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 순례를 다년온 지 일년이 다 돼 가도록 기록을 마치지 못했다.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기록은 무엇을 위해 왜 해야 하나 하는 회의도 있었다. ... 이렇게 ... 게으름을 피우던 중 ,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졌다.  차마 무슨 이야기를 태연하게 쓰기가 어려웠다. 

이런 세상을 우리 세대가 만들었구나... 개인에 따라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회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방조를 하거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이고 생명이고 인권이고 뭐고... 

오로지 돈과 출세, 경쟁과 이익만을 위해 안면몰수... 맹목으로 질주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고 ... 그 천진한 아이들을 몰살시키는 일에 부역을 했구나 적어도 방조는 했구나 하는 심정에 참담했다. 


또 다시 새벽마다 잠이 깨는 일들이 되풀이 됐다. 이 기록도 더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5월 25일) 



# 21:  6/10 월  우탄구라ㅡ 다카마쓰 토요코인 호텔 

운행 81.81km

역시나, 간밤에 과음을 했다. 그러나 다섯 시 경 어김없이 잠이 깼다. 날이 완전히 개어 있었다. 



지난 밤 안수창 씨 식당 '낙원'에서 이리에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사모님이 차린 8가지 반찬의 황송한 아침상을... 받았다.   순례자들의 아침밥을 준비하기 위해 늘 새벽 4시에 일어나신다고 ... 이렇게 덕을 쌓고 계시는구나... 


순례자들을 자기 집에 재우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간식을 내밀거나 ... 오히려 오셋타이라며 받아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돈을 손에 쥐어주고 가는... 이런 수많은 주민들이 시코쿠를 시코쿠로 만들었으리라...  


쌀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다 먹었다. 내가 할 일은 그것밖에는 없다는 듯이...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보고 사모님께서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두 덩어리 주먹밥까지... 

점심은 이것으로 해결하면 걱정이 없겠다... 싶었는데... TT 



두 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탄구라 홈페이지도 숙박하고 간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신다고... 



6시45분  또 다시 출발... 옷도  빨아서 말렸고 날도 개었고 몸도 개운해졌다. 오늘 하루 또 달려보자... 


우탄구라에서 79번 사찰  텐노지(天皇寺)까지는  7.4 km.  철길을 따라 평탄한 도로를 달리게 되어 있다. 등교와 출근으로 부산한 시내를 나만 독특한 복장으로 가방을 주렁주렁 매단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 시간 가량 달려 절에 도착했다. 절 입구에 도리이(鳥居)가 세워져 있었다. 보통 신사 앞에 서 있는 이 문은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처럼 돼 있다. 성황당에 쳐 있는 금줄이나 솟대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성과 속의 경계에 세워놓는... 



전설에 따르면, 12대 천황의 아들들인 사루레오가 부하들과 괴물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오히려 잡아먹혔는데, 요코나미묘진(横潮明神) 이라는 신이 이 부근에 있다는 야소바의 영천(八十場の霊泉) 의 샘물을 먹여 모두 살려냈다고 한다... 


이후에 코우보 대사가 이 곳을 찾아왔을 때, 샘을 지키던 산신이 대사께 귀의하고 불법을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후, 1156년 내전에서 패한 스토쿠 천황이 이곳으로 쫓겨와 죽었는데, 장례절차를 중앙정부에 상의하는 동안 천황의 시신을 야소바의 샘물에 담궈두었더니 고스란히 보존되었다고...  이 절이  텐노지,  천황사가 된 것은  이런 유래라고...  



참배를 하고 나오니  엊그제 71번  이야다니지(弥谷寺)지 앞에서 만났던 순례자와 다시 마주쳤다. 간단히 목례로 아는 체를 했다. 걷거나 자전거로, 또는 승용차나, 단체 관광버스로... 드물게는 택시를 대절해서 이렇게 순례를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비루한 일상을 떠나 불경을 독송하며 탈속한 가치를 떠올리며 걷는 일... 일상에서 쌓아가고 있는 업을 벗어나려는 마음, 스스로를 가두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 

돌이켜보면 내게는, 산길을 걷는 일이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북한산이 그랬고... 안산이나 안양 인근에 살던 고단한 시절에는 안양에 있는 수리산과 관악산... 그리고 해마다 서너 번 지리산과 설악산...을 찾아가 걷다보면 옥죄여오던 가슴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 들곤 했다.  캄캄하게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산길을 걷다보면 살아갈 힘이 다시 고이는 것 같았다. 


양배추 수확철인 모양이다. 마사토 같은 사질토양과 비닐멀칭이 없어 편안해 보였다. 그러나 일본 역시 농업이 날로 어려워지는 현실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식량자급률도 25%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8시10분 ... 다시 텐노지에서 출발. 80번 고쿠분지(國分寺)까지는 7. 3 km 가량 도로를 따라 달리게 되어 있다. (돌아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차라리 79번- 81번-82번-80번 순으로 가는 것이 길도 편하고 거리도 단축된다고... 도보여행자는 물론 자전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문제는  81번 시로미네지(白峯寺)와  82번 네고로지(根香寺)다. 지도와 가이드북을 보면 두 절 모두 고쿠분지가 등지고 있는 두 산 봉우리 시로미네산(白峯)과 오히라(大平)산 위에 있다. 두 산은 능선이 이어져 있었다. 고쿠분지에서 산을  올려다보면서 시계방향으로 되돌아 가야 오르막 들머리를 만나게게 되어 있었다.  


미리 지형을 살피고 산을 올라가야 하는 일정을 앞두게 되면 ... 여전히 전날부터 마음 무거웠다. 스스로 시작한 순례가 여전히 남이 채운 족쇄처럼 버거운 것이다. 



9시,  80번 고쿠분지(國分寺)에 도착했다. 


고쿠분지라는 절 이름이 여러 곳인 이유는, 741년 쇼무천황이 정국을 안정 시키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절들이 모두 같은 이름을 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면 국사당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남산 식물원으로 오르는 길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돌계단을 볼 때마다 ... 그것이 일제가 남기고 간 유적이라는데 생각이 미처 늘 마음 불편했다. 나라 굿을 하던 국사당을 인왕 선바위로 쫓아내고 일제는 그 자리에 조선신궁을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무당들은 천대 받는 실정인데...적어도 일본에서는 신도가 이 나라 최대의 종교가 되어 일상속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점... 생각해볼 대목이다. 신내림굿을 하는 무당들뿐만 아니라, 마을마다 모시던 성황당이나 집집마다의 터주, 조왕신 등 다양한 전통신앙이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근대의 깃발 아래 '미신'으로 몰려 일거에 청산된 일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일본사람으로 자라나고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스스로 투철했던 박정희에게... 우리 전통은 일본 전통과 달라 청산되어야 할 야만으로 치부된 것이었는지...  



고쿠분지는 이름이나 유래에 걸맞게 무척 넓고 크고 고색창연한 절이었다. 


납경을 받으며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최적의 길이 없겠는지 물어보았으나 도리없이 산 기슭으로 난 길을 따라 오던 방향을 거슬러 바닷가쪽으로 돌아가서 산을 올라야 한다고...  


도보순례자라면 고쿠분지 뒤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 81번 시로미네지로  곧장 올라가면  되겠지만 자건거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쨌든... 다시 달려보자...  일단, 81번 시로미네지까지는 14km 가량이다.  마지막 6km는 쉼 없는 오르막이다. 



긴장한 마음을 자전거도 알아차렸는지... 오르막길에 어프로우치 하기도 전에... 도중에 체인이 빠졌다. 비닐 같은 게 감겼던 모양인데,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꽤 애를 먹었다... 패니어를 모두 떼어내고 짐을 다시 꾸리는 동안 40분은 족히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짐을 다시 챙기며 살펴보니 분명히 아침에 우탄구라에서 받았던 주먹밥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안수창씨가 준 열라면과 삼육두유만...  짐을 꾸리고 인사를 하면서 옆에다 놓고 떠나온 모양이었다. 점심을 어쩔 것인가... 시골길이라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대책없이 오르막이 시작됐다.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면서... 멀리 세토대교가 내려다보였다. 



