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쓰 토요코인 호텔~ 도쿠시마 달맞이언덕 텐트촌 (츠키미가 오카 月見ヶ丘海岸)

주행거리 86km

자전거 여행 첫날.



뒤척이다 자정 넘어  잠들었지만  4시경 잠이 깼다. 긴장해 있었다. 짐을 풀고 다시 꾸린 뒤  7시경 1층 로비에 차려진 호텔 조식을 먹었다. 주먹밥과 미소된장국, 감자 샐러드. 식욕이 없었지만  온종일 달리며 후회할 것 같아 꾸역꾸역 먹어두었다.  


자전거 앞뒤에 매다는 패니어 4개,  랙 팩, 핸들에 고정하는 핸들바 백 등 모두 여섯 개의 가방을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보며 양쪽의 균형을 맞추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9시가 다 돼 호텔을 나섰다. 뙤약볕이 내려쬐는 이국의 도로.  갑자기 계절이 바뀌어 한 여름 속으로 뛰어든 기분이었다.  


첫날 숙박은 출발지점인 다카마스(高松)에서 시코쿠섬 북단의 반대쪽 도쿠시마(德島) 공항 옆 바닷가 '달맞이언덕 캠핑장'에서 할 작정이었다. 시코쿠 88개 사찰 중 1번 사찰 료젠지(靈山寺)에서 10km쯤 떨어진 곳이다. 지도상으로는 거리와 지형이 가늠되지 않는다. 대략  80km 이상 달려야 한다. 달맞이언덕.  낭만적인 이름의 바닷가 캠핑장?  살짝 기대도 됐다


 호텔 문을 나서면서부터  방향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북쪽 해안을 따라 뻗어있는  11번 도로는 조금 돌아가는 것 같아 남쪽으로 가서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한 뒤 12번, 10번 도로 등을 조합해가며 도쿠시마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패니어를 부착하다 보니 앞바퀴 오른쪽 랙의 나사가 헐거웠다. 렌치로 조이려고 해도 계속 겉돌기만 했다. 다행히 얼마 달리지 않아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자전거 수리점을 만났다.  나사 몇 개를 조이더니 1천 엔이라고 했다. 휴대용 공구로 스스로 처리할 만한 일이었는데 싶었다.  


자전거포 할아버지에게 길을 물으니 계속 남쪽으로 가다 보면 192번 도로가 있고,  그 길로 계속 가다 강을 건넌 뒤 193번 도로를 타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나 192번도 193번도 찾지 못하고 오전 내 무척 헤맸다. 10번 도로를 타고 도쿠시마가 있는 동쪽으로 일관되게 달릴 수 있게 된 건 정오가 다 되어서다.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기 좌표를 읽고  GPS의 표시된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달리고 있는데  계속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자전거를 멈추고  혹시 앞 펜다가 바퀴에 긁히는지 살펴봐도 그런 낌새는 없다.  다시 출발하다 멈춰 살펴보니 뒷 팬다를 고정해놓은 나사가  빠져 달아나고 랙 팩을 묶어둔 줄이 풀려 뒷바퀴에 마찰되면서 긁히고 있었다.  긴장한 탓에 간단한 이상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도 고팠다. 어디서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처음에는 막막했다.


정오가 조금 넘어,  '365일 싸다'는 슬로건을 내 건 코스모스 마트에 들렀다. 사이다, 우유, 빵과 잼을 사서  그늘에 앉아 요기를 하고 나머지는 랙 팩에 넣은 뒤 다시 달렸다.


다카마쓰를 통과하고 우동으로 유명한 사누키 시도 거의 다  벗어난 지점에서 우동을 사 먹었다.  어느새 오후 3시가 다 되었다.  맑은 국물에 국수가닥뿐인데 맛은 좋았다. 국수만으로는 허전해서 튀김과 주먹밥까지 합쳐서 600엔.

물통에 얼음물을 가득 채우고 다시 출발. 볕이 무척 따가웠다. 견딜 만한 언덕들이 나타나고 꾸준히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평균속도 30Km. 꽤 부지런히 달렸다. 긴장감 때문에 힘든 줄도 몰랐다.


