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리, 10년동안 산 그 집에 아내와 다녀왔다. 강변역까지 택시를 타고 가 1113-1번 버스를 기다리려니, 참여연대에서 일할 때... 밤11시 20분 막차 시간에 맞추려고 안국동 사무실서 거의 매일 10시반에 뛰어나오던 일들이 떠올랐다. 2000년 초에 그나마 참여연대가 주 5일제를 앞서 도입했기에... 주말이면 밭을 갈고 풀을 뜯는 새 지친 몸과 마음이 되살아나곤 했다.

주말 행락 차량이 고속도로를 꽉 메우는데 비해 버스는 한산했다. 버스를 타고 시외로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제 노인들이나 이주노동자들,그리고 어린 친구들 말고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없다. 신도시에서 도심으로 출퇴근 하는 버스를 제외하면 대개 그렇다. 그러니 버스 노선이나 배차간격을 늘리는 등 성의있는 대접을 기대하기 어렵다. 꼭 차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한두 번 험한 대접을 받다보면 에잇 더러워서 차 사고말지 ...하게 되고....  

우리가 떠나 온 뒤로 삼합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새 주인인 수연씨는 장인어른과 함께 한 동안 쉴 새없이 집 공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 부부가 쓰던 마당 가 큰 방은 앞으로 더 확장 되고 서쪽으로 큰 창이 하나 더 생겼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 목공실이 있는 별채다. 직업 목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책상 겸용으로 쓸 원목 테이블을 갖고 싶었는데, 고맙게도 와서 만들어 가라며 초대를 해주었다.

길이 2미터가 넘는 소나무를 구해놓았다고... 분당의 한 부잣집 마당에 서있던 1억5천만원짜리 정원수였다고 한다. 죽어넘어진 것을 제재소에서 사서 켜다 놓았다고. 마당에서 이 나무는 그 정도 값어치를 했었는지 모르지만, 죽어 버려진 것을 우리는 이렇게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내게 1억5천만원짜리 정원수를 사다 심을 여력과 의향은 없지만, 근육의 힘으로 이 나무의 속살을 갈아 평생 손때를 묻혀가며 애장할 마음은 있다. 어쩐지 1억5천만원 정도를 그냥 선물로 받거나 주운 것 같은 기분에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수연씨가 시범을 보이면 내가 따라 하는식으로... 자르고, 갈아내고 다듬어서 이 황송한 소나무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철공소에 가서 어울리는 금속 받침을 만들어 그 위에 얹어... 평생 내 테이블로 쓸 생각이다. 길이가 충분하니까 한쪽에 엠프와 턴테이블을 올리고 아래 스피커를 넣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을 생각이다.

서울에서는 옆집에 이사온 사람들과 눈인사만 할 뿐 집 안에 들이고 밥 한끼 함께 먹지 못하는데...  어찌보면 그저 집을 사고 판 사이일 뿐이었을 수 있는데, 이들은 우리에게 과분한 선물을 주었다. 마당의 데크 위에서 다 함께 둘러앉아 점심을 먹다보니 마치 예전에 내가 주인 일 때 이들을 손님으로 맞은 시절로 되돌아 간 것처럼... 감회가 새로웠다.

부엌 문틀에 아이들 키를 표시해둔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물론 옆 면에는 새로 이집에서 자라고 있는 수연씨네 규진, 규리, 규희의 키가 표시되고 있었다. 이 녀석들도 우리 아이들처럼 삼합리에서 본 별빛과 노을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한바라는 삼합리에 간다니까 따라가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애써 싫다고 했다. 아직 충분히 ... 그 집과 자신이 분리된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세검정 새집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면서 비교적 건강하게 잘 ... 자라고 있다.




마당에 핀 국화나, 집 옆에 울처럼 둘러있는 낙엽송 숲만 보아도  서울에서의 우리 삶이 얼마나 팍팍한 것인지... 되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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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합리 살 때 아침에 일어나 키우던 개 강이를 데리고 달리기를 하거나
집 뒤에 산으로 산책을 하곤 했다. 해 뜨기 전 건너 편 산들이 안개에 싸인 채
희붐하게 보이던 그 광경...

집으로 내려오다보면 부엌 창으로 아내가 밥짓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사무실까지 두 시간이나 걸리는 그 먼곳에 살던 그 무렵 아침이
어찌 그리 길고도 여유로웠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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