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6/3 월  -6/3 화   미나미 레구 오토캠핑장ㅡ오즈시(大洲) 교도칸 유스호스텔

운행 86.63km



편안한 잠자리에서 푹 잤다. 간밤에 비가 쏟아졌다. 떠내려 갈 염려는 없으니 잠결에 빗소리를 들으며 침낭 속에 몸을 움크린 채 더 잤다. 매일 비가 내리는 걸 보면 장마철이 시작된 게 분명한가보다...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내내 비를 맞고 달려야 하나?  


여섯시쯤 일어나 밥을 먹고 빵은 운행중에 행동식으로  먹을 생각으로 도시락으로 지참... 




7시10분 출발. 비교적 잘 쉬었으니 오늘은 80km 가량 떨어져 있는 오즈시(大洲市) 캠핑장까지 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다. 텐트와 플라이가 비에 젖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차체가 무거워졌다. 




미나미(南)레구 캠핑장은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우와지마 시(宇和島市) 남쪽에 있는 레크레이션 공원이라는  뜻의 명명일 것이다. 월요일 아침, 공원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그것도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달려내려오는 사람은 말이다. 



하룻밤 신세를 진 오토캠핑장(조금 비쌌다. 숙박 2500엔, 세탁과 샤워 600엔... 합 3100엔) 은 난요레크레이션도시공원(南予レクリエーション都市公園) 꼭대기에 있었다. 


다시 56번도로로 나와 북쪽으로 ... 달리기 시작  




시가지 끝에서 56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또 한 번 자전거가 미끄러며 지며 휘청하는 바람에 식은땀이 났다.   



비는 거의  그쳤다. 아침시간에는 힘이 난다. 언덕 위 터널도 거뜬히... 


홈센타 다이키. 도시의 초입에는 이렇게 홈센터와 대형할인매장들이 들어서 있다. 도시라고 해도 우리처럼 성냥갑 아파트들이 밀집된 게 아니라 단독주택들이 이어져 있고, 시골이라 그런지 대개는 집들마다 작은 정원과 텃밭들을 갖추고 있있기 때문인지 홈센터에는 정원용품과 농기구와 퇴비 등 원예용품을 대부분 갖춰놓고 있었다.  


시골에 살 때 수도나 보일러 등을 직접 수리할 일이 많았다. 물론 봄이 오면 퇴비 섞어 밭 고랑을 만들고 토마토 고추, 고구마, 호박 등을 심고 텃밭을 일궜다. 집과 텃밭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부품이나 연장을 사려면 건재상을 뒤지거나 광주나 양평에 열리는 오일장을 이용했다. 오일장에는 계절에 따라 묘목도 나오고 어지간한 게 다 있었다. 


일본에도 장날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홈센터에 없는 게 없으니... 이미 장터는 유통자본에 모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이미 농사 짓다가 호미 한 자루 사러 이마트로 달려가야 하는 세상이 됐다고 ... 알고 지내는 농부가 푸념했었다. 다카마쓰(高松市)에서 첫날 장을 봤던 에이스원이 여기에도 있었다. 


도시와 도시는 이런 대형할인점이나 홈센터로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로손이나 패밀리마트 같은 편의점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다. ... 사람들은 그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다니며 살아간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던 말이 실감난다.  


세탁은 코인란도리에서... 하고 


일본은 그 무렵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일본 공산당은 군소정당이지만...  '즉시 원자력발전 제로' 등 탈핵과 증세반대 등의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에 비해 자민당의 선거포스터들은... 

"일본을 다시 강하게!" 이 지역에서부터 일본을 재건(재생)하자는 주장을 ... 담고 있다. 이 포스터는 얌전한 편이지만... 어떤 것은 아베와 지역 의원후보의 얼굴을 극적으로 클로즈업 한 뒤 굵은 눈물을 흘리는 광경을 담아 놓고 일본을 재생시키자고 ... 꽤 호소력 있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었다. 


일본 공산당이 무슨 공산혁명을 내걸고 있는 정당은 아닐 테고 ... 온건한 사민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을 텐데... 선거홍보물에서도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우익들의 차이 같은 게 느껴진다. 공산당이 핵발전과 결별하자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이성에 호소하고 있다면 


자민당은 감정에 호소한다. 그들의 선전물에는 당장에라도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것 같은 선동이 있다. 누가 더 호소력이 있을까... 오래 지속된 경기침체와 쓰나미와 핵발전소 폭발 사고로 우울한 일본 국민들은 아베를 선택했다.  그 결과 일본은 오른쪽으로 마구 치닫고 있다. 실제로 일본이 다시 강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국들이 불안해진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나는 순례자의 길을 달린다. 





