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5 수 구마코겐(久万高原) 미미도(御三戸)캠프장- 마쓰야마(松山)시 유스호스텔

 운행60.60km




역시나 다섯 시도 되기 전에 잠이 깼다. 잠시 후면 또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겠지...  텐트 지퍼를 열고 누운 채 강변 풍경을 감상했다. 해가 뜨기도 전... 강변에는 말할 수 없이 청량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산 그림자마저도 물에 잠겨 젖어있는 것 같은... 산정 고원의 적막한 새벽이었다.   


친구들과 스무 살 전후에 떼로 몰려 다니며 함께 자는 일이 많았다. 주로 서울 장위동에 몰려있던 친구들 두세 명의 집으로 예닐곱 명이 함께 몰려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한 뒤로 자취를 해야 했던 나와 ... 의정부에 살던 친구, 서울로 유학 와 있던 친구들이 섞여 있었던 탓에... 그 시절, 친구들은 만나면 헤어지지 못하고 2박 3일이고 3박 4일이고... 떼로 몰려다니곤 했다.  특히 방학 때... 






어느날, 친구 M의 아버님이 불콰하게 술이 오른 얼굴로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으로 들어와 일장 훈시를 하셨다. 밤새 떠들다 아침 녘에야 잠들고 정오가 다 돼야 일어나곤 하던 우리들이 한심하셨는지... " 우리 젊을 땐 말이다 새벽에 산에 올라가 몸도 마음도 단련하고 그랬지... 새벽 산에는 서기가 서려 있거든. ... "  아버님의 취중 말투와 '새벽 서기'라는 말에서 어떤 과장된 느낌을 받은 때문인지 친구들은 속으로 쿡쿡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 


내게는 그 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스무 살 그 시절에 우리는  불안한 미래에 대해... 80년대초... 불의한 권력에 억눌린 현실에 대해... 툭 하면 밤새 모여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아버님이 우리들의 익숙한 화제 속에 툭 던진 그 낯선 말씀이 내게는 한 줄기 청량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 새벽 숲에는 '서기'가 있지... 할 수만 있다면 그 새벽에 그 방을 빠져나와 혼자 산길을 걷고 싶어졌다.  


며칠 전  슈퍼에서 사두었던 덕용 포장 일본 라면을... 끓이고, 저녁에 지어둔 밥을 말아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렸다. 내딴에는 부지런을 떨었는데... 예상대로 여섯 시부터 주민들이 산책을 나왔다. 사람들 나다니기 전에 식기며 구차한 살림을 다 정리해야 겠다는 강박이 ... 있었던 것 같다. 


짐을 모두 꾸린 뒤 7시 30분에 다시 길을 나섰다. 흔적도 없이 텐트를 걷고... 다시 도로 위로 올라가 45번 사찰 이와야지(岩屋寺)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가는 차량 한 대 없는 한적한 산골이다. 



맑은 냇물을 따라 북쪽으로... 8km쯤... 달린다. 강원도의 어디쯤이라고 해도 어색할 게 없는 풍경이다. 



잠시 속도계가 말썽을 부렸다. 작동이 안 되길래... 이렇게 저렇게 만져도 보았다. 이때까지 표시된 누적 주행거리 1424km 처음에 100km 가량이 포맷된 적이 있으니 이미 1500여 km를 달려온 것이다.  속도계가 구동되지 않은 것은 앞바퀴축에 매달린 센서가 흘러내려 회전을 해도 스포크에 달린 센서와 신호를 주고받지 못한 때문이었다.  




8시15분 이와야지(岩屋寺)에 도착했다. 깊은 산속... 이른 아침이라 참배객도 거의 없었다. 





깍아지른 바위 산에 안겨있는 고풍스런 절이었다. 


일주 문 앞에서 본당까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다. 길가에 죄대 남무대성부동명왕(南無大聖不動明王)이라는 휘장이 늘어서 있었다. 귀의(歸依) 한다는 나무(南無)나 대성(大聖)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겠는데... 부동명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코보대사를 그렇게도 부르는 것인가? 짐작하면서 계단을 올랐다. 



내 짐작과는 달리.. 부동명왕은  산스크리트어(Sanskrit) 아차라나트(아차라-움직이지 않는, 나트-수호자)를 번역한 말로, 주로 밀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오대 명왕 가운데 핵심이며, 그 기원은 힌두교의 시바신이라고 한다.  