12시 경,  81번 시로미네지(白峯寺)에  도착했다. 해발 337m 라고 하는데... 해안선 가까이에서부터 시작한 탓인지 꽤 까마득하게 올라온 느낌이었다. 




이 곳에서 뜻밖에도 요코미네지 오르던 산길에서  만나 내게 청정()이라는 나무 기념패를 준 분을 다시 만났다. 


참배를 마치고 돌아나오다보니... 그는 절 입구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도보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나...물으니, 조금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으면서 시내 구간은 전철로 이동했다고... 



실례가 안 되면 이름을 여쭤봐도 되냐고... 하니까... '아무 아무개(와다시노 나마에와 고노 요노 ... 나이)' 정도로만 알아두시라고...?  아... 그러시냐고... ^ ^;



납경소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는 디자인도 카피도 인상적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취가 시코쿠의 길이 되었습니다.'  루쉰이 했다는 말처럼... '희망이라는 것은 있다고 없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길과 같아서 ... 길도 처음에는 없었지만... 누군가 많은 사람이 걸어가자 그것이 길이 되었다...' 던 말처럼... 

시코쿠가 시코쿠가 된 것은... 천 년 넘게, 저마다 절박한 사연을 안고 걸었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국 때문이겠지... 



'청정 아무아무개' 선생은 내게, 이 절의 산문은 다른 절들과는 다른 양식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고려양식이라 한다. 솟을 대문처럼... 생긴 이 절의 산문이 어쩐지 정겹게 여겨졌다. 



이 절은  오전에 들렀던 텐노지와 연관된 곳이었다. 텐노지에서 죽은 비운의 스토쿠 천황을 장사 지내고 이 절에 모셨다고 한다.  '청정 선생'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이쯤에서 점심을 먹었어야 하는데... 자판기 음료수말고는 먹을 게 없었다. 아침에 흘리고 온 주먹밥이 눈앞에 아른거릴 지경이었다.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오히라 산을 향해 계속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다 보니... 산정 가까운 곳에 온천 휴양시설이 있었다. 그런데... 

 

따..땅... 따 ...땅... 



분명히 총소리였다. 사방에 군부대가 있는 우리나라에서야 익숙할 법 하지만... 여기서는 웬 총소리일까... ... 정말 총소리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산을 올랐다. 



정말로... 산 위에는 자위대 훈련장이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총성은 계속 온 산에 쩌렁쩌렁 울렸다. 


군대에서 매일 저녁마다 총을 꺼내 분해하고 기름걸레로 닦고 심심찮게 실탄 사격도 해야 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총이나 총알은 단단한 금속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응축된 살기가 늘 섬칫했다. 가장 효과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겠다는 응축된 의지... 총은 그런 것이었다. 가장 지능이 뛰어나다는 인간만이 총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높은 지능이 우주를 관장하는 힘이나 생명의 본성과는 가장 먼, 그래서 가장 어리석은 우를 범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일본 땅에서도 이런 총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가는 곳마다 심심찮게... 일본의 군사력 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자는 시민사회 단체들의 구호를 마주하던 것과... '강한 일본'으로 돌아가자는 아베 자민당의 선거포스터가 겹쳐 보이던 것도 이런 일들과 무관해 보이지 않았다. 


말이 자위대지... 사실상 일본은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엄청난 플라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이미 2차 대전 당시에 항공모함을 만들고 운영했으며, 인공위성을 스스로 발사하고 있다. 언제든 중국과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군사대국이 될 게 분명하다. 19세기말처럼 ... 한반도의 운명은 또다시 격랑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올라가다 지치면 내려서 끌고... 조금 완만해지면 다시 타고... 시로미네산과 이어진 오히라 산정까지 ...  해발 500미터가 넘었다. 정상 부근에 있는 갈림길에서  82번 네고로지(根香寺)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것인지... 갈등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꼬박 그 높이만큼 다시 자전거를 끌고 올라야 했다. 



오후 1시반...  82번 네고로지(根香寺)에 도착했다. 


이 절은, 코오보 대사가 당나라에 가기 전에 초가를 지었던 곳이기도 하고, 832년 치쇼(智證)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하며 천수관음상을 조각해 본존으로 안치하였다고 한다.  나무 뿌리로 조각한 본존불이 오래토록 향기 내뿜었다는데서 근향'(根香)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 


절은 산중이라 숲이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인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양쪽으로 회랑이 가운데 정원을 감싸고 둘러 있다. 


회랑 안에는 신도들이 봉헌했다는 3만 개에 달하는 관음상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본당까지 이어진 어두운 회랑을 빠져나오면... 잘 가꾸어진 중정이 있었다. 



나이든 어머니와 딸... 침묵하며 기도하는 신도들도 꽤 많았다. 



사탕 몇 알과 자판기 음료수 말고는 한 나절 동안 뭘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 아침에 산길로 접어든 뒤로는 식당도 만날 수 없었다. 너댓 시간 줄곧 오르막을 오르느라...체력도 고갈돼 가고 있었다.  




다시  그러나 다음 절로 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다시 고갯마루에 있는 갈림길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방향으로 봐서는 다카마쓰(高松) 시내인 것 같았다. 처음 일본에 도착했던 그 지점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서 온 것이다. 스쳐온 일들이 떠올라 왠지 감회가 복잡했다.  


꽤 긴 거리를 다운힐... 

산을 내려오니 기온도 높고, 공기도 달라졌다.다시 햇살 따가운 한 여름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제 80번대를 넘어섰다.  남아 있는 절이라고 해야 83번부터 88번까지 여섯 개... 



산 아래 마을들은 저수지를 끼고 있었다. 논농사 때문일 것이다. 또다시 11번 국도를 만나고... 동쪽으로 달리다가 83번 이치노미야지  (一宮寺)를 향해 달렸다. 



오후 3시쯤 길가에 있는 중국집(중화소바)집이 있어 늦은 점심을 먹어야 겠다 싶어 들렀더니... 오후 5시까지는 준비 시간이라 밥을 줄 수 없다고...TT  ... 아, 그렇겠지... 그게 정상이겠지... 


점심도 못 먹고 허둥대며 산 아래 마을을 헤맨 게 조금 처량하기도 했다. 


도중에 패밀리마트가 있어 컵라면과 오니기리를 사서... 안에서 먹어도 되냐고 물으니... 안 된다고...TT 문밖 주차장에 예전에 야마시타상이 그랬던 것처럼... 선 채로 컵라면과 주먹밥을 먹었다. 우탄구라에서 두 분이 챙겨준 주먹밥을 잘 간직하고 왔다면 훨씬 여유가 있었을 텐데... 




운행중에 스마트폰에 GPS 앱 로커스프로(Locus pro)를 줄곧 사용했다. 목표지점을 설정하면 방향과 남은 거리를 오프라인 지도상에서 알려주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 없이 여행하는 동안 큰 도움을 받았다. 전적으로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가지고 간 카메라 배터리가 빨리 방전돼 핸드폰 사진을 찍으라 핸들에서 탈부착을 하는 일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고질라포드'로 감고 다녔는데... 두 번 떨어트려 스마트폰 꼴이 말이 아니다. 



아이들 등교시간에 80번 고쿠분지에 들렀는데... 벌써 하교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산을 헤매고 다니 것이다. 밥도 굶은 채... 