이 나라에도 사교육이 우리처럼 극성인지는 모르겠다. "믿고 맡기면 된다"고 써 놓은 선전 문구... 순진하다.  




종려나무 가로수가 늘어선 우와지마 시내... 이국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어느 새  비는 완전히 그쳐있었다. 기타우와지마 역을 지난 뒤... 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56번 도로와 헤어져 내륙으로 꺾어 들어가 야  41번 류코지 (龍光寺)쪽으로 갈 수 있다. 



갈림길에서 길을 잃을 뻔 한 뒤 ... 이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편의점 '싼쿠스'에  들러 정비를 하고 음료수도 사서 마신 뒤... 




다시 내륙쪽으로 언덕을 넘어 간다. 


언덕을 넘어가다가 허기가 져... 어제 다이소에서 사 두었던 단팥빵을 먹고...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해둔 휴식소에서 쉬기도 하면서... 




이제 류코지 (龍光寺)까지 800미터 남았다. 아침부터 거의 세 시간을 달려온 셈이다. 



41번 류코지 (龍光寺)는 오래된 마을 안... 까마득한 계단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코보 대사가 벼를 짊어지고 가는 노인을 만나고 이 분이 벼의 신 이나리(稻荷)라는 것을 알아보고 세운 절...이라고 한다. 이나리를 모시는 것은  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지만... 요즘은 장사 등 사업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로 이 절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높은 곳에 있으니... 류코지 龍光寺 화장실에서 내다보는 풍경도 아름답다. 

참배를 마치고 나니 10시가 됐다. 



류코지 계단을 채 다 내려서기 전에,  42번 부츠모쿠지(仏木寺) 로 이어진 도보순례길이 샛길로 연결돼 있다. 절제된 길 안내 마킹... 미의식마저 느껴진다.




빈집이 늘고 세월 따라 허물어져 가는 것... 농촌의 현실이다. 이 나라나 우리나라가 다르지 않다.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새들의 노래처럼 활기차게 울려퍼졌을... 지나간 시절들이 연상 돼 마음이 허전했다. 





족히 백 년은 넘었을 것 같은 핸로미찌 안내석 



새로 붙인 안내 스티커... 


42번 부츠모쿠지(仏木寺)까지는 자동차길로 돌아가도 4km 남짓 짧은 거리였다. 절은 도로에서 살짝 올라 앉아 있었다. 길가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자니 아이스크림 노점을 하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어쩐지 라디오에서 '싱글벙글쇼'가 울려퍼질 것만 같은 나른한 오전이다.  




부츠모쿠지(仏木寺) 는 소와 말... 최근에는 애완동물을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코보대사가 이 동네에서 만난 노인이 권하는 대로 소를 타고 가다보니 자신이 당나라에서 공부할 때 던진 보주(宝珠, 구슬? )가 녹나무 위에 걸려있었다고... 




이 절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나를 낳고 기른 것은 부모의 은혜.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터운...  

여행 내내 부모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내게는 조금 더 가슴을 파고 드는 말이다. 

이미 돌아가신 두 분께 무엇을 더 해볼 수도 없는... 이 때늦은 회한. 


두 분의 성장지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 태어난 두 분 (아버지 21년생, 어머니 26년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린 내게 들려준 바에 의하면, 아버지 아홉 살 때... 한국에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외가도 비슷한 이유로 그랬다고... 


7남매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아홉 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공장에 다니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공장에 다니면서 독학으로 중고교 졸업자격과 교사 자격시험까지 합격해...해방이 되던 무렵에는 소학교 선생님으로 도쿄에서 신혼 살림을 하고 계셨다고.. 


그 짤막한 전언 속에... 과목마다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문제가 없었는데, 음악 과목만은 독학으로 어쩔 수 없어서... 인근 소학교를 찾아가 니시이 선생이라는 분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니까... 저녁마다 찾아오면 피아노 레슨을 해주겠다고... 이런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11시 부츠모쿠지 참배를 마쳤다. 조용한 마을 뒤쪽으로 길은 말 없이 산을 향해 뻗어있다. 또 등산이 불가피하다. TT 



헨로미치 스티커가 고개 옆 완만한 샛길로 안내돼 있어  혹시나 고개를 피할 수 있는 길이 있나 따라 가보았다. 


2km 남짓이나 달렸을까... 길은 산길로 이어져 있다. 역시나 도보 순례자들을 위한 안내 스티커였다.