코보대사가 부동명왕을 조각해 이 절의 배경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에 넣어두었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는 북한산의 인수봉 같은 그런 단단한 느낌이 아니라 진안에 있는 마이산처럼... 콘크리를 부어놓은 것 같은 그런 바위였다. 



부동명왕...아차라나트는 대개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을 건지기 위해 올가미 같은 것을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번뇌에서 벗어난 상태... 우리는  갈망한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한 시도 평탄하지 않다. 대개 그렇다. 지나간 일들 후회한들 무엇하리... 그러나 ... 그러나... 회한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렇게 보낼 수밖에 없었나... 나는 왜 조금 더 따뜻한 아들이 되지 못했나... 그런 후회... 



산중의 절에는 도보순례자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절에서 일하는 보살님인지... 할머니 한 분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마당을 쓸고 있었다. 비 질 자국이 아직 사람들 발자국에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아침 산사. 



코보대사가 직접 판 굴이 있고 그 안에 신령스러운 물이 솟아나고 있다더니... 이것인지... 그렇다면 이끼를 뒤집어 쓴 이 작은 동굴의 역사는 몇년이나 될까...   




길가에 달려있는 '대화혼(大和魂), 힘내세요! ' ... 일본사람들에게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한국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말이다. 대화 (大和)는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배달(밝달)'처럼... 일본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한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신무천황이 대화지방에 나라를 세웠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태백산 신시(神市) 처럼 말이다. 


아시아를 세계 전체로 인식했던 시대,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었고 그곳에서 유래한 문물을 재(才), 이와 대립 되는 일본특유의 정신과 방법을 화(和)라고 ... 외래문물을 취하되 자기 정신과 가치관을 중심에 두자는 생각에서 일본은  화혼한재(和魂漢才), 근대에 와서는 화혼양재(和魂洋才)를 슬로건처럼 내세웠다. 우리가 외세에 의해 나를 개방하면서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을 내세웠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 일본민족의 혼을 강조하는 것이 이웃나라들에게 섬뜩하게 느껴지는가... 과거에 그들이 야마토고코로(大和心)를 부르짖으며 저지른 침략전쟁 때문에 그렇다. 그런 침략과 학살의 만행을 독일처럼 충분히 반성하지 않은 가운데 2차대전 당시에 국가적 슬로건으로 주창되던 이 말을 강조하기 때문에... 과거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나라사람들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고요한 마음으로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향을 사른 뒤 산길을 내려오던 마음은 대화혼을 보고 그만 복장해지고 말았다.  산 아래 정류장 앞에 있는 가게에 들러 빵 한 봉지와 레몬음료를 사서... 휴식소에 앉아 잠시 쉬었다. 



또 다시 산을 넘어가야 할 게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12번 국도를 따라 계속 북상하다가... 결국 어제 들렀던 44번 다이호지(大宝寺)가 있던 마을까지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길이 깨끗하고 마을이 조용한 것은 좋았지만... 이 길도 만만치 않았다. 고개 하나를 넘기 전에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넘어오던 아저씨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자신은 작년에 오토바이로 순례를 한 적이 있었다고... 순례자들가운데는... 이렇게 반복해서 계속 도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누군가 방명록에... '시코쿠 병원에 입원했다'고 썼던 말이 떠올랐다. 일상을 견디다 겨우 짬을 내 이렇게 자신의 내면과, 또 이들의 신앙 중심에 있는 코보 대사와 대화하면서 수십일을 걷는 일... 그것이 왜 병원이 아니겠는가... 



구마코겐 마을(久万高原町)에 다시 돌아왔다. 어제 저녁에 다급하게 잠자리를 찾아 달리던 순간이 떠올라 웃음이 머금어졌다. 마을에 편의점 같은 것은 없는 줄 알았는데 북쪽 끝에 편의점이 있었다. 화장실도 쓸 겸 들러서 늘 사서 마시던 500밀리리터 카페오래를 사서 가게 앞에서 마시고 있자니...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단정한 표정의 아저씨가... 가게 안에서 오차 한 병과 주먹밥 한 덩이를 사가지고 나오면서...내게 500엔짜리 동전을 오셋타이라며 ... 건네주었다. 