바다. 찾기 어려운 지름길은 포기하고 해안을 따라 달리기로 했다. 얼핏 지도에 보기에 1번 사찰 료젠지(靈山寺)로 가려면  히가시카가와 시 (東かがわ市)를 지난 뒤에 무척 경사가 가파른 산을 넘어야 하지만, 어차피 첫날은 절에 갈 게 아니라 캠핑장을 향해  계속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국도 변에 자전거 도로는 잘 정비돼 있었다. 일본의 행정구역 '시'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개념인 것 같았다. 마을을 통상 '시'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오가는 차들 말고 사람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도쿠시마에 거의 다 도달한 해안에서 약수터를 발견하고 수통에 물을 채웠다. 트렁크에 물통을 가득 싣고 와 물을 긷고 있던 아주머니가 관심을 가지고 어디로 가냐고 질문을 했다. 외진 도로변, 시멘트 옹벽 안에 있는 약수터에 단 둘만 있는 게 불안하겠다 싶어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해안길이 끝나고 도쿠시마에 들어선 뒤로는 시가지를 달려야 했다. 야영장까지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시내를 가로지르고, 공단을 지나 마을과는 동떨어진 공항 인근 동네...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항 안내판에 도쿠시마 아와오도리 공향( 徳島阿波おどり空港)이라고 쓰여있다. 아와오도리는 도쿠시마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댄스 페스티벌이라고 한다.


저녁 6시경 해안에서 멀지 않은 달맞이 언덕 캠프촌에 도착했다. 그러나 상상하던 바닷가 낭만적인 캠핑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게 잠긴 철문에 무단 캠프를 금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맥이 빠졌다. 안내문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입니다. 캠핑을 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가능하지만, 내가 캠프장까지 가려면 30분 정도 걸린다. 괜찮냐? 텐트는 가지고 있냐?  일박에 600엔이다. " 물론 괜찮고말고 어차피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는 처지 아닌가.

시코쿠 첫 야영장. 달맞이언덕 캠핑장.  쓸쓸한 적막감만 감도는 곳이었다.

시코쿠에서 첫 캠핑이 가능할 것 같아 마음이 느긋해졌다. 기다리고 있으니 노년의 내외가 작은 트럭을 타고 왔다. 600엔을 내고 아무 데나 텐트를 치라고 했다. 샤워장, 화장실과 가까운 곳에 쳤다. 그런데 사워를 하려면 100엔 더 내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서둘러 샤워를 하라고 했다. 샤워를 하고 옷도 갈아입으니 주인 내외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바글대던 시절이 있었을까. 늙고 낡은 캠핑장에는 쓸쓸한 적막감만 가득했다.


주인장 내외가 떠나고 나자 호젓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첫날 자전거 주행을 이렇게 마쳤구나.  밥을 차려 먹으려고 보니,  라이터가 없어 버너를 켤 수 없었다. 다시 자전거로 공단을 가로질러 왕복 8km. 편의점 로손을 찾아가 일회용 가스라이터를 사 가지고 다시 텅 빈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이미 날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옥외에서 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를 겨우 찾아  핸드폰과 충전 배터리를  충전시켜 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빛이 초롱했다. 가족들도 저 별을 보고 있겠지.


 



부인하고 싶은 나이 쉰.  다시  가슴 뛸 일이 있을까.

 

어느새 쉰 살이 넘었다. 실감 나지 않는 나이. 아니, 부인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내 마음이 어떠하든 나이를 실감하게 만드는 일들이 계속 벌어졌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해 봄, 친구 S가 갑자기 죽었다. 암에 걸렸다고 쓸쓸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지 불과 한 달 만에 그랬다. 각별했던 사이라 장례식장을 나흘 내내 지키다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고향  벌교에 가서  묻고 올라오면서,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7년 근속하면 1개월  '안식월' 휴가를 쓸 수 있다. 7년을 넘겨 9년이  되도록 휴가 낼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친구의 죽음을 겪으면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던 일과 일상에서 벗어날 엄두를 내게 되었다.

 

 S가 죽기 불과 열흘 전, 경주에 있는 자연치유원에서 경남 거창 그가 귀농해 살던  집까지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그는  다섯 살짜리 늦둥이 아들에 대해 회한을 토로했다. "책임감 강한 체 해왔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네. 정말 책임감이 강하다면 건강하게 살아남아야지, 애걸복걸하면서 건강 망치고 무엇 하나 책임을 못 지게 생겼잖아."

그의 죽음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마음을 끓이며 집착하고 있는 일들이 다 허무해졌다.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 말고 다른 어떤 일.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여행밖에 없었다.

