 흐르고
때로는 분노하거나 환호하면서 순식간에 읽히는 것은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당연히...  
대장정은, 이북의 '불멸의 역사'시리즈들처럼 집권세력인 공산당이 자신들의 처지를 옹호하느라 쓴 것이기에, 그런 점에서는 조금 삐딱한 생각이 마음 속에서 슬몃 고개를 쳐든다.
말하자면 '관제'소설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수준이 있다.


우리 또래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도 대학 1,2학년때... 이영희선생의 [우상과 이성]이나 [전환시대의 논리]같은 책들에서 중국혁명을 만나고 에드가스노우의 [중국의 붉은별] 등을 읽으며 열광한 경험이 있다.
인간이 ... 이성의 힘으로 이렇게까지 대단해질 수 있는 것이로구나. 순정한 열정으로 고난받은 민중을 위해 목숨마저도 흔쾌히 던지며 고난을 감수하는 ... 그 인격들을 대하며 가슴이 설렜다.

실제로도... 그 무렵 선배와 동료들 가운데에도... 비록 총을 들고 대장정을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비장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안위와 기득권을  모두 내던지고...
감옥이나 현장으로 가는 이들이 적잖았기에
그들의 대장정이 전혀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는... 그 혁명에도 그늘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아 사람아] 같은 책들이 꽤 여러권 나왔다. 동구권이 몰락하던 무렵,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분노로 질주하던
20대들이 87년 6월이 지난 뒤... 서른 즈음이 돼가고... 비로소 세상도,  자신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 이제 막 1990년대가 시작되던 그 무렵부터가 아니었을까...
때마침 1989년에는 천안문사태도 터졌던 것 같다.  

모택동이 얼마나 비정하게 권력을 추구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혁명에 참여했던 자신의 부모님들이 겪은 고난을 통해 묘사한 [대륙의 딸/장융]은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과정에서 무려 3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사실도
그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정말 그랬을까?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숫자다.)
 
그러나 아무튼... [대장정]에 묘사된 마오쩌뚱은 무슨 완전한 인격의 화신이다. 그런 점은 재미가 없다. 
반면, [대륙의 딸]에서는...혁명의 동지인 자신의 부모님들께 죽음같은 고난을 강요한 모택동은 악의 화신이다. 이 점도 아쉽다.

모택동이 이끄는 인민혁명군에 열광해 혁명에 합류한 대열이 결국 중국과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었은데... 과연 악의 화신이기만 한 인간이 그같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공포로 억압하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일만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지도자가 되는 일이 가능키나 한 것일까...  

대장정에도 묘사돼 있지만, 모택동의 처는 대장정 중에 아이를 셋이나 낳아 마을에 버려두고 가야하는 ... 눈물겨운 일들도 겪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모택동이 지도력을 획득하는 것은  전투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입증하고 이를 배경으로 치열한 논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가능했다.

작가들은 인간에게 어떤 전형성을 부여하고 싶어한다. 선악이 분명할 때 극적인 대립구도가 분명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갈등이 없거나... 갈등을 대충하는 전형적인 인물을 묘사한 소설이나... 인물평을 하는 이들의 말에는 ... 감동이 없다. 누구라서 고뇌와 갈등이 없겠는가... 하물며 설치류 동물에 비유되는 지금의 대통령마저도 ...

아무튼, 소설속에 나오는 주은래나 주덕, 팽덕회, 등소평 등...
생각해보니...얼마전까지 중국의 최고권력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무장투쟁과 대장정을 거친 이들 아닌가. 우리 사회의 세도가들이 하나같이 일제시대 친일파들의 자손인 점을 떠올리면... 이 건 참... 참담하다...  교과서를 뜯어고쳐가면서 일제 때문에 우리나라가 근대화 됐다는 식으로 씨부리는 이들이 왜 나왔겠는가...

현실이 고되거나 사람들과 비루한 일들로 말싸움이나 해대고 있는 스스로를 내려다보는 순간이면 ...늘, 10년 여 전에  한번 가보았던 안나푸르나나 히말라야를 꿈꾸곤 했는데, 책을 읽고는 더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쓰촨이나 귀주 운남성... 인민해방군이 고난의 대장정을 했다는 그 험준한 산세와 협곡이 있다는 그곳들을 느릿느릿 오랫동안...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 언제  그런 일이 가능할까...  당분간은 점심시간에 남산이나 자주 걸을 일이다...


'보고읽은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이 아이들을 살린다]  (0) 2014.05.30
[영화] 비우티플  (1) 2011.11.12
《살림이야기 》여름호가 나왔습니다.  (0) 2011.06.07
이용대 선생의 [등산상식사전]  (0) 2010.10.20
경찰의 말버릇  (0) 2010.07.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