 다시 도로 쪽으로  되돌아나와 심호흡을 하고...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피로가 누적돼 힘이 빠진 탓인지, 기어에 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넘던 정도의 경사를 오르는데 부담이 된다. 거친 숨을 토하며 땀을 쏟지만 자전거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도로에 새겨진 이 스키드마크는 도대체 어떤 상황 때문?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목적지와의 거리를 한탄하며... 오르막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간식을 먹었다.  


벌써 오후 1시 반이다.  아침에 만들어온 주먹밥(김으로 싸서 까맣게 보이는) 과 토스트. 점심식사다.  먹고 난 뒤에는 

5분쯤 의자에 누워 잠을 잤다. 



구불구불한 도로는 곳곳에서 도보 순례길과 만났다 헤어졌다 한다. 


대개 고개의 정상에는 터널이 있다. 다 올랐구나... 여행중 깨달은 또 하나의 진리가 이것이다 끝나지 않는 오르막은 없다... 오르막은 언젠가 내리막으로 이어진다는 것... 사는 일도 마찬가지 겠지... 

내리막길을 달리다 보니... 도보순례길들이 지름길로 이어져 있다.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까지는 7km 남았다. 

큰 고개를 넘어왔으니 ...이제 더 이상 고난은 없겠지... 적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산길 아래 멀리 보이는 마을들도 적막하다.

일본에서는 드물게 비탈에 들어앉은 마을이다. 


 43번 메이세키지(明石寺)는 시모우와 (下宇和) 라는 동네에 있었다.  인근 지명은 모두  우와(宇和)와 관련이 있다. 북쪽에 있으면 기타()우와... 식으로 말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림처럼 깨끗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우리나라와 모내기 철이 별로 차이가 안 나는듯... 어린 모들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일본의 건물들은 외진 시골인데도 허술한 데가 없어 보인다. 


얼마전... '한옥에 대해 우리가 착각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대궐이나 큰 사찰의 날아갈 듯한 기와 지붕들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나... 과연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주거양식이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이나 솟을대문이었을까... 대부분 흙과 수숫대로 엮은 허술한 담과 초가지붕이었고 기와는 아주 희귀한 정도 였지만... 기와 지붕조차도... 천정 위에 흙을 쌓아 놓는 구조 때문에 내구성이 떨어지고 벌레와 쥐와 새와 뱀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는... 


지금도 시골에 있는 허술한 집들은 한겨울에 노천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추위를 버텨야 하는 점은 크게 변한 게 없다. 단열과 난방을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면...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만큼이나 위대한 업적이 될 텐데... 


2001년에 금강산에 가본 적이 있다. 멀리 보이는 북녘의 집들은 더 대책이 없었다. 지붕의 용마루도 반듯한 게 없고 어딘지 구부정하고 누추했다. 창틀도 반듯해 보이지 않고.  북녘의 겨울은 더 가혹하다지 않는가. 땔감을 해댄 탓에 마을 인근의 산들은 예외없이 민둥산이었다.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에너지로 겨울을 덥히는 일도 한계가 있고... 


그 허술한 주택들을 보면서 남녘과 북녘의 농촌에  값 싼 태양광 발전 모듈과 방풍 단열이 뛰어난 건축자재와 간편한 건축기술을 전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도 모를 군비경쟁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을 게 아니라 말이다. 


2시40분... 드디어   메이세키지(明石寺)에 도착했다. 


본당은 공사중이었다. 장막에 쌓여있어 모습 전체를 볼 수는 없었다. 



세계인류평화를 기원하는 표지판에 잠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이 나라에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있으며 그 상징적인 구호가 '강한 일본'과 '인류평화'로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원자탄 피폭을 경험한 나라가 일본인데...  평화헌법을 수정해서 재무장이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자민당 아베 정권이다. '강한 일본'이라는 선동이 침체된 일본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메이세키지는 짙은 산 그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부삼나무 ... 

몇 백년은 되었을 것 같은 삼나무 두 그루 앞에 그런 표지를 세워놓았다.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바쁘게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땅에 붙박은 채 제 몸으로 오고 가는 낮과 밤, 세월과 세월을 견딘 나무들은 평생 용맹정진하는 수도자들을 닮았다. 



본당은 공사중이었지만 코보 대사를 모신 대사당에는 참배객들이 모여있었다. 







순례 당시에도 일본 불교의 밀교적 전통에 대해 나는 무지한 편이었다. 코보대사의 존재가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몰랐다.

  



드디어 절 앞 매점에서 일본 순례자들이 들고 다니는 가이드북을 샀다.(2600엔, 도쿠시마 1번 사찰 료신지보다 조금 더 비싼 것 같았다.) 

