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순례를 다년온 지 일년이 다 돼 가도록 기록을 마치지 못했다.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기록은 무엇을 위해 왜 해야 하나 하는 회의도 있었다. ... 이렇게 ... 게으름을 피우던 중 ,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졌다.  차마 무슨 이야기를 태연하게 쓰기가 어려웠다. 

이런 세상을 우리 세대가 만들었구나... 개인에 따라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회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방조를 하거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고 생명이고 인권이고 뭐고... 

오로지 돈과 출세, 경쟁과 이익만을 위해 안면몰수... 맹목으로 질주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고 ... 그 천진한 아이들을 몰살시키는 일에 부역을 했구나 적어도 방조는 했구나 하는 심정에 참담했다. 


또 다시 새벽마다 잠이 깨는 일들이 되풀이 됐다. 이 기록도 더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5월 25일) 



# 21:  6/10 월  우탄구라ㅡ 다카마쓰 토요코인 호텔 

운행 81.81km

역시나, 간밤에 과음을 했다. 그러나 다섯 시 경 어김없이 잠이 깼다. 날이 완전히 개어 있었다. 



지난 밤 안수창 씨 식당 '낙원'에서 이리에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사모님이 차린 8가지 반찬의 황송한 아침상을... 받았다.   순례자들의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 늘 새벽 4시에 일어나신다고 ... 이렇게 덕을 쌓고 계시는구나... 


순례자들을 자기 집에 재우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간식을 내밀거나 ... 오히려 오셋타이라며 받아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돈을 손에 쥐어주고 가는... 이런 수많은 주민들이 시코쿠를 시코쿠로 만들었으리라...  


쌀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다 먹었다. 내가 할 일은 그것밖에는 없다는 듯이...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보고 사모님께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두 덩어리 주먹밥까지... 

점심은 이것으로 해결하면 걱정이 없겠다... 싶었는데... TT 



두 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탄구라 홈페이지도 숙박하고 간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신다고... 



6시45분  또 다시 출발... 옷도  빨아서 말렸고 날도 개었고 몸도 개운해졌다. 오늘 하루 또 달려보자... 


우탄구라에서 79번 사찰  텐노지(天皇寺)까지는  7.4 km.  철길을 따라 평탄한 도로를 달리게 되어 있다. 등교와 출근으로 부산한 시내를 나만 독특한 복장으로 가방을 주렁주렁 매단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 시간 가량 달려 절에 도착했다. 절 입구에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있었다. 보통 신사 앞에 서 있는 이 문은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처럼 돼 있다. 성황당에 쳐 있는 금줄이나 솟대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성과 속의 경계에 세워놓는... 



전설에 따르면, 12대 천황의 아들들인 사루레오가 부하들과 괴물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오히려 잡아먹혔는데, 요코나미묘진(横潮明神) 이라는 신이 이 부근에 있다는 야소바의 영천(八十場の霊泉) 의 샘물을 먹여 모두 살려냈다고 한다... 


이후에 코우보 대사가 이 곳을 찾아왔을 때, 샘을 지키던 산신이 대사께 귀의하고 불법을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1156년 내전에서 패한 스토쿠 천황이 이곳으로 쫓겨와 죽었는데, 장례절차를 중앙정부에 상의하는 동안 천황의 시신을 야소바의 샘물에 담궈두었더니 고스란히 보존되었다고...  이 절이  텐노지,  천황사가 된 것은  이런 유래라고...  



참배를 하고 나오니  엊그제 71번  이야다니지(弥谷寺)지 앞에서 만났던 순례자와 다시 마주쳤다. 간단히 목례로 아는 체를 했다. 걷거나 자전거로, 또는 승용차나, 단체 관광버스로... 드물게는 택시를 대절해서 이렇게 순례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비루한 일상을 떠나 불경을 독송하며 탈속한 가치를 떠올리며 걷는 일... 일상에서 쌓아가고 있는 업을 벗어나려는 마음, 스스로를 가두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 

돌이켜보면 내게는, 산길을 걷는 일이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북한산이 그랬고... 안산이나 안양 인근에 살던 고단한 시절에는 안양에 있는 수리산과 관악산... 그리고 해마다 서너 번 지리산과 설악산...을 찾아가 걷다보면 옥죄여오던 가슴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곤 했다.  캄캄하게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산길을 걷다보면 살아갈 힘이 다시 고이는 것 같았다. 