아마도... 사 가지고 나오던 오차와 주먹밥이 자신의 점심인 모양인데... 자신을 위해서는 300엔도 안 쓰면서 순례자에게 500엔짜리 동전을 기부하다니... 어쩐지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10시 40분 다시 출발...33번 국도로 고개를 넘어야 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열심히 밟으며 오르기 시작... 이 갈림길은 33번 도로의 바이패스구간과 옛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직전에 농수로로 맑은 물이 쏟아지고 있길래...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발을 씻었다. 발을 깨끗이 씻기만 해도 피로감이 가신다.  



점점 태양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내릴까 걱정... 해가 뜨거워지면 뜨거워진다고 걱정... 이러니 부동명왕이 번뇌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건져야 겠다고 올가미를 들고 서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ㅎ  


결심을 크게 하고 오른 때문인지... 큰 고통 없이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미사카 고개(三坂峠, 해발 720미터) ... 자동차들은 아래쪽에 새로 뚫은 터널로 바이패스가 나 있어 통행자가 거의 없다. 


고개마루는 휘어져 있어 반대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이나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푸파 푸파..' 무슨 짐승의 신음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자전거를 탄 사람이 막 등정을 하고 있었다. 늘씬한 로드바이크였다. 그는 내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그 대로 고갯마루를 지나쳐 달려갔다. 까마득하게... 산 아래로 마쓰야마 시내와 그 너머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 



도시가 펼쳐져 있구나. 이제 도시로 내려가는구나... 

그러나 자동차와 분리돼 있던 도로가 이내 합류하면서 당분간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하는 화물차들 옆으로 겁에 질린 채 가파른 고갯길을 달려 내려와야 했다. 그런 길은 고개를 절반쯤 내려와 가파른 길의 경사를 눅느라 도로가 완전히 360도 회저을 한 뒤에... 샛길이 갈라질 때까지 지속됐다. 



 지역 어린이들이 그린 자연보호 포스터가 길가에 전시돼 있었다.  



다소 경사가 가파른 구간도 있었지만 33번 도로와 헤어진 뒤로는 다시 평화로운 숲길이 산골마을로 이어져 있었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기온은 실감할 수 있게 빠르게 올라갔다. 갑자기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뀐 것처럼 ...  기온도 식물들도 달라졌다. 



 마쓰야마에 들어온 모양이다. 무언가 한 과정이 마무리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88개 사찰 가운데 불과 45개 절을 돌았을 뿐인데도 그랬다. 섬 전체를 놓고 볼 때 이제 네 개 사면 가운데 세 개 해안을 모두 돌았다...이제부터는 북쪽 해안을 따라 일본에 처음 도착했던 다카마쓰를 거쳐 88번 사찰까지... 가면 이 여행은 마무리된다. 


마쓰야마 시(松山)는 에히메현의 현도라고 했다. 큰 도시다. 나쓰메소세키의 소설 도련님(봇짱)의 무대도 이곳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때만 해도 시코쿠는 외딴  오지로 묘사된다. 도쿄에서 마쓰야마에 있는 시골 학교로 전근 온 주인공이 좌충우돌 더러 교활하고 속된 주변 인물들과 맞서고 부딪치면서 겪는 일들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읽어본 그 소설은 사실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읽게 되던 헤르만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 '데이만' 같은 성장소설 같기도 했지만... 이 소설들에 비하면 봇짱에 담긴 메시지는 번역 때문인지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충분히 감정이입이 안 됐다. 


마쓰야마시에는 46번 루리지(浄瑠璃寺) 47번 야사카지 (八坂寺) 48번 사이린지 (西林寺), 49번 죠도지(浄土寺), 50번 한타지(繁多寺), 51번 이시테지(石手寺)그리고 53번 엔묘지( 円明寺)까지 무려 8개의 절이 시내에 흩어져 있다. 시내에는 무슨 산이나 험한 고개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첫날 도쿠시마에서 10개의 절을 순례한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다 돌 수도 있겠구나...  어리석게도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해치우는 사람처럼... 어느 순간엔가 빨리 숙제를 해치워야 한다는 식으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뭔가 그간의 보상 받아야 한다는 심리, 힘든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이나 전장에서 돌아온 상이군경들이 일반인들을 향해 치기 어리게 패악을 부리는 것과 같은.. 그런 심리도 있었다.  


46번 죠루리지(浄瑠璃寺)에 도착한것은 12시 20분 경이었다. 절은 산에서 내려와 시가지와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절의 이름은 동방 정유리세계(淨瑠璃世界)에서 모든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소멸시킨다는 약사여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절에는천연기념물 1000년도 더 되었다는 고목이 있었다. 





