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환갑을 기념해 처남내외와 여수, 남해로 여행을 다녀왔다. 둘째날 숙소는 남해 독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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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사러 갔더니 수박이고 참외고 남해에서 나는 것은 없고 진주를 거쳐 들여오는 것들 뿐이라 다 비싸다고 했다. 마늘 농사와  드믄드믄 흩어져 있는 논들과 마늘밭. 그리고 고단한 투망질로 섬사람들은 고립된 채 고단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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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과  나 사이에 가끔 서로 유리벽을 사이에 둔 것처럼 의사가 소통이 안 될 때가 있다.
아이들은 가난한 아비와 살면서도 가난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이나 낭만처럼 가난도 아이들에게 추상이기느 마찬가지다.
독일마을은 서구식 건축물과 좋은 풍경만 보면서 감탄만 하기에는 마음이 짠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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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전쟁이 끝난 지 몇년 지나지 않은 우리나라에 내다 팔 수 있는 것은 우수한 노동력뿐이었다. '양질의 노동력' 국민학교때 사회교과서에 언제나 내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던 구절이었다.
노동력이 자원이라는 말도 이해가 안됐고, 노동이 질이 높고 낮은 건 또 무슨 말인가?

아무튼 박정희는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을 방문해 넘쳐나는 '질좋은 노동력'을 팔고 대신 유무상의 차관을 들여다 길도 닦고 사회기반 시설들을 닦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독일로 간 간호사와 루우르 탄전지대의 광부들이 마주했을 캄캄한 어둠과 견디기 힘들었을 노동을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몸집이 작은 동양 여자들이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서구 환자들의 몸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병간호를 했던 일이 죽음과 같은 고역이었을 것이라고... 언젠가 누가 말했다.

남해의 독일 마을은 40년 전 독일로 갔던 우리의 삼촌, 고모, 이모들을 위해
남해군이 조성한 마을이다. 풍광좋은 고국 땅에 돌아와 은퇴의 노후를 휴식하라는 취지말이다.

남해군이 스포츠파크나 독일마을을 조성한 것 역시... 팔아서 돈 되게 할 것은 마늘이나 좋은 경치밖에 없는 궁벽한 섬 살림을 어떻게든 헤쳐나가 보려는 고심에서 그렇게 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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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에서 자고 새벽에 눈이 떠지길래... 장모님 모시고 보리암에 올라갔다.
몇 해 전 아내와 태풍을 맞으며 상주해수욕장부터 걸어서 등산한 적은 있지만 차를 몰고 등산해본 적은 없었다. 차로 등산하는 일은 역시 삼가해야 할 일이다.  된비알을 치오르는 일은 아찔하기도 했고 새벽의 적막을 요란한 바퀴 소리로 뒤흔드는 일도 마음 편치 않았다.

그러나 나도 장모님도 비안개에 싸인 보리암에서 각기 108배를 하고 하산했다.
이명박 정부가 하고 있는 여러가지 몰상식은 이제 산꼭대기 사찰에 내걸린 플래카드에도 등장하고 있었다.
앞으로 5년 우리들 삶은 얼마나 요동을 치게 될지...
날마다 108배 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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