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블레이크 

2016. 12. 18 아트하우스 모모 

무기력하게 늙어가고 있는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푸념 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일요일 아침 집을 나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속에 전개되는 영국의 현실이 한국과 다를 게 없는데,  예전처럼 분노도 저항도 없이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화속 현실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하고 부조리한 상황들이다. 끝없이 규정과 원칙을 내세우는 관료들. 이미 우편으로 송달된 통지서에 대해 항의를 하자, 규정이 정한 절차는 먼저 전화로 통지를 받고 의료지원금 신청을 하게돼 있으니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항고하라는 대답을 영혼없는 자동응답기처럼,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이 안 가도록 끝없이 되풀이 하는 요령부득의 관리자들... 

다니엘 블레이크가 처한 난처한 처지보다 영혼이 증발한 것 같은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더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이웃과 가족이 있는 사람들일 텐데,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도 '공포'일 것이다. '정상적인 삶'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공포가 이웃에게 조그만 관용도 베풀 수 없게 그들을 몰아갔을 것이다.  

20년 전에 본 '브레스드오프', '트레인스포팅', '빌리엘리엇' 같은 영국 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영국이 그런 모양이다. 사람을 더 싸게 부리려는 자본의 탐욕이 인간을 구차하게 연명하는 그런 존재로 만들었다. 쌍용차 노조를 파괴하고 집단 해고를 강행해 20여 명을 자살로 내몰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는 우리사회처럼...  

영화에는 '신자유주의'가 황폐하시킨 영국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한 때는 윤택한 선진국 국민들이던 그들은 이제 일상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버겁다. 아사 직전에 식료품 구호소를 이용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허겁지겁 통조림을 따고 맨손으로 음식을 삼켜야 할 만큼, 사람들의 자존감은 완전히 짓밟혀 있다. 

심장 혈관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다니엘 블레이크는... 젊은 시절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제법 비싸게 사들였을 중고가구들을 내다팔면서 안간힘을 쓴다. 의료연금 신청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와 이웃들이 사는 서민주택은 낡고 초라한 부엌가구, 칠이 벗겨지고 못이 삐져나온 계단... 영국의 서민들도 한국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웃과 정을 나누고  염치와 예의를 알던 일상...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던 그 일상을 집어삼킨 것은 데처 수상이 앞장섰던 신자유주의 광풍일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제어되지 않는 자본의 식욕 앞에서 인간은 오로지 더 싸게 노동력을 팔다 용도폐기 되는 존재들에 불과하다. 한 때 그 사회의 자부심이었을 '사회안전망'도 앙상하게 골격만 남았다.

의사는 다니엘의 심장 혈관이 노동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하지만 의료지원금을 신청은 기각된다. 판정 관리가 매뉴얼에 따라 던지는 바보같은 질문들에 고분고분하게 대답하지 않고 꼬박꼬박 질문을 던진 것이 그런 판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굴종하지 않고 질문하는 자에게는 사회는 가차없이 응징한다. 자존심을 세우려면 죽음을 감수해야 한다.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길 원하노라..." 스무 설 적에 고민 없이 목청껏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굴욕을 감수하며 연명해야 하는가... 마음이 답답해졌다.    

자신을 연필세대라고 말하는 다이엘 블레이크는 의료연금 기각에 대해 재심청구를 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컴퓨터로만 접수하게 돼 있다. 써본 적 없는 인터넷에 매달려 끙끙대거나, 두 시간씩 대기 해야만 사람과 통화할 수 있는 ARS같은 절차 때문에 심장병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는다. 객석에서 지켜보다가 우리들이 심장이 터질 지경이다.  

관리들은 시종일관 매뉴얼이 정한대로만 대답을 한다. 이미 대회는 없다. 사람과 ARS의 차이도 무의미하다. 그들 역시 이미 외주화된 관리업체의 비정규직일 것이다. 그들도 속으로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회의가 없지는 않겠지...  그렇게 믿고싶다. 그러나 자동반복 테이프처럼 규정을 반복해 외울 뿐이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내담자들에게는 낮은 평점을 매기는 식으로 '체제'에 부역을 하면서 말이다.   

연신 한숨이 내 쉬면서 끙끙 앓으며 영화를 보았다. 

옆 좌석의 젊은이들은 내내 흐느끼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메마른 내 눈에서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다들 눈물세상을 고단하게 헤쳐가고 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영상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돼 눈물을 쏟고 있을 것이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오' 이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다니엘블레이크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웃에게 손길을 내밀고 사람답게 처신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러나 개인이 맞서기에 현실은 거대한 파도처럼 도저하다.


켄 로치 감독은 1936년생이라고 한다. 여든 살... 지레 현실에 대해 체념하고 입을 다물려고 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사람답게... 그래 ... 

사람다운 자존감을 버린다면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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