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마지막 하루...  날이 밝았다.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듯 마음이 허전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느긋하게 1층 로비에 내려가 아침을 먹고 ... 짐을 방에 둔 채 자전거에 핸들바백과 리어패니어 하나만 달고  하릴없이 다카마쓰 시내로 나섰다.  출근 시간이 지나 시내는 한적했다. 태양은 뜨거웠고 바람은 소슬했다. 목적지 없이 시내를 배회하다가, 아케이드 안에 있는 미쓰코시 백화점에 들어가 어슬렁거리며 구경을 했다. 마쓰야마에 비하면 상품 구색도 활기도 떨어져 보였다. 도시 규모가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나오시마(直島)를 떠올렸다. 일본에 2년 가량 파견 나가있던 사무실 후배가 내 여행계획을 전해 듣고는, 그 섬에 가 보라고 했었다. 순례를 하는 동안에는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여유가 생기니 기다렸다는 듯 그 섬이 떠올랐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망가지고 나니, 네비게이션도 인터넷 검색도 할 수 없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무작정 부두에 나가보았다. 일본에 도착하던 첫날 밤... 들뜬 마음으로 이곳까지 달려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객 터미널은 부두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두 개가 있었다. 먼저 오른쪽에 있는 터미널에 가 보았다. 나오시마(直島) 가 안내판에 있기는 한데... 요일마다 있다 없다 하는지... 오늘은 가는 배 편이 없는 요일이었다. 

역시 인연이 없는 모양이군... 체념하고 있는데... 

 

여행자들로 보이는 백인들 여럿이 승합차에 내려 왼쪽 건물 터미널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뭔가 있을 것 같아 나도 따라가보았다.  



반대편 터미널에는 나오시마행 배가 있었다. 한 시간 쯤 뒤, 12시에 떠나는 배가 있었다.   

배표를 끊었다. 자전거를 싣기 위해서는 따로 50엔을 더 내야 했다.  

 

첫날 장을 보았던 역 앞에 있는 A마트에서 도시락과 음료수를 사와 부두가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하루에 보통 80km, 어떤 날은 100km 이상...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마주치고, 어떤 때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대관령 같은 고개를 몇 개씩 넘던 그런 여행은 이제 끝났다.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의 심정이 이럴까... 느긋한 마음으로 바닷가에 않아 한가로운 점심을 먹었다. 

 

잠시 후 배가 출항했다. 자전거는 배 밑바닥 화물칸에 결속을 해 놓게 돼 있었다.  



배가 항구에서 멀어지면서 시코쿠 섬의 산들이 실루엣으로 떠올랐다. 저 능선 어딘가를 헤매고 다니던 순간들이 벌써부터 그립기도 하고 마음이 심란했다. 이제 또 다른 산맥들이 펼쳐져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구나.   


매표소에 "나오시마는 6월 13일까지 휴일" 이라고... 안내 돼 있었다. 섬이 휴일이라니 무슨 말일까. 

나오시마는 원래 구리 제련소와 염전만 있다가 공장들이 떠나면서 황폐해진 섬이었는데, 안도 다다오 같은 예술가들이 참여해 섬 전체를 예술적으로 되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지추(地中)미술관, 호텔과 미술관 등이 함께 있는 베넷세하우스, 우리나라 출신의 미술가인 이우환 미술관 마을 안에 있는 집들을 설치미술 작품으로 되살린 '이에() 프로젝트, 안도뮤지엄 ... 등 섬 전체에 볼 만한 미술관과 야외 설치 미술품들이 많았다. 



부두에 놓여있는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 ...이 섬의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섬에 도착한 뒤 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가운데, 터미널에서 나눠주는 간략한 약도만 들고... 섬의 지형이 어떤지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네비게이션도 망가진 상태라 막막한 가운데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완만한 언덕길이 있었지만 짐도 싣지 않은 가벼운 자전거로 넘기에는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나오시마는...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가기보다... 자전거로 돌아보기에 적합한 규모의 아름다운 섬이었다. 




지추미술관, 이우환 미술관, 그리고 호텔과 전시장이 함께 있는 베넷세하우스 등 대부분의 미술관은 모두 휴관이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정비를 하는 기간인 모양이었다. 섬이 휴일이라던 말은 이런 의미였구나...   

 


그러나 야외에 설치된  낯익은 미술품들은 미술관 휴관과 무관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베네세하우스 마당에 설치된 니키 드 생팔의 조각들도 ... 

휴관중인 미술관들에 입장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야요이 쿠사마도... 니키 드 생팔도 정신병을 앓으며 환상의 세계를 작품으로 구현했다고 한다. 