시코쿠 순례길을 떠올렸다. 이런저런 책에서 한두 번 얼핏 본 정도가 전부였다.  일본의 네 개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시코쿠에는 88개의 사찰을 도는 순례길이 있다고 했다. 1,200 Km.  걸어서 45일  이상 걸리는 먼 길. 자전거를 타고 돌면  한 달 안에 순례를 마칠 수 있겠다 싶었다.

 

시코쿠 순례를 시작하기 전 한강변을 연습 삼아 달려보았다.

오월 중순부터 휴가를 쓰겠다고 한 달 반 전인 삼월 말에 미리 휴가계를 냈다. 그때부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걱정이 시작됐다. 자전거를 가지고 일본까지 가는 일도 실현 가능한지 모르겠고,  한 달 가까이 자전거를 타다가 낯선 외국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잠은 어디서 자야 할지. 차라리 걷는 일이라면 홀가분하겠는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언제나 제일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내 마음

 

가끔 세검정에 있는 집에서 사무실이 있던 장충동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적은 있지만, 내게는 도로 위로 자동차들에 뒤섞여 그 정도를 달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 큰 고장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그 무렵 나는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도 홍은동에 있는 자전거 숍까지 끌고 가서 넣어달라고  하는 수준이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강동구청 앞에 있는 '바이클리'라는 숍에서 여행자를 위한 자전거 정비교실을 열고 있었다. (지금은 용산역 인근으로 옮겨가 있다.)  5주 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자전거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퇴근 후에 부리나케 강동구청을 향해 달려갈 때면,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내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가슴이 설레다... 참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었다. 설렘도 달뜬 흥분도 없이 그렇게 살아왔구나 싶었다.

 

바이클리의 교육은 여행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데 필요한 상식들, 타이어 펑크, 체인이 끊어졌을 때의 대처법, 브레이크와 기어 장력 조절과  트러블 대처법, 자전거 분해와 조립, 그리고 항공 수하물로 발송하기 위해 포장하는 법 등등 꼭 여행이 아니라도 자전거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로 알차게 짜여 있었다.

 

 

 

동기생들은 모두 6명이었다. MTB를 개조해 유럽의 고성 등 건축 투어를 하겠다는 건축사, 네팔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 놓고 티베트와 인도 네팔을 여행하겠다는 50대 초반의 사내, 6개월에 걸쳐 캐나다를 횡단 하겠다는 서른일곱 살 학원강사, 병역특례 근무를 마치고 여행을 기획하다 복학 전에 워킹홀리데이 신청을 해 도쿄에 일자리를 잡아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는 젊은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젊었을 때  뭔가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국내 여행을 준비하다가 바이클리 알게 되었고 내친김에 친구와 둘이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 여행하겠다는 청년, 그리고 부산에서 올라와 미국 횡단과 종단을 한 번에 하겠다고 준비하던 젊은이. 알고 보니 바이클리는 전 세계로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거쳐가는 플랫폼이었다.   

 

도중에 체인이 끊어지면 이렇게 수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소 무리가 되었지만, 자전거는 새로 장만했다. 제이미스오로라라는 브랜드의 여행용 자전거. 앞 뒤에 패니어를 장착할 수 있게 랙을 달 수 있는 모델이었다. 본래는 출퇴근 때 가끔 타던 생활자전거를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교육을 받으면서 생각을 바꿨다.  집에서 강동구청 앞 바이클리까지 왕 70Km를 한 번 왕복해본 뒤 아무래도 자전거를 바꾸는 게 좋겠다 싶었다. 자전거를 바꾸어도 걱정은 여전했다.  한강변 안전한 자전거길로 70km를 달리는 일도 불가능하다 싶게 힘겨운데, 과연 20여 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해낼 수 있을까.

 

실제로 겪은 상황보다 미리 걱정하는 일이 더 힘겨웠다.

삶에서 겪는 일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떠나기 전 날,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안했다. 여행 준비는 엉성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일정 별로 진행 구간을 미리 정하는 등 세부 계획을 세우려고 했으나 일에 쫓겨 제대로 하지 못 했다. 정보도 부족했다.

말도 서툰 이국의 낯선 거리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다닐 것인지도 고민이었다.  스마트폰에서 바로 구글맵 오프라인 지도를 저장하고 이것을 로커스라는 앱에 불러온 뒤 시코쿠 88개 사찰과 시코쿠 섬 야영장 GPS 좌표를 얹었다.     