47번 야사카지 (八坂寺)는 죠루리지에서 1km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12시50분. 골목을 따라 달리다 보니 산에서 내려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어떤 면에서는 도회지가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서운한 기분도 들었다.



 이제 한동안 도심 속의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겠지,  고적한 산정 마을들과는 영영 이별인가...  그럴 줄 알았으면 그 순간을 더 누릴 것을... 그 서늘한 산중에서 늘 잠자리 걱정을 하며 종종걸음을 치던 게 떠올랐다. 


야사카지(八坂寺) 라는 이름은 여덟 개의 경사지를 개간해서 절을 앉힌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절은 신도와 불교가 융합된 절이라 해서 오래도록 번성했는데 여러 번 불타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거쳐 규모가 작아졌다고 한다. 


일본은 1868년 국수적인 분위기 속에서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는 신불분리령(神仏分離令)을 발표하고, 시코쿠 지역에서도 불교배척 운동이 벌어져 1875년까지 수많은 불교 사찰이 불타고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런 여파가 미쳤던 모양이다. 어쩐지 ... 그 동안 88개 사찰 주변에는 더 큰 규모의 신사들이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48번 사이린지(西林寺) 까지는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완만하게 내려가며 주택가 골목길을 달렸다. 오랜만에 핸로미찌스티커를 따라 달렸다.  



 절에 도착한 것은 1시 20분 경이었다.  시내에 들어와 약간 들뜨기도 했고... 뭔가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아야 겠다는 심정에서 제대로 된 밥을  사먹어야 겠다 싶었다. 



 사이린지는 주택가에 있었다. 그러나 산문은 고풍스러웠다. 산문 안에는 예의 손과 입을 씻는 미즈야가 있고... 




본당과 대사당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사이린지 본당에 모신 부처님은 참배객들이 볼 수 없게 감춰져 있고 뒤로 돌아앉아 있는 탓에 본당 뒤쪽으로 돌아가서 참배를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주로 원만한 가족관계를 기원하며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만나면 점심도 먹고 충전도 해야지... 생각하면서...이 즈음에는 반야심경 독경도 조금 건성으로 한 감이 있다.  

49번 조도지(浄土寺)까지는 제법 큰 도로를 따라 시내를 질주해야 했다.

이렇게 도로에 차가 많은 것도 사람과 집들이 많은 것도 어색했다. 그런데 마땅한 식당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조도지를 향해 달릴 때까지만 해도 시내에 있는 모든 절을 53번까지 다 순례하고 어디 바닷가 야영장을 찾아가거나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갑자기 진도가 빨라지니까... 쉴 틈을 내지 못한 채 계속 달리고 있었다. 차량과 사람들에 뒤섞여 골목을 돌아들면 불과 2~3 km 이내에 다음 절이 나왔다. 



50번 한타지(繁多寺).  아직 점심도 먹지 못했는데  이미 오후 2시반이 넘어 있었다. 배가 고프니까 슬슬 기운도 빠지고 기분도 나빠지고 있었다. 







51번 이시테지(石手寺) 국보급 문화재가 많은 큰 절이다. 절로 향하는 길목에 회랑처럼 양 옆으로 수공품을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시테지의 본당은 국보라고 했다. 이 절은 규모가 크고 방문객이 넘쳐났는데... 인근에 '도고온천'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도 있다고 한다. 도고온천은 일본 3대 온천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수백 년 전통이 있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데, 주변에 유서깊은 절도 있는 것이다. 



그저 평등이라고 굵은 붓으로 써놓았을 뿐인데...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차별이 없는 상태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던 스무 살 무렵에...  '교육과 의료'를 사회가 책임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고 노력하면 누구나 공부 할 수 있는 사회, 아픈 사람이 돈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사회... 그 정도의 복지가 보장된 사회...

그런데, 1980년대에 비해서도... 교육과 의료의 불평등은 더 심해진 것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식들은 모두 비정규직노동자가 되고 못 배운 부모의 자식들에게 대학진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라면... 과연 희망이 있나?    