일본 아이들이 우리나라 아이들보다는 나아 보였다. 땀 흘리며 운동하는 모습, 자전거를 타고 환하게 웃으며 달리는 모습...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겠으나 ...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자정 무렵까지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나라 같은 곳이 지구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4시20분 ... 다카마쓰 외곽에 있는 83번 사찰 이치노미야(一宮寺)에  도착했다. 이치노미야(一宮)라는 명칭은 1679년부터 이 일대 신사들의 중심 업무를 담당하는 곳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인데, 나중에 불교 사원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이 절에 모셔ㅗ놓은 약사여래의 대좌 아래에는 지옥으로 빠지는 구멍이 있어, 죄가 있는 사람이 머리를 넣으면 빠지지 않는다는 ...  



이미 오후 4시가 넘었으므로...  다음 절을 찾아가는 것은 무리다 싶어... 절 앞에 앉아 가까이 있다고 여겨지는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캠프장 두 곳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몇 번 찾아갔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 나름 미리 준비를 하려고 한 것이다. 



GPS 포인트를 입력해온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미네야마(峰山) 공원 캠프장 등 두 곳 에 전화 했으나  모두 다 안 된다고... 한 곳은 낮 동안만 개장을 하는 공원이라서... 한 곳은 다음 날인 화요일이 휴일이라서...  안된다고...  도시에 오니 여지가 없다...  캠핑장이 두 곳이나 있어 별 걱정 안 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GPS 포인트에 표시된 캠핑 표시는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젠콘야도 리스트에 나와 있는 '슬로우라이프'라는 곳에 전화를 해보았다.  이치노미야지에서 북쪽으로 3km 가량 떨어진 곳이라고 했는데... 500엔에 숙박이 가능한 곳이라고...  전화를 걸 때 이미 다섯 시가 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슬로우라이프는 옆에 붙어 있는 공장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전화를 받는 이에게 슬로라이프냐고 ...하니까... 전화를 몇 번 연결한 뒤에야...담당자인 것 같은 남자가 받았다.  조금 사무적으로 ...숙박은 가능하지만, 6시까지 체크인 해야 한다고...  그런데, 찾아가는 도중에 길을 헤매다 여섯 시가 넘고 말았다. 다시 전화를 했더니... 미안하다며 여섯 시까지 체크인 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단지 오분 지난 시점이었다. 규정이나 그런 것은 알겠는데... 조금 야속했다. 



더 이상 운행을 계속하기는 너무 시간이 늦었다.


 84번 야시마지(屋島寺)는 이치노미야지에서 다카마쓰시를  북쪽으로 대각선  가로지른 지점... 야시마라는 섬의 산 위에 있었다. 인근까지 가서... 섬이니까 바닷가에 야영 가능한 해수욕장이라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야시마지 인근에 있는 여관이라도 찾아보자... 는 심정으로  일단 달려보았다. 



퇴근시간  다카마쓰시내에는 ...와이셔츠 차림의 직장인들이 바쁘게 밀려 다니고 있었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툭 떨어진 사람처럼... 수염도 덥수룩하게 자란 나는... 어둠이 내린 거리를 묵묵히 달렸다.  


결국 야시마를 한 바퀴 다 돌고도 마땅히 잘 곳을 찾지못했다. 산 위에 있는 야시마로 오르는 들머리에 작은 여관이 있었지만 불도 꺼 놓았고... 어쩐지 기분도 가라앉아 들어가 흥정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7시가 넘어서... 일본에 도착한 첫날 묵었던 다카마쓰 시내에 있는 토요코인 호텔에 전화를 했다. 방이 있다고... 오라고... 


호텔을 예약 해 놓고 나니... 몸은 지쳤지만 다시 시내를 향해 돌아가는 마음은 조금 느긋해졌다. 어쩔 수 없이 이제 분주하고... 어떤 여유도 없어 보이는 도시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드물게 교통사고 현장도 목격했다.  



여덟 시가 다 돼  한 접시에 99엔이라고 선전하는 그 회전 초밥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호텔 프론트의 담당 직원은 마침 첫날 만났던 사람이었고 나를 알아보았다. 순례가 어땠냐고... 자전거 박스는 잘 보관해두었다고...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물어주니 어쩐지 울컥할 정도로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렇게 긴 하루가 또 저물었다. 내일이면 절 순례는 모두 마치게 될 것 같다. 벌써... 마지막이라니... 

  


# 10일ㅡ5/30 목   니요도강 (仁淀川)  가다(加田)캠핑장~ 이와모토지岩本寺 뒤 리버파크캠프장

 

운행거리:  126 km


새벽 5시 잠이 깼다. 편안한 마음으로 푹 잤다. 텐트 지퍼를 내리자 아름다운 강변 풍경에 와 ...하고 절로 탄성이 나왔다.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이런 시각에 이렇게 비일상적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잠을 깨기는 어려웠겠지. 

 

여기도 화장실은 잘 관리돼 있다.

 낙엽이 몇개 굴러 들어가 있을 뿐 무심히 방치된 흔적은 없다. 유명한 관광지나 대로변의 휴게소는 우리나라도 화장실 을 잘 관리하고 있지만,  이 외딴 시골... 야영객이라고는 나 한 사람뿐인데... 마치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청소도 깨끗이 돼 있고 ... 조금 셈이 날 정도로 부러웠다. 


예외 없이 여분의 예비 화장지까지 갖춰둔 게 ... 조금 부러운 지경이었다. 어떤 시스템이 이렇게 치밀한 관리를 가능하게 한 것일까...  



물 안개가 피어오르는 강변으로 왜가리나 황새 같은 큰 물새들이 느릿느릿 날아다니다 물 위로 내려앉아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텐트 너머로 간밤에 홀로 어둠 속에서 깨벗고 샤워를 한 식수대도 보인다. 



다섯 시 반이 넘으니 인근 주민들이 한두 명 플라이낚시를 하러 강변으로 왔다. 그들의 그런 여유가 부러웠다. 집 주변에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이 남아있는 것도... 새벽 강에 발 담그고 무심히 낙싯줄을 던지는 그 고요한 심정도...   



아침은 빵을 구워 먹고 일부는 도시락으로... 어제 저녁에 지은 남은 밥과 함께 도시락 싸서 일찍 떠나기로 했다. 



일본에서 텐트를 칠 때 가장 애를 먹은 것은... 땅들이 대개 무른 흙이 아니라 자잘한 현무암(일 것으로 추측되는) 화산암들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지형이라 텐트팩을 박기 힘들었다는 점...  



팩 박기를 포기하고 주변에서 돌을 주워다가 묶는 식으로... 대신했다. 


짐 정리 모두 마치니 8시.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다. 다시 출발. 36번 쇼류지(靑龍寺)까지는 강변 야영장에서 직선거리로 25km 가량 떨어져 있다. 어제 저녁에 달려온  39번 강변길을 거슬러 달려...다시 바닷가까지 달려간 뒤 바다를 건너야 한다. 출근길 차량들이 분주한 도로를 나 홀로... 이물질처럼 뒤섞여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한 시간 가량 달린 뒤 토사(土佐)  시내에 도달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자 거리는 일 순간 고요해졌다.

션샤인마트가 막 문을 열고 있길래... 들러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사이클 패딩 바지가 아무래도 민망해서 덧 입기 위해 헐렁한 7부 바지(990엔)를 하나 샀다. 사찰에서는사타구니가 돌출된 라이딩복을 입고 돌아다니기가 아무래도 민망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아들들이 민소매 속옷 셔츠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도 마뜩찮아 하셨다.  


돈암동 산동네에 살던 유년시절에는 늘 문간방을 남에게 세를 주고 두 가구가 어울려 살았는데... 사는 형편이 빤히 들여다보일 만큼... 사생활이랄 것도 없는 그런 시대였다.  하긴, 60년대 중후반... 70년대 초... 전쟁이 끝난 지 불과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는 시절이었다.  



