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 1번 료젠지 앞 게스트하우스~ 다카마쓰 토요코인호텔 


주행거리 94.8km 

새벽 네 시쯤 누군가 살그머니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나도 잠이 깼다. 

부스럭거리며 투숙객들을 깨우기 싫어 누운 채 시간을 보내다가 여섯 시경  일어나 홀로 아침을 먹었다. 새벽에 빠져나간 이를 빼고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사 온 두부와...여행을 마칠 때까지도 조금 남아있던 북어로 국을 끓여  밥 한 술 말아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는 북엇국... 스무살 때 자취 시작하는 내게 어머니가 전수해준 다섯 가지 국 레시피 가운데 하나였다. "물에 불린 북어를 물기를 꼭 짜고 참기름에 달달 복다가 찬물을 부으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온다... " 가난한 자취생을 연명시킨 고마운 국이다. 국을 끓일 때마다 어머니가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  


설거지를 끝낸 무렵에야 한둘씩 잠에서 깨어 떠날 채비를 했다. 


후지산 인근에서 왔다는 가와베 군  출발.



나가노에서 온  다카하시군. 자전거 순례를 마쳐간다고.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현. 4년 전 북알프스, 가미고지(上高地)로 야리가다케 등반을 하러 간 적이 있어 어쩐지 이 친구가 더 친근하게 여겨졌다.  



길을 떠나는 몇을 빼고는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때문인지 대개들  늦잠을 잤다. 


순례길에서 몇 차례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던 사토미 아다찌도 자고 있는 것 같아 인사도 못 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1번 사찰... 료젠지에 가서 코오보 대사께 이제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겠다고... 대사님을 알게 돼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조금 감회가 복잡해져 자판기 커피도 한 잔 마시며 잠시 앉아있었다. 


오카야마에서 왔다는  아오이가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절로 올라온다. 이 생활자전거로 일본을 일주하고 있다는 친구다.  간밤에 게스트하우스 주인 양반이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를 잘한 짓이라고 연설할 때 '듣기 싫은 사람도 있으니 그쯤하고 그만하라'고 제지하던 의협심 있는 여성이다.  


'일본 일주중 잘 곳을 찾고 있어요'  자전거에 써붙인 글 귀.  대단한 친구다. 



그에게서, 간밤에 유쾌하지 않았던 대화에 대해 일본사람을 대표해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나는 무슨 새삼스러운 일을 겪은 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고 덤덤하게 인사를 했다.

 



오히려 아오미의 자전거에 붙어 있는 '곰 출현 주의' 스티커가 재미있다고 했더니...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 붙인 것이라며... 그곳에는 정말 곰이 나타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ㅋ  

이 스티커는 곰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냐고... 



다카마쓰로 바로 돌아 가기는 아쉬워... 도쿠시마 시내쪽으로  달려보았다. 



료젠지에서 도쿠시마 중앙공원까지... 직선거리 10.3km. 일관되게 다음 절과 휴양지를 향해 달기관차처럼 달려왔는데 갑자기 목적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도쿠시마 역과 중앙공원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가족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엽서를 썼다. 열 장 한 묶음을 샀는데 어느새 마지막 장이다. 문득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무렵 나와 불화하고 있던 대학 1학년생 큰 딸아이가 제일 생각이 많이 났다. 

대학입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딸 아이는 술에 취해 자정 넘어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나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몇달씩 불화가 이어지곤 했다.


첫딸을 낳고 얼마나 대견하고 이쁘던지 품에 안고 물고빨며 키우던 기억에 나는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아이는 이미 성인이 돼 있었다. 

   



나에 비해 아내는 관대했다.나를 향해 '당신 대학 1학년때를 떠올려보라'고 충고하곤 했다. 


아와오도리(阿波踊り) 회관에 들러볼까 싶었지만 마음이 어쩐지 초조하기도해 그냥 다카마쓰로 서둘러 떠나기로 했다 매년 8월 15일에 도쿠시마에서 열린다는 세계 최대의 댄스페스티벌 아와오도리 마츠리, 언젠가 한 번 와 보고 싶다.

 


도쿠시마 시내를 배회하다보니 드물게 가톨릭교회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한가해 보였다. 게시판에는 영어회화 강좌 등을 안내하는 게시물들이 붙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신구교를 합쳐도 기독교 신도는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전체인구 1억2천 8백만 중 가톨릭 95만 개신교 43만?)


간밤에... 그 무례하던 게스트하우스 주인과 한두 일본 젊은이들이 '왜 한국에는 기독교신자가 많은가? ' 질문했었다. 내게도 궁금한 부분이다.  '교육과 의료...등  선교사들이 조선에 근대를 전파했다. 아마도 그런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대답은 그정도였다. 


렇다 해도, 온 세계를 선교할 것처럼 의욕이 넘치는 한국의 기독교.는 정말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일본이 조선에 수도와 전기를 놓아주고 교육도 시켰다." 간밤에 게스트 하우스 주인이 내뱉던 무례한 말들이 생각나 달리면서 불쑥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들을 탓해 무엇하랴. 한국의 유수의 학자들이나 보수적인 언론들조차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들고 나오면서 스스로 교과서마저 거꾸로 고치고 있잖은가. 