 


 근사한 밥을 사먹겠다던 결심은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해 실행하지 못하고 절 앞에 있는우동(580엔)을 사먹었다.  우동가닥을 빨아올리며 가이드북을 살펴보니 가까이에 마쓰야마 유스호스텔이 있었다. 엊그제 길에서 만난 핸로상이 마쓰야마에 가서 유스호스텔을 이용할 수 있으면 해보라던 말이 생각났다. 지체없이 전화를 걸었다. 남자분이 반갑게 전화를 받더니 지금 당장와도 체크인 할 수 있다고 했다. 거의 오후 3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더 이상 달려서 뭐하나... 오늘은 그만 쉬자 ... 마쓰야마에 와서 내처 달리기만  해서야... 

시내에서 느릿느릿 관광이나 하자... 뒤늦게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유스호스텔은 도고온천 인근 언덕 위에 있었다. 지도에 애매하게 표시돼 또 한 번 온천병원 옆으로 언덕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시행착오를 겪은 뒤 반대편으로 돌아가다가 겁이나 이발소에 물어본 뒤 진입로를 찾았다.  땀을 흘리며 숙박신청서를 쓰고 있자니 여자 분이 차가운 음료를 주면서 마시라고 권했다. 


방은 세 사람이 함께 쓰게 돼 있었다. 일박에 2100엔. 내일 아침식사를 원하면 500엔을 더 내고 예약을 하라고... 와이파이, 세탁기와 샤워실 등 여행자 편의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다. 


보조배터리 등을 충전시켜놓고 패니어 한 개만 달고 시내로 달려나왔다. 온천을 먼저 할까 하다가 밤 11시까지 입욕이 가능하다니 우선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무작정 중심가로 ... 


며칠 전에 패달 한 쪽이 깨진 것이 있어 시내에서 만난 자전거숍에 들어가 적당해 보이는 패달을 골랐다. 양쪽 3천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별로 비싼 게 아니다 싶었지만 .. 숙박비를 2천100엔 지불한 처지에... 황송하다 싶었다. 


바퀴며, 스포크며 곳곳의 볼트들도 꼼꼼하게 점검하는 데 여간 열심이 아니다. 3천엔이 비싸다 싶다가 이런 수고를 마다 않는데... 생각하니 괜찮다 싶었다. 






에히메현 현청 앞에 있는 겐죠마에 역 인근... 다카마쓰 성 아래 공원. 퇴근 무렵 한가롭게 산책을 하거나 친구들끼리 어울려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 속에 나도 끼어들어 느릿느릿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거렸다. 

  

건널목에 우루르 몰려있다 신호가 바뀌자 물결처럼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화려한 간판과 밀집한 상가도 모두가 낯설고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도쿠시마를 떠난 뒤로 이렇게 번화한 도시를 만난 것이 처음인 셈이다. 벌써 2주 더 더 지났다. 


미쓰코시 백화점이 보이길래 호기심에 구경삼아 들어가 보았다. 밀물처럼 백화점 지하로 빨려 들어가는 자전거들을 따라가보고 싶었다. 



과연... 지하 1층은 자전거 전용 주차장이었다. 오르막에는 중앙에 자전거만 끌어올리는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돼 있고... 



2시간까지는 무료인 자동 주차시설... 까지 과연 자전거의 나라답다. 부럽다. 명동 롯데백화점에 자전거를 타고 간 적이 있는데, 뒷 편 주차장 빈 공간에 어정쩡하게 자전거를 세워 놓고 무슨 금지된 일탈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어색하게 매장에 올라가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쓰코시 백화점에 '주차'를  해 놓고 백화점을 한 바퀴 구경하고... 백화점 앞에 아케이드에서  조금 이른 저녁으로 우나기동(680엔)을 사 먹고...  아만다 커피숍에 앉아  아이스라떼와 초코크림 케이크 (530엔)까지...  

도시에는 달콤한 소비와 지출이 있구나..   





비슷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에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있다 ... 풀려난 주인공이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자신이 풀려난 일을 실감하던 모습을 묘사한 게 떠올랐다. 아이스크림이나 케이크... 는 달콤한 쾌락을 위해 먹지 허기를 채우는 음식은 아니니... 그 묘사가 어찌나 실감 나던지...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가... 다시 도고온천과 유스호스텔이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마쓰야마는 일부러 나쓰메소세키의 도련님을 관광상품화하려고... 그 무렵에나 다녔을 법한 증기 전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전차도 귀엽기는 마찬가지다... 노면 전차가 딸랑딸랑 아날로그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풍경...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전차들과 뒤섞여 물결을 이루고 달려가는 자전거로 퇴근하던 수많은 직장인들 ... 