새로 산 바지를 라이딩 바지 위에 덧 입고...  오렌지쥬스 두 팩(180엔)을 사서 패니어에 넣고(자판기에서는 보통 한 병에 140엔 정도였다) 하드(100엔)를 사서 쇼핑센터앞 벤치에 앉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쉬는 김에 집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홉 시 반. 아내의 목소리가 잠 기운이 묻어있다.  아이들 등교 시킨 뒤에 잠시 자다 깼다고 했다. 집을 팔고 셋집을 구하는 문제로 이사 날짜가 안 맞고... 셋집을 구하는 일에도 우여곡절이 있어 며칠 속을 끓였다고 했다. 

  

36번 쇼류지(靑龍寺)는 마치 안면도처럼 시코쿠 섬에 나란히 돌출한 반도에 있다. 오른쪽 끝은 섬에 붙어 있지만 언뜻 보기에 시코쿠 본 섬과 내해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섬처럼 보이는 곳이다. 바다를 건너는 해안까지... 두 개의 길을 두고 잠시 망설였다. 조금 가깝지만 산을 넘어가야 할 것 같은 39번 도로와 좌측 강변을 따라 해안을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 282번 도로... 도저히 산을 넘을 자신이 없어... 10km 돌아가더라도 강변과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여행중에 가장 요긴했던 편의점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자주 뜨이던 로손이다. 보는 것처럼 차량이 수십 대는 더 주차할 수 있을 것처럼... 널찍한 주차장을 가지고 있다. 대개가 그랬다. 



농촌지역이라 그런지... 동네마다 이런 코인정미기가 있었다. 벼농가들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쌀을 찧어 먹으면 편리할 것 같았다.  자동세탁기들이 즐비한... 코인란도리와 코인 정미기...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볼 수 없는 시설들이다.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우사(宇佐) 항을 지나   다시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 우사대교가 나왔다.  어제 건너던 그 무시무시한 다리에 비하면 비교적 건널 만 했다... 다리를 다 건넌 지점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와 마주쳤다. 왜 이쪽 방향으로 되걸어오느냐고 물어보니... 반대쪽으로 이 반도를 빠져나가는 요코나미(横浪) 스카이라인쪽은 아무래도 경사가 가팔라서 되돌아나와 해안길을 따라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것은 내게도 중요한 정보였다. 



터널을 지나면 바다가 나오고 왼편으로 몇백미터 달리지 않아 36번 쇼류지(靑龍寺)가 있다. 이 절은 코보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던 당시 장안(長安)의 청룡사(靑龍寺)에서 중국 진언종의 창시자 혜과(惠果:746~805)를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되어 일본 밀교의 창시자 되었다. 그는 일본에도 장안에 있던 청룡사와 같은 절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에 바다 건너로 '독고저(불구... 안내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잘 모르겠다.)' 를 던졌는데..훗날 이 자리에서 발견하고... 이곳에 부동명왕을 조각하고 이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부동명왕은... 해상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져... 항해를 앞둔 원양어선 선원들이 이곳에 참배하곤 한다고... 



170개의 계단을 올라서면... 본당이 있다. 중간에 이렇게 꾸며둔 불상과 부도 같은 것들이 있다. 



본당은 언덕 위 계단 위에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향을 네 촉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부모님과 두 분 형님을 위해서였다. 계단 아래서 잠시 쉬다가 10시 50분 다시 출발...




 아까 길에서 만난 순례자가 일러준 정보대로 다시 바닷가로 돌아나와 다리를 건너 내해를 끼고 가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거대한 종려나무들이 늘어선... 이국적인 해안길...  을 다시 되돌아 나와... 


호수갈이 잔잔한 내해를 끼고 다시 해안길을 달렸다. 내가 시코쿠 순례를 떠나겠다고 하니... 대학 동기인 시인 박시우는... '두멍물같은 시코쿠 바닷길을 걷겠구나...' 하는 문자를 보내와서... 나는 조금 의아했었다. 어디서 무얼 보았길래... 시코쿠 바다를 두멍물(물을 길어둔 큰 독 속에 담긴 물)같다고 했을까... 그런데...딱 이 지역이 그랬다 비릿한 갯내음과 아무렇게 바닷가에 널어 놓은 어구들...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막막한 길...을 30km 달린 뒤에야... 시가지가 나온다고... GPS는 냉정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한참을 달렸다. 완만한 오르내림. 사람도 차도 왕래가 만날 수 없었다.  파도조차 없는 그 바다는 바다라고 하기에도 어색한... 그래 ... 두멍물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구나. 56번 도로를 만날 때까지 한참을 달렸다. 



낮 12시  특색 없는 사이렌소리 시보가 울렸다. 쨍쨍한 햇볕도 아니고... 뭉근하게 달궈진 도로가 맥을 빠지게 했다. 기력이 빠진 것 같아 고갯길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길에 선 채 토스트와 레몬을 꺼내 먹었다. 언덕을 오르다 보니 길 밑으로 짚으로 멀칭한 밭에서 아주머니가 밭을 돌보고 있다. 비닐 대신 짚으로 정성껏 멀칭을 해둔 밭이 반가워서 사진을 찍었다. 이 정도 농사규모라면...내다 팔 정도는 아닐 테고... 식구들끼리 나눠먹을 텃밭이라고 여겨졌다. 


자기 나라 농사가 온 국민의 삶의 근간이던 데에서... 무슨 화훼 취미처럼 전락한 현실이... 이 나라나 우리나라나... 


언덕을 위에는 또 터널이 있었다. 터널을 넘어 고갯길을 내려서니 스미토모 시멘트공장 직전에  휴식소가 있어 잠시 쉬면서 ...나그네들이 남겨놓은 기록장을 읽어보았다. 프랑스 사람이 짤막한 영어로 남겨둔 기록도 있었다. 휴식소에 붙어 있는 주택에서 화장실을 쓸 수 있게 배려해주고... 물도 받아갈 수 있게 해 줘 감사하다는 내용이 대부분 이었다. 나도 짤막한 일본어로... 야마시타상이 궁금해 안부를 묻는 내용을 남겼다. 휴식소에 있는 홍보물에 "최근 이 지역에  신흥종교를 권유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대응하는 데에는  무시하는 게  제일" 이라고. 적혀있다.  신흥종교... 뭘 말하는 것일까. 


쉬는 김에 도시락으로 싸온 주먹밥까지 마저 먹고. 오후 1시 경 다시 출발. 이 때까지만 해도 다가오는 고난을 충분히 예감하지 못했다.  조용한  스사키(須崎)시 시가지. 또다시 비가 뿌리다 개다 한다.  모스햄버거가 궁금해서 들어가 한 개(320엔) 사서 랙팩에 넣었다. 비상식량이다. 어쩐지 먹기도 전에 든든해졌다.   



 다시 비가 흩뿌린다. 사기도 떨어지고 기운도 빠진다. 스사키 시나를  벗어나 해안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미치노에키에서 중년의 사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꺼운 안경에 지식인풍의 사내다.  그는 그 짧은 시간에 내게 "일본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이런 소리를 했다. 확연히...3,4년 전에 일본에 왔을 때 배용준이나 대장금에 열광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보이던 과장된 호감과... 올해 일본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무래도 역사 문제가 있으니까 무시할 순 없겠죠. 그런데 요즘은 별로 그렇지도 않아요. 특히 젊은이들은 일본에 대해 특별히 나쁜 감정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무관심하다고 하는 쪽이 ... " 


그는 80리터 대형 배낭을 매고 있었다. 20일 가량 걸었을 텐데 지친 기색도 없다. 길에서 만난  대개의 사람들이 그랬다. 일본이 한국을 싫어한다면... 그건 단순히 기호의 문제겠지만... 한국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은 그럴 만한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물론 과거에 집착하는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일본은 과거에 대해 진지한 반성도 사과도...  청산도 하지 않고 있잖은가... 



