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지나자 거짓말처럼 날이 풀렸다.
그러나 여전히 현통사 계곡물은 두껍게 얼어붙어있다. 귀 기울이면 얼음장 아래 힘차게
흘러가는 냇물소리가 들린다.
지난 겨울 참 알차게도 추웠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다. 한강물이 꽁꽁 얼어붙고 수은주가 영하 15도로 곤두박질치던 게 다반사였는데... 어려서 그랬나. 그것이 가혹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입성도 부실한 채 스웨터 바람으로 동네 아이들이 빼곡하게 몰려다니면서 치기장난이나 축구를 하면서
겨울을 났다.
백사실은 시내에서 가깝지만 오랜 세월 살아남은 큰 나무들이 많다.
소나무들은 설악산 같은 데서나 만날 법한 굵은 것들이 제법 있다. 이 계곡이 깊게 느껴지는 것은
이 큰 나무들 덕인데... 그 사이에 제법 큰 '양버즘 나무(플라타너스)' 가 한 그루 있다.
얼마전까지 서울시내 가로수가 대부분 이 외래 수종이었으니...산속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무다.
이 나무가 어떻게 이 북악산 중턱까지 와서 이리도 우람하게 자랐을까...
연원이 무엇이든... 그래도 장하게 자라 우뚝 하늘로 솟구쳐 있다.
솟아있는 것은 무엇이나... 논두렁마저도 '산'으로 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남쪽으로 면한 이랑의 한 쪽에는 이미 눈들이 다 녹았고, 그 뒤편 그늘에는 눈들이 남아있다.
며칠 뒤에 오면 다 녹아 있겠지...
시리고...시린 겨울이 끝나고... 푸른 봄이 오기를
올해는 더더욱 간절하게 기다란다.
입춘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