말하자면 공식 가이드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이드북을 구입한 뒤로는 ... 도보술례길과 도로가 어떻게 나뉘어져 있는지... 마을과 상점, 민박이나 호텔 등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붉은 점선은 도보로만 갈 수 있는 산길이나 오솔길... 붉은 실선은 도보순례와 자동차, 자전거가 다 갈 수 있는 길이다. 책의 말미에는 지도의 페이지마다 이용 가능한 숙박업소의 전화번호가 안내 돼 있다. 



메이세키지(明石寺) 앞 산길에 서 있는 산불방지 표지판... 





밀과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이들을 베어내고 벼를 심는지는 모르겠다. 



절에서 내려와 GPS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대로 오주시(大洲市)로 가기 위해 좌회전해서 근 10km쯤 달렸을때... 


작은 차가 옆으로 따라붙으면서 운전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마구 소리를 지른다. '길이 없어요. 길이 없어요. 멈춰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 깜짝 놀라서... 자전거를 멈췄다.  




마사코 미요시와 미요시 에미코.. 모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케릭터다. 외모 때문이 아니라... 과장된 표정과 행동이 얼마나 수선스럽던지...  

 

"이쪽으로는 길이 없어요. 돌아가주세요." 아예 차에서 내려서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마쓰야마자동차도로 옆으로 난 소로를 따라 오주시로 이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 중간에 길이 끊긴다는 것이다. 이들과 잠시 길에 서서 수다를 떨었다, 

내가 서울에서 왔다니까... 딸인 에미코는... 우와...대단해요....를 연발하더니 차에서 새콤달콤 같은 캬라멜 한 통과 커다란 귤을 두 개 가져와서  '오셋타이'라며 준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엄마인 마사코 미요시는... 내게 '결혼 했느냐'고 물었다. 했다고... 대답하니까... 집에 가서 혼나면 어쩌려고 여자와 사진을 찍냐고... 내가 깔깔대며 웃으며 무슨 문제가 있겠냐고... 단지 사진을 찍는 것인데... 해도 양손을 엇갈려 엑스표시를 하면서 안돼 안돼(다메 다메) 하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순례자들이 입는 백의인 오이즈루 (소매없는 조끼 형식의 흰옷) 를 입고 엉뚱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나를 보고는 차를 몰고 따라와 기어코 길 안내를 해준 것이다. 참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들... 


다시 방향을 틀어서 세끼메이지(明石寺) 쪽으로 돌아와 뒤쪽으로 뻗어있는  56번 도로에 합류해 다시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시내를 통과하며 로손에서 카페오레 를 사 마시고, 이제 막 모내기를 끝낸 논들을 지나... 

논두렁이 진흙이 아니라 반듯한 시멘트 담이라 조금... 생경했다. 




핵발전소 54기를 모두 멈췄다는데..도대체 이 많은 자판기는 어떻게 가동 하는 것인지... 


외양만으로는 이 나라가 도대체 핵발전소 폭발의 재앙을 겪고 있는 나라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나름대로들 애를 쓰고 있겠지만... 절전을 위해 어떤 비상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아직 잠자리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목표로 하고 있는 오주시 가족캠핑장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터널 하나를 통과하니까... 분위기가 갑자기 변했다.  




"비핵평화 선언도시" 오주시... 마치 오륙십년 전의 세상을 옮겨다 놓은 듯한 풍경들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시청에 내건 플래카드를 보니 자민당이 아니라 사민당이나 공산당 지자체장인 모양이다. 

'강한 일본'을 내 건 곳보다는 훨씬 친밀감이 느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를 것만 같은 풍경들.  



하교 시간이라 흰 교복에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새떼들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곳.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졌다. 




강변 언덕 위에 아름다운 오즈성도 보이고... 






전통 복장을 한 할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다가 맞은편에서 내가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더니 자전거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걸어서 다리를 건넌다. 상대에 대한 배려... 같은 게 느껴진다. 



어찌 되었든 오즈 가족여행촌 오토캠핑장을 향해 달린다. 불행하게도 캠핑장은 언덕 위로 1.3km 올라간 지점에 있었다. 강변에 있으려니 생각하며 방심하며 달려오다가... 또 허를 찔린 기분이다. 


거의 울면서 또 올라갔다. 