날이 흐려지고 있다.  이미 잠자리 찾아야할 시간 아닌가 초조해지면서 기운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해안길을 벗어나면서   핸로미치 스티커는 56번 국도를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래 국도를 따라 달리는 것보다는 이런 길이 좋지... 내심 만족스러워하며 조용한 시골마을 길을 10 km가량 달렸다. 그런 나를 발견하고...  한 할아버지가 차를 세우더니  말을 건다.  



"어디 가고 있소? "  "이와모토지(岩本寺)에 갑니다." "여기는 걷는 순례 길이야. 가이당이 많은 산이라 자전거는 무리야. 갈 수 없어." 


벌써 국도를 벗어나 10km는 달려온 상황이라 기가 막혔다.  "우와! 그래요?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빠꾸해서 56번 도로(공중에 높이 떠 있는 고가도로를 가리키며) 로 가라. " 


"이런 제길 제길 ... 우라질..."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발길을 돌렸다. 



스스로의 얕은 수를 원망하면서 다시 56번 국도로 돌아와 운명처럼 ... 미시령이나 대관령처럼 아스라히 산 위로 뻗어있는 오르막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예의 숨이 가빠오고 평소에 겪어본 적 없도록...엄청난 땀이 쏟아진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싶도록... 수도꼭지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땀이 흘러내린다. 걱정이 돼 멈춰 서서 정제 식염포도당을 몇 알 먹고 물을 나눠서 마셨다.   


기분으로는 대관령보다도 두 배는 긴 것 같은 오르막이다. 나는 이 고난이 언제 끝나게 될지... 짐작할 수 있는 조그만 단서라도 찾으려고 애가 탄다. 오르막 저속차량 전용차선이... 몇 미터 앞에서 끝난다는 안내판을 읽으면... 아, 이제 오르막이 끝나나보다...하면서 오른다. 그러나 몇 번이나 저속차량 전용차선이 끝났다가 다시 시작되기를 반복한다. 자전거에서 내려 끌다 타다를 반복하면서 울고 싶은 심정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저 아스라한 길들을 내가 올라왔단 말인가... 


그 때 반대차선 ...위쪽에서 새카맣게 그을은 젊은이가 자전거에 패니어를 주렁주렁 매달고...내려가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얼굴이 까맣게 탄 탓에 유난히 흰 이가 두드러져 만화  주인공 같다.  당신은 내리막을 한참 달리겠구나.  

오르고 오르다보니... 눈 아래 까마득하게 산봉우리들이 펼쳐진다. 거의 탈진한 상태에서 고갯마루에 도달했다.  


끝나지 않는 고난은 없다. 스스로가 대견했다.  짐이 주렁주렁 매달린 이 자전거를 끌고 이 산을 올랐구나... 감격에 겨워 있는 그 순간이었다.  



순진한 표정의 중년 남자와 화장이 짙은 할머니가 너무나 환히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다. 몇마디 하다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니 유관순 조용필 자기들이 아는 한국사람들 이를을 나열하면서 여러가지 말들을 한다. 한국사람이라 반갑다는 것인지... 순례자라서 반갑다는 것인지... 


와카소지 아키상 64 도쿠히로세츠코 상... 자신들의 이름을 써서 보여준다. 남자인 와카소지아키씨는... 옆에 있는 도쿠히로세츠코씨가 부인이 아니라 ... 여자친구... '거루후렌도'라고 했다. 누가 물어봤나?... 그냥 비실비실 웃으며 바라보았다... 나는 높은 고개를 넘어섰다는 감격 때문에...혼자만의 세레모니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순간을 이들의 떠들썩한 수다가 방해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은 속내를 드러냈다. 자신들은 고치시 남묘호랑개교 소속이라고... 아 참 이 사람들이... 휴식소에 적혀 있던 요주의 신흥종교 사람들이구나... 나는 소위 말하는 이단시 되는 신흥종교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편견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하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종교나 신념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규범과 도덕을 파괴할 때 뿐이어야 한다고... 우리 헌법에도 명시돼 있는 정도의 교양은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소박한 신념이다. ... 



내게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버젓이 대형교회나 사찰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맹신의 태도들이다. 나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종종 '정말 믿느냐?'고 묻곤 한다. 그 흔들림 없는... 남들에게 강요하다시피하는 일도 서슴치 않는 확신에 찬 태도가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 사회적으로 핍박 받는... 이단시 되는 신흥종교 사람들을 일상에서 직접 만날 기회는 드물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최인석의 소설 '세상의 다리밑'에도 생생하게 묘사돼 있고...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잠시 구치소에 들어가 있을 때나... 신혼 때 이웃에 살던 부부를 보아서도 알지만... 그들이 남에게 해꼬지를 할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80년대...온 세상을 건질 것처럼 허세를 부리던 우리 주변의 운동권 출신들에 비해서... 그들은 신념을 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해 ...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었다. 직접 만난 그들은 대개가... 존경스러운 정도로 건강한 생활인들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에는... 일본 천리교 (남묘호랑개교) 사람들의 떠들썩한 선교를 오래 듣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 네 시가 다 돼 가고 있는데... 당장에 어디서 잘 것인지도 정하지 못해 초조한 탓도 있었고... 내게 보였던 그 친절과 환대가...선교라는 목적을 감춘 수단적인 행위였단 말인가... 싶으니 어쩐지 불쾌한 기분도 들었다. 


보험영업을 하는 선후배들이나  다단계판매를 하는 이들에 대해서 느끼는 불편한 기분도 그런 것이었다. 이삼십 년 전부터 알아 온 이들에게 어느 순간 관계가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 들 때...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쓸쓸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헤어지는 순간에... 그들은 차 뒷좌석에서 빵 하나를 꺼내 내게 주면서... "남묘호랑개교는 세상의 가장 가치 있고 평화로운 상태로 당신을 이끌어 줄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어쨋든 감사한 일이다. 


진언을 외거나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 번뇌를 끊을 수만 있다면... 매 순간 격랑이 이는 이 마음을 가라앉힐 수만 있다면...  되도록 티 안 나게... 가야 할 길이 바쁘다며... 작별을 고하고...  거의 울면서 올라야했던 높이를... 허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달려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 분명한 진리는 우리가 중력에 얽매어 있다는 것 ...이로구나...  

내리막길은 한 동안 산길로 이어졌다.  한참 달려 내려가다가 만난 휴식소에서  잠시 쉬었다.  

미치노에키에서 도달하고 나니 이미 다섯 시가 다 돼간다. 너무 늦었다. 37번 사찰 이와모토지 (岩本寺)가 머지않은 시만토쵸( 四万十町) 마을에서 일단 장을 봤다. 대형할인점 마루나가에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한다는 아내의 충고대로 소고기200g을 780엔에 샀다. 반값도 안 되는 미국산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선택하지 않는 미국소를 일본에서 살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일본 국내산을 샀다. 


목표로 하고 있는 이와모토지 뒤편 근 20km 뒤쪽에 있는 야영장까지 갈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은 안 섰지만...일단 야영 할 준비를 한 것이다. 장을 보고 나서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쩌지... 56번 국도에서 우회전 해 1km 남짓 들어간 곳에 이와모토지가 있었다. 이미 다섯시가 지났기 때문에 절을 관리하는 할머니가 납경을 받겠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답하고... 그저 내가 가지고 온 향을 사르고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절을 나섰다.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절앞에서 도보 순례를 하고 있는 젊은이와 잠시 인사를 나누었다. 도쿄의 신주쿠에 산다며... 내게  왜 왔냐고... ' 조용히 생각도 하고 삶을 돌아보기도 하려고....' 대충 답을 했더니...그는 미소를 지으며 핸로들이 다 그렇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 짧은 순간에 김기덕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냐고... 김기덕 감독은 오히려 해외에서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고 ...했더니 자기도 안다고 했다.  나도 일본 영화 중에서 '카모메식당'이나 '굿 바이'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니까... 그는 또 씩 웃으면서 그런 영화도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디서 잘 거냐고 물으니 자기는 5km  떨어진  민슈쿠(民宿)예약을 해두었다고... 나보고도  어디서 잘 거냐고... '나는 15km 떨어진 캠핑장에 간다고...  아... 그러냐... 잘 가라... 함내요... 다들 쿨하다... 마음에 든다. 