양배추 수확철인 모양이다. 마사토 같은 사질토양과 비닐멀칭이 없어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일본 역시 농업이 날로 어려워지는 현실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식량자급률도 25%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8시10분 ... 다시 텐노지에서 출발. 80번 고쿠분지(國分寺)까지는 7. 3 km 가량 도로를 따라 달리게 되어 있다. (돌아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차라리 79번- 81번-82번-80번 순으로 가는 것이 길도 편하고 거리도 단축된다고... 도보여행자는 물론 자전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문제는  81번 시로미네지(白峯寺)와  82번 네고로지(根香寺)다. 지도와 가이드북을 보면 두 절 모두 고쿠분지가 등지고 있는 두 산 봉우리 시로미네산(白峯)과 오히라(大平)산 위에 있다. 두 산은 능선이 이어져 있었다. 고쿠분지에서 산을  올려다보면서 시계방향으로 되돌아 가야 오르막 들머리를 만나게게 되어 있었다.  


미리 지형을 살피고 산을 올라가야 하는 일정을 앞두게 되면 ... 여전히 전날부터 마음 무거웠다. 스스로 시작한 순례가 여전히 남이 채운 족쇄처럼 버거운 것이다. 



9시,  80번 고쿠분지(國分寺)에 도착했다. 


고쿠분지라는 절 이름이 여러 곳인 이유는, 741년 쇼무천황이 정국을 안정 시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절들이 모두 같은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면 국사당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남산 식물원으로 오르는 길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돌계단을 볼 때마다 ... 그것이 일제가 남기고 간 유적이라는데 생각이 미처 늘 마음 불편했다. 나라 굿을 하던 국사당을 인왕 선바위로 쫓아내고 일제는 그 자리에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무당들은 천대 받는 실정인데...적어도 일본에서는 신도가 이 나라 최대의 종교가 되어 일상속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점... 생각해볼 대목이다. 신내림굿을 하는 무당들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모시던 성황당이나 집집마다의 터주, 조왕신 등 다양한 전통신앙이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근대의 깃발 아래 '미신'으로 몰려 일거에 청산된 일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일본사람으로 자라나고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스스로 투철했던 박정희에게... 우리 전통은 일본 전통과 달라 청산되어야 할 야만으로 치부된 것이었는지...  



고쿠분지는 이름이나 유래에 걸맞게 무척 넓고 크고 고색창연한 절이었다. 


납경을 받으며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최적의 길이 없겠는지 물어보았으나 도리없이 산 기슭으로 난 길을 따라 오던 방향을 거슬러 바닷가쪽으로 돌아가서 산을 올라야 한다고...  


도보순례자라면 고쿠분지 뒤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81번 시로미네지로  곧장 올라가면  되겠지만 자건거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쨌든... 다시 달려보자...  일단, 81번 시로미네지까지는 14km 가량이다.  마지막 6km는 쉼 없는 오르막이다. 



긴장한 마음을 자전거도 알아차렸는지... 오르막길에 어프로우치 하기도 전에... 도중에 체인이 빠졌다. 비닐 같은 게 감겼던 모양인데,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꽤 애를 먹었다... 패니어를 모두 떼어내고 짐을 다시 꾸리는 동안 40분은 족히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짐을 다시 챙기며 살펴보니 분명히 아침에 우탄구라에서 받았던 주먹밥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안수창씨가 준 열라면과 삼육두유만...  짐을 꾸리고 인사를 하면서 옆에다 놓고 떠나온 모양이었다. 점심을 어쩔 것인가... 시골길이라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대책없이 오르막이 시작됐다.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면서... 멀리 세토대교가 내려다보였다. 



12시 경,  81번 시로미네지(白峯寺)에  도착했다. 해발 337m 라고 하는데... 해안선 가까이에서부터 시작한 탓인지 꽤 까마득하게 올라온 느낌이었다. 




이 곳에서 뜻밖에도 요코미네지 오르던 산길에서  만나 내게 청정()이라는 나무 기념패를 준 분을 다시 만났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나오다보니... 그는 절 입구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도보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나...물으니, 조금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시내 구간은 전철로 이동했다고... 



실례가 안 되면 이름을 여쭤봐도 되냐고... 하니까... '아무 아무개(와다시노 나마에와 고노 요노 ... 나이)' 정도로만 알아두시라고...?  아... 그러시냐고... ^ ^;



납경소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는 디자인도 카피도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취가 시코쿠의 길이 되었습니다.'  루쉰이 했다는 말처럼... '희망이라는 것은 있다고 없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아서 ... 길도 처음에는 없었지만... 누군가 많은 사람이 걸어가자 그것이 길이 되었다...' 던 말처럼... 

시코쿠가 시코쿠가 된 것은... 천 년 넘게,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안고 걸었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국 때문이겠지... 



'청정 아무아무개' 선생은 내게, 이 절의 산문은 다른 절들과는 다른 양식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고려양식이라 한다. 솟을 대문처럼... 생긴 이 절의 산문이 어쩐지 정겹게 여겨졌다. 