 

떠나기 전 날 독서실에서 자정 다 돼 돌아온 고등학교 2학년 작은 딸과 식탁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세상의 부조리한 면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세상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두 아이는 기질도 성향도 판이하다. 어떤 면은 부모를 물려받은 것이지 싶고, 어떤 면은 도대체 어디서 온 성품인지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두 아이에게 다 있다.

 

우리 세대는 청춘의 시절을 최루탄 난무하는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눈물과 땀에 범벅돼  거리를 달리면서  막연하게  우리 아이들은 좀 더 합리적인 세상에서 살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위태롭고 어떤 면에서는 더 숨 막히는 곳이 되었다. 우리가 채 다 못한 숙제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유전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야영을 하려다 보니 짐이 많아졌다. 랙팩과 패니어 등 여섯 개의 가방에 실을 짐들

 

5월 21일.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한여름을 방불케 더운 날씨였다. 아침을 먹고 강동구청 앞 바이클리로 짐을 들고 지하철로 갔다.  전날 자전거를 타고 가서 분해해서 박스에 포장을 해두었기에 나머지 짐만 꾸려 랙팩과 핸들바백에 담았다. 먹을거리와 옷가지, 그리고 캠핑장비들까지...  어깨가 빠지게 무거웠다.   

 

자전거 박스에는 기내 반입이 어렵지 싶은 텐트 폴과 팩, 자전거 수리공구, 주머니칼 등과 침낭 옷가지만 넣었는데도 30kg이 넘었다. 다시 옷가지 텐트 등을 빼도 26Kg. 아시아나 홈페이지 안내에는  일본지역 무료 수하물은 이코노미의 경우  20kg까지고  5Kg 초과할 경우 다카마쓰까지는 2만 5천 원 차지를 물게 돼 있다. 그러나 공항터미널 담당 직원은 '네, 잘 다녀오세요!' 하더니 쿨하게 그냥 통과시켜주었다.

 

바이클리 사장님이 같은 날 캐나다 횡단을 위해 출국하는 로키님과 나를 삼성동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었다.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짐을 부치고 나니 한결 여유가 생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혼슈와 시코쿠를 연결한 세토대교

 

비행기는 한 시간 남짓 만에 시코쿠섬 위를 날았다. 창밖으로 언뜻 내려다보기에도 평지는 별로 없고 온통 산과 계곡의 굴곡들뿐이라 덜컥 겁이 났다. 오토바이도 아니고, 내 심장을 동력으로 저 주름진 굴곡들을 이십여 일 달려야 하는구나.

 

여섯 시가 다 돼 다카마쓰(高松) 공항을 빠져나왔다. 부피가 큰 자전거 박스에 대해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관심을 표하며 의례적인 질문을 했다. 자전거 여행을 할 생각이냐? 잠은 어디서 자냐?  88번 사찰 일주를 할 생각이다. 잠은 비즈니스호텔을 이용하거나 캠핑을 할 생각이었다.

이미 해가 기울고 있어 공항에서 자전거를 조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바이클리 사장님 조언대로 택시에 박스 채 싣고 예약해둔 다카마쓰 나카진초 토요코인 호텔로 갔다. 택시는 근 40분을 달렸다. 석양이 지는 낯선 거리에 하굣길 학생들과 퇴근길 시민들이 자전거 물결을 이루며 한가롭게 달리고 있었다. 택시비는 4천 엔. 비싼 줄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도 더 나왔다. 하룻밤 숙박비다.

 

자전거 분해는 해봤지만, 조립은 처음이라 진땀깨나 흘렸다. 이런 상황을 예상해, 분해하면서 작은 플라스틱 통에 부위별로 볼트와 너트를 따로 모으고 패니어를 부착할 랙이나 빗물받이도 부착된 모습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어두었던 게 도움이 됐다.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말도 서툰데 자전거 박스를 쉽게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왔다. 호텔 프런트에 이런 말을 떠듬떠듬하니까 자전거 박스를 맡아주겠다고 했다. 박스를 분해할 필요도 없다고.  순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날인 6월 13일에 다시 호텔로 돌아올 예정이라  예약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박스를 맡기고  샤워까지 하고 나니 저녁 8시가 넘었다.

 

자전거로  시내도 둘러보고 밥도 먹을 겸 밤거리를 달려보았다. 자전거도로가 잘 구획돼 있었다. 일직선으로 곧장 달려가니 다카마쓰 항구와 붙어 있는 역이었다. 문 연 식당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역사에 붙어있는 꽤 큰 할인점은 밤 10시 문 닫을 시간이 임박해 신선식품은 할인 판매를 하고 있었다.  도시락, 맥주와 내일 운행할 때 간식거리와, 쌀 1kg을  샀다. 물가가 비싼지 싼 지 아직은 전혀 감이 없었다.