 

인사를 나누고 그와 헤어졌다. 날도 어두워지고 있는데다가 비도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캠핑장이 있다는 방향으로 일단 계속 달렸다.  순례길과는 정 반대라서 민숙이나 여관같은 게 없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그 방향에 미치노 에키가 있다고 표시돼 있으니 야영을 못하게 되면 미찌노에키 화장실 옆에서라도 야영을 해야겠다 싶었다. 


이와모토지에서 내륙쪽으로 뻗은 시만토(四万十) 강을 따라 뻗어 있는 381번 도로... 적막한 시골길을...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달렸다. 비를 피할 잠자리를 못 만난다면... 어쩌지...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룻밤 잠을 안 잔다고 무슨 대수랴... 이런 생각들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달리고 달렸다. GPS 상에는 두 개의 야영장이 1~2 km 떨어진 지점에 있다고 했다. 



리버파크 야영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완전히 저문 시간이었다. 사지은 다음날 아침에 찍은 광경이다. 


드디어 미찌노에키도 두 개의 야영장도 근거리에 있는  시만토다이쇼(四万十大正)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첫번째 야영장은 언덕 위에 있었다. 올라가 보았지만... 청소년 수련시설은 있는데... 관리인을 만날 수 없었다.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언덕을 내려와 다시 다리를 건너 GPS 가리키고 있는 강 건너 리버파크를 찾아갔다... 


어두워져... 라이트를 켜고 들어가야 했다.  숲은 짙어지지만 사람의 기척은 볼 수가 없어 또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2~3 km 강변을 따라 들어간 지점에... 야영장이 있었다. 깊숙이에 사람의 기척은 느낄 수 없지만... 텐트도 한동 세워져 있었다. 일단 여기서 잠은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조금 떨어진 공터에 지붕이 있는 바베큐장 안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습기를 머금은 잡초 밭 위에 텐트를 치자니 깨름칙 했기 때문이다. 


텐트부터 치고...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관리동에.. 사람은 없고.. 샤워장이 있었다. 코인샤워... 200엔을 넣으면 더운물이 나오게 돼 있어... 일단 샤워를 했다. 텐트도 설치했고... 일단 부러울 게 없는 밤이다. 저녁은 헤드램프를 켜고... 소고기를 구워... 천천히... 먹었다.  고되고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일단 잠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없는 것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서움 같은 것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감정일 수 있었다. 



지출 :  토사시 선샤인마트 1400(7부바지 990 하드 100 오렌지쥬스 2 180 
절앞 무인판매대 오렌지5개 200  모스버거 320 로손 초코우유 150 
37번 절 앞 마트 1250엔 (소고기 780 우유 2개 )



9일ㅡ5/29  고치시 도사지호텔~ 니요도강 (仁淀川)  가다 캠핑장(加田キャンプ場)

운행  62.54km



새벽에 깨어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빗줄기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마음이 무겁다. 이왕 이리 된 거 느긋하게 떠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서 고치 지역은 오후 3시 이후에 날이 개일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 전이라도 빗발이 가늘어지면 떠나야지... 


아침 7시 호텔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니기리와 미소시루, 계란말이, 프랭크소시지, 김... 한쪽에 빵과 버터와 딸기잼...그리고 커피와 오차가 후식으로... 더 비싼 호텔들은 어떨지 몰라도... 어느 호텔이나 이렇게 나오는 것 같다. 출장 때 가본 후쿠오카나 도쿄의 비즈니스 호텔이나... 이번 여행에 몇 번 묵은 토요코인은 다 이랬다. 


어제 휴식소에서 비를 피하다가 만났던 와카야마 할아버지와 순례 22일째라며 다리를 절며 걷던 분 ... 모두 식당에서 만났다.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호텔이었는데...  어제. 그 상태에서 이 호텔을  못 만났다면 낭패를 당할 뻔 했다 싶었다.  


비를 맞기 싫어 최대한 늦장을 부리다 오전 10시 다 돼  출발했다.  갈비뼈에 금이 갔는지 눌릴 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  떠나기 무섭게 랙팩을 위에 한 번 더 결속한 고무줄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크랭크에 휘감겼다.  빗발이 조금 가늘어지긴 했지만 길가에 선 채 비를  맞으면서 벗겨내느라 애를 먹었다. 단단히 꼬여들어간 고무줄을 가위로 한 가닥씩 잘라가며 떼어내야 했다. 기어를 풀고 텐션 가이드를 뒤로 밀면서 한 30분 애를 먹었다. 손아귀 근육이 곱아져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뭘 야무지게 집어서 당기지를 못한다. 일시적인 일이겠지만  일종의 장애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지도 방향이 거꾸로 돌아가 1km가량 반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시 외곽, 유니클로와 대형 할인점 마루나가 그리고  다이소 등 거대한 쇼핑몰이 도열 해 있다. 대개 도시들이 다 그랬다. 


방금 '해먹은' 결속용  고무줄도 살 겸 다이소에 들렀다.식품은 여러 대형 쇼핑몰들이 혼전을 벌이고 있고,  동네의 가게들은 거의 다 소멸한 것 같다. 길목마다  편의점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고  다이소도 동네마다 들어서 있다. 20년 넘게 이른바 버블이 꺼진 뒤 경기침체가 지속돼온 일본은 다이소 세상이 된 것 같다. 다양한 생활용품과 간단한 식음료까지 안 파는 게 없다. 12번 쇼산지 가는 길에 산골 점방에서 시세에도 선블록을 600엔 주고 샀는데 이보다 용량도  더 큰 게 단 돈 100엔이다. 중국제인가 봤더니 메이드인 코리아다. 


31번 사찰 치꾸린지(竹林寺)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제 비를 뚫고 찾아가다 불의의 추락사고로 나를 좌절하게 만든  절. 자전거를 위한 길 안내는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다시 터널을 건너고 강을 건넜다가 다시 넘어와 헤맸다. 세밀한 부분까지 내려받지 않아  지도에 등고선 표시가 안나타나는 게  문제였다.  길가에 서 있는 순찰차에 다가가 물어보니  골목길 끝 산 위로 올라가는 들머리를 가르쳐준다.  도보 순례자들은 촘촘히 붙어 있는 스티커를 따라가고  자동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있겠지만 자전거를 사정이 다르다. 


언덕길을 또다시 끌다 타다 하면서 올랐다. 만약 이 산이 아니라면 ...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이백미터쯤 남은 지점서 아까 만난 순찰차와 순경을 다시 만났다. '이 위에 치쿠린지가 있습니다.'  알려준다.  


치쿠린지(竹林寺)가 있는 산 이름이 고다이산(五臺山)이다. 724년...쇼무 천황이 중국에 있는 오대산을 닮은 산으로 이 산을 지정하고 스스로 문수보살을 새겨 절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있다.   절 입구에 식물원도 있다.



 절에는 일부러 구경할 만한 고색창연한 일본식 정원이 잘 갖춰져 있다.  전통있는 절이라는 게 느껴진다.



 17세기 이후로... 이 절은 학문의 절로 인근 지역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 절이라고 한다. 



가늘게 흩뿌리는 빗속에 천천히 참배를 했다.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아니다. 돌이켜보면 여유는 있었다. 누가 강제하는 일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날 안에 반드시 해내야 하는 과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둥대고 있었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초조감이 여전히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마저 그렇게 허둥대는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기분은 참... 더럽다. 