이 절은  오전에 들렀던 텐노지와 연관된 곳이었다. 텐노지에서 죽은 비운의 스토쿠 천황을 장사 지내고 이 절에 모셨다고 한다.  '청정 선생'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었어야 하는데... 자판기 음료수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아침에 흘리고 온 주먹밥이 눈앞에 아른거릴 지경이었다.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오히라 산을 향해 계속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다 보니... 산정 가까운 곳에 온천 휴양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따..땅... 따 ...땅... 



분명히 총소리였다. 사방에 군부대가 있는 우리나라에서야 익숙할 법 하지만... 여기서는 웬 총소리일까... ... 정말 총소리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을 올랐다. 



정말로... 산 위에는 자위대 훈련장이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총성은 계속 온 산에 쩌렁쩌렁 울렸다. 


군대에서 매일 저녁마다 총을 꺼내 분해하고 기름걸레로 닦고 심심찮게 실탄 사격도 해야 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총이나 총알은 단단한 금속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응축된 살기가 늘 섬칫했다. 가장 효과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겠다는 응축된 의지... 총은 그런 것이었다. 가장 지능이 뛰어나다는 인간만이 총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높은 지능이 우주를 관장하는 힘이나 생명의 본성과는 가장 먼, 그래서 가장 어리석은 우를 범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일본 땅에서도 이런 총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가는 곳마다 심심찮게... 일본의 군사력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자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구호를 마주하던 것과... '강한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아베 자민당의 선거포스터가 겹쳐 보이던 것도 이런 일들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말이 자위대지... 사실상 일본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엄청난 플라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이미 2차 대전 당시에 항공모함을 만들고 운영했으며, 인공위성을 스스로 발사하고 있다. 언제든 중국과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군사대국이 될 게 분명하다. 19세기말처럼 ... 한반도의 운명은 또다시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올라가다 지치면 내려서 끌고... 조금 완만해지면 다시 타고... 시로미네산과 이어진 오히라 산정까지 ...  해발 500미터가 넘었다. 정상 부근에 있는 갈림길에서  82번 네고로지(根香寺)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것인지... 갈등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꼬박 그 높이만큼 다시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 했다. 



오후 1시반...  82번 네고로지(根香寺)에 도착했다. 


이 절은, 코오보 대사가 당나라에 가기 전에 초가를 지었던 곳이기도 하고, 832년 치쇼(智證)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천수관음상을 조각해 본존으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나무 뿌리로 조각한 본존불이 오래토록 향기 내뿜었다는데서 근향'(根香)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 


절은 산중이라 숲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양쪽으로 회랑이 가운데 정원을 감싸고 둘러 있다. 


회랑 안에는 신도들이 봉헌했다는 3만 개에 달하는 관음상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본당까지 이어진 어두운 회랑을 빠져나오면... 잘 가꾸어진 중정이 있었다. 



나이든 어머니와 딸... 침묵하며 기도하는 신도들도 꽤 많았다. 



사탕 몇 알과 자판기 음료수 말고는 한 나절 동안 뭘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아침에 산길로 접어든 뒤로는 식당도 만날 수 없었다. 너댓 시간 줄곧 오르막을 오르느라...체력도 고갈돼 가고 있었다.  




다시  그러나 다음 절로 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다시 고갯마루에 있는 갈림길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방향으로 봐서는 다카마쓰(高松) 시내인 것 같았다. 처음 일본에 도착했던 그 지점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서 온 것이다. 스쳐온 일들이 떠올라 왠지 감회가 복잡했다.  


꽤 긴 거리를 다운힐... 

산을 내려오니 기온도 높고, 공기도 달라졌다.다시 햇살 따가운 한 여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80번대를 넘어섰다.  남아 있는 절이라고 해야 83번부터 88번까지 여섯 개... 



산 아래 마을들은 저수지를 끼고 있었다. 논농사 때문일 것이다. 또다시 11번 국도를 만나고... 동쪽으로 달리다가 83번 이치노미야지  (一宮寺)를 향해 달렸다. 



오후 3시쯤 길가에 있는 중국집(중화소바)집이 있어 늦은 점심을 먹어야 겠다 싶어 들렀더니... 오후 5시까지는 준비 시간이라 밥을 줄 수 없다고...TT  ... 아, 그렇겠지... 그게 정상이겠지... 


점심도 못 먹고 허둥대며 산 아래 마을을 헤맨 게 조금 처량하기도 했다. 


도중에 패밀리마트가 있어 컵라면과 오니기리를 사서... 안에서 먹어도 되냐고 물으니... 안 된다고...TT 문밖 주차장에 예전에 야마시타상이 그랬던 것처럼... 선 채로 컵라면과 주먹밥을 먹었다. 우탄구라에서 두 분이 챙겨준 주먹밥을 잘 간직하고 왔다면 훨씬 여유가 있었을 텐데... 