 

 

시코쿠 순례길을 떠올렸다. 이런 저런 책에서 한두 번 얼핏 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알지 못했다. 일본의 네 개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시코쿠에는 88개의 사찰을 도는 순례길이 있다고 했다. 1200Km.  걸어서 45일쯤 걸어야 하는 먼 길이다. 자전거를 타며 한 달 안에 순례를 마칠 수 있겠다 싶었다.  

 

오월 중순부터 휴가를 쓰겠다고 한달 반 전인 삼월 말에 미리 휴가계를 냈다.  그 때부터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걱정이 시작됐다. 자전거를 가지고 일본까지 가는 일도 실현 가능한지 모르겠고,  한 달 가까이 자전거를 타다가 낯선 외국에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잠은 어디서 자야 할까. 차라리 걷는 일이면 홀가분 하겠는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가끔 세검정에 있는 집에서 장충동 사무실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 적은 있지만, 내게는 그것도 늘 조마조마했다. 도로 위로 자동차들 속에 뒤섞여 달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더 큰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나. 늘 이런 걱정을 안고 자전거를 타는 수준이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도 홍은동에 있는 자전거 숍까지 끌고가서 넣곤 하는 수준말이다.  

 

배워서 준비하자검색을 시작했다. 다행히 강동구청 앞에 있는 바이클리라는 숍에서 여행자를 위한 자건거 정비교실을 열고 있었다그러나 5월 중순에 휴가를 내기로 했는데그 전에 진행하는 4월 강좌는 이미 만원이었다. 바이클리 운영자분께 사정을 설명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일단은 정원이 모두 찼으니 혹 결원이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신이 왔다. 그리고 며칠 뒤 등록했던 대학생이 여름방학으로 여행 계획을 미루면서 빈 자리가 생겼으니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5주동안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자전거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퇴근 후에 부리나케 강동구청을 향해 달려갈 때면, 새로운 세계론 한 걸음 내딛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가슴이 설레다... 참 오랜만에 가슴이 설레었다. 설레임도 달뜬 흥분도 없이 그렇게 살아왔구나. 

 

여행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는 데 필요한 상식들, 타이어 펑크, 체인이 끊어졌을 때의 대처법, 브레이크와 기어의 장력을 조절과  트러블 대처법, 자전거의 분해와 조립, 그리고 항공 수하물로 발송하기 위해 포장하는 법 등등 꼭 여행이 아니라도 자전거에 대해 꼭 필요한 내용들로 알차게 짜인 교육이었다.  

 

동기생들은 모두 6명이었다. 엠티비를 개조해 유럽의 고성 등 건축 투어를 하시겠다는 건축사분, 네팔에 베이스캠프를 마련해놓고 티벳과 인도 네판을 여행하겠다는 50대 초반의 사내, 6개월에 걸쳐 캐나다를 횡당하겠다는 서른 일곱살 학원강사병역특례 근무를 마치고 여행 기획하다 복학 전에 워킹홀리데이 신청 해 도쿄에서 일 자리를 잡아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는 젊은이,  대학을 갓 졸업하고 후 취업을 준비하다가  젊었을 때  뭔가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국내 여행을 준비하다가 내친 김에  바이클리 알게 되었고, 친구와 둘이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청년, 그리고 부산에서 올라와 미국 횡단과 종단을 한번에 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던 젊은이. 

 

 

다소 무리가 되었지만, 자전거는 새로 장만했다. 제이미스오로라. 크로몰리 바디에 앞 뒤에 패니어를 장착할 수 있게 랙을 설치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자전거를 지참하고 오라는 말에 걱정이 앞서 집에 있던 출퇴근용 생활 자전거를 타고 강의가 시작되기 전 주 주말에 집에서부터 강동구청앞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본 적이 있다. 왕복 70Km 가량을 주행하고는 당장 그 다음주부터 강의를 듣는 일이 걱정이 돼 잠이 오지 않았다. 70km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과연 20여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는 일이 현실성 있는 계획인가?

 

내가 20대 젊은이도 아니고 미쳤지 무모한 일이야. 그냥 포기할까. 이런 망설임이 떠나기 전날까지 나를  전전반측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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