절 위에 고치시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전망대가 있다고 했는데... 올라가보지 못했다. 오늘은 꼭 야영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자판기에서 비타음료 (150엔)를 사마시고 12:00 다시 출발.


32번 사찰 젠지부지(禅師峰寺)는 31번 주쿠린지로부터 6.8 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산을 내려와 좌회전을 한 뒤  강변 도로를 달리다 세번째 다리에서 우회전 해 다리를 건넌 뒤 2km 쯤 달려가 만나는 바닷가 언덕 위에 있다.  바닷가에 있는 절이라고 방심하고 달리다가 또다시 업힐 구간을 만난다... 허를 찔린 기분.  


절 입구에는 대단히 규모가 큰 공동묘지가 함께 있다. 철죽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회양목에 붉은 꽃이 피어있다. 원래는 꽃을 피우는 관목인데 추운나라에 와서는 꽃피우기를 거부해온 것인지...


허리가 땅에 닿을 듯... 거의 백세는 돼 보이는 꼬부랑 할머니가 쓰러질 듯 절 계단을 오르고 있다. 저 간절하고 절박한 걸음 앞에 나는 잠시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악산 봉정암에 오르다 보면 그런 노파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잿빛 옷들을 입고 기듯이 산을 향해 오르면서 연신 무엇인가 간절히 희구하던 그 분들의 표정도 그랬다. 노파들이 자신의 복락이나 극락행을 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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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전하는 차 뒷자석에만 오르면 '나무관세음보살' 부터 찾으시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참배를 하고 계단을 내려 오는데, 후배 P의 부친상 소식이 문자메시지로 날아온다. 어차피 문상을 갈 처지가 아니니 집에 전화를 했다. 아내가 저녁에 조문하겠다고 한다. 다들 부모님들이니 세상을 떠나고 있다. 세대가 이렇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젠지부지(禅師峰寺)는 토사만의 태평양이 조망되는 미네야마(峰山)위에 있어  미네지寺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코보 대사가 807년에 방문해 11면 관음보살상을 새겼다는 전설이 있다.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절로 여겨진다고 한다. 

1291년에 만들었다는 금강역사상은 국보라고... 




우리나라 동해안 강릉과 삼척 인근  해신당에는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처녀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20년 전에 ... 취재차 갔던 그 당집들에서... 나무로 깎은 남근을 제물로 올리며 제를 지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누구를 모시고 무엇을 바치든... 풍어를 기원하고 재난을 피하게 해달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는 것은 같다.     



참배를 마치고나니 오후 1시 반. 계단을 내려와 절 주차장에 있는 휴식소에서 어제 산 빵과 주쿠린지에서 마시다 남겨온 비타음료와 함께 먹으며 잠시 쉬었다. 아까 계단을 기듯이 올라가던 할머니를 모시고 온 택시 기사가 다가와 관심을 나타내며 전부 자전거로 도는 것이냐고...대단하다고 ... 그러면서 일주일 전 23번 야쿠오지에서 어떤 예쁜 여자(かわい 女)가 당신처럼 자전거를 타고 순례를 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호오... 그래요?  여자도 자전거 순례를 하는구나... 과연 내가 겪은 고난에 찬 과정을 그 여자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것도 혼자서... 싶었다. 


계속 비가 내리다 그치다 한다 ...  정말 쓰유(梅雨)가 시작되기라 한 것인지.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30m 이상 고공에 떠있는 편도 1차선 다리를 건너야 했다. 우라도대교(浦戶大橋).  멋모르고 도로를 따라 올라갔는데 어느샌가 바다를 건너고 있다. 너무 무서웠다 까마득한 바다 위를 달리는 것도, 뒤에서 굉음을 내며 다가와 스치듯이 지나쳐가는 화물차들도 ...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난간에 철망이 쳐있어 심리적으로 조금 위로가 되었다.



다리를 건너면서 내리막길로 해안길에 내려선 후 바다를 끼고 3~4km 달린 뒤


33 번  셋케이지(雪蹊寺)까지는  10.2 km.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굳이 무시무시한 다리를 넘지 않고... 우측으로 조금만 더 가면 무료로 운행하는 도선장이 있었다. 배에 실려 직진할 수 있는 것을 다리를 건너 우회한 것이다. 



셋케이지는  다행히 평지에 있었다. 날이 개고 잠시 해도 났다.


16세기 후반, 이 절에서 수행하던 겟포우오쇼(月峰和尙)의 귀에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운율에 맞춰 짓는 일본의 옛 시가인 와가(和歌)의 후반부 구절만 되풀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겟포우화상은 이 귀신이 시를 짓는 게 서툴러 이를 한탄하느라 성불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뒷구절의 댓구가 될 앞부분을 지어주었더니... 울음소리가 그치고 귀신도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단다. 뭐 그런 일로... 울고불고... 남들에게 민폐를 끼친단 말인가... 소심한 귀신 같으니라고... 



 

참배를 바치고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바빠진다. 절 입구 무인판매대에서 귤 한 봉다리를 200엔 주고 샀다. 껍질이 두껍고 씨가 있어 골라내야 하지만 달고 시원해서 음료를 사 마시는 것보다 ... 여러모로 좋았다. 


세케이지에서 해안도로쪽으로 나오다보면 34 번사찰 타네마지(種間寺)까지 이정표가 있다. 자동차 3.6km로 표시된 거리가  내가 달려야 할 길이다. 



34 번사찰 타네마지(種間寺)도 평지 길가에 있었다. 



코보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며 ...쌀, 보리, 좁쌀, 수수, 콩 등 5곡의 종자를 가져와 이 절에 뿌려서 채종했다는 전설이 있다. 절의 이름도 그래서타네마지(種間寺)라고...  


 577년에 이 절을 지을 때는 백제에서 화가 목수 등 장인들이 와서 도와주었다고 한다. 절이 완공된 뒤 귀국하려고 할 때 풍랑이 일었는데... 절에서 안전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 뒤에 무사히 돌아갔다고 한다. 



여기서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 까지는 로커스 GPS가 가리키는 방향과 교통표지판, 핸로미찌 스티커가 가리키는 방향이 전혀 달랐다. 일단 도로표지판과 GPS를 보면서 달렸다.  


고즈넉한 동네였다. 오가는 차도 없고 비에 젖은 5월의 신록이 뿜어내는 숲의 고요.  

하천이 마을을 관통하는 동네를 지나 56번 국도를 한참 달린 뒤 니요도가와 (仁淀川) 강변에서 토사시(土佐市)시의 제법 번화한 시가지를 지나게 된다. 



길가에 있는 모스버거 매장을 지나...  갈림길에 휴식소가 보이길래 잠시 앉아 쉬면서 아침에 싸놓은 주먹밥을 먹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자전거로 순례하냐? 대단하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는 저쪽으로 가는데 알고 있냐며 살짝 지나친 갈림길에서 뒤쪽으로 뻗은 길을 가리킨다. 네에? 자세히 살펴보니 교차로 가로등에 핸로미찌 스티커가 붙어있다.  


더 늦으면 안되겠다 싶어 짐을 꾸려 떠나며 보니까...아까 그 아주머니가 길 건너편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내 말 이해했어요? 괜찮겠어요? "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참 친절하고 사려 깊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정이 많고 친절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지는 않는데... 싶었다.  


35번 기오타케지(清瀧寺) 역시 언덕 위에 있었다. 고속도로 교각 아래를 통과한 뒤 산 위로 올라야 한다. 산 입구에는 어둑어둑 음산한 묘지가 있다. 땀 깨나 쏟으며 경사면을 한참 오른 뒤 기오타케지까지 500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고 맥이 풀렸다. 마지막 100m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핸들바백만 들고 올라 갔다. 시가지가 다 조망되는 자리다. 



