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추위가 오락가락하지만 계곡의 얼음은 계속 녹아내리고 있다.
경칩이라고 하지만 개구리, 가재가 산다는 이 작은 개울에 아직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두터운 얼음장에 돌이킬 수 없게 치명적인 균열을 내며 계절은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물가의 나무들도 물속에서도 쉼없이 자란다.  


딸들에게 백사실 산책을 가겠냐고 제안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 당했다. 모시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부모를 따라와 라면을 먹는 꼬마들. 아이들 어릴 때 안고, 업고 북한산 관악산을 많이 넘어다녔다. 어린 딸들은 조금이라도 더 밀착하려고 착~ 들러붙곤 했는데... 이제는 거 참...  




현통사 앞 계곡의 얼음은 이제 완전히 녹았다.
눈 녹은 텃밭에는 벌써 퇴비를 준비해 놓았다.
갈아엎어두었다가 4월경에는 씨앗이나 모종들을 심겠지.


잠시 주춤거리기도 하지만 봄은 틀림없이 오고 있다.
겨우내 계곡 얼음에 갇혀 있었을 지난 가을 낙엽도 결빙에서 풀려나고

태풍 곤파스로 쓰러졌던 계곡가 키 큰 참나무도 저렇게... 얼렸다 풀렸다 하면서 분해 돼
흙으로 물로... 그리고 바람으로 유기물이 되어 뒤섞이겠지...

서남쪽으로 향해 있는 현통사 계곡의 얼음은 이제 거의 다 녹았다.
양지바른 쪽에는 제법 풀들이 얼굴을 내밀고...
곤지암 살 때... 이즈음이면 논두렁, 밭둑에 노란 안개처럼 꽃다지나 솜양지꽃이 피어나곤 했다.

겨울동안 삭막한 풍경과 우울한 기분에 갇혀 ...
이 시골을 떠나 어디든 가야지 생각하다.
솟아 오르는 새싹들과 대지에 들어차는 생명의 기운에 매년 감격해하면서...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주저앉곤 했었다.


백사실 계곡의 이 양버즘나무가 어떻게 이 산중턱까지 올라왔을까... 늘 궁금했는데...
나무 아래... 어미 나무가 필사적으로 멀리 던지듯이 떨어뜨렸을 그 씨앗이 '그걸 몰랐단 말이냐?' 하듯이 되똑하게 파란 풀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숙성한 씨앗은 스스로의 몸을 뽀개고... 솜털에 싸인 작은 씨앗은 여린 바람에도 가볍게 몸을 날려...
어디로든 갈 것이다. 부모나 고향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새날에 대한 희망에만 가슴 설레 하면서...

'빗방울전주곡' 같은 음악이라도 들여올 것 같은... 이 작은 개울에...
두터운 얼음이 녹아내리고 물 속에도 생명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밭둑의 눈은 이미다 다 녹았다. 누군가 씨앗을 뿌리고 또 한 시절을 가꾸겠지.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이 희망이겠지... 역사 이래도 쉼없이...  이어온 ...

입춘 지나자 거짓말처럼 날이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현통사 계곡물은 두껍게 얼어붙어있다.  귀 기울이면 얼음장 아래 힘차게
흘러가는 냇물소리가 들린다.

지난 겨울 참 알차게도 추웠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다. 한강물이 꽁꽁 얼어붙고 수은주가 영하 15도로  곤두박질치던 게 다반사였는데... 어려서 그랬나. 그것이 가혹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입성도 부실한 채 스웨터 바람으로 동네 아이들이 빼곡하게 몰려다니면서  치기장난이나 축구를 하면서
겨울을 났다.  

백사실은 시내에서 가깝지만 오랜 세월 살아남은 큰 나무들이 많다.
소나무들은 설악산 같은 데서나 만날 법한 굵은 것들이 제법 있다. 이 계곡이 깊게 느껴지는 것은
이 큰 나무들 덕인데... 그 사이에 제법 큰 '양버즘 나무(플라타너스)' 가 한 그루 있다.


얼마전까지 서울시내 가로수가 대부분 이 외래 수종이었으니...산속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다.
이 나무가 어떻게 이 북악산 중턱까지 와서 이리도 우람하게 자랐을까...
연원이 무엇이든... 그래도 장하게 자라 우뚝 하늘로 솟구쳐 있다.

백사실 뒷골 텃밭 고랑의  잔설. 풍수를 하는 최창조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선가...
솟아있는 것은 무엇이나... 논두렁마저도 '산'으로 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남쪽으로 면한 이랑의 한 쪽에는 이미 눈들이 다 녹았고, 그 뒤편 그늘에는 눈들이 남아있다.
며칠 뒤에 오면 다 녹아 있겠지...

시리고...시린 겨울이 끝나고... 푸른 봄이 오기를
올해는 더더욱 간절하게 기다란다.
입춘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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