그런데, 입구가 가로막혀 있다. 굵은 쇠줄로... GPS에서 관리사무실 전화번호가 링크 돼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자전거를 들고 쇠줄을 넘어갈까...생각하다 말았다. 만약 숙박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고스란히 이 비탈길을 다시 끌고 올라와야 할 테니 말이다.  트럭도 서 있어 관리인이 있는 줄 알았지만... 자전거를 언덕 위에 세워놓고  걸어내려 가보니 아무도 없다.  그냥 캠핑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수도와 화장실도 안 보이고  금지해 놓은 곳에 무리해서 넘어 들어가 잠을 자야 하나... 그것도 걸렸다.  그런데, 당장 이제 잘 곳이 막연하다.  



다시 시내로 나오며... 한글 안내지도에 나와 있는 '오즈 유스호스텔(0893-24-2258)'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미 곤고후쿠지 인근 아시즈리곶에서 예약 없이 찾아간 유스호스텔에서 거절 당한 경험이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다행히... 잘 수 있으니 찾아오라고 했다. 다만, 저녁식사가 안 되니까 먹을거리를 알아서 해결하라고... 또 샤워는 되지만 욕실은 사용할 수 없다고... 괜찮다고... 고맙다고... 




오즈시 (大洲) 교도칸유스호스텔(郷土館ユースホステル 81 893-24-2258  )... 

오즈성 뒤쪽 아름다운 강변에 있는 2층 가옥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지하 창고에 젖은 텐트를 널어 말리고... 짐을 푼 뒤... 시내로 달려나가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빵, 우유 등을 사왔다. 


주인 할머니 아카마츠 레이코 상의 말대로 8시면 수퍼와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시청 가까이에 가서야 겨우 편의점을 하나 발견했다.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전통가옥들이 늘어선 상가는 아름다웠지만 대개 이제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쇄락하고 있는 지방도시 풍경...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인가...  



유스호스텔은 낡았지만 세심하게 관리된 ... 어떤 면에서 호사스럽기까지 한 집이었다. 

잘 정리된 주방과 냉장고, 토스터도 따로 준비 돼 있고 창밖으로는 그림 같은 풍경들... 



집 전체가 미술품이나 골동품인 것 같았다. 이 때문인지...  체크인을 하고 난 뒤 레이코상과 마주 앉아 근 2~30분 가량 면담을 해야 했다.  할머니는 아이패드를 들고 와서 구글 번역기로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너무 느려서 속이 탔다. 어제 어디서 잤냐... 내일 어디로 가냐... 한국에서 하는 일은 뭐냐... 이런 정도인데... 타자가 너무 느려서 내가 옆에서 보고 있다가... 간단한 일본어는 할 줄 안다며... 대신 이걸 묻고 싶은 거냐? 하니까... 

소녀처럼 천진하고 웃으며 그렇다고... 





가옥의 2층을 독점하고  호사스러운 하룻밤을 보냈다. 

아쉽게도 기록이 사라져 2천5백엔이었는지 3천엔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쓰야마(松山)에서 기차로도 연결이 돼 있으니... 한국에서 가자면 마쓰야마를 거쳐 찾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즈는 가족들과  다시 찾아가 어슬렁어슬렁 걸어보고 싶은... 낭만적인 도시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창밖으로 덜커덩 거리며 기차가 지나가고 강물 위로 물새들이 그림처럼 날아다니는... 




저녁에 도착했을 때... 유스호스텔 앞에 있는 이 연못가에서 흰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 수줍은 표정으로 두세 쌍 어울려 대화를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나 볼 것 같은 풍경에 홀린 듯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 호타루(螢)가 살아요." 레이코 상이 말한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연못과 오래된 오즈성... 

스트레스라고는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주민들과 자전거를 타고 노래하듯이 웃으며 등하교 하는 아이들... 


나는 어쩐지 어린시절에 겪어본 삶의 온전한 모습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설렜다. 

우리는 다시 이런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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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2 일요일.  스쿠모(宿毛)  오시마(大島) ~미나미 레구(南レク)오토캠핑장 

운행 61.21km 

빗소리, 가볍게 출렁이는 파도,  바람에 서걱대는 플라이 소리... 이런 소리들이 가수면 상태에서 의식 속으로 밀려들곤 했다. 밤새 잠을 설쳤다. 4시부터는 고깃배들이 출항하면서 울리는 뱃고동 소리와 엔진소리 때문에 더 이상 누워있기도 어려웠다. 엎드린 채 집에 보낼 엽서를 썼다. 순례 첫날 열 장의 엽서를 사서 두 딸과 아내에게 틈틈이 엽서를 써서 보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열 장 가운데 두어 장은 미처 도착도 하기 전이고 대개는 식탁 유리판 아래 가지런히 모아져 있었다. 