정민교수의 책 제목에 썼던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 던 말... 



우리가 제도교육을 받으면서 끝없이 스스로를 강박해온 것은... '정상(正常)'에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동네마다 정신을 놓아버린 이들이 있었고...그들은 초점이 나간 눈으로 하루종일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거나 ... 몸은 우리 곁에 있어도 어딘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 같았다. 그들이 두렵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떤 무엇이 그들을 이 세계도 저 세계 아닌 상태에서 떠돌게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도대체 정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일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 것도 아닌 척 살아가는 일이 ... 과연 정상인지... 규범적인 인간, 어지간한 고통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 


어쩐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넥타이 매고 출퇴근 하는 삶... 

가계부를 쓰고 적금을 붓고 집을 늘려가며 새끼들과 볶고 지지며 사는 삶도 숭고하지만 

미치지 않으며 도달할 수 없는 그 경지가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2,30대를  사는 동안 나는...  미치지도(及) 미치지 못하지도 못하면서 

우왕좌왕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고등학교 문예반시절... 가을마다 하던 문학의 밤에서 2년 선배가 쓴 싯구 가운데... ' 사랑이여... 취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는 그대' 하던 감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문학소년들 다운 감상이었다. 우리는 정작 문학에 몰두하기보다 그런 말의 그런 분위기가 좋아서 토요일마다 하던 '합평'을 마치곤 학교앞 중국집에 몰려가 마실 줄도 모르는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었다. 그런 식의 또래들의 일탈, 공모자 의식으로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던 그 무렵의 중압감으로부터 탈출을 꾀했던 것 같다.  



휴관 중인 미술관들이 있는 섬의 왼쪽 해안 언덕을 넘어서면... 부두의 반대편에 있는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집 앞에 화분을 내 놓고 장식을 한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섬이 관광지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단독주택이 남아 있는 서울 거리.. 특히 우리동네 부암동에도 ... 이런 광경이 많다. 그런데, 대개는 고무 함지에 배추나 고추 같은 작물들을 심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100여 호는 넘을 것을 걷은 제법 번성한 마을이었다. 섬의 중심지였을 것이다. 이름도 모토마찌(本町)다.  

마을에는 카페도 식당도...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 상점인 생협 모토무라점도 있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생협법에 의해 '비조합원 이용금지' 규정이 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도 더 유명무실한 것 같았다. 일반 상점과 무슨 차별성이 있는 모를 대규모 수퍼마켓에 뜻밖에 생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비조합원은 물론이고 나같은 외국인들도 아무 제한없이 무슨 물건이든 살 수 있었다.   


쉴 겸 차가운 커피를 시켜 마시고 기념품을 몇 개 샀다. 안도 미술품들을 일상용품으로 만든 것들... 작은 새를 날렵하게 만든 레터나이프는 늘 고마운 J형에게 주려고 샀다. 가족들에게 줄 엽서 몇 장과  귀이개 같은 소품들... 



마을 속 집들을 설치 미술품으로 만들어둔 '집(이에 家)프로젝트'는 볼 수 있다고 해 티켓을 샀다. (1000엔).  

마을 안에 있는 집 대여섯 개를 볼 수 있는 티켓... 









낡은 집을 개조한 일종의 이 미술관은... 뭐랄까... 그 필연성을 충분히 공감하기 어려웠다. 실내에서 촬영도 금지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위기가 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어떤 카페는 50년대에 지은 낡은 집을 지붕골조가 다 드러나게 뜯어내고 군데군데 시멘트블록을 그대로 노출하고 바닥에도 투명한 에폭시만 발라 놓은 것을 인테리어라고 해놓았는데... 묘하게 세련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집도 그랬다. 1층과 2층이 이어지게 뚫려있는 거실에 난데없이 흰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유의 여신상이 들어서 있는데... 이층 전시실에 올라가면 자유의 여신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마침 그 방에 들어설 때... 데이트중인 일본 젊은이들이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을 보면서... '소프토 아이스크림인가?' 하면서 킥킥대고 있었다. 



'어둠속의 대화'...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인연으로 잠시 만나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후배가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티켓을 보내준 적이 있다. 

신촌에 있는 빌딩 안, 캄캄한 어둠 속에서 40분 남짓 낯선 체험을 해본 적이 있다. 빛이 완전히 밀폐된 어둠 속에서.. 

안내자의 음성이나 음향 효과에만 의존해 물을 건너고 바람 부는 들판은 지나 시끌벅적한 장터를 지나고 카페를 방문하는 식의 경험...  



그러다 보니 문득 오감 가운데 유독 우뚝한 감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시각이 ...