자꾸 그  생각이 떠올라...좀 더 모질게 대꾸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되기도 하고... 마음이 들끓었다. 근 한 달 가까이  절마다 들러 향을 사르며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未觸法)......"  반야심경을 독경하던 고요한 마음이 일순간 휘저어진 느낌... TT 


내 마음이 산란한 것은 그렇다 쳐도, 자신의 과오를 직시할 용기도 없는 일본에... 과연 희망이 있나? 싶었다. 


아니다.이번 여행 길에서 만났던선량한 이웃들. 그리고 이전에 만나오던 일본 그린코프 생협같은 곳들의 건강한 시민들.그런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비뚤어진 국수주의자들이 아니라 이웃나라 건강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끼리 마음을 모아야 한다.  

 

시내 관광에는 흥미를 잃고 다카마쓰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출발. 12시반. 점심시간이 되었다. 기타(북)도쿠시마 맥도날드점. 구경도 할 겸 충전도 할 겸 들어가 보았다. 아르바이트생 모집 전단을 보니 시급이 시간 당 800엔이란다. 

 

 

빅맥지수로 각국의 구매력과 물가수준을 비교한다던데, 한국과 일본의 빅맥가격은 3600 원 정도로 비슷한 반면 시간당 임금은 한국 5000원, 일본 8천원. 

흔히 일본에 대해 나라는 부유하고 국민은 가난하다며 일본의 비싼물가와 생활비를  지적하지만 한국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경험한 식료품 가격 등은 일본이 더 저럼했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서민들의 처지는 쓸쓸하지만 우리도 이제 별반 다를 게 없고,  밥이나 빵 같은 식료품의 가격은 낮고 질은 한국보다 훨씬 나아보였다.  


첫날 도쿠시마쪽으로 올 때 이용한 해안 도로가 아니라 질러가는 길인 것 같아... 42번 도로로 산을 넘어보기로 했다.



고행을 자처한 것이다. 오늘은 오늘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는... 피학습성이 몸에 배기라도 했단 말인가? 



산길이 시작되는 초입. 낯선 풍경의 미치노에키가 있다. 도이치촌. 1차대전 당시 이 인근에 독일군 포로수용소가 있었다고 한다. 독일군이 왜 여기까지 와서 수용되었을까 ? 

 


독일풍의 아이스크림과 기념품 등을 파는 ... 휴게소인데... 통행이 뜸하다보니... 손님도 나 혼자뿐이었다. 


오후 2시 고개 정상에 도착. 또 다시 산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산 아래 길 가에서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온 주먹밥을 먹었다. 이제 ... 취사를 할 일도 없을 것이다.


142번 도로로 산을 넘어 만나는 11번 국도 ... 뙤약볕에 하얗게 달궈져 있었다.  이번 순례에서 가장 자주 만나던 섬 일주 도로 같은 간선도로다. 


오후 4시... 다카마쓰까지는 아직도 40여 킬로미터가 남아 있다. 호텔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원래 내일 하루만 예약했으나 방이 있으면 오늘도 묵고싶다고... 다행이 방이 있다고 했다.   



히가시가와시를 지나 편의점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볕이 너무 뜨거워 건물 뒤 그늘에 가서 쪼그려 앉아 먹으며 잠시 더위를 식혔다. 또 얼마쯤 달리다 비타민 음료를 마셨다. 7월말 서울을 방불케 하는 불볕더위다. 


드디어 우동의 고장 사누끼시. 이제 다카마쓰시가 멀지 않았다. 



해질녘 드디오 다카마쓰가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캠핑장을 못 찾고 잘 곳이 없어헤매이던 요시마와  어듬이 내린 거리에서 처량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철교도 보였다. 



호텔도 예약했겠다 이제 바쁠 게 없다. 어딘가로 꼭 가야하는 약속이나 쫓기는 일도 없다... 느긋한 마음으로 달렸다. 

하교길에서 흰 안전모를 쓰고 해맑은 표정으로 거리를 달리는 남여 중고생들. 귀여운 녀석들. 


공교롭게도... 다카마스 시내로 들어올 때 핸들바에 결착해둔 스마트폰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액정 디스플레이가 깨지고 전원도 나가버렸다.호텔예약도 했고, 길도 아는 곳이라 별 타격은 없겠지만 GPS, 사진과 글 저장매체 ...그리고 집으로 연락하는 통신수단... 전적으로 의존하던 스마트폰이 그렇게되고나니 허전했다. 

 

밤 일곱 시가 다 돼 호텔에 도착했다. 낯 익은 주차관리 아저씨와 프론트의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역시 '헨로사마'에게는 할인을 해준다고. 이틀 연속 청소없이 방을 이용하는 그린프로그램까지 포함해 4500엔.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뒤... 거리로 나와 아케드 상가를 구경했다. 맛있는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을까 하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도 어쩐지 ... 그러고 싶지 않고...  자전거를 세워두기 마땅치 않았다. 



할인마트 마루나가에서 이틀 동안 마시겠다는 포부로 6개들이 맥주와 반액할인하는 초밥 도시락, 귤 등을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몸이 며칠 동안 햇볕에 달궈진 몸이 좀처럼 식지 않았다.  


내일... 시코쿠에서의 마지막 하루...  느긋하게 빈 자전거로 관광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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