스마트폰을 충전시켜 놓고 텐트 안에 있는 집을  정리한 뒤 찬 밥에 어제 저녁 사 놓은 즉석 카레를 부어 먹었다. 텐트를 걷고 설거지를 하고 짐을 다 꾸렸지만 비가 제법 내리고 있어 떠나지 못하고 처마 밑에서 비가 긋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여섯 시가 되기도 전인데 주민들이 빗속에 산책을 나왔다.  


나카야마(오른쪽 62세)씨와 이웃에 사는 친구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건넨다.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 분들도 조금 흥분한 상태가 되어 말이 많아졌다. 나카야마 씨는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본에는 이혼이 많다고 ...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집에 키우는 고양이기 이야기까지... 



저 앞에 있는 섬까지 간조 때는 걸어 갈 수 있어요.  한국에 진도도 그런 데가 있다면서요?  어? 진도를 아시네요?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서 알고 있어요.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카야마 씨가 빗속으로 달려가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세 개 뽑아 오더니 함께 마시자며 건넨다. 야영을 한 데다 비까지 내려 찬 커피가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즐겁게 마셨다.  자신들은 아침마다 여기가 고향이고 아침마다 산보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물으니 이제 은퇴했다고...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혼자 살며 새벽같이 일어나 공원을 산책하지만 딱히 출근할 곳이 없는 사내들. 역시 쓸쓸한 얘기다. 자전거 순례 초반에 만났던 야마시타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장성한 자식들은 이미 품을 떠난 상태에서 시코쿠 순례를 몇 번씩 되풀이하고 있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가족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언감생심 가족들에게 호령하던 가부장의 모습은 고사하고 과연 남성이 생물학적인 유전이라도 이어갈 수 있을지..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미 우리가 자랄  때 당연시 되던 남성의 모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초 중고등학교에서 예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은 여자아이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남성에게는 남성이 남아 있는 게 좋은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여성주의자들에게 비판 받을 소리일 수 있겠으나... 말이다. 


자상하고 친절하며 남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피부 관리를 위해 화장품을 차례대로 바르고 패션에 섬세한 관심을 기울이는 남자들은 늘었는데 오히려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하거나 자기 말이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하는 태도는 어떤 점에서 ... 여성들이 시원시원한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세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남성에게는 이제까지 전혀 다른... 새로운  성역할이 요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시50분 출발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진 것 같아 출발했다 . 어제 넘어온 국민숙사(國民宿舍) 야자(子)앞 고개쪽이  아니라 오른쪽 해안길로 섬을 빠져나왔다.  


대나무보다 더 큰 갈대가 비바람에 휘어져 길을 막고 있다.  


먹을거리들이 줄어든 탓에 짐이 많이 가벼워졌다.  비가 내리고 있긴 하나 잘 하면 80km 가량 떨어져 있는 기타우와지마(北宇和島)에 있는 41번 류코지(龍光寺) 42번부츠모쿠지(仏木寺) 까지 순례하고 인근에 있는 해변 공원에서 야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일요일인데다 비까지 내려 수쿠모 시내의 아침은 한산했다. 우선은 26~7km 가량 떨어진 미나미우와(南宇和)군의 40번 사찰 간지자이지(観自在寺)까지 가는 게 먼저였다. 길은 해안을 따라 나 있는 7번 지방도로와  내륙으로 나 있는 56번 국도 어디를 선택할지 잠시 망설였다

스쿠모 시내로 나와 스쿠모 역 철길 아래를 지나 좌회전 한 뒤 해안을 따라 7번 도로를 따라 달리기로 했다. 아무래도 해안길이 조금 낫겠지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오산이었다. 


 8시 50분 경 드디어 에히메 현(愛媛県)으로 접어들었다. 고치 현(高知県)이 참으로 길고 길었다 싶었다. 

아직은 완만한 경사다. 비도 거의 그쳐가고 있었다. 



 언덕위에서양식장이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 보였다. 해남과 완도 사이에 있던 한살림 김 양식장이 생각났다. 

언덕을 오르는 동안 '어업을 지키는 숲'이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바다와 숲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완만하게 오르던 해안길이 어느새  완전 등산 코스로 바뀌고 있었다. 설마 오늘도 이런 등산을 하게 되리라고는 예상도 못한 상태에서 허를 찔린 셈이다. 맥이 빠졌다.  


다니는 차들도 거의 없다. 길에는 칡넝쿨이 뒤덮여 있고 인적마저 끊긴 길을 오전 내내 올라야 했다. 그러나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경고는 정말 꼼꼼하게 많이 붙여 놓았다. 그만큼 많이 버린다는 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는데... 


