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주춤거리기도 하지만 봄은 틀림없이 오고 있다.
겨우내 계곡 얼음에 갇혀 있었을 지난 가을 낙엽도 결빙에서 풀려나고

태풍 곤파스로 쓰러졌던 계곡가 키 큰 참나무도 저렇게... 얼렸다 풀렸다 하면서 분해 돼
흙으로 물로... 그리고 바람으로 유기물이 되어 뒤섞이겠지...

서남쪽으로 향해 있는 현통사 계곡의 얼음은 이제 거의 다 녹았다.
양지바른 쪽에는 제법 풀들이 얼굴을 내밀고...
곤지암 살 때... 이즈음이면 논두렁, 밭둑에 노란 안개처럼 꽃다지나 솜양지꽃이 피어나곤 했다.

겨울동안 삭막한 풍경과 우울한 기분에 갇혀 ...
이 시골을 떠나 어디든 가야지 생각하다.
솟아 오르는 새싹들과 대지에 들어차는 생명의 기운에 매년 감격해하면서...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주저앉곤 했었다.


백사실 계곡의 이 양버즘나무가 어떻게 이 산중턱까지 올라왔을까... 늘 궁금했는데...
나무 아래... 어미 나무가 필사적으로 멀리 던지듯이 떨어뜨렸을 그 씨앗이 '그걸 몰랐단 말이냐?' 하듯이 되똑하게 파란 풀위에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숙성한 씨앗은 스스로의 몸을 뽀개고... 솜털에 싸인 작은 씨앗은 여린 바람에도 가볍게 몸을 날려...
어디로든 갈 것이다. 부모나 고향 같은 것은 까맣게 잊고.. 새날에 대한 희망에만 가슴 설레 하면서...

'빗방울전주곡' 같은 음악이라도 들여올 것 같은... 이 작은 개울에...
두터운 얼음이 녹아내리고 물 속에도 생명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밭둑의 눈은 이미다 다 녹았다. 누군가 씨앗을 뿌리고 또 한 시절을 가꾸겠지.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이 희망이겠지... 역사 이래도 쉼없이...  이어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