과연 다른 감각, 촉각이나 후각, 미각과 청각에 비해 과연 그런가?  회의감이 들었다. 



이 프로젝트 가운데 한 곳도 그런 경험을 해보게 하는 곳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 10여 분...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싶은 기분으로 앉아 있다 나오니 




토담 모퉁이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 모두가 새로웠다. 

당연한 듯 누리며 느끼는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어쩌면 여행 자체가 그런 게 아닐까. 

또 어떤 집에는... 거실 전체가 수조였고... 작은 불빛들을 띄워 놓았다. 

 

마을 가운데 있는 안도 뮤지엄은 따로 입장권을 사야 했다.(500엔)   



노출콘크리로 지어놓은 미니멀한 건물을 둘러보는 것이 무슨 특별한 감흥을 주지는 않았다.  



마을 가운데 있는 어떤 집 앞에는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일본에서는 보기 드물게... 성경 구절을 써붙여 놓았다. 


사실 그 무렵 불화하고 있는 큰 딸 아이에게도 내게도 그 말이 중요한 말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원하는 사람이다"  집 화장실에 아내는 한 동안 세네카가 했다는 이 말을 붙여두었다.  


이제 나오시마를 떠날 시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가족들과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섬이다. 다카마쓰에 숙소를 정하고 부둣가에서 배를 타고 나오시마로 건너와  너댓시간 걸어서 섬을 관광해도 좋고...섬에서 하룻밤을 묵어도 좋을 것 같다. 


다카마쓰로 나갈 시간이 다 돼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 부둣가로 나왔다. 그런데, 순례길에서 눈 인사만하고 마주쳤던 자전거 여행자가 부두가에 앉아 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 당신 본 적 있다. 아시지리곶 콘고후쿠지(金剛頂寺) 올라가선 언덕길에서 우리 마주쳤었다.'


그는 정말이냐며... 무척 반가워 하면서 사진을 함께 찍자고 했다.  아이치 현(愛知県)에 산다는 오가사와라는 일본 전국을 자전거로 일주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그런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내게는 이미 카메라 배터리도 방전되고 스마트폰은 망가져 있었다. 함께 찍은 사진은 그가 훗날 메일로 보내준 것이다. 


오후 5시경(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배를 타고 시코쿠섬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 가량 배를 타고 왔더니 퇴근 무렵이라 활력이 넘쳤다. 회사원들과 학생들 자전거의 물결 물결...  

이제부터는 남은 사진도 없다. 


호텔로 돌아와 맡겨둔 자전거 박스를 찾아 분해와 포장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이나 별것 아닌 자전거 박스를 보관했다가 내어 주는 그 친절함이라니... 


순서대로 바퀴와 핸들을 풀고...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끝내 패달 하나를 분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분리할 때 너무 간단히 분해가 되었기 때문에 방심했었는데...여행 도중에 깨진 패달을 마쓰야마에서 새로 교체하면서 무엇인가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사는 풀릴 생각을 안 했다.  두 시간 이상을 허비했지만 끝내 분해를 하지 못하고 결국 박스 한쪽에 구멍을 뚫고 비죽 튀어나오게 한 상태에서 테이프로 마감을 해야 했다.땀을 비 오듯 흘려야 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마지막 고빗사위를 넘게 될 줄이야...   


저녁 시간을 또 놓쳤다. 식당에 가서 조금 비싼 밥을 호사스럽게 먹으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또다시 할인점에서 들러 도시락을 사 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때웠다. 


달리 무엇을 하게에도 어정쩡한 시간이고, 스마트폰도 망가진 상태라 기록을 하기도 어려웠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어제 사다둔 맥주를 마시고 잠을 청했다. 쉬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밥을 먹고

 

일본에 오던 날 꽤 비싼 요금을 내고 택시를 타고 온 게 기억이나 공항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직원들에게 바퀴차를 빌려 길 건너 공항버스 정류소까지 짐을 실어다 놓고 반납을 했다. 


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현지 직원이... 손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짐은 한 개 뿐인데 핸들바 백과 작은 패이어 등을 들고 타려는 나를 제지했다. 알겠다며... 랙팩을 벌려 작은 짐들을 우겨 넣어 부치겠다고... 

이런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결국 작은 패니어 하나와 핸들바백 두 개를 들고 탈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말을 쓰는 승무원이 나의 여행을 짐작하고 하는 말인지...얼굴이 까맣게 탄 나를 향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길다면 길 수 있는 이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날 밤 가족들과의 재회는 눈물겨웠다. 

또 언젠가 길 떠날 꿈을 꾸면서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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