 아침을 좀 더 배불리 먹지 않고 대충 먹은 것도, 해안길이 조금 평탄할 줄 알고 7번 도로를  택한 것도 후회됐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드디어 오후 한 시쯤 ... 지겹게 올라온 고도를 단 몇 분  동안의 내리막길로 탕진한 뒤... 해안길을 벗어나 56번 국도를 만났다.  이곳 역시 뭐 대단히 평탄한 길은 아니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길 가로 이 지역 특산물인 귤밭들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었다. 


사실은 아침에 서울에서 온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난 봄... 예전에 일하던 단체에서 만났던 동료들의 중학교 2학년 아들이 갑자기 목숨을 끊었다. 인물도 좋고, 성적도 뛰어났고...가끔 만날 때 보면...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숙한 게 아닐까 싶게 과묵한 아이였는데...  아무튼 그랬다. 


그 아이의 49재가 오늘 열리는데 참석할 수 있는지 ... 또 다른 동료가 연락을 한 것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나는 상상만 할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지난 봄... 그 충격적인 상가에 가서 나는 뭐라고 위로의 말도 차마 건네지 못했다. 



연락을 한 지난 날의 동료는 ... 나 역시 나름의 사정으로 눈물을 철철 흘리다 마음을 수습하러 일본에 와서 자전거 순례를 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갈 수 없는 사정을 짧게 설명하고 순례를 하며 들르게 되는 절에서 그 아이의 명복을 빌겠다고 답을 했다.  


고개를 내려선 뒤.. 만나는 미나미우와(南宇和)시의 풍경은 차분했다. 



40번 간지자이지(観自在寺)에 가서 한국에서 49재를 치르고 있을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선량하기 그지 없는 부모들을 위해 향을 사르고 합장을 했다.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남들 보기에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 아이였는데... 



간지자이지(観自在寺)는 1번 절 료젠지(霊山寺)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절이라고 한다. 지도를 보면 정말로 양쪽에 아령처럼 불거진 부분이 있는 좌우로 긴 타원 모양의 시코쿠섬에서 이 절은 도쿠시마에 있는 1번 절 료젠지와 대각선으르 마주보고 있는 지점에 있다.  



사별한 가족과 친구들 때문에 이 섬을 떠올리고 떠나오기는 했지만, 아침에 받는 연락 때문에 나는 또 하나의 비극적인 사별을 떠올려며 삶의 비애를 곱씹어야 했다. 



절 앞에는 전통 있어 보이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승용차를 타고 순례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산을 넘어온 피로감도 있고 몸과 마음이 모두 허 해져서 어딘가 들어가  남이 차려준 밥을 먹어야겠는데...마땅한 데가 없었다. 


시코쿠에 오던 첫날 다카마쓰 시내에서 장을 본 대형마켓 'A・MAX에이난(愛南) 점' 이 있길래 들어가서 주먹밥, 장어덮밥, 커피우유 단팥빵 등을 샀다. 어딘가 좋은 자리가 나오면 도시락은 점심으로, 주먹밥과 빵은 운행중에 행동식으로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좀처럼 마땅한 마땅한 자리가 없다. 도로변에 앉아서 밥을 먹기는 싫고... 



오전 내내 고통스럽게 하던 7번 도로처럼은 아니지만 56번 국도 역시 오르막의 연속이다. 다리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도 들고  지쳐가고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언제 쏟아질지 모르게 음습한 날씨였다. 


국도 변으로 자전거 도로는 대체로 잘 나 있었다. 도보 통행인이나 자전거를 위해 따로 터널들이 나 있고...  


또 다시 큰 언덕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라면집을 발견하고는 랙팩 안에 도시락과 먹을 거리가 잔뜩 들어있는데에도 더 이상 못 가겠다 싶어 들어갔다. 


라면 달라고 하니까 알아서 미소라면과 밥 한 공기를 갖다준다(700엔). 

 

주인 내외의 정성이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먹고 나니 조금 몸도 마음도 회복되는 것 같았다.  무리하지말라 싶어서 ... 조금 타고 오르다가 고개 중턱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서 고개를 넘었다. 고개 너머에서  오사카에서 왔다는 예순 살,  지식인풍의 도보순례자를 만났다. 


그와 20 분 가량 왼쪽으로 펼쳐진  해수욕장(室手海水浴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했다. 태반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도 역시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남북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의 대답은 '전과 동'이다. 남북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적대적인 긴장이 빨리 해소되기를 바란다는 정도... 