센과 치히로의 모험에도 등장하는 낯익은 온천 앞에서 기념 사진도 한 장. 도고온천은 고베의 아리마온센 등과 일본의 3대 온천 중 하나라고 한다.  




자전거도 한 장..



온천은...  커다란 돌 욕조가 있는 욕탕이 두 개... 있는 게 인상적일 뿐 간결하고 소박했다. 몇 번 가 본 일본의 대중탕들이 욕조 안에 있는 물을 얼마나 깨끗이 관리하는지는... 이미 여러 번 봐 왔다. 공중도덕이라면 금메달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어릴 때 보던 서울의 목욕탕의 탈의실과 욕조가 왜 그렇게 생겼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머잖아 아내와 관광을 온다면 마쓰야마에서 하룻밤 자고... 전차로  오즈까지 가서 그곳에서도 하룻 밤을 묵어야지 싶었다. 딸들이 따라올지는 모르겠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오니 날이 저물었다. 더 없이 느긋한 기분으로  온천 옆에 있는 카페에서 기린 생맥주 한 잔을 또 천천히 마셨다.  까페 앞 광장 쪽에는 예의 '도련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인형으로 진열돼 있었다. 고집스럽던 봇짱(도련님)도...교활한 교감 선생도... ㅎㅎ 



편의점에서 500씨씨 캔맥주를 하나(260엔) 더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도쿄에서 관광차 혼자 왔다는 37살 오오츠카상 이 옆 침대에 짐을 풀고 있었다. 휴가를 내서 일부러 관광을 왔다고... 


와이파이를 마음껏 쓸 수 있는 휴게실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는데 아래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주인 아저씨가 뭔가 신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와서 '마지꾸'를 보러 오라고...했다. '마지꾸? 그게 뭔가요? ' '너 마지꾸가 뭔지 모르냐?' '글쎄요...' 



마지꾸...  아하 매직? 투숙객 가운데 한 사람이 풍선아트와 함께 간단한 마지꾸 공연을 한 동안 했다. 호텔이나 민박집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무엇인가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한 그런 곳이었다. 


지출: 이와야지 앞 가게에서 빵 (230엔)  자판기 비타민음료(120엔)  다이호지 앞 마을 서클케이 커피우유 (105엔) 

점심우동 550엔 마쓰야마 유스호스텔 2600엔(내일 아침500엔 포함), 자저거 패들(3000엔) 카페에서 음료수와 간식560  저녁우나기동 (680엔) 온천(600엔) 생맥주(400엔) 캔맥주 (260엔) 

세탁 (400엔) 


오즈유스호스텔-  구마코겐 미미도(御三戸)캠프장 

주행거리 69.71km 


고향집에서 자기라도 한 듯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창밖에 그림 같은 강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산책을 하는 주민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두세 량 짜리 작은 전차가 철교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대리석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준비돼 있는 인스턴트 커피와 녹차 ..


여섯시에 일어나 저녁에 사 둔 도시락을 먹고 빵을 구워 잼을 발라 도시락을 쌌다.



아랫 층 레이코상 부부가 깰까 싶어 발 소리 죽여 걸어다녀도 마룻바닥은 계속 삐그덕 거렸다. 


짐을 꾸려서 마당으로 나와  지하 빨래 건조장에 널어 둔 텐트를 걷었다. 잘 말라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짐을 다 꾸리고 난 뒤에도 인기척이 없어...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아까마츠 레이코 상이 마당으로 나왔다. 



방문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며 내 사진을 찍고...나도 기념으로 당신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까... 화장을 안 한 상태이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찍어 달라고...  식수를 받아야 겠다고 하니까...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받아도 된다고... 일본 수도물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굳건했다. 실제로 소독약 냄새도 없고 생수와 무슨 차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수도물을 받아서 마시고 다녔지만 전혀 트러블이 없었다. 


7시 반 출발.  잊을 수 없는 오즈시여 안녕 .



단정한 마을과 거리...그리고 사람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언제 다시 찾아와 볼 수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올 일이 또 있을까. 




여기도 외곽에는 여지없이 대형 쇼핑센터들... 잠시 꿈을 꾸고 현실세계로 소환 당한 느낌이랄까... 소박한 자급도시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현실로...   