운행중에 스마트폰에 GPS 앱 로커스프로(Locus pro)를 줄곧 사용했다. 목표지점을 설정하면 방향과 남은 거리를 오프라인 지도상에서 알려주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 없이 여행하는 동안 큰 도움을 받았다. 전적으로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가지고 간 카메라 배터리가 빨리 방전돼 핸드폰 사진을 찍으라 핸들에서 탈부착을 하는 일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고질라포드'로 감고 다녔는데... 두 번 떨어트려 스마트폰 꼴이 말이 아니다. 



아이들 등교시간에 80번 고쿠분지에 들렀는데... 벌써 하교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산을 헤매고 다니 것이다. 밥도 굶은 채... 



일본 아이들이 우리나라 아이들보다는 나아 보였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 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으며 달리는 모습...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겠으나 ...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자정 무렵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나라 같은 곳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4시20분 ... 다카마쓰 외곽에 있는 83번 사찰 이치노미야(一宮寺)에  도착했다. 이치노미야(一宮)라는 명칭은 1679년부터 이 일대 신사들의 중심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인데, 나중에 불교 사원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이 절에 모셔ㅗ놓은 약사여래의 대좌 아래에는 지옥으로 빠지는 구멍이 있어, 죄가 있는 사람이 머리를 넣으면 빠지지 않는다는 ...  



이미 오후 4시가 넘었으므로...  다음 절을 찾아가는 것은 무리다 싶어... 절 앞에 앉아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는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캠프장 두 곳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몇 번 찾아갔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나름 미리 준비를 하려고 한 것이다. 



GPS 포인트를 입력해온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미네야마(峰山) 공원 캠프장 등 두 곳 에 전화 했으나  모두 다 안 된다고... 한 곳은 낮 동안만 개장을 하는 공원이라서... 한 곳은 다음 날인 화요일이 휴일이라서...  안된다고...  도시에 오니 여지가 없다...  캠핑장이 두 곳이나 있어 별 걱정 안 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GPS 포인트에 표시된 캠핑 표시는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젠콘야도 리스트에 나와 있는 '슬로우라이프'라는 곳에 전화를 해보았다.  이치노미야지에서 북쪽으로 3km 가량 떨어진 곳이라고 했는데... 500엔에 숙박이 가능한 곳이라고...  전화를 걸 때 이미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슬로우라이프는 옆에 붙어 있는 공장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전화를 받는 이에게 슬로라이프냐고 ...하니까... 전화를 몇 번 연결한 뒤에야...담당자인 것 같은 남자가 받았다.  조금 사무적으로 ...숙박은 가능하지만, 6시까지 체크인 해야 한다고...  그런데, 찾아가는 도중에 길을 헤매다 여섯 시가 넘고 말았다. 다시 전화를 했더니... 미안하다며 여섯 시까지 체크인 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단지 오분 지난 시점이었다. 규정이나 그런 것은 알겠는데... 조금 야속했다. 



더 이상 운행을 계속하기는 너무 시간이 늦었다.


 84번 야시마지(屋島寺)는 이치노미야지에서 다카마쓰시를  북쪽으로 대각선  가로지른 지점... 야시마라는 섬의 산 위에 있었다. 인근까지 가서... 섬이니까 바닷가에 야영 가능한 해수욕장이라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야시마지 인근에 있는 여관이라도 찾아보자... 는 심정으로  일단 달려보았다. 



퇴근시간  다카마쓰시내에는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들이 바쁘게 밀려 다니고 있었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툭 떨어진 사람처럼...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란 나는... 어둠이 내린 거리를 묵묵히 달렸다.  


결국 야시마를 한 바퀴 다 돌고도 마땅히 잘 곳을 찾지못했다. 산 위에 있는 야시마로 오르는 들머리에 작은 여관이 있었지만 불도 꺼 놓았고... 어쩐지 기분도 가라앉아 들어가 흥정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7시가 넘어서... 일본에 도착한 첫날 묵었던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토요코인 호텔에 전화를 했다. 방이 있다고... 오라고... 


호텔을 예약 해 놓고 나니... 몸은 지쳤지만 다시 시내를 향해 돌아가는 마음은 조금 느긋해졌다. 어쩔 수 없이 이제 분주하고... 어떤 여유도 없어 보이는 도시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드물게 교통사고 현장도 목격했다.  



여덟 시가 다 돼  한 접시에 99엔이라고 선전하는 그 회전 초밥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호텔 프론트의 담당 직원은 마침 첫날 만났던 사람이었고 나를 알아보았다. 순례가 어땠냐고... 자전거 박스는 잘 보관해두었다고...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물어주니 어쩐지 울컥할 정도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렇게 긴 하루가 또 저물었다. 내일이면 절 순례는 모두 마치게 될 것 같다. 벌써... 마지막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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