무슨 이야기 끝엔가... 한국과 일본은 천 년 전에는 한 나라처럼 오갔다고  '시바료타로 (司馬 遼太郎) 같은 사람들도 주장하던데, 두 나라의 개성이 지금 너무 다른 것 같다는 말을 했더니...  한국에도 시바 료타로가 알려져 있느냐고... 우연히 아주 오래 전에 한국에 번역돼 출판된 그의 책을 두어 권을 읽은 적이 있다...고 하니까... 호오... 한국에도 그의 책이 출판됐다고요...  하면서 묘한 표정을 지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그와 헤어진 뒤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넘어졌다. 


우와지마 시 (宇和島市)를 향해...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게 부담스러워  자전거 도로로 올라타는 순간... 내작은 턱에 바퀴가 미끄러졌다. 내리막길이었고 시속 30km쯤 속도를 내고 있었다. 



무르팍이 깨지고 .바지도 찢어졌다. 새로 사 입은 지 며칠 안 된 것인데... 그나마 이 옷을 덧 입지 안았다면 부상이 좀 더 심각했을 것이다. 자전거 핸들이 훽 돌아가 있고... 그립 부분의 브레이크도 손잡이도 틀어져 있었다. 핸들바에 테잎도 찢어졌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계속 운행을 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일어나 어디 부러진 데가 없는지 사지를 움직여 보았다.손목에 충격이 있었는데... 다행히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음은 자전거... 틀어진 부분들에 힘을 주니까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다. 천천히 굴리면서 변속을 해 보았는데... 그나마  미끄러지면서 브레크를 잡아 충격이 그리 큰 것 같지는 않았다.  

 

열흘 동안 두 번 넘어진 것이다. 갈비뼈와 무릎. 그렇잖아도 침울하던 기분은 말할 수 없이 나빠졌다. 오후 네 시가 넘었다. 더 전진하는 것은 무리다.  지도에 보니 미나미 레구(南レク) 오토캠핑장이 있어 그리로 가기로 했다. 예정에 없던 야영을 하게 됐으니 일단 마을 입구에 있는 대형마트'마루나가'에 들러 ... 부탄가스와 반짓고리 리 그리고 먹을 거리를 좀 더 샀다. 



 아침에 목표로 삼았던 기타우와지마(北宇和島)에 있는 41번 류코지(龍光寺)나 42번 부츠모쿠지(仏木寺)에는 한참 못 미친 지점이었다. 레구(レク)가 무슨 뜻인지 한참 갸웃거렸는데... 레크리에이션의 일본식 축약인 모양이었다. 



시내에서 3km 가량 바다쪽으로 들어가면 언덕 위에 오토캠핑장이 있다. 정문을 통과한 뒤 언덕 위로 오르니까... 차량 차단봉이 내려져 있고, 예약자에 한해 출입이 허용되며 예약은 인터넷을 통해 하라고 돼 있다. 이러 제길... 다행히 자전거 한 대는 겨우 통과할 틈이 옆으로 나 있어 살살 피해 올라가 보았다. 



일요일 오후라 오토캠핑을 한 주민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관리인 한 사람이 당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정을 말하니까... 야영을 하시라고... 숙박계를 쓰라고 내 준다. 




다만 요금은 조금 비쌌다. 1박에 2500엔... 자동차든 자전거든 똑 같이 한 구획을 이용하게 되니 요금이 동일하다고...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샤워는 코인샤워... 200엔, 세탁도 건조기도 모두 200엔씩 600엔... 모두 합하면 3천100엔... 차라리 시내에 호텔을 잡을 걸 그랬나... 빗방울까지 후두둑 떨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시설은 훌륭했다. 후회는 해서 뭐 하겠나... 텐트를 치고... 

의자를 빌려서 잠시 쉰 뒤....


샤워를 하고 빨려를 돌려놓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자... 

저녁 다섯 시부터 ... 여섯 시 반까지... 고기에 김치도 사 왔기에... 엄청나게 먹고... 맥주도 한 캔 마시고... 


기왕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는 거... 대충 빨아서 가지고 다니던  옷들까지 다 꺼내 빨고 말렸다. 


헤드램프를 켜고... 찢어진 바지를 꿰맸다. 너덜너덜한 채로 다닐 수는 없겠다 싶었기 때문에... 

짐을 정리하고... 기록을 하고... 자잘한 일들을 다 하고 나니 열 시가 다 됐다. 스트레칭을 하고...잠을 청했다. 


집을 떠난 지 이주 가량 지났다. 지친 모양이다. 가족들이 그리웠다.  오늘의 가벼운 사고는 쉬어가라는 신호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크게 다친 데도 없고 자전거도 멀쩡하니까 말이다. 새벽녘에 텐트 위로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방수가 잘 되는 텐트라 걱정할 건 없었다. ... 힘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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