로손에서 카페오레(110엔)를 마시고  56번 국도로로 17km쯤 달린 뒤...  내륙 쪽으로 뻗은 379번 도로 갈림길에 있는.. 우치코(内子) 미치노에키에서 잠시 쉬었다. 이제 가늠할 수 없는 산길이 또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미찌노에키 (道の駅)는 주요 도로변에 있는 휴게소들인데, 나그네들에게는 반가운 장소다. 노숙을 하며 순례를 하는 도보, 자전거 순례자들도 주로 이곳에 잠자리를  정한다. 화장실이 개방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실 물과 화장실, 그리고 피를 피할 지붕만 있다면 사실 극단적인 곤란은 피할 수 있겠으니... 말이다.


지차제에서 운영하는 것인지...  대개는 지역 농산물 판매장이 중심에 있다. 특이하게도 마늘이 있어 두 통(160엔), 그리고 홋카이도 산이라는 우유 (90엔)를 샀다. 일본사람들이 '닌니쿠'라고 부르는 마늘을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마늘이야말로... 한국음식은 마늘이 들어간 음식... 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생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맛있게 드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다. 무엇인가 억눌린 것이 있던 일본에서 해방된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실감하셔야 했던 것인지 아버지는 날 마늘을 좋아하셨다. 어릴 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군대에 갈 무렵부터는 나도 그렇게 됐다.  대량급식 찐 밥에 물려 입맛을 잃을 때는 취사병 후배들에게 마늘 한두 쪽을 얻어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좋았다. 


첫날 다이소에서 산 붓을 꺼내 자전거를 털고...  산을 향해 뻗은 379번 도로로...  




당분간은 개울을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날도 맑고 평화롭다. 



개울에는 잉어들이 한가롭게 헤엄치고 투망질을 하는 아저씨는 뭐 하나 급할 게 없어 보인다.  



적막감마저 느껴지는 길을 달린다.  차르르... 체인 돌아가는 소리마저 선명하다. 


11시 시골마을 길가에 있는 휴식소에서 간식을 먹고 있자니. 도로 순례자  하야시 미츠오 씨가 도착한다. 도쿄 옆에 있는 요코하마에 산다고... 자기 딸이 서울대학교에 유학해 박사 학위를 했다고... 간밤에 어디서 잤냐고 하길래... 오즈시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라고 하니까... 교도칸 유스호스텔...자신도 안다고...   자신은 줄곧 노숙을 하면서  순례중이라고... 전에 자전거로 순례한 적도 있다고 했다. 




마쓰야마(松山)시에도 유스호스텔이 있으니 만나게 되면 이용해보라고... 


379번 도로에서 다시 42번 도로로 우회전하는 지점에 작은 휴식소가 있다. 순례자들이 많이 쉬었다 가는 곳인지... 그런데 한쪽 구석에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아침에 싸 가지고 온 도시락 먹고 12:40 출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때부터 해발 600미터 고개를 공사장 트럭들을 피해 꾹 참고 고개를 올라야 했다.  


해발 570m 시모사카바 (下坂場峠)고개 그야말로... 산판길에 나무를 실어 내리자고 뚫어 놓은 고개인 것 같았다. 고갯길 공사를 하는지 육중한 덤프 트럭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오르내리는 것 말고는 지나다니는 차들도 없었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44번 다이호지(大寶寺)를 만나게 되는 것인가? ... GPS에 나타나는 지도상으로는 조금 미심쩍다... 고개를 내려간들 바로 절이 있는 게 아니라 다시 뭔가 산이 가로 놓여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어쨌든 다운힐...  


외진 시골에서는  빈집들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만나는 게 이제 낯설지도 않다. 작은 마을에서 지도는 또 다시 산 하나를 넘어가도록 가리키고 있다. 마침 도보 순례자가 앞서 가고 있어 ... 물어보니 자전거가 가기 어렵겠다고 했다. 

가이드북에는 도로 표시가 돼 있다. 비포장이다.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우편배달부에게 물어보니 조금 멀고 도로가 험하기는 하지만 다이호지까지 갈 수는 있다고...  용기를 얻어 다시 오르기 시작... 


길이 험해 패달을 밟아봐야 헛돌기만 했다. 끌고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토기타고개 해발 770m ... 좀 전에 오른 시모사카바 고개보다도 더 높았다.  이젠 정말 고개를 내려가기만 하면 되겠지... 안일한 생각이었다. ... 내리막길에서 안내 책자를 꺼내보기 귀찮아... 내처 타고 달리다가 길을 잘못들고 말았다. 



