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해질녘 집을 나섰다. 등산객들이 대개 다 귀가한 시간. 산은 고적했다. 호젓하게 혼자 걷지않는다면 산에는 대체 왜 가야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온 것 같다. 문득 유희나 체력단련으로서의 산행과 홀로걷는 산행은 전혀 별개의 행위라는 생각.  

탕춘대능선을 따라 곧장 걸어가면 향로봉이 있다. 암벽길도 아니고 릿지로도... 난이도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사람들이 추락해 한 명씩 죽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여럿 죽었을 만한 길도 막아놓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야리산장에서 미나미다케쪽으로 아무도 없는 눈길을 향해 떠나려는 나에게... 일본 산악인 할아버지가 한 말은 '가보겠느냐?'는 물음 뿐이었다. 그 뒤로 내가 걲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죽음을 바라보는 생사관이 다른 것인지... 죽고 살고는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무책임한 것인지 개인의 자율성을 너무도 존중하는 '쿨함'인지... 하긴, 죽고 사는 것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정해준다는 말인가.

능선에 앉아 커피를 마신 시간들까지 합쳐 향로봉-비봉-문수봉을 거쳐 대남문을 통해 구기동으로 하산하기까지... 2시간 반이 걸렸다. 때로 거친 숨을 토해야 했다. 북알프스에서 눈길을 찍으며 올라갈 때 '숨이 가빠도 스무걸음은 꼭 걸어간 뒤 쉬어야지...' 결심하고도 꼭 열 다섯 걸음정도에서는 쉬어야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또 1992년에...안산에서 병든 몸으로 돌아와... 매일 해야 할 일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처럼... 걷고 또 걷던 삼성산 자락이 떠오르기도 했다.

구기동으로 내려설 무렵에는 이내가 짙게 깔려있었다. 밤이 오고 사람이든 짐승이든 둥지를 찾아가는 시간. 일상의 공간에서는 늘 산을 그리워하면서 산에서는 또 사람들이 그리워지기도 하는 일... 토요일날, 죽은 친구 희창이가 있는 납골당에 다녀오면서...욱이와 무슨 얘기끝엔가... 쇼펜하우어가 했다던 '인간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존재'라는 말. 존재기반을 허무는 일과 자기 정체성을 쌓아가는 일이 인간들에게는... 늘 혼란스럽게 뒤섞여있다...
친구는 죽기 전 일이 년 동안, 앞뒤 안가리고 돈만 벌겠다고 했었다. 실제로도 가족들과 떨어져 오피스텔에 살면서 새벽까지 돈벌이에 골몰했다. 그 때문에 돈은 무엇 때문에 왜 벌어야 하는 것이냐고 말하는  친구들과 언쟁을 하기도 했다.
상황논리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늘 길을 잃는다. 자기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가끔씩, 삶에도 능선이 있어 훌쩍 뛰어올라 스스로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길을 잃고 마는... 그런 일들을 ... 피할 수도 있을 텐데...

'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년 가을... 괴산  (0) 2010.09.19
덕산기계곡 안 정선애인  (2) 2010.07.26
서촌의 '사진위주 갤러리 류가헌'  (0) 2010.07.12
북알프스 ...야리가다케  (0) 2010.06.24
마로의 여행...  (1) 2010.01.1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