코보대사가 금강장으로 대지를 찌르니 푸른 폭포가 생겼다는 전설에서 이 절 이름이 유래했다고... 

참배하고 하산하다 보니 오후 5시 시보가 울려퍼진다. 안개낀 밤의 데이트... 차임벨 연주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니... 애수가 밀려온다. 낡은 표현일지라도 그냥 애수(哀愁)라고 적고 싶은 그런 쓸쓸함. 동네마다 매 시각 시보를 울리는 건 같은데, 어떤 곳은 사이렌을 울리고...어떤 곳은 학교에서나 쓰는 딩동뎅동...실로폰연주를, 또 이렇게 귀에 익은 경음악들을 트는 곳도 있다. 담당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아무튼 이 동네 오후 5시 시보는 안개낀 밤의 데이트였다. 나는 언덕을 내려온 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허전한 가슴을 추슬러야 했다.   


니요도가와(仁淀川) 강변에 있다는 캠프장까지는  직선거리로 4km 떨어져 있다고 GPS가 가리킨다. 아무리 멀어도 7km는 넘지않겠지... 4~50분 안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상은 접어두고 부지런히 패달을 밟았다. 


도중에 편의점 스리에프에 쌀이 있나 싶어 들어갔으나 2kg들이만 있어 포기했다. 한끼에 200남짓 먹을 텐데 내내 무게를 달고 다닐 게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대신 순례자코스에 있는 사찰 주변 숙박업소와 식당 등을 안내한 가이드북, 우유 1리터, 주스, 식빵 등을 샀다. 퇴근길 차량들이 이미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편의점에서 나와 강을 건너... 좌회전... 이제 캠프장까지 직선 거리는 2km. 강변을 따라 달리면 된다.  다시 빗발이 굵어진다. 마음이 바빠졌다. 가다(加田)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강변으로 내려가기 전 둔덕 위에 있는 화장실과 강변에 수도꼭지 대여섯 개 달린 급수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차들 강변에서 플라이낚시를 하는 이들이 세워둔 서너 대의 차량.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텐트도 한 동 세워져 있다. 


급수대에서 50m쯤 떨어진 지점에 텐트를 세우기로 했다. 텐트를 조립하고 있는데 작은 트럭이 다가왔다. 


운전석에서 앉은 채 순박해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건다. "기서 캠핑 할 거냐?" "네 캠핑해도 되나요? "  "됩니다. 바닥에 물이 있으니 텐트를 뒤쪽으로 옮겨요." 그런데 그가 말한 지점은 약간 움푹 패인 탓에 낙엽들이 쌓여있지만 물 구덩이였다. 캠프장 관리인인가 ?  싶었지만 그렇게 물어보기도 뭐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그가 차에서 내려 자기가 지정한 지점을 확인하더니... 미안하다고 하고 자리를 떴다. 


차를 몰고 떠났던 그가 잠시 뒤 다시 왔다. 


"술 마시냐?" 이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캠핑장에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소린지... "조금..." 이렇게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는 이 동네 토산품이라며 일본 술(사케) 한 팩을 주면서 "푹 자라"며 두 손을 포개 얼굴옆에 대며 자는 시늉을 해 보인다. 귀엽다. 그리고 충분히 합법적인 야영을 하게 됐다 싶으니 긴장도 풀리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비 안개가 자욱한 강변으로 가끔 왜가리같은 물새들이 느릿느릿 날아다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 이제 부러울 게 없는 밤을 보내면 된다. 다만, 쌀이 떨어진 게 허전했다. 첫날 다카마쓰역에 있는 A마트에서 산 1Kg을 다 먹은 것이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어지는 법이니라" 어머니가 내게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고달프게 걷는 사람은  말만 타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싶지만 말을 타고 나면, 앞에서 이끌어줄 견마꾼(牽馬 -)마저 바라게 된다는 말인데, 나는 대학 2학년 때인가 어머니가 이 말씀을 하실 때  말뜻을 확실히 듣지 못했다. '견마가 아니라 경마가 아닐까? 천천히 걷던 사람이 말을 타면 더 빨리 경마도 하고 싶어진다는 말인가 보다.'  이렇게 지레 짐작을 했다.  


늘 사는 게 아슬아슬 했지만, 1985년에 셋째 형을 그나마 몇 백만 원짜리 전세방을 구해 장가보낸 뒤 서울에 남은 어머니와 나는 갈 곳이 막연했다. 막막한 심정으로 단칸방을 구하러 아파트단지로 개발 되기 이전의 방학동, 의정부 등으로 버스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그때 내가 방을 구하면 뭐도 필요하고 뭐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그런 말씀을 하셨다.  경마가 아니라 이끌 견(牽)... 견마였다는 것은 한참 지난 뒤에 알았다. 소설에 그 속담이 나오길래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게 나와 있었다. 


텐트를 다 설치하고나서  짐을 정리하고 난 뒤 빈 자전거를 타고 이웃 동네에 가보았다.  다행히 골목 안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초로의  아주머니께 쌀이 있는가 물었더니  5kg들이밖에 없다고... 얼마나 원하냐고 ...  1kg이면 좋겠다고 하니까...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가게 안쪽 살림집에 있는 남편에서 허락을 받는다. 도시에서 만나던 ...어딘지 약하고 외로워보이는 일본 남자들과 달리.... 가장의 권위가 여전히 등등해 보이는 아저씨가 아뭇소리 없이 5kg 쌀푸대를 들고 나와 저울에다 1kg이 훌쩍 넘게 달아서 비닐 봉투에 담아준다. 고마웠다. 



물에 삶아 껍질째 먹는 줄콩이 있길래 달라고 하니 ... 먹을 줄 아는지 묻는다. 염려 말라고 달라고... 바나나 한 송이, 정어리통조림까지 먹을 것을 조금 더 샀다. 주판으로 계산하더니.1500엔인데.1000엔만 받겠다고... 또 잠시 실랑이를 했다. 그럴 수 없다고 1500엔을 내겠다고 ...  한사코 500엔은 오셋타이(接待)라고 하신다. 콧끝이 찡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가게를 나와 자전거에 매달고 온 빈 패니어에 주섬주섬 장본 것들을 넣고 있으니  따라나와 단팥빵 하나를 쥐어주고는 내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신다. 


이제 저녁은 과식을 할 지경이 되었다. 이틀 전...츠키미산 어린이숲 (月見山 こどもの森) 에서 구워 먹으려다가 갑자기 탈출하는 바람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 돼지고기 200g.  호텔에서 버릴까 하다가 그럴 수는 없지 싶어... 끓는 물에 데쳐서 후추를 뿌려 꽁꽁 싸서 가지고 왔는데 ... 다행히 상한 것 같지는 않아 ... 토스터에 구웠다.  



정어리와 남은 김치... 가게에서 사가지고 줄콩을  반 넣어 찌개를 끓였다. 나머지 콩은 데쳐서 그냥 먹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준 사케까지...  



게다가 캠핑장은 무료다. 다만 샤워시설이나 충전을 할 수 있는 콘센트는 찾지 못했다.

  


뿌듯한 저녁을 ...다 먹고.. 쉬다가... 밤 10시가 넘어, 더 이상 통행인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급수대 앞에 가서 코펠로 물을 떠 샤워를 했다. 급수 대 옆 가로등 스위치를  끄니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일본에 와서 노천에서 너무 자주 벗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캠핑장을 전세 낸 날이다.  



지출:  다이소 630엔 (반다나 105 선블륙 105 결속 파소토 105 전지 2종 210 케이블타이 105) 스리에프 1453(가이드북 880 우유 1L218 주스 500ml 157, 식빵 198)  무인판매대 귤(200엔)
가다 캠핑장  加田キャンプ場 인근 동네가게 1000엔 ( 쌀 1kg 바나나, 정어리통조림, 풋콩1 빵1) 

정종1캔 ㅡ 오셋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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