저류조로 만들어 놓은 호수로 보이는... 이곳에서 길은 끊겨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고개 정상 부분까지... 올라 왼쪽으로 꺾어지는 갈림길을 찾았다. 



하루도 곱게 넘어가는 날이 없구나...TT 



드디어 쿠마코겐(久万高原町) 마을에 도착했다. 넘어 온 산을 돌아보니 까마득하게 높았다.  44번 다이호지(大寶寺)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편의점도 없는  산속 마을. 놀라운 것은 토키타 고개 입구에서 만났던 도보 순례자가 이미 절에 도착해 있었다. 비포장 산길을 넘는 데는 자전거가 교통수단이 아니라 짐일 뿐이라는 것을...실감했다. 


 44번 다이호지(大寶寺)는 701년... 백제에서 온 스님이 12면 관음보살상을 산중에 묻어둔 것이 발견돼 그것을 모시고 세운 절이라고 한다. 역사에는 백제가 533년 성왕 때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돼 있다.



백제에서 건너 간 불교는 코보대사로부터 비롯된 밀교와는 다른 불교였을 것이다. 코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간 것은 804년... 이 다이호지에 관음보살상을 전해주었다는 백제 스님의 전설보다 백년 쯤 뒤의 일이다. 



해가 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GPS에 표시된 캠핑장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캠핑장인가요?" "캠핑장은 아닌데요..." 이게 무슨 소린가... 급 당황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 반, 못 알아듣는 말 반... 힘겨운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캠프장은 아니지만 캠프는 할 수 있다. 여기 텐트는 없다. 캠핑을 하기에는 너무 춥다. 내게 텐트와 슬리핑백이 있으니 문제 없어요.  잠시 기다려봐라. 지금 있는 데가 어디냐. 다이호지 앞입니다. 10분 뒤에 다시 전화해라... 


이 산골마을에 무슨 숙박업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나로서는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허락을 받다. 일박에 얼마인가요?  무료다. 아.. 그래요? 

그런데  먹을 게 없었다. 캠핑장까지는 직선거리 8.5 km. 이미 다섯 시 시보가 울렸다. 절에서 내려와 좌회전을 한 뒤 다시33번 도로로 좌회전해 강변을 따라 7km쯤 달렸다. 다행히 고개 같은 것은 없었다.  지도에 표시된 미가와 미치노에키도 이미 문을 닫았다. 다시 한 번 좌회전해서 212번 도로로 꺾어진 뒤 캠핑장 바로 위에 도달했다. 바로 위라고 표현한 것은 도라 아래 강변에 캠핑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있어 들러보았다. 먹을 수 있는 건 다 사보기로 했다. 정어리 통조림과 꼬막 같은 조개 통조림. 계란 한 줄 (열 개). 작은 참기름 한 병(작은 건 이 것밖에 없었다) 식빵 하나. 아사히 맥주 작은캔하나,  닭고기 200g (전부 1500엔) 

 

별 기대 안 하고 강변으로 내려섰는데... 뜻밖에 범상치 않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마코겐 久万高原町 미미도(御三戸)캠프장, 캠핑장이라기보다... 강변 유원지 정도라고 해야 맞겠다. 전화로 캠핑을 허락해준 곳은  캠핑장 바로 위에 있는 동사무소였다. 





저녁 5시 50분... 일단 가족들과 통화를 했다. 무사히 잠자리에 도달했다고...  인적 드문 산을 두 개나 넘어와 조금 외로웠던 모양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팩을 박을 수 없어 돌들을 주워다 플라이를 당겨 놓고... 



밥을 짓고... 마늘을 볶다가 닭도 함께 볶은 뒤.양파 고추장을 넣고 끓이다. 라면 사리를 넣어서 잡탕 전골을 끓였다.



 맥주도 곁들여서...  한 끼를 해결하고 나니 추위가 몰려왔다.


캠핑장 위쪽에 허름한 화장실이 있었다. 수도도 있어 식수는 거기서 받았다.  

강변에 어둠이 밀려왔다. 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고요히 흘러갔다. 

이를 닦고  강변에 내려가 수건을 적셔 몸을 대충 닦았다. 

'저문 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려고 했는데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그럴 수 없었다.  밤 10시 경 잠들었다. 


지출 카페오레 110엔, 미치노에키 250엔(우유 마늘